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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 컨설팅북 - 당일.1박 2일.2박 3일 여행 코스 올가이드 컨설팅북 시리즈
이민학.유은영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4월
품절



봄 기운이 어느새 참으로 만연해졌다.
거리마다 벗꽃들이 흐드러져 피어있고 모퉁이마다 마주치는 하얀 목련 역시도 싱그럽기 그지 없다.

귀밑머리 스치는 봄 바람 마저 꽃내음이 물씬 담겨 발걸음 조차 왠지 가벼워지는 요즘 그야말로 그 바람따라 멀리 멀리 나아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여행은, 그것이 국내 여행이라 하더라도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일단 무엇보다 막상 떠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정보의 부족.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좋은지 알 길이 없으니 늘 가던 곳이나 왕복하고 그러니 본디 여행이란 이국적 풍경 속에서 삶의 중력을 느슨코자 함인데 늘 익숙한 풍경이나 마주하게 되니 늘상 걷는 거리를 또 걷는 것 처럼 별다른 흥미는 느끼지 못하고 피로와 바가지로 인한 불쾌감만 더해 돌아올 뿐이었다.


그럴 때일수록 국내 여행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 줄 수 있는 책이 있었으면 했고 이왕이면 한 권에 집약되어 핸드북 처럼 손쉽게 이용할 수 있었으면 했다. 물론 요즘은 뭐든지 인터넷으로 가능한 시대라 여행 정보 역시 노력만하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나 역시 그랬는데 하지만 거기에도 한계는 있었다. 일단 가고자 하는 지역을 내가 알고 있어야 정보들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모르는 지역은 그저 모르는 지역으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사실 여행이 가져다 줄 가장 큰 재미 중의 하나인 새로운 곳을 만나는 기쁨은 별로 느껴볼 수 없었다. 내게 필요한 또 한가지는 이렇게 바로 낯선 곳, 내가 완전히 모르는 곳을 알려 줄 수 있는 가이드 책이었다. 아마도 사실 이건 나만의 바람만은 아닐 것이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이 잘 모르지만 어딘가 있을 좋은 곳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 그건 대한민국의 알려지지 않은 좋은 곳을 알려준다는 취지로 시작된 1박 2일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가 그렇게 높았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나의 바람을 누군가 헤아리기도 했다는 듯이 거기에 맞춤한 책이 나왔음을 발견했다.



'여행 코스 짜는 게 어렵고 귀찮은 당신' 이게 딱 나다. 그래서 이 문구를 발견했을 때 그야말로 바로 나를 위한 책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아예 제목 자체가 '컨설팅북'이다. 마치 나 같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려고 작정하고 나왔다고 외치는 것 같다.

하하하!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스스로 국내의 주말여행의 코스를 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책이다.

국내의 모든 여행지를 544페이지에 이르는 단 한 권에 다 수록하고 있는데 그것을 지역별, 계절별 그리고 테마별로 나누어 여행을 하려는 개인의 다양한 목적을 다 수용하려한 배려가 돋보인다. 그야말로 이 책은 내가 바랐던 여행 가이드 책의 두 가지 점을 제대로 충족하고 있는데 단권화되어 어디든 휴대가 간편하다는 것이 그 하나요 두번째는 내가 모르는 여행지들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특히나 언젠가 한 번 가보려고 했었던 울릉도의 경우가 그 대표적이라 할 만한데 그 곳을 가지고 이 책이 어떤 식으로 구성을 취하고 있는지 살펴볼까 한다.




이 책은 하나의 지역에 하나의 섹션을 할당하고 있기에 울릉도 섹션을 찾아보면 저 위의 빨간 동그라미로 쳐 놓은 부분이 눈에 띈다.



보통 주말 여행의 경우 스케줄 때문에 무박일수도 있고 1박일수도 있으며 2박 일수도 있다. 대부분 코스 계획에 있어 어려움은 마음먹고 간 여행인지라 이 모든 시간들을 그 누구보다 알차게 보내고 싶다는 욕망에 부응하도록 짜기가 어렵다는데 있다. 아마도 이 책을 찾게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로 그 알찬 코스 짜기를 위해 선택할 터인데 더구나 이것은 인터넷 검색으로는 상당히 충족되기 어려운 정보이기도 해서 만일 거기에 대해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정말로 주말 여행에 있어 제대로 된 가이드 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책은 바로 거기에 제대로 된 도움을 준다. 그러니까 개인의 다양한 사정상 고무줄 처럼 늘어났다 줄어났다 하는 여정 모두에 있어서 맞춤 코스 계획을 짤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저 부분은 그러니까 지금 가고자 하는 지역이 어느 정도 일정이면 제대로 돌아볼 수 있는지 알려주는데 대부분 그 일정의 최적화는 아래 파트너의 있고 없고 여부를 기준으로 결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울릉도를 2박 3일에 제대로 다 여행하려면 혼자라야 가능하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개인적으로 저 일정은 수도권 거주자들을 기준으로 정해진 것 같다. 지방 거주자들의 경우 더 길거나 짧을 수 있는데 특별히 많이 걸리거나 짧게 걸리는 지방 거주달의 경우는 특별히 언급해서 좀 더 친절하게 설명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약간의 아쉬움이 든다.) 이를테면 이 책의 유저는 저런 식의 정보를 보고 내가 지금 가용한 일정에 이 지역을 여행하기가 적당한지 아닌지를 가늠하고 이런 식으로 보다 제대로 된 코스를 짜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울릉도 여행이 가능하다면 바로 뒷 페이지에서 일정에 맞추어 제대로 여행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지에 대한 추천 코스가 나온다.




여행지와 식사할 곳 그리고 숙박지까지 모두 망라한 코스다. 물론 추천 코스이므로 이것은 하나의 기준점일 뿐이다. 옆에는 울릉도 여행에 있어서의 팁 같은 것들이 나와 있는데 '울릉도 옆의 죽도에서 나는 더덕은 산나물과 약초로 유명한 울릉도 주민들 조차 최고로 친다는 더덕이니 꼭 챙겨오라'는 등의 여행에서 가질 수 있는 잔재미들까지 있어서 유용할 뿐만 아니라 더욱 여행에 대한 기대감 마저 가지게 한다.


다음으로 넘겨보면 추천 코스에 나왔던 대표적인 둘러볼 곳들과 식사할 곳 그리고 숙박할 곳에 대한 정보들이 나와있다. 바로 여기가 특히나 우리나라에 모르는 곳이 너무도 많은 나 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많이 되는데 이를테면 울릉도의 경우엔 죽도가 그랬다.



위 사진이 바로 죽도에 대한 소개다. 죽도는 일본이 독도를 부를 때 쓰는 이름인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울릉도 바로 옆에 사진처럼 아름다운 죽도란 섬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대나무가 많아서 죽도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런데 그 죽도에 저 오른쪽 사진 처럼 바다를 옆에 끼고 도는 산책로가 있었다. 근사하다. 죽도란 섬을 알게 된 것도 수확이지만 저런 산책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내겐 큰 수확이다. 정말 사진만으로도 그 곳으로 마구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든다.




그리고 TV의 기행프로에서 보았던 울릉도 한 바퀴를 걸어서 돌 수 있다는 산책로 역시 세세한 정보를 알 수 있어 좋았다.



이런 식으로 주말여행 컨설팅 북은 주말 여행에 대해 마음만 먹고 있던 사람들에게 정말 용기를 가지고 떠날 수 있도록 실제적인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 일정별로 맞춤 코스를 짤 수있도록 해 준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거기다 '죽도' 처럼 평소에는 몰랐던 곳을 알게 해주는 것역시 이 책에 대한 매력도를 증가시킨다.



사실 여행 가이드 북은 여행에 진짜 도움이 되려는 실용서이긴 하지만 책의 목적이 거기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이를테면 이 책과 같이 우리나라의 대부분을 알고 있다고 자만하는 나에게 전혀 알지 못했으나 아주 매력적인 곳들을 무진장 알려서 "알겠니? 네가 그토록 우리나라에 심드렁했던 건 네가 단지 우물안 개구리여서 그랬던거란 걸."하면서 제대로 카운터 펀치를 먹일 수도 있다. 그렇게 우리의 식상함이 바로 우리의 무지함에서 나온다는 걸 이 책을 벗하며 더욱 깨닫게 되었다. 이 책 덕분에 아직도 미지의 좋은 곳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곳이 바로 우리나라란 걸 실감했다. 아마도 앞으로의 내 여행은 초등학교 시절 보물찾기 같을 것 같다. 마치 바위 아래 어딘가 숨겨져 있는 보물이 적힌 쪽지를 찾아내듯 그동안 알지 못했던 곳들을 새로이 만나보는 그런 여행이. 그렇게 이 책은 우리나라를 발로써 가슴으로써 좀더 가까이 보듬어 안도록 해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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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4-15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헤르메스님... 겨우 나흘만인데 그 나흘이라는 시간이 마치 한 달과도 같이 긴 시간으로 느껴졌습니다. 오늘이 신간평가단 신청 마감일이던데 하셨나요... 저는 써놓은 리뷰가 없어서 못하겠습니다. ㅠㅠㅠ 그래서 지금 <채홍>열심히 쓰고 있는데 도저히 제가 무슨 말을 쓰고 있는건지 모르겠어요. 아 그냥 머릿속에서 나오는 말을 그냥 막 써내고 있는데... 제가 읽어도 참 한심합니다 ㅠ.ㅠ

ICE-9 2012-04-16 23:48   좋아요 0 | URL
앗! 저는 했는데... 소이진님 못 하셨나요?
아아... 그래도 하셨길 바라요. 저는 몰라도 그동안 소이진님 리뷰라면 꼭 될 것 같았는데...
 
테크놀로지의 세계 플러스 체험편 세트 - 전2권 테크놀로지의 세계
체험 활동을 통한 기술 교육 연구 모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3월
품절


요즘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정말 빠른 것 같다.불과 얼마전만 하더라도 휴대폰은 그저 통화만 가능했었는데 지금은 온갖 것을 다 할수도 있고 말이다. 격세지감을 느끼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는데 그렇게 발전하는 기술을 보노라니 정말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문이 생겼을 때 쉽고 빠르게 여러가지 테크놀로지에 대해서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 바로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기획한 '테크놀로지의 세계'다. 그런데 이러한 테크놀로지에 대한 지식들은 그냥 보는 것 보다는 실제 만들어보았을 때 더 머리에 쏙쏙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지금 진화하고 있는 테크놀로지들을 실제로 만들어보면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책이 나왔다.


그게 자매편이라 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의 세계 플러스, 체험편'이다.

이 책은 '체험활동을 위한 기술교육연구모임'이 지었는데 말 그래도 현재 일상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들을 선별하여 그 기술들이 어떤 원리에 의해서 작동되는지 그것을 직접 만들어 봄으로써 느끼게 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 책은 청소년용으로 만들어졌지만 무섭게 변하는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시대를 따라잡으려 현재의 테크놀로지들을 살펴보고 싶은 어른들에게도 아주 유용하다. 더구나 직접 만들어보는 재미까지 있기 때문에 여가활동으로 즐길 수도 있다. 사실 나도 어릴 때 부터 공작하는 걸 좋아해서 그런 기술들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무엇보다 직접 그 테크놀로지들을 체험하도록 하는게 목적이므로 책의 내용은 거기에 맞추어져 있다.

책을 펴면 이 책에 나오는 각 테크놀로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그 기본 구성을 밝혀주는 글 부터 만나게 된다


그 각각의 테크놀로지에 대한 이야기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는 내가 가장 궁금하게 여겼던 것이기도 한 터치스크린 편을 중심으로 살펴보려 한다.




그렇게 터치스크린으로 넘어가면,


먼저, 일상의 어떤 사소한 어려움들이 터치스크린을 만들게 하였는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뒤이어지는 '어떻게 풀어갈까?' 란에서 이렇게 터치 스크린의 작동 원리가 나타난다


그렇게 동작 원리들을 이애하고 나면 드디어 직접 그것을 만들어 볼 수 있는 '만들어 보자'란이 나타나게 된다.
만드는 재료와 과정은 그리 어렵지 않게 되어 있다.보다 손쉽게 체험으로 다가가게 하기 위한 배려가 엿보인다.




만들기를 좋아하는 나는 이런 과정만 보아도 두근두근한다. 아, 나도 빨리 만들어 봐야지!





뒤이어 이렇게 그것을 좀 더 다르게 응용할 수 있는 방법들이 나와서 자신만의 창의적 방식을 떠올릴 수 있도록 유도한다.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기술에 대한 특허 자료들.

실제 책에 실린 테크놀로지들이 어떻게 특허를 받았는지가 나와 있어서 흥미로웠다.




책만 보고 따라하기 힘든 이들을 위하여 직접 보고 따라할 수 있는 체험활동 동영상까지 부록으로 들어있었다.

얼마전 EBS로 유럽의 교육 현장을 보니 우리나라와 참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아직 국영수 중심의 여전히 고리타분한 커리큘럼이지만 지금 유럽은 언어나 수리 교육 보다 목공이나 패션, 전자기기 제작이나 시각디자인 같은 실제적인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커리큘럼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교육의 현장은 바뀌고 있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제 다가올 세상은 오로지 개인의 창의성이 중시되는 사회이기에 거기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여전히 문제 풀기와 암기에 좌지우지되고 있는 우리나라 교육 현장이 왠지 좀 한심하게 여겨졌다. 아이들의 각기 다른 개성을 모두 국영수로 획일적으로 만드는 것 역시 그랬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런 책들이 좀 반갑다. 더구나 직접 체험하게 함으로써 이러한 기술들이 먼 이야기가 아니라 얼마든지 자신의 이야기로 바뀔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니 더 그렇다. 보다 이런식으로 실제적 기술을 느끼고 익힐 수 있는 책들이 많아서 여전히 국영수에 창의적 뇌세포들이 탈색되어 가는 아이들을 구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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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4-01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리뷰 읽으며 감탄을 연거푸 내뱉었습니다.
제가 여지껏 본 포토리뷰 중에서 가장 정감가고, 이해도 잘되고, 정성도 듬뿍 담겨있고,
매력도 있고, 글발도 좋은 글이군요... ㅋㅋㅋ

ICE-9 2012-04-02 23:24   좋아요 0 | URL
와! 이렇게 좋은 말씀을!! 소이진님 정말 감사드려요^ ^
사실 주말에 좀 한가해서 저 나름대로 재미있게 한 번 즐겨보려고 이렇게 리뷰를 한번 써 봤습니다. 그냥 제 기분에 취해서 한 것이라 행여 잘못 비치지는 않을까 했는데 소이진님이 이리 말씀해주시니 정말 기분이 좋군요^ ^
 
판도라의 도서관 - 여성과 책의 문화사
크리스티아네 인만 지음, 엄미정 옮김 / 예경 / 2011년 12월
절판


예전에 종영된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세종과 밀본의 본원 정기준이 만나 백성과 글의 관계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었다.
거기서 세종이 글이 백성에게 사대부가 가진 능력을 나눠주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사대부들을 스스로 견제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창제가 가진 긍정적인 효과를 얘기하자 정기준은 곧바로 오히려 이렇게 반문한다.
"글로 인해 백성들이 가지게 된 거대한 욕망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말이다.

이 장면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내게 글이 단순히 글이 아님을 깊이 깨닫게 했기 때문이다.
세종과 정기준은 모두 글이 어떤 무형의 힘을 지니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르겠다. 무릇 당시 조선의 권력이란 애오라지 글을 아는 것에 있었으니 말이다. 글을 앎이 곧 힘을 얻는 원천이었다. 하지만 글이 주는 힘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단순한 힘 뿐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되므로 더이상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고유의 자신을 가지게 만드는 힘도 있었다. 그것이 세종이 정말 백성에게 주려했었던 '주체화'의 힘이었다. 글은 그런 힘이 있었다. 자신의 생각과 바람을 자신의 말로 표현하게 됨으로써 더이상 사대부의 농간에 농락당하지 않도록 만드는 힘이 말이다. 하지만 정작 정기준이 우려했던 것은 바로 그 지점이었다.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은 곧 자신의 욕망을 알게 되는 것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글을 모를 땐 자신도 모르고 욕망 역시도 그 언어를 얻지 못해 내면 어딘가에서 그저 잠들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글을 알게되어 자신을 알게 되면 욕망 또한 그 언어를 얻어 잃어버린 얼굴을 되찾아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기준은 그렇게 드러날 욕망으로 벌개진 무수한 얼굴들을 두려워했다. 그것은 자아를 찾게 되면 반드시 그림자처럼 따라올 것이기에 그의 등골은 더 서늘해질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타계한 폴란드의 영화감독 크쥐시토프 키에슬롭스키의 말 그대로였다. 그는 폴란드가 자유화되자 덩달아 범죄마저 급속도로 증가하는 것을 보며 이렇게 술회했다고 한다. "자유와 동시에 죄악까지 들어왔다."고. 정기준은 바로 이와 같은 사태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글을 통해 사슬에서 놓여남의 이면엔 그대로 유혹에 노출됨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정기준의 이 말이 사실은 그토록 오랜 세월 여성들에게 책 읽기를 금지시켜온 본래 까닭은 아니었을까를 크리스티아네 인만의 '판도라의 도서관'을 읽으면서 하게 되었다.

'판도라의 도서관'은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책 읽기에 대한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그려내는 역사는 그리 순탄하지 않다. 근대에 들어와서까지도 여성들은 제 마음껏 책 읽기가 어려웠을 정도로 내내 남성중심의 사회로부터 책 읽기에 대해 철저하게 억압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성들이 종속적인 위치에 있다는 걸 알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책읽기마저 그토록 속박 받아왔었음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남성들은 왜 그토록 여성들의 책 읽기에 대해 억압했던 것일까? 그것이 바로 세종과 정기준이 바라봤던 글의 힘 때문이었다. 즉 정기준이 말했던 욕망의 부추김이요 세종이 자립적 주체로 만드는 힘 그 때문이었다. 남성들은 여성들이 책을 읽고 스스로 사고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작가 플로베르가 소설 '보봐리 부인'에서 그렸던 대로, 보봐리 부인이 책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실현시키려 하였듯이 그렇게 여성들이 책을 통해 남성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으려 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비단 서양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성들에게 글이란 철저히 금기시되는 것이었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의 여주인공 연우는 당시 조선에서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고 그렇게 글을 안다고 해도 오히려 그 때문에 모진 박해를 받아야 했다. 그것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허난설헌이다. 그녀는 지금도 중국과 일본에서 그녀의 시를 흠모하고 연구하는 모임까지 있을 정도로 뛰어난 문재였지만 27년이란 그리 길지 않은 생애를 고통과 고독 속에서 보내다 끝내야 했는데 그렇게 만들었던 주된 이유가 바로 그녀가 글을 읽고 시를 썼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조선 당대의 가장 진보적 지식인이라 할 수 있을 연암 박지원마저도 아녀자에게 시를 허락해서는 안된다고 했을 정도이니 우리나라도 서양만큼이나 여성들에게 책과 글을 허락하지 않은 나라였던 것이다.
크리스티아네 인만은 그런 슬픈 역사를 담는다. 여성들이 그 억압과 속박 속에서 어떻게 지금처럼 자유롭게 되었는지를 책 읽기를 통해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단순한 서술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서 보여준다. 그러니까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책을 읽는 여성을 그린 그림들의 역사를 통해서 말이다. 때문에 우리는 크리스티아네 인만의 책을 읽으며 새삼 글이 단순히 글이 아님을 깨닫기도 하지만 그림 역시도 단순히 그림만은 아님 또한 깨닫게 된다. 사실 그 전에 우리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역사적 과정을 그림을 통해 보여준다는 것일까? 말해지는 모든 그림이 그런 의도로 그려졌을 리도 없을텐데...'하고 말이다. 그래서 크리스티아네 인만은 말해준다. 그림은 사실 단순한 평면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가치관, 삶의 방식이 하나로 집약된 공간이라고 말이다. 즉 그림은 단순히 하나의 현상 혹은 대상만을 도려낸 존재가 아니라 개인과 사회가 서로 조응하는 가운데 그 시대의 분위기 또는 그 시대의 핵심이 조밀하게 들어간 하나의 응축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오히려 글 보다 그 그림들을 통해 훨씬 더 생생하게 역사적 변화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 책 '판도라의 도서관'은 그러한 크리스티아네 인만의 생각이 과연 옳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잠깐 여기서 책이 보여주는 '책 읽는 여성의 그림'에 반영된 여성 자아의 확장의 역사를 간단하게 소개해보자면 먼저 첫걸음이라고 소개된 고대 문명과 중세에 이르기까지는 책 읽는 여성의 그림속에 실제 여성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여기서 주로 나타나는 책을 읽는 여성들은 하나의 모범이 될만한 신화나 성경상의 중요한 인물들 뿐이다. 물론 그 여성들이 보는 책들도 대부분 종교서적이다. 그러니까 이 당시의 책 읽는 여자의 그림들은 실제 생활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여성들에게 어떤 특화된 규범을 전파하기 위해 그려졌다. 여성들에게 신앙과 도덕심을 고취시키는 그런 규범들 말이다. 또한 그 규범들은 그대로 남성에게 여성을 더욱 종속시키는 규범들이기도 했다. 때문에 포즈들 역시 바라보는 시선을 피하듯 살짝 옆으로 돌려져 있다. 그렇게 여기서의 책이란 여성들 스스로 더욱 더 남성 중심의 가치관을 수용하는 하나의 매개였고 순종의 상징이었다. 사실 이것은 그대로 당시의 여성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중세에 있어 여성들의 책 읽기는 더욱 더 가혹해져 여성들은 수녀원이 아니고서는 책을 읽을 기회조차 없었다고 하니까 말이다.


이야기 속의 여성들이 아니라 실제 여성들이 책 읽는 그림이 전면적으로 나타나는 시기는 16세기였다. 이 책은 16세기와 18세기까지 별도의 한 장을 할애하여 경건과 사치로 그림들을 살펴준다. 이 장의 제목이 경건과 사치인 것은 단적으로 시대에 따라 그 주가 되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16세기에 지배적이었던 경건적 분위기는 18세기에 이르러 사치스럽고 화려한 분위기로 변했다.
대표적으로 여기 프랑수아 부세가 그린 마담 드 퐁파두르의 초상화 처럼 말이다.

그 중간에 르네상스가 있었음을 상기해 본다면 이것은 그대로 종교적 굴레에서 벗어나 인간이 좀 더 자유로워진 것과 관련이 있다. 그만큼 여성의 자아 역시도 보다 자유로워지고 개방되어졌다. 16세기의 그림들을 주로 지배했던 성경과 기도서들을 대신하여 18세기에는 미켈란젤로의 글이나 소설 같은 문학작품이나 뉴턴의 이론 같은 학문적인 글까지 나타나게 된다. 당시는 살롱 문화가 지배적이었고 거기서 여성들은 새로나온 책이나 사상들을 자유럽게 얘기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책도 다양해졌으나 그래도 아직 여성들에게 책 읽기란 자신의 자아를 정립하거나 개인적 욕망을 드러내는 것과 관계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그녀들의 신분을 드러내는 장치일 뿐이었다. 18세기에 이르러 신흥 부르조아지들이 서서히 주류가 됨으로써 교양을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는 주된 증표로 삼았기 때문에 그 신분의 여성들을 그리는 데 있어 책이 들어간 것일 뿐이었다. 16세기의 개인의 도덕성, 신앙을 드러내는 책은 이제 그렇게 단순히 신분을 드러내는 도구로 바뀌었다. 따라서 18세기의 그림들에서 책을 읽는 모습은 그리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놓여져 있거나 위의 그림 처럼 들려져 있을 뿐이다.



이러한 책 읽기가 근본적으로 변화를 겪은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책은 '여성 책을 접하다'라는 제목으로 19세기의 책 읽는 여성의 그림들을 통하여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말해준다. 대표적으로 존 래버리의 오러스 양과 빨간 책이라는 그림이다.



위의 부세의 그림과 비교해보면 19세기의 그림들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무엇보다 그녀들이 책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아주 몰입해서 말이다. 이렇게 19세기의 책 읽는 여성들의 그림은 책에 푹 빠져 있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들의 몰입은 너무도 상당해서 바깥의 세상이 도저히 비집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나 윈슬로 호머의 '새 소설'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그렇게 그녀들은 남성 중심 세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책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발견한다. 여기에 이르러 그녀들의 책 읽기는 혼자만의 세계, 즉 자아의 발견이 되었던 것이다. 이제 그녀들은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해서 책을 읽는다. 게다가 18세기엔 그저 신분을 나타내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던 책은 이제 그것을 너머 계급을 초월하여 자아를 발견하는 매개체마저 된다.
윌리엄 맥그리거 팩스턴의 '하녀'라는 그림은 그것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다.

여성들은 이제 그 어디에 있든 책만 읽을 수 있다면 스스로의 세계로 걸어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세종이 말했던 그리고 남성중심의 사회가 두려워했었던 그녀 자신만의 주체를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그녀들은 남성의 시선에 응답하지 않고 조용히 자신이 원하는 곳을 바라볼 뿐이다. 책 읽기는 더이상 자신을 드러내는 특이한 경험이 아니라 어디서나 아무렇게 접할 수 있는 일상이 되었다. 이것은 그대로 여성들이 남성 중심의 가치관에서 해방되어 그만큼 자유로워졌다는 것의 반증이었다.


그렇게 20세기가 오고 이제 여성들은 남성들만큼이나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었다. 20세기의 책 읽는 여성들의 그림은 그 변화를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발튀스의 '세 자매'가 대표적이다. 일상의 한 단면을 자연스럽게 담아낸 듯한 이 그림에서 세 여성들은 그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으며 자유분방하다. 마치 그녀들을 얽매일 더 이상의 굴레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듯 하다. 그렇게 20세기의 책 읽는 여성들의 그림은 포즈도 옷 차림도 더 이상 아무런 경계가 없다. 아무데서나 특별한 이유 없이 읽을 수 있게 된 책 만큼이나 그녀들 역시도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조금은 숨이 가빴을지도 모르겠지만 크리스티아네 인만이 '판도라의 도서관'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을 내 개인의 느낌을 바탕삼아 간략하게 말해 보았다. 너무도 간략해서 얼마나 설득력을 가지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앞에서 말했던 그림을 통해 살펴보는 것이 글을 통해서 보는 것 이상으로 역사적 변화를 잘 목도할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은 어느정도 입증되었으리라 믿는다.(제발 혼자만의 착각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역사학자 E.H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아마도 과거의 사건이 그 과거에서의 어떤 의미를 가졌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에 있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그렇게 크리스티아네 인만이 현재 우리에게 '판도라의 도서관'을 통하여 새삼 여성들의 책 읽기 역사를 펼쳐 보이는 것도 단순히 그 과거의 행적만을 밝혀두려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크리스티아네 인만을 따라다니며 이 글 서두에 말했던 대로 책이 주는 힘, 보다 근본적으로는 글이 주는 힘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여성들이 저 해방된 모습을 되찾아 오는 것이 가능했던 건 무엇보다 내내 여성들이 책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생각과 욕망으로 스스로 세계를 구현해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란 걸 통해서 말이다. 그런데 크리스티아네 인만은 왜 그런 걸 느끼게 해 주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들이 책 읽기를 계속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독서란 것이 단순히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들 자신에게 어떠한 힘 또한 주는지 똑똑히 깨닫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마치 그 옛날의 여성들 처럼 스스로 세상으로 부터 어떤 속박과 억압을 느낀다면 스스로 자유롭기 위해서라도 책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하듯이.
그러고보니 생각나는 그림이 있다.
바로 필리프 반 브르라는 여성 화가의 '여성 화가들의 화실'이란 그림이다. 이 책에서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그림 중 하나이기도 하다. 반 브르는 이 그림의 중앙에 서 있는 여자에게 헤라클레스의 형상을 취하게 함으로써 완벽한 남성성에 대비와 그 대안처럼 완벽한 여성성을 가져온다. 이것은 한 마디로 남성 질서의 전복이며 그래서 여성 화가들만이 있는 화실은 그녀들만의 온전한 유토피아가 된다. 그 헤라클레스의 형상을 한 여성 아래 한 가운데서 한 여성이 글을 읽고 있다. 아마도 반 브르는 그 중앙에 또한 글 읽는 여성을 배치함으로써 이러한 유토피아를 완성하는데 무엇보다 글이야 말로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이것이 바로 책이 가진 힘의 궁극적 효과이지 않을까?

크리스티아네 인만의 책을 읽으며 여성들의 책 읽기에 대한 역사 뿐만 아니라 이렇게 다시금 책 읽기의 힘과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 내겐 또 하나의 커다란 수확이었다. 글이 주는 자유의 힘과 해방의 힘을 깊이 들이마시면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느껴졌던 하나의 문장을 마치 방점을 찍듯 다시 확인해본다. '책이 바로 유토피아'라고... 크리스티아네 인만을 통해 들려온 이 말의 울림은 아마도 책을 읽는 앞으로도 내내 메아리처럼 들려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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