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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면 은근히 마음의 짐이 되는데 안하면 좀이 마구 쑤시는 신간평가단. 행여나 정말 읽고 싶은 작품들이 선정되면 차암 부럽기도 하고.

  하여 다시 하게 되었다. 한동안 안 썼던 신간 추천글을 이렇게 쓰노라니 마치 처음 신간 평가단이 되어 글을 쓰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그 기분에 걸맞게 뭔가 변화를 주고 싶었다. 예전엔 신간 추천글을 쓸 때, 진짜 읽고 싶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리지 않고 나열하기만 했는데 이번엔 정말 읽고 싶은 것들은 따로 선별하기로 했다. 이러면 좀 더 추천글다워지지 않을까 싶어서다. 그것들을 'MOST WANTED'에 담는다. 그 외의 것들, 그러니까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꼭 읽고 싶은 작품들은 'SO SO...'에 담는다. 그렇게 첫 신간 추천을 해 본다.


  MOST WANTED


 지금 가장 읽고 싶은 책은 단연 이 것이다.

 책이 나오기 전에 댄 시먼스의 '올해의 학급 사진'을 사전 연재로 읽어봤는데 정말 굉장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좀비물을 읽고 보았기에 더 이상은 새로울 것도 흥미도 긴장도 자아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댄 시먼스는 마치 좀비물을 처음 접했을 때의 재미와 긴장을 커다란 찜통 단위로 들이붓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프로는 프로구나 하는 것을 가득 느꼈다고나 할까. '히페리온 시리즈'나 '일리움'을 쓸 수 있는 정도의 작가는 좀비물이라는 흔한 재료로도 이렇게  미슐랭 가이드 스타급의 음식을 내어놓을 수 있구나 감탄했다. 물론 어느 정도 설정상의 허점은 있었지만...


 그러니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스티븐 킹, 조지 R. R 마틴, 클라이브 바커 같은 쟁쟁한 프로 작가들의 좀비물은 과연 어떤 맛일까 궁금했던 것이다.

 여러 번 클리어한 게임처럼 좀비물에 식상해 있는 나에게 부디 이제껏 몰랐던 숨겨진 스테이지를 문득 발견한 것처럼 새로운 긴장과 재미를 가져다 주기를 기대한다.



 창비에서 나온 '아디오스'에 이어 두 번재로 소개되는 우루과이 작가 후안 카를로스 오네티의 작품이다.

 1961년에 나온 조선소는 흔히 말하는 '산타마리아의 사가'에 속하는 작품이다. 오로지 산타마리아만 배경으로 하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창비에서 나온 '아디오스'가 '산타마리아 사가'의 첫 작품이다. 출간은 1954년.



 '조선소'는 사가의 세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산타마리아 사가는 모두 여섯 작품인데 79년 '바람이 얘기하리라'가 그 마지막이다. 거기서 산타마리아 도시는 불에 타 버린다. 산타마리아 사가는 연속된 작품이라 전작을 읽지 않고서는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창비도 첫 작품부터 출간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세번째 '조선소'가 나온 것은, 물론 오네스의 가장 대표작이라는 이유가 크겠지만 그나마 전작을 읽지 않고도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는 산타마리아 사가의 유일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장부상으로만 존재하는 '조선소'를 둘러싼 탐욕과 광기의 이 이야기는 당시 우루과이 상황을 알고 읽으면 더욱 재밌을 것 같다. 오르도녜스 대통령 집권(1903~1929) 당시 민주주의적 제도와 사회 복지 제도의 구현과 정착으로 전 세계로부터 성공적인 체제의 모델로 인정받은 우루과이는 30년대 대공황을 계기로 테라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의 늪으로 빠져버려 이전의 빛나는 과실들을 모조리 섞은 것으로 바꿔버리고 마는데 소설에서 껍데기만 남은 조선소는 오르도녜스의 우루과이를, 정부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 허상의 조선소를 존속시키는 사주는 58년 선거로 정권을 잃기까지 계속 집권해 온 콜로라도 당을 은유한다고 해도 그리 무리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콜로라도 당에게서 93년만에 정권을 탈환한 블랑코당은 19세기에 우루과이가 식민지에서 독립할 때부터 콜로라도 당과 함께 있었던 존재로 둘은 서로 대립해 독립 당시에 이미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지원을 받아 내전까지 치른 바 있는데 정작 국민이 변화를 위해 블랑코당에게 정권을 주었어도 우루과이의 사정은 좋아지기는 커녕 더 나빠지기만 했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소'에서 사주를 협박해 자신의 야욕을 실현시키려는 라르센은 블랑코 당으로 읽힐 여지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조선소'는 당시 정치와 경제 양 면에서 아주 혼란스러웠던 우루과이의 반영이며 보다 깊이 들어가면 우루과이에 대한 작가의 환멸이 드러난 작품이다. '헬조선'이란 유행어로 그 비슷한 환멸이 팽배해 있는 지금. 그것이 문학적으로 어떻게 승화되는가를 지켜보는 것도 의미 있는 경험이 아닐까 싶다.



  세 가지 점에서 정말 읽고 싶은 소설이다.

 하나는 세라 워터스의 신작이라는 점.

 둘은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고딕 호러라는 점.

 그리고 마지막 셋은 여기서는 레즈비언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는 점.

 레즈비언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그녀의 본질과도 같았던 레즈비언 이야기가 들어가지 않은 작품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팬으로써 궁금한 까닭이다.

 여기에 굳이 하나를 더하자면 스티븐 킹이 2009년 최고의 소설로 꼽았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의 추천이 신뢰할만하다.







SO SO...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꼭 읽고 싶은...)



 3. 11 이후, 여전히 후쿠시마 원전 사태의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에 원전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 전후 일본 최대의 비극적 사건으로 기록된 미나마타 병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그들의 탐욕으로 사건을 일으켰음에도, 그들의 아픔이 아니기에 쉽게 과오를 무시하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 사회의 헤게모니를 쥔 가해자들의 언어가 아니라 철저하게 희생자의 언어로만 이야기하는 이시무레 마치코의 이 이야기는 지금의 체제가 쉽게 배제해 버린 생명과 삶의 언어들을 본래적 모습으로 다시금 복원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편협된 관점과 언어로 삶이 관리 당하는 것은 우리의 현재이기도 하기에 지워진 목소리들로 들끓는 이 현장으로 들어가보고 싶다.




 

 개인적인 기억으론 토니 모리슨의 소설 중에 사람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운 것은 딱 두 작품, '빌러비드'와 '술라' 밖에는 없는 것 같다. 여기에 또 하나 더 개인적인 생각을 더하자면 토니 모리슨은 이렇게 사람의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울 때 작품이 훨씬 더 좋아진다.


 '빌러비드'를 읽고 '술라'를 읽었을 때, 나는 이 '술라'가 혹시 '빌러비드'인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다. 술라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고 시이드는 자신의 딸 '빌러비드'를 죽인다. 이러한 관계의 역전된 순환엔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것은 실체가 유령이 된 이유와도 관련이 있을까?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대목이었다. 절판되었던 '술라'가 새 번역으로 다시 나와 반갑다. 다시금 벗하면서 예전에 품었던 의문을 좀 더 진지하게 추적해보고 싶다.

 



 

 

 백가흠의 소설을 읽어 본 적은 없다. 그런데도 이 책에 끌렸던 것은 '세대'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나의 세대가 중심이 되었다고 하니 얼른 독일 작가 제발트가 떠오른다. 그의 소설 중심에도 세대가 있었다. 그는 세대를 단순히 동일한 시간이 아닌 동일한 사건으로 구성되는 존재라고 여겼다. 출판사 소개글을 읽어보니 세대에 대한 백가흠의 입장도 그와 비슷한 것 같다. 둘을 비교해서 읽어보면 흥미롭지 않을까 싶어서 선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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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5-10-05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신간평가단 같이 하게 되었군요. 다음 번에는 추천도서 빨리 올려주세요. 헤르메스님 추천 참고 좀 하게요.(반농담입니다)^^ 아니..근데 단지 농담만은 아니고요, 제가 소설(특히 외국소설) 쪽은 많이 잘 몰라서, 진짜 그래야할 듯 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일단 저랑 겹치는 책이 몇 권 있어서 반갑습니다.^^

ICE-9 2015-10-05 22:01   좋아요 0 | URL
저도 맥거핀님이랑 함께 되어 기쁘더라구요. 그러고 보니 신간평가단을 함께 하는 건 처음이군요^^ 저는 사실 후발주자의 이점으로 쓸 때 맥거핀님의 리스트를 많이 참고 했습니다. 하하^^ 저는 워낙 팬더 같은 데가 있어서 닥치지 않으면 잘 하지 않는 아주 안 좋은 습성이 있어요 ㅠ ㅠ 고치려고 노력을 참 많이 하는데 요 천성이 티라노사우르스급이라 잘 옮겨지지 않네요ㅠ ㅠ 그래도 다음 추천글을 맥거핀님의 말씀도 있고 하니 빨리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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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간평가단 인문 파트는 이번이 처음인데

 그 때문일까요? 선정 타율이 그리 좋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추천한 책들 중 딱 두 권만 선정되었네요. 흑흑...


 그렇다고는 해도 선정된 책들에서 실망감은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엔 뭐 이런 책이 다 왔나?' 하다가도 읽다보면 '오오! 의외로 괜찮은 걸!' 하게 될 때가 많았습니다.

 이런 걸 집단 지성의 힘이라고 하던가요?

 아무튼 이번엔 또 어떤 책이 선정될 지 모르지만 무슨 책이 되든 좋은 책이리라 믿고

 제가 추천하는 책들을 얘기해 보렵니다.



 첫 스타트는 역시 스티븐 핑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입니다.

 '빈 서판'을 읽고 단번에 매료된 작가(저는 하물며 기독교를 믿는데도 영혼을 부정하는 이 책에 설득되었습니다. 의식과 영혼에 있어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가져다 준 책의 저자인지라 아무래도 그 사유의 발전을 눈여겨 보지 않을 수 없군요.)인지라 신간이 나오면 읽어보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마음 역시 그저 진화론의 산물이라 여기는 무신론자가 이 책에서는 인간성에 대한 강한 긍정을 설파했다고 하니 지금까지 내가 스티븐 핑커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 호기심이 가득 생기네요.


 문득 레베카 솔닛의 '이 폐허를 응시하라'가 생각납니다.

 이 책 역시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가져다 준 책이었죠.

(너무 많이 받았다구요? 원래 귀가 얇은 편입니다^ ^;)

레베카 솔닛은 우리가 가진 인간성 자체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흔히 재난 영화를 보다 보면 인간성에 실망감을 가득 느낄 때가 많습니다. 닥쳐온 위기 앞에서 이타심 보다는 이기심을 더 많이 드러내기 때문이죠.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영화적 상상이 아니라 세상의 진실이라 여깁니다. 지금 우리 윤리의 리얼리티를 재현하고 있다고 보지요. 하지만 레베카 솔닛은 이러한 우리의 시각을 철저히 부숩니다. 그녀는 수많은 재난 현장을 돌아다녔고 생생한 취재와 연구를 통해 재난 현장에서 인간이 전혀 다르게 행동하고 있음을 아주 설득력있게 보여줍니다. 한 마디로 사람들은 영화적 재현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했던 것입니다. 레베카 솔닛은 당당히 주장합니다. 사람은 어려울수록 더 많이 협력하고 타인을 위해 움직이며 질서를 유지하려 든다고. 원래 인간의 위기 대처 방식이 그렇게 진화되었다고 합니다. 협력을 중시하게끔 말이죠. 이번 세월호 참사 때도 아이들은 순순히 지시에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더구나 타인을 위해 행동하는 이들도 많았죠. 누구는 우리 교육의 부작용이다라고 말을 하는데 원래 인간이 그런 것입니다. 그랬기에 세월호 선장과 선원의 대처에 더욱 분노하게 되는 것이죠. 어차피 거짓 번명이겠지만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고 말하는데 사실 혼란을 일으킬만한 그 무엇도 없었을테니까요. 분명 아이들은 무질서 없이 피난 지시에 따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그런 짐작을 했던 것일까요? 레베카 솔닛은 그것이 바로 UPPER 계급들이 심어준 악의적 환상이라고 말합니다. 영상 매체를 통해 재난 때마다 무질서한 군중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어 각인시킴으로써 엘리트들의 통제만이 유일한 구원임을 믿게 만든다는 것이죠. 즉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등을 통해 익히 접해온 재난 시의 군중 모습은 모두 사회 엘리트 계층들이 자신들의 존립을 튼튼히 하고 군중 스스로를 못 믿게 만들어 통제를 손쉽게 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타인의 모습을 곡해하고 결국엔 우리 자신마저 못 믿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 또는 인간성 자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시각들은 대부분 그런 식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즉 이것은 순도 100%의 진실은 아닌,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편집하고 왜곡하여 주입한 것도 상당하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레베카 솔닛의 책은 그런 왜곡된 타인과 인간의 모습을 교정시켜주는 책이었습니다. 아마 스티븐 핑커의 이 책도 그럴 것 같네요. 레베카 솔닛이 현실을 토대로 이야기했다면 스티븐 핑커는 과학에 기반하여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겠죠. 어쨌든, 새로운 시야를 접하게 해주는 것만은 틀림없는 듯 하여 읽어보고 싶습니다. 




 '후지와라 토모미' - '폭주 노인'


 요즘 저의 관심사는 '노인'입니다.

 그냥 지금 제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아서 이해하려고 이것저것 찾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책입니다.


 이미 일본은 '무연사회'라 불릴 정도로 고령화 사회가 가져오는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노년의 고독과 무력감이 사회 전반에 많이 팽배해있다고 하더군요. 동시에 노년의 분노 표출도 상당히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 책은 그런 추세를 담은 것인데 왜 노년의 폭력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지 탐색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들의 분노 표출은 일종의 자기 증명이 아닐까 합니다. 끝도 없이 얇아져만 가는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한 반발이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이겠죠. 저는 최근 우리나라의 노년층의 투표도 이와 연장선상에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념이나 정책이 아닌 자신의 존재 증거의 일환으로 투표가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그들을 위해 신경쓰는 정당에 아낌없이 투표한다는 것으로 말이죠. 뭔가 그런 흐름 같은 것이 보입니다. 이번 영화 '명랑'의 성공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1700만 관객에 대한 계층 분석이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분명 이번 '명랑' 흥행은 노년층(50대 이상을 의미하는 것인데 '노년'이란 단어에 너무 구애받지 말 것을 부탁드릴게요^ ^;)이 주도한 것 같습니다. '이순신'에 대한 흠모 같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전성 시대에 가장 널리 알려졌던 인물로, 일종의 향수 같은 것이 주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즉 자기 존재 가치에 대한 긍정 같은 것을 가져다 주었기에 '명랑'이 흥행에 성공했다고 보는 것이죠. 물론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만.

 아무튼 분명 이 세대의 영향력은 날로 고령화사회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더욱 커지리라 생각합니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미 늦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브루스 왓슨, 프리덤 서머 1964


 미국이 가장 혼란스러웠던 1960년대. 가장 첨예한 갈등의 현장으로 모든 것을 각오하고 신념을 위해 싸우러 나간 '행동하는 젊음'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신념과 이상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던졌던 영혼들의 이야기.

 요즘 이런 것이 그리워요. 지그문트 바우만이 그러더군요.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하다. 한 순간이라도 인간답게 사는 것이 그저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자본주의 이전에는 그런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지금 우리가 가진 수명에 대한 집착은 자본주의가 만들고 주입시킨 것에 불과하다.'

 정확한 인용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 이와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지금 대부분은 벽에 똥칠할 때까지 오래 사는 걸 좋다고 여기고 있죠.

 생존을 위해서는 귀머거리 3년, 봉사 3년, 벙어리 3년 하듯이 꾹 참고 살아야 한다고.

바우만은 그런 생의 무조건적 집착이 소심과 삶의 수동성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그저 오래 사는 게 좋은 것일까 생각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먹고 사는 거, 그게 그렇게 중요할까? '프리덤 서머, 1964'를 읽으면서 거듭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폴 콜리어, '엑소더스'


 동생이 이주학을 전공하고 있어서 저도 덩달아 관심이 생기는군요.

 앞으로 이주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원래 '출애굽'을 뜻하는 엑소더스는 제목 그대로 대규모 국제 이주를 다루고 있는 책이더군요.

 무엇보다 그 원인으로 세계 불평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회 곳곳에 더욱 많이 도래할 이방인들과 어떻게 별 탈없이 융화할 것인가를 이 책으로 사전 탐색 같은 것을 해보고 싶네요.

 






 '라캉과 지젝'


 지젝 현상에 대하여 한국의 소장 연구자들이 '전문가적 안목으로 진지한 탐문과 논쟁을 시도'했다고 하네요. 한국의 지젝 연구 현주소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아서 읽어보고 싶습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포스트모더니즘, 마르크스주의의 비판'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한 아주 유명한 책이죠.

 예전에 한 번 읽어 본 것도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지금 읽어보면 와 닿는 게 더욱 많을 것 같기도 해서 벗해보고 싶습니다.  






















 키스 토마스, 종교와 마술 그리고 마술의 쇠퇴


 맙소사! 이 책이 나왔네요. 발견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오는 전환기인 16세기와 17세기 영국 마술 문화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이거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아, 가을에 시간이 나야 할 텐데요...





 노마 필드,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일본 전체주의에 어떻게 저항했는가를 보여주는 꽤나 유명한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멘발의 겐' 같은 만화를 보면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도 점점 전범국가화 되어가는 일본에 저항하는 일본인들이 존재했었음을 알 수 있더군요. 이건 오카자키 겐조의 투쟁을 다룬 하라 가즈오의 '가자가자 신군' 같은 다큐멘터리를 봐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모두가 신변의 안전이 두려워서 '예'를 외치던 순간에도 상식과 자신의 신념에 따라 '아니오'를 당당하게 외치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죠. 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은 '프리덤 서머, 1964'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읽고 느껴보고 싶습니다.



여기까지가 이번 제 추천입니다.

과연 이번의 타율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벌써 추석입니다. 고속도로는 벌써부터 귀성 행렬로 붐빈다네요.

어디서 보내시든 즐겁고 좋은 추억 많이 가지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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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9-09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캉과 지젝, 단연 돋보입니다...

ICE-9 2014-09-14 23:33   좋아요 0 | URL
저도 얼른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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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 신화는 날조된 것일 경우가 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 '거미의 계략'처럼...

 과거에도 그랬고 현대에 들어와서도 가장 많은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

 한 종교의 상징과도 같은 성소.

 그 회칠한 거룩을 벗겨버리고 날 것의 허위와 배제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다...


 '예루살렘 광기 / 제임스 캐럴 / 동녘' 

 




 


  영화 '명량'을 보고 새삼 생각하게 된 장군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

  언제나 먼발치서 이해했던 임진과 정유의 난.

  둘 다 이전보다 가까이 한 발을 들이밀기엔 이 책만큼 적당한 것이 없다고 생각되어

  선택하다...


 '난중일기 / 노승석 / 여해'









 참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싶었던 고통을 허락한 신에 대한 변호.

 드디어 그 기회를 갖다.

 신앙이 가진 최대의 모순을

 당대의 천재가 어떻게 풀어나가는 지, 그 흥미로운 변론 순서에

 참여하다...


 '변신론 / 라이프니츠 / 아카넷'







  

현대 자본주의 도시에서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 코스로

리처드 세넷만한 것이 또 있을까?

현재의 세넷을 다진 초창기의 모습 속으로

여행하다...


'무질서의 효용 / 리처드 세넷 / 다시봄' 









 

 누군가가 내게 말하기를

 스피노자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윤리학'이 아니라 '신학정치론'이라 그랬다.

 그 신학 정치론을 위한 참좋은 길잡이로

 기대하다...


 '스피노자와 근대의 탄생 / 스티븐 내들러 / 글항아리'









 데카르트는 네델란드의 암스테레담에서 근대를 열고

 프로이드는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현대를 열다.

 현대를 열어젖혔던

 그 뜨거운 세기말 빈의 현장 속으로

 뛰어들다...


 '세기말 빈 / 칼 쇼르스케 /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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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시간 빠르게 가는군요. 어느새 또 이렇게 신간 추천의 시간이 닥쳐오다니...

벌써 7월이란 말입니까? 날짜보고 그새 그렇게 시간이 흐른거야 문득 깨닫게 되네요.

요즘은 그냥 영화 모던타임즈에서 콘베이어 벨트 위에 쉴새없이 들어오는 물건의 나사를 죄던 찰리 채플린 같습니다.

이것 처리하면 저게 들어오고 또 저걸 처리하면 이제는 이게 '메롱~'하듯이 들어오는...

더위 먹은 강아지마냥 헥헥 거리는 게 할 수 있는 전부 같은 날들이에요.


무, 어쨌든 푸념은 이 정도에서 각설하고 인문 신간 추천이라는 본 게임에 출장하도록 하겠습니다.

집에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6월에 나온 인문 시간을 휘리릭 둘러보는데 반가운 신간이 좀 보이네요.


그 중에서도 가장 반가운 책은 단연 이것!


 네, 프랑코 모레티의 '공포의 변증법' 입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학자입니다. 저는 이 학자를 오래전에 주은우의 글을 통해 만났습니다. 그러니까 교수 되기 전에 문화과학인가 아무튼 어떤 계간지에 발표한 글이었는데 거기서 프랑코 모레티의 드라큘라와 자본론에 대한 것을 쓴 적이 있죠. 처음 그 글을 읽는데 굉장하더군요. 자본의 속성을 흡혈로 파악하고 그것을 드라큘라로 풀어내다니. 세상에 이렇게 참신하게 분석하는 작가도 있구나 진심 감탄했었습니다. 그 때부터 프량코 모레티를 찾아 읽었죠. 그런 점에서 대학 도서관이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원서도 얼마든지 찾아 읽어볼 수 있었으니.

아무튼 그 때 소개된 책이 바로 이 '공포의 변증법'이었죠. 정말 오랜 시간이 흘러 드디어 번역본으로 나왔네요. 참 반갑고 개인적으로 추억이 돋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로서는 단연, 첫 추천을 할 수 밖에 없구요.

프랑코 모레티는 제게 피그말리온을 연상시킵니다. 새로울 것이 없는 고전들을 그만의 독특한 분석으로 피와 살이 도는 생생한 존재로 되살려 주거든요. 그런 경험을 가득 안겨주는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이 '공포의 변증법'은 원제가 Signs Taken for Wonders 로 프랑코 모레티의 진가를 알린 대표작이기도 하거든요. 추억의 책이라 주저리 주저리 말이 많네요.^ ^;  


 검색해보니, 지금까지 나와있는 프랑코 모레티의 책은 이것밖에 없군요. 이중 '세상의 이치'는 소설이고 '근대의 서사시'는 절판되었습니다.












 솔 크립키의 '이름과 필연'도 새로이 번역되어 나왔네요.

 역시나 반가운 추억 속의 책입니다.

 크립키의 이 책도 빼놓지 말아야 할 책 중의 하나죠.












 얼마전에 윤여일이 쓴 '사상의 번역'을 읽었습니다. 거기서 일본의 학자 다케우치 요시미가 바로 루쉰을 통해 자신의 학문적 정체성에 대해 새로이 눈을 뜨게 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중국에 다케우치 요시미 같은 존재가 있다면 그건 바로 왕후이일 것입니다. 그 역시 루쉰을 통해 진정한 학문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던 존재이니까요. 그런 왕후이의 루쉰에 대한 책이기에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역사와 민족 그리고 상황이 다른 개인들이 루쉰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소화하고 있는지 비교해 읽어보는 것도 참으로 흥미로울 것 같군요. 그러면서 저의 루쉰은 또 어떠한가 되새겨보고 싶습니다.







 연달아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 빠뜨릴 수 없는 책이 또 하나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토머스 메츠거의 '곤경의 탈피'

 막스 베버 이후로 굳어진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정면에서 반박하여 유명해진 책.

 그동안 중국의 성장을 외재적 요인으로 설명하던 것에 비해 토머스 메츠거는 거꾸로 성장의 요인은 어디까지나 내부에 있었음을 밝혀 중국 성장에 대한 획기적인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려 했습니다. 그것도 중국 사상의 핵을 이루는 유학을 가지고 말이죠. 현대에 들어와 특히 경제성장과 관련하여서는 유학은 득보다 실을 많이 가져온 학문으로 많이 인식되었는데 이 책은 그 정반대의 인식을 가져다 주는 책입니다. 

 그런데 이건 사실 우리나라와도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전 한 총리 후보가 일본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했었죠. 뉴라이트가 내내 내세우고 있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동일한 발언이었습니다. 조선이 문제가 많았는데 일본 덕분에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다고 하는. 그 대표적인 게 바로 성리학이었습니다. 잦은 당쟁이 조선의 성장을 가로막은 대표적인 것으로 흔히 꼽기도 했었죠. 과연 저들의 주장대로 외재적 요인이 그렇게 강력한 것인지, 성리학이 그렇게나 큰 문제였는지 비록 중국의 케이스지만 제대로 검증해 볼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발전은 어디까지나 내재된 힘, 그렇게 자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믿음을 줄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오면 닥치고 읽는 피에르 바야르의 새책입니다.

 그의 전작들을 읽으면서 도대체 얘는 어떻게 자라왔길래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 했었는데 드디어 알 수 있는 기회가 왔군요. 다른 이의 텍스트가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의 과거를 텍스트로 삼는다니! 읽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발터 벤야민 선집을 읽다보면 가장 궁금해지는 것이 바로 그것을 기획하고 지속적으로 번역하고 있는 최성만 교수가 바라보는 발터 벤야민입니다. 과연 그가 그리고 있는 발터 벤야민의 초상은 어떠할까 한번쯤 제대로 육성으로 들어보고 싶었는데 정말 좋은 기회가 찾아왔네요.

목차를 보니 발터 벤야민이 거의 전 저작을 다루고 있는 듯 한데 발터 벤야민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아주 좋은 기회가 될 듯 합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걸신들린 듯 달려들어 먹어치우고 싶네요^ ^








 아, 참! 하나를 빠뜨렸네요.

 '축구의 세계사' 서점에서 봤는데 재밌더군요. 아주 두텁긴 했지만...

 축구에 대한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 같아 사족처럼 추천해 봅니다.












 이번엔 이렇게 신간 추천을 합니다. 와, 그런데 너무 무덥네요. 모두들 이 더위에 몸 상하지 마시고 보다 더 시원하고 쾌적하게 잘 보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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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7-06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프랑코 모레티를 읽긴 읽었는데 어디서 읽었는지 모르겠던데, 주은우 하니깐 저도 아마 주은우가 번역한 글을 통해 접한 것 같군요. 하여튼... 이분 분석이 매우 독특합니다.그나저나 비야르 책도 이번에 나왔네요?! 허어,, 이거 참....

ICE-9 2014-07-08 20:08   좋아요 0 | URL
와, 저와 프랑코 모레티를 알게 된 경로가 비슷하셨군요. 저도 정말 독특하다고 느꼈고 다른 작품들을 읽을 때 꽤나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거기 있어서는 바야르도 비슷한데 함께 나왔더군요.^ ^ 읽을 책이 마구 늘어나는데 읽는 시간은 왜 이리 줄어드는 것인지 ㅠ ㅠ
 
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이번만큼 시간이 흐른다는 게 무정하게 느껴진 적은 또 없는 것 같다.

이러한 참사 앞에서 책 읽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래도 인류는 책을 햇불삼아 어두운 시대를 관통해 온 것 같다.

그런 책의 힘을 믿으며 6월에 읽고 싶은 인문 신간을 꼽아본다.


 

 정약용 일대기에 대해 관심이 없던 것은 아니나 그래도 이 책을 지금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은 다음과 같은 책소개 때문이었다.

  "다산은 자신이 살아가던 세상을 온통 부패한 시대라고 규정했다. 어느 것 하나 병들지 않은 분야가 없으며 세상이 썩어 문드러졌다고 거듭 개탄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고 엄중한 경고까지 내렸다."


 지금 우리의 마음이 정약용의 마음과 그리 다르지 않는 것 같다. 정약용이 개탄한 시대를 지금 우리 역시 살고 있다. 그러한 'synchronicity' 때문에 정약용의 평전이 읽고싶어진다. 그러한 개탄과 한없는 분노 속에서 정약용은 '가난하고 천한 백성들의 권익과 자유 확보를 위해 생애를 바쳐야겠다는 굳은 신념을 다졌다.'고 한다. 이왕이면 그 마음까지 닮았으면 좋겠다.



 작년인가 레베카 솔닛의 '이 폐허를 응시하라'라는 책을 읽으면서 다시 인간성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 책은 재난 상황 속에 인간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가를 추적한 책이었는데 보통의 우리 생각대로라면 그 때 인간들은 자기 혼자 살겠다고 여지없이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줄 것 같지만 진실은 그 반대였다. 오히려 남을 위해 자신의 것과 목숨을 희생하는 이들이 훨씬 더 많았다. 이번 '세월호'에서도 남을 위해 희생한 이들이 많았던 것처럼. 솔닛에 따르면 모든 재난 상황에서 인간들은 그렇게 행동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그릇된 편견이 남게 된 것은 재난 영화에서 흔히 그렇게 묘사했기 때문이고 또한 그것은 사회 엘리트들이 대중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도록 바랐기 때문이라고.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은 인간 사고와 행동의 근원에 '도덕성'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책이다. 독일에선가 심리 실험을 했는데 자신이 목숨이 위험한 상황일수록 인간은 규범을 더욱 잘 따른다고 한다. 위기일 수록 인간은 윤리적이 되는데 그렇게 되는 이유를 이 책은 설명하고 있어 읽어보고 싶어진다.


 내가 알기로 산책은 근대의 발명품이다. 그건 어쩌면 중세의 순례라는 집단적 행위가 근대로 들어와 개인화된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중세에는 종교적 구원이 걸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지만 근대에선 철학과 걸음이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었다. 칸트는 언제나 같은 시간이면 산보를 하는 유명한 산책자였고 니체도, 루소도 다르지 않았다. 어쨌든 그 시대의 소설을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듯이(이를테면 제인 오스틴의 소설 같은 것.) 산책은 근대에 들어와 교양의 필수적인 한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취급을 받았다. 프레데리코 그로의 이 책은 그렇게 근대 철학의 주요한 사유 통로가 되었던 '걷기'를 조망한다. 발터 벤야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보들레르'를 통해 지식인의 이상적인 태도로 삼았던 '산책자'와 어떤 접점을 가지는 책 같다. 지은이가 푸코 전문가이기에 더욱 흥미를 끄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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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4-05-17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시대든 병들어 있다 그럴지도 모르죠 그것을 고치려고 해야 좋아질 텐데, 그대로 놔두고 흘러오는 듯합니다 조금 달라진 것도 있겠지만... 사람은 엄청난 일이 일어났을 때는 서로 돕는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만 살려고 하는 사람이 아주 없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산책이 발명이군요 그냥 어딘가에 걸어다니는 것과는 다르기는 하겠습니다 산책하면서 이런저런 생각하기... 지금은 그런 것을 하는 사람이 많이 줄었죠 걸으려고 해도 걸을 만한 곳이 없기도 합니다 그때는 짧은 동안 걸은 게 아니고 아주 오래 걷기도 했다는군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