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 배제된 생명들의 작은 승리 EBS 다큐프라임 <생명, 40억년의 비밀> 3
김시준.김현우,박재용 외 지음 / Mid(엠아이디)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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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로운 책이다. 진화의 과정을 전혀 새로운 눈으로 보도록 만들어 준다. 바로 '경계'라는 책이다. '경계'는 EBS 다큐 프라임의 '진화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자, 그 완결편이다. 특히 부제가 흥미롭다. 이 책의 부제는 '배제된 생명들의 작은 승리'다. 부제대로, 이 책은 진화에 대한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완전히 바꿔 준다. 우리라고 성급하게 일반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적어도 나는, 진화가 정확히 양육강식 논리의 점철이라 생각했다고 고쳐 말하겠다. 즉 진화를 선도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강자로, 생존 경쟁에서 승리한 주류가 진화를 이끌어왔다고 말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 책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은 생존 경쟁에서 패배한, 그래서 더 어렵고 힘든 생존 환경에서 살 수밖에 없었던, 정말 부제대로 배제된 생명이자 그래서 한없이 약자였던, 아감벤의 표현대로 하자면 그야말로 '호모 사케르'와 같은 존재들이 지금까지의 진화를 이끌어온 장본인들이었다고 말이다. 정말 놀라웠다. 이제까지 진화에 대해 가졌던 내 생각에 그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가져다 주었다.



  이 책은 우리가 학창 시절에 배웠던 생물 교과서의 진화 과정을 그대로 담는다. 식물에서 인류에 이르기까지 다 담겨 있는 것이다. 하지만 듣게 되는 내용은 그것과 많이 다르다. 근본적으로 진화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체부터 다르니까 말이다. 이 책을 보면, 진화의 강자는 자연의 강자와 전혀 다르다. 자연의 강자는 강한 것이 이긴다. 그러나 진화의 강자는 약한 것이 이긴다. 강하고 약한 것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얼마나 변화를 잘 받아들이느냐에 있다. 환경 앞에 자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겸허히 그 조건을 수용하고 거기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켜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진화의 강자였다. 사실 진화의 정의마저 정녕 그것이었다. 책은 진화에 대해 정확히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적응하고 변화하는 것(p. 8)


 지구라는 행성은 죽어있지 않다.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아주 역동적인 행성이다. 당연히 지구의 생태계 또한 이런 지구의 변화 때문에 필연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지구라는 별이 만들어져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45억년 내내 이런 과정이었다. 생명은 끊임없이 과거와 다른 새로이 변화된 환경에 자신을 적응시켜야 했다. 어제의 좋은 환경이 오늘 악조건이 되는 일도 흔치 않았다. '로머의 간격'이라는 게 있다. 고생물학자 알프레드 로머의 이름을 딴 것으로, 석탄기 3억 6천만년전 부터 3억 4천5백만년 전까지, 고생물학적으로 텅 빈 시기를 말한다. 흔히 말하는 '대멸종의 시대'다. 왜 이 시기에 갑자기 생물들이 멸종해버렸는가? 거기에 대해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식물들이 광합성 작용을 하게 되어 대기에 산소 농도가 높아지자, 온실 효과가 일어났다. 그러자 수온이 상승했고, 냉대의 바다가 온대의 바다로 되어가자 이전처럼 차가운 온도에 살 수밖에 없었던 생물들은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산소는 모든 생명이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이 많아진다는 것은 모든 생명에게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고 정작 산소가 많아지자 오히려 파국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환경은 늘 가변적이었고 예측이 불가능했다. 자신의 강한 힘만 믿고 환경에 맞춰 변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했던 종들은 모두 멸종을 피할 수 없었다. 공룡만 봐도 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오로지 스스로의 한계를 잘 자각하고 환경의 요구에 맞게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종들만 미래의 지속이 허락되었다. 지금도 아주 소수이지만 잠자리처럼 수 억년에 나타났던 종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 종들 모두가 멸종을 피하고 인간보다 훨씬 더 긴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 환경 변화에 발맞춰 자신을 기꺼이 바꿨기 때문이었다. '경계'는 그 여정을 충실히 보여준다. 쉽고도 상세한 설명과 더불어.


 쫓겨난 이들이 경계를 넘어서기 위한 수많은 노력들이 화려한 지구의 생태계를 만들어낸 것이다.(p. 9)


 원래는 수중에만 있었던 식물이 육지 위로 올라올 수 있었던 것도, 고생대 오르도비스기말에 닥친 빙하기로 인해 식물들이 적도로 몰려들게 되자, 한정된 공간에서 홍조류, 갈조류 그리고 녹조류들 간의 생존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는데, 그 생존 경쟁에서 밀려나 육지 가까이에서 겨우 잔존하던 녹조류 중 일부가 아직은 블루오션으로 남아 있던 육지로 눈을 돌리고 당시 풍부해진 산소를 이용하여 표피에서 수분이 빠져 나가지 않도록 만드는 큐티클과 지금의 식물 물관을 형성하는 리그닌 그리고 건조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분을 일정 정도 보관할 수 있는 액포를 스스로 합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식물의 모습과 조직 대부분은 가혹한 생활 환경 변화에 기존 방식의 고수 보다는 과감한 탈바꿈으로 대응했던 것의 결과였다. 식물만이 아니었다. 어류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다의 생존 경쟁에서 밀려나 물이 부족한 민물에서 살게된 물고기들이 부족한 산소 때문에 아가미 이외에 래버런스 기관과 폐를 만들었고 결국 그 폐가 진화하여 수중 활동을 보다 원활하게 만드는 부레가 되었다. 그렇게 민물에서 살 수 있게 된 이들은 대멸종 시대인 로머의 간격에서도 살아남아 지구에 생명이 다시금 이어가도록 만들었다. 바로 이 폐를 가진 물고기들에게서 미치아강이란 사지가 달린 생물이 생겨났고 양서류까지 진화하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식물이 육지로 올라간 과정과 어류가 육지로 올라간 과정은 비슷했다. 주체의 처지도, 이유도 말이다.


 진화는 이렇게 어디까지나 생존 경쟁에서 가장 밀려나 있었던 약자의, 자신과 과거를 철저히 버리는 행위에서 이뤄졌다. 여기엔 결코 큰 승리가 있을 수 없었다. 부제에서 '작은 승리'라고 한 것은 부단히 변하는 지구 생태 환경에 있어서 항상 과거의 모습으로 있을 수는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진화란 그러한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과 무수히 많은 시도를 담보로 하여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시도들은 지구 역사의 한 장면으로만 남게 된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렇게 무수한 '그침' 속에 단 하나 '이어짐'의 역사다. 하지만 그 후손이 이어지지 않고 멸종했다고 해서 그들은 그저, 그 장소, 그 시간에서 유전자의 이어짐을 '그쳤을 뿐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그 수많은 유전자 중 운 조게 이어진 후손 중 하나일 뿐이다.(p. 9)


 우리 인간도 다르지 않았다. 인간은 소화기관의 한계 때문에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없었다. 과일과 동물밖에 없었다. 하지만 딸 수 있는 과일은 늘 턱없이 부족했고 초식 동물의 속도를 따라잡기엔 인간의 다리가 너무 느렸다. 그렇다고 자신보다 훨씬 강한 육식 동물에 덤빌 수도 없었다. 이런 열악한 생존 능력으로 인간은 결국 무리지어 살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보잘 것 없는 공격력을 보강하기 위해 손을 사용하게 되었다. 초기 인간들은 육식동물이 사냥하면 그 주위에 있다가 배불리 먹은 육식동물을 돌을 던져 쫓아내 그 동물이 먹다 남긴 것을 모여 앉아 먹는 것으로 연명했다. 인간은 꼭 육식동물이 배가 부른 뒤에야 돌을 던졌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을 공격해 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인간은 포식자를 피해 떠돌아 다니던 약자였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직립 보행도 바로 이런 약자로서의 위치가 가져다 준 것이었다. 다시 말해, 선택이 아니라 유일한 대안이었다. 결국 두 팔이 자유로워져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인류 자체가 여타 모든 생명들에게 가혹한 환경이 되고 있다. 그것을 '경계'는 특히 고래와 바다소 그리고 물개를 통해 잘 보여준다. 모두 인간의 탐욕으로 남획 당하여 이제는 멸종 위기에 처한 대표적인 생물들이다. 바다소는 인간에게 너무 사냥 당한 나머지 아예 '목(sirenia)' 자체가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모두 대항해 시대와 제국주의 시절, 백인들이 자행한 결과다. 그래서 책은 지금 유럽과 미국이 이누이트 족과 일본에 대해 고래 잡는 것을 금지시키는 것을, 취지는 이해하지만 어불성설이라고 못 박는다. 왜냐하면 지금 고래가 멸종 위기에 처한 것은 어디까지나 이들, 유럽과 미국 백인 탓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략 3세기에 걸쳐 마구잡이로 고래를 잡았다. 그랬던 그들이 고래잡이를 그만두었던 것도 고래가 멸종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잡을 고래가 정말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석유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그들은 결코 고래잡이를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석유 때문에 고래보다 더 싼 값에 기름을 얻을 수 있었기에 포경 산업은 자연 도태되고 말았다. 그저 상황의 변화였을 뿐, 자성의 실천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고래 멸종 위기의 주범인 자신들의 잘못은 전혀 반성하지 않고 오로지 이누이트 족과 일본만을 탓하고 있으니, 일본 포경 산업이 비난받는 것은 마땅하지만 그들의 주장 역시 선뜻 손을 들어줄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의 이런 태도는 40억년 지구 역사에서 도태되고 멸종되어 버린 모든 자연의 강자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자신의 강한 힘 때문에 단기에는 군림할 수 있었지만 장기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모습들을. 결국 오만했기에, 자신의 잘못과 약점을 인정할 줄도 몰랐고, 자신을 변화시킬 수도 없었던 존재들을. 진화의 역사는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 존재들에겐 멸종밖에 없다는 것을. 인간 역시 아무런 반성 없이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다간 그 운명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한 생존 환경의 경계로 내몰리게 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에게 지극히 불안한 일이다. 하지만 진화는 오히려 그렇게 내몰린 존재들에게서 태어났다. 닥쳐온 고난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거꾸로 생존을 위해 고난을 돌파하려 노력한 이들에게서. 그들은 자신의 생명을 구한 것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진화의 역사마저 일구어냈다. 이런 진화의 궤적은 정말 많은 것을 달리 보게 만들었다. 무엇이 정말 강하고 약한 존재인가에 대해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편협한 시야를 가지고 있는지 일깨워주었고 내게 닥친 고난의 의미와 강도 역시 다른 시선으로 보게 만들었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을 진화만큼 실감한 경우도 또  없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너무나 연약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생명에게도 거대한 진화의 역사를 태동시킬 역량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모든 생명에게 일차적으로 주어진 사명이 자신의 종을 보다 많이 번식시키고 오래 지속시키는 것에 있다고 볼 때, 그런 진화를 만들어 내는 힘은 생명이 발휘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힘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런데 그 거대한 힘은  크기와 능력에 상관없이 지구 위 모든 생명에게 대등하게 나눠져 있었다. 이것을 깨닫고 보니 절로 모든 생명이 숭고하게 보였다. 여기서 숭고란 어디까지나 칸트의 정의를 따른 것이다. 칸트는 숭고를 '우리 자신의 사명에 대한 존경'이라 정의했다. 존재에 당위로 주어진 사명을 꿋꿋이 실천하는 모습을 볼 때 받는 감정인 것이다. 진화의 역사는 숭고의 역사 그 자체였다. 어쩌면 인간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숭고의 감정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존재들에 대한 숭고의 감정이 사라져 버렸기에, 인간은 훨씬 쉽게 다른 존재들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만 삼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런지. 그리고 그게 또 연장되어 같은 인간마저도 그렇게 보도록 만들고 또 그렇게만 다른 존재와 타인을 보다 보니 자기 자신마저 한낱 사는 게 다인 존재로만 여기게 된 것은 아닌지.


 '경계'는 이 숭고의 감정이야 말로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이라 말해주고 있었다. 인류 차원으로 보자면, 인간의 탈출이 기존 생태계에 대한 공습이 되어 생태계마저 지구에 태어난 이래 최초로 그 영역이 축소되기 시작한(p. 267) 현 상황에 있어 그것이 지구와 자신의 멸종마저 막는 길이고, 나 개인에 있어서는 그저 하루 버티기에 급급한 삶에서 벗어나 보다 높은 삶의 질적인 가치를 추구하게 만드는 동인(動因)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오늘 찾아온 고난도, 가지고 있는 불안도 지금과는 아주 다르게 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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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클래식 세트 - 전3권 더 클래식 시리즈
문학수 지음 / 돌베개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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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사랑이 뽀얀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하루는 베란다에 있는 벽장 정리를 했다. 그러다 이사 올 때 나중에 정리하겠다고 넣어두고는 지금까지 내내 잊어버리고 있었던, 클래식 CD가 빼곡하게 담긴 박스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게 넣어둔 것이 벌써 3년 전이다. 한 때는 누군가의 말처럼 하루라도 안 들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을 정도로 좋아했었는데, 어쩌다 3년이 되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버린 것일까? 케이스에 쌓인 먼지를 손가락으로 닦아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관심도, 열정도 그리고 사랑도 다 유통기한이란 것이 있다더니, 정말인 것 같았다. 그러나 기한이 있다고 해서 다 소진되는 것도 아니었다. CD들을 하나하나 꺼내보면서 그걸 깨달았다. 아주 어렵게 구해서 너무나 기뻤던 CD들이 있었고 이제는 만나볼 수 없는 이가 선물해 준 CD가 있었으며, 가장 힘들었던 때에 정처없이 떠났던 여행지의 한 가게에서 구매한 CD들도 있었다. CD에 얽혀 있는 그런 기억들이 마치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마들렌처럼, CD를 보자마자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랬다. 어떤 것이든 그냥 사라지는 것은 없었다. 관심이든, 열정이든 그리고 사랑이든 내가 쏟은 그만큼 그것은 확실히 남아있었다. 다만 나설 때가 아니기에,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마음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언제든 자신을 불러줄 날을 기다리며. 그러니 이렇게 재회의 순간이 찾아오자, 내가 언제 잤냐는 듯이 부리나케 나와서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안아줄 수 있었겠지. 나는 그런 순간을 경험하고 있었고 그래서 CD 하나하나가 거기에 투영된 과거의 나와 만나게 하는 타임머신 같았다. 기억만이 아니었다. CD를 플레이 하면 그 선율이 가장 명징하게 나를 찾아왔던 순간의 내 감정과 생각마저 환기할 수 있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오랜만에 재회한 클래식을 다시 찾지 않을 수 없었다. 드라마를 보면 첫사랑과 아주 오랜만에 재회한 남자가 과거보다 더 열렬히 사랑하게 되는 일이 있는데 지금 내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재회의 여파로 결국 난 세 권의 책까지 만나게 된 것이다. 바로 현재 경향신문에서 음악을 담당하고 있는 문학수 기자가 쓴  '더 클래식'이란 시리즈를 말이다.

 흔히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을 한다. 내가 경험해 보니, 클래식만큼 이 말이 잘 들어맞는 곳도 또 없는 것 같다. 단순히 듣는 것과 곡에 관련된 이런저런 정보와 사연들을 알고 듣는 것은 확실히 차이가 있다. 작곡가가 어떤 시대적 상황 아래서 어떤 마음으로 곡을 썼으며 곡의 전개 방식 같은 것을 알고 들으면 모르고 들었을 때보다 훨씬 이해의 폭과 깊이가 넓고 깊어질 뿐만 아니라 선율 또한 뇌리에 오래 남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남자 작곡, 그 여자 작사'란 영화에 이런 대사가 있었던 게 기억난다. 휴 그랜트와 드류 베리모어가 주인공 커플인데, 남자는 작곡가이고 여자는 작사가이다. 작곡가인 남자가 노래 가사를 무시하는 투로 말하자, 여자가 이렇게 항변한다.

 '선율이 처음 만난 누군가에게 끌리는 것과 같다면 가사는 그들이 대화를 하는 것과 같지. 가사는 그 만남에 그들만의 스토리를 주고 마법처럼 그들의 관계를 단단하게 만들어줘.'
 
 클래식도 마찬가지다. 감상의 진정한 목적이 온전히 내 것으로 소화하는데 있다고 한다면 알고 들을 때라야 곡은 진짜 내 것이 된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율을 그냥 듣기만 하는 것은 잎새 위를 흐르는 이슬과 같다. 그것이 가진 아름다움을 잠시 감각할 수 있겠지만 내게 오래 머물지 못한다. 나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는 것은 기억에서 쉽게 지워지기 때문이다. 그걸 머물게 하고 나아가선 마음 속에 단단히 정박시킬 수 있는 것. 그 닻이 바로 곡에 대한 지식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나는 듣는 것만으로는 그치지 않고 거기에 대해 알려줄 책도 같이 찾았다. 그런 내 눈에 들어온 책이 바로 문학수 기자의 '더 클래식'이었던 것이다.

 나는 원래 이제는 고인이 되신 안동림 교수의 '이 한 장의 명반'이란 책으로 클래식에 입문했다. 사실 소장한 CD들 다수도 거기서 추천한 음반들이었다. 그 책을 다시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연주가도, 음반도 너무 오래된 시절의 것이라 지금 다시 읽기에는 아무래도 세월의 격차가 컸다. 좀 더 시대를 따라잡은, 보다 업데이트 된 지식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더 클래식'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일단 외관이 날 사로잡았다. 마침 '더 클래식' 시리즈가 세 권으로 완결 되었는데, 그것을 기념하여 출판사에서 특별히 한정판 박스 세트를 내놓은 것이다. 외관이 클래식답게 중후했다. 겉면에 작곡가들의 이름을 새긴 글자체도 어딘가 서양의 고서(古書)를 연상시켜서 좋았다. 나는 이런 시각적인 것에 무척 약하다. 남들이 팔랑귀라고 한다면 나는 팔랑눈인 것이다. 사이렌의 노래 소리에 홀린 오디세우스와도 같이 외관이라는 미끼를 덥석 물어 버린 나는 이 책이 내 요구에 부응하는 책인지 바로 검색에 들어갔다.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풍문으로 들어보니, 내가 원하는 책 같았다. 하여, 좀 부담 되는 거금이었지만 아끼지 않고 바로 구입했다.

 그렇게 우리는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더 클래식 세트 한정판 박스의 외관.
항상 박스 세트 살 때 걱정되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박스가 약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다행히 박스는 튼튼해 잘 구겨질 것 같지 않았다. 부피도 두툼해서 소장할 맛이 제법 났다.

 표지만으로 만족하지 못하실 분들을 위하여 옆으로 펼쳐 전면을 담아 본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작곡가들의 이름이 이렇게 앞과 뒤로 새겨진 디자인이다.

  어느 정도 소장할 맛이 나는가를 확인시키기 위해 이번엔 세워서 펼쳐 보았다.
중앙 아래의 '101'이란 숫자가 보이는데  '더 클래식' 시리즈가 소개하는 곡이 모두 101곡인 것을 나타내는 것 같다. 하나 아쉬운 것은, 가죽 느낌이 나는 색을 입혔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면 더 고풍스럽고 소장할 맛이 나지 않았을까? 

 열면 이렇게 '더 클래식' 세 권과 책에 소개된 음반만 따로 모아 놓아서 음반 찾기에 편한 '더 클래식 추천 음반' 소책자가 함께 들어있다. 이 소책자는 '더 클래식 세트'를 구입하면 사은품으로도 받을 수 있는데, 나는 모르고 사은품으로 소책자를 주문했다. 이렇게 나처럼 두 권을 가지게 된 분들도 있을 것이다.

 표지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요즘 LP 재발매가 활발하게 되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클래식이 가장 전성기였던 때가 그래도 LP 시절인지라 거기에 대한 향수를 나타낸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책 내용에 무척 어울리는 디자인이다. LP의 라벨을 책에서 소개하는 시대의 음악 분위기에 맞게 색깔을 달리한 것도 좋다.
 이렇게 나란히 놓아 보니, 언뜻 신호등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그것도 노렸으려나~^^

  뭔가 인상적인 장면을 하나 넣고 싶어 빈약한 머리를 총동원하여 낸 아이디어에 따라 CD를 배경으로 찍어 보았다.
이 사진을 찍은 것은 책을 다 읽고 난 뒤로, 책 아래의 CD들 하나하나가 내게 다 각별한 의미를 남긴 것처럼, 이 책도 이제 아주 각별해질 것 같다. 아마도 클래식을 벗하는 동안 내내 자주 들춰 보지 않을까 싶다.

 자, 외모는 실컷 감상했으니, 이제는 그 내면을 살필 차례다.
 과연, 나는 미끼에 현혹 당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원했던 바로 그 존재를 제대로 만난 것일까?

 인내심이 부족한 당신을 위하여 얼른 대답한다면, 후자다. 그렇다. 나는 내가 찾았던 책을 딱 만난 것이다. 
 그래도 리뷰랍시고 이 글을 쓰고 있으니, 내 주관적인 기준에만 맞춰 이 책을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리뷰가 의미를 가지는 것은 그래도 타인의 공감을 얻을 때다. 그러니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 책에 대해 말해 본다.

 보통 사람들에게 클래식의 위상이란 철학과 거의 비슷하다. 한 마디로 철학처럼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인 것이다. 다가가기엔 난해와 지루함의 허들이 너무 높은 탓이다. 그래서 철학을 너무나 사랑하여, 거기서 향유하는 행복을 좀 더 많은 이들에게 나눠주려고 대중화를 지향하는 이들은 되도록 쉽고 재밌게 철학을 설명하려 든다. 클래식도 마찬가지다. 이것을 '독자에 대한 배려'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학수 기자의 '더 클래식'은 그런 배려가 넘치는 책이다.

 일단 책의 편집부터가 그러하다.
 앞서 말했듯이 여기서는 101곡을 소개하고 있는데, 각 곡을 한 챕터씩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말이다.

 101곡의 노래가 모두 위 사진처럼 시작하는데 색깔도, 밑의 그림도 다 다르다. 이렇게 시각적으로까지 모든 곡을 별개의 장으로 구분하여 그만큼 찾기 쉽고 기억하기 편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안동림의 '이 한 장의 명반'에 실린 사진이나 그림들은 대부분 흑백이라 시각적인 쾌감이 별로 없는 편인데, 이 책은 그런 것도 주려한 노력이 역력하게 느껴진다.( 옆의 CD는 이 꼭지에서 추천한 음반. 카라얀과 베를린 필의 68년 녹음이다.)


 이렇게 작곡가의 사진(사진은 슈만이다.)과 곡에 관련된 그림들(아래)까지 큰 도판으로 삽입하여 더욱 이해를 돕고 있는 것이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이 많던데, 작가가 특별히 좋아하는 화가라 그런 것일까?(아래의 CD는 슈만의 '시인의 노래'에서 추천한 분덜리히의 음반.)
 

  이 그림이 실린 곳은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인데, 참 궁금했던 곡이었지만 정작 안동림의 '이 한 장의 명반'에는 소개되지 않아 많이 아쉬웠었다. 그런데 '더 클래식'엔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서 참 반가웠다. '더 클래식'을 좋아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여기에 있다. 거기다 설명만 있었던 게 아니라 저자는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가사의 의미를 마음 속으로 따라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독일 레퀴엠의 노래 가사마저 다 번역해 실어 두었다. 마침 사진 아래에 있는 오토 클렘페레의 '독일 레퀴엠' 음반을 가지고 있어 번역한 가사를 옆에 두고서 음악을 감상해 보았다. 역시 모르고 들었을 때보다 곡에 투영된 정서들을 훨씬 더 살갑게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만이 아니고 슈베르트, 슈만 그리고 말러에서도 그랬다. 노래가 나오면 번역한 가사를 적어 두었다. 이런 식으로 책은 독자들이 되도록 클래식과 쉽게 친해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물론 이런 경향은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곡의 설명에선 더욱 현저하다.

 클래식의 초심자나 문외한도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한 어조로 쉽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여기서 안동림 교수의 '이 한 장의 명반'과 결정적인 차이가 나타난다. 굳이 안동림의 '이 한 장의 명반'을 예로 든 것은, 지금까지 가장 대표적인 클래식 가이드 책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곡을 먼저 소개하고 마지막에 추천 음반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더 클래식'의 형식과 유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겹치는 곡들도 물론 많다. 그런 이유로 얼른 안동림 교수의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을 또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게 될 수도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좀 더 최신의 지식을 얻고 싶어서 이 책을 구했지만(이제와 말하지만 '더 클래식'은 그런 내 요구에 부응했다. 무엇보다 추천 음반인데, 최근의 녹음까지 다 섭렵해서 좋은 음반을 소개해 놓아 마침 최근엔 어떤 좋은 음반들이 있나 궁금했던 마음을 풀어주었다. 국내에서 구입 가능한 음반 위주로 추천한 것도 이 책을 더욱 마음에 들게 했다.), 그렇지 않을 분들도 많으실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여기서 안동림 교수의 책과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차이점에 대해 말해 보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책만이 가진 가치가 더 한층 잘 부각되지 않을까 한다.


 일단 안동림 교수의 '이 한 장의 명반'은 곡의 소개로 직접 뛰어든다. 그러니까 작가에 대한 설명과 그 작가가 어떻게 이런 곡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것보다 곡 자체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설명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클래식'은 같은 곡이더라도 원근법으로 접근한다.


 먼저 가장 넓은 범위의 시대적 상황을 훑은 다음, 보다 범위를 좁혀서 작곡가의 생애를 더듬고 그리고 마침내 곡 자체로 다가간다. 그래서 곡에 대한 설명만 들을 때보다 훨씬 더 입체적으로 그 곡을 이해하게 만든다. 물론 그 곡이 태어난 저간의 사정을 알게 되므로 곡을 더 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 3권의 말러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가 대표적이다. 안동림 교수의 책에선 이 곡을 쓰게 된 말러의 상황이 잠깐만 언급되고 노래 소개에 훨씬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반면 문학수 기자는 '말러가 쓴 교향곡 상당수가 그 음악적인 씨앗은 노래에 있다'고 하면서 그가 노래에 몰두하게 된 배경을 작가의 삶을 통하여 먼저 독자에게 상세하게 알려주려 한다. 그것을 통해 독자는 말러가 일찍부터 가난과 폭력 그리고 비극에 노출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노래가 바로 그 경험을 바탕으로 나온 것이며 말러 개인의 지극히 인간적인 고뇌의 산물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노래 속에 은밀히 깃들었던 말러 자신의 초상이 독자 눈 앞에 서서히 드러나는 것과도 같다. 이제 음악은 말러의 발화가 되고, 독자의 감상은 대화가 되어간다. 음악이 독자의 피부 가까이 와 닿을 수밖에 없다. 노래의 가사가 선율에 스토리를 부여하고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대화를 통해 음악과 청자 둘의 관계를 확실히 맺듯이, 문학수 기자가 소개한 말러의 생애도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설명 방식은 세 권 모두에 걸쳐 지속적으로 투영되어 있는 신념의 소산이기도 하다. 그는 음악이 결코 그것을 만든 사람과 또 그것을 둘러싼 사회와 별개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술과 개인 그리고 사회는 상호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생각이 음악 자체에 대한 소개 보다는 그것을 만들고 낳아버린 사람과 사회에 대한 설명을 보다 많은 비중으로 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독자는 음악만 보았을 때는 보지 못했던 면을 주시하게 되고, 덕분에 음악에 대한 이해도 좀 더 범주를 넓혀서 입체적으로 하게 된다. 무엇보다 음악을 단순한 추상이 아닌 인간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도 현실적인 삶의 희노애락과 구체적인 욕망과 이상까지 투영된.


 이런 이유로 설사 나처럼 '이 한 장의 명반'을 읽었더라도 이 책을 만나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같은 곡을 전혀 다르게 볼 수 있게도 하고, 거기서 접해보지 못했던 곡에 대한 사연을 여기서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까. 물론 클래식을 즐겨 듣는 사람에겐 이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같은 곡도 저마다 다른 지휘자와 연주자들의 다양한 버전(version)으로 감상하는데는 이미 익숙하니까 말이다. '이 한 장의 명반'과 '더 클래식'도 그렇게 읽으면 될 것 같다.


 결국 이 책은 몸(형식)과 마음(내용)을 다하여 클래식이 어렵고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을 클래식과의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고, 몰랐던 매력을 보고 알게 하여 독자 쪽에서 먼저 다가가도록 만드는데 성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문외한과 초심자만 만족시키는 책은 아니다. 내가 그랬듯이 어느 정도 클래식과 친숙한 사람들도 이 책에 녹아든 곡이 탄생한 시대의 상황이나 작곡가의 삶을 통해 설령 아주 익숙한 곡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만들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렇게 문외한과 초심자 그리고 기성의 팬들 모두를 두루 만족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클래식'은 클래식 가이드로서는 감히 최고의 책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으며, 예전에 '이 한 장의 명반'이 클래식 가이드로써 차지했던 위상과 역할을 이제 '더 클래식'이 물려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서양에서 상품 이름이나 제목에 '더(THE)'를 붙일 때는, 동종의 상품이나 작품에 비추어서 더 뛰어날 자신이 있을 때다. 내 생각엔 충분히 그럴만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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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의 탄생 - 차가움을 달군 사람들의 이야기
톰 잭슨 지음, 김희봉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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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장고의 전생은 훌리건이었을 것이다'. 이런 첫문장으로 시작하는 박민규의 소설 '카스테라'는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중고 냉장고에 관한 이야기다. 그처럼 냉장고는 사실 우리 일상에서 가장 무거운 실존이다. 365일, 단 한 번도 OFF 되는 일이 없는 존재. TV를 안 보는 하루는 있어도, 냉장고를 열지 않는 하루는 없다. 거기다 이제 스마트 냉장고의 시대가 열리면서 냉장고는 더욱 가정의 중심이 되었디. 박민규가 묘사했던 대로, 냉장고가 가정의 신으로 군림할 날도 머지 않은 것이다. 아니, 이미 현실인지도...


 이런 냉장고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을까? 매일 냉장고 문을 열면서도 이것이 어떻게 우리 삶에 출현하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걸 비로소 이번에 나온 톰 잭슨의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제목은 '냉장고의 탄생'. 저자 톰 잭슨은 과학과 기술을 역사적 맥락으로 설명하는 것을 즐기는 영국 출신의 프리랜서 작가라고 한다. 냉장고 역시 그런 맥락으로 다루지만, 그의 설명은 단순히 냉장고의 발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의 이야기가 담는 범주는 훨씬 넓어서, 아예 인류가 지금처럼 '차가움'을 지배하게 된 여정 전체를 망라한다. 그래서 책의 시작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얼음 창고에 대한 기록이 있는 수메르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18세기, 당시 시리아 국경 지역을 지배하던 짐리-림은 '테르카'에 가로 6미터, 세로 12미터의 얼음 창고를 지었다. 그것이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얼음이 인간 문명 안으로 들어온 첫 걸음이었다. 목적은 지금과 똑같이 상하기 쉬운 음식물의 보존과 저장 때문이었다. 얼마 전에 나온 우리 나라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조선 시대만 해도 얼음이 권력과 자본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데, 인류가 얼음을 자의적으로 생산할 수 있을 때까지 문명이 있는 곳 어디서나 얼음은 늘 그랬다. 그런 얼음이 자본과 권력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차갑다'는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그런 '차가움'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 연구했던 과학자들 덕분이었다. '차갑다'는 것은 '뜨겁다', 즉 열의 반대이므로, 차가움의 정체와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선 열의 정체와 원인을 먼저 규명할 필요가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근대에 이르기까지 열은 계속 '실체론'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학자들은 열을 일으키는 어떤 실체를 가진 입자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을 '플로지스톤'이라 불렀다. 차가움은 연소를 통해 바로 이 '플로지스톤'이 빠져나가 일어나는 현상으로 이해되었다.(데카르트의 이론이 대표적이었다.) 그것은 수은을 이용하여 최초로 만들어진 토리첼리의 온도계를 통해 공기의 압력으로 인해 열과 차가움의 온도가 변한다는 것을 밝혀낸 로버트 보일의 시대까지 변함없이 이어졌다. 스코틀랜드의 과학자, 로버트 블랙은 물체의 온도가 변하는 이유를 특정 물질의 감소 때문이라고 하면서 그 물질을 '칼로릭'이라 명명 하기도 했다.(지금 흔히 사용되는 '칼로리' 단위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 패러다임의 균열을 일으킨 과학자는 바로 프랑스의 라부아지에 였다. 바야흐로 공기가 이전처럼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여러 입자가 뒤섞인 '혼합물'이라는 것이 그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그는 열을 공기 중의 산소가 다른 물질과 반응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그래서 그런 열을 일으키는 기체란 의미로 산소를 Oxygen(라부아지에는 '산을 만드는 것'이라는 의미로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물론 산소는 산에 대해 아무런 역할을 못 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거기에 대한 라부아지에의 오해가 낳은 산물이었다.)이라 불렀다. 그것을 시작으로 열을 일으키는 공기 중의 미세 입자에 대한 연구가 계속 이뤄진 뒤, 비로소 제임스 프레스콧 줄에 의해 열은 에너지라는 것이 밝혀진다. 학창 시절 물리 교과서에서 '줄의 법칙'으로 흔하게 만났던 그 줄 맞다. 차가움은 이제 에너지가 공급되지 못한 상태로 정의된다. 


 그리고 1852년, 그는 형인 톰슨과 함께 하나의 법칙을 발표한다. 바로 압축된 기체를 좁은 관이나 구멍을 통해 팽창시키면 기체의 온도가 내려간다는 법칙이다. 줄에 의해 온도는 이제 기체 안의 입자들이 얼마나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나의 반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입자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면 온도가 올라가고, 반대면 내려간다. 입자가 움직이지 않으면 않을수록 차가워진다. 그런데 압축된 기체를 일시에 팽창시키면 입자 사이의 거리가 멀어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과 비슷한 상태가 된다. 그래서 온도가 내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중대한 발견이었다. 결정적으로 인류가 온도를 지배하게 된 계기였다. 결국 이 법칙을 통해 우리는 냉장고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냉장고가 지금처럼 보편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선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1880년대 미국에서만 얼음이 500만톤 소비되었으나, 대부분은 자연에서 얼음을 채취하며 냉장시켜 소비자들에게 배달하는 형식이었다. 당시는 자연에서 얻은 것은 순수하다는 믿음이 있어, 강물이나 호수에서 채취한 얼음을 그대로 먹었는데, 덕분에 장티푸스와 이질이 창궐하여 인공 얼음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게 되었다. 가정용 냉장고는 프랑스의 수도사 마르셀 오디프렌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 그는 와인을 시원하게 보관하는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그러다 결국 냉장고까지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산화황을 사용한 것이었다. 전기를 사용하는 냉장고는, 1911년 제너럴 일렉트릭사가 처음으로 특허를 얻었다. 초기의 냉장고는 '모니터 톱'으로 냉장고 위쪽에 원통형 압축기와 응축기가 돌출되어 있는 형태였다. 냉각된 공기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덜 차갑게 되기 때문에 모니터 톱은 위쪽에 얼음을 만드는 부분이 있었다. 지금은 양문형으로 냉각기가 별도로 설치된 냉장고가 보편적이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냉장고 대부분은 냉동실이 가장 위쪽에 있는 형태였다. 이런 형식이 이미 냉장고 초창기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냉장고의 시작과 현재의 다양한 응용까지 설명한 다음 톰 잭슨은 이런 차가움을 만드는 기술의 미래까지 보여준다. 얼른 냉동 인간 정도는 예상할 수 있으나 저자가 보여주는 미래의 모습 역시, 그가 서술한 기술의 과거만큼이나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  그는 이 냉각 기술이 텔레포테이션(즉, 순간 이동이다.)까지 응용되리라 보고 있다. 왜냐햐면 냉각 기술이 양자컴퓨터를 실현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컴퓨터는 연산을 순차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지만, 양자컴퓨터는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단번에 아주 많이 그리고 복잡한 연산을 할 수 있다. 그래서 '텔레포테이션'에서 순간 이동한 지점에서 인간을 출발하기 바로 전 상태로 다시 복원하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텔레포테이션은 존재 그대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일단 시작 점에서 존재를 빔 상태로 만들기 위해 죽이고, 도착지에서 다시금 재생시키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죽음과 재생의 과정이므로, 죽기 전의 상태로 재조합 하기 위해 엄청나게 빠르고 복잡한 계산이 가능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빨리, 빈틈없이 이뤄져야 하므로 양자컴퓨터가 존재하고 나서야 가능하다. 그런데 양자컴퓨터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극저온의 냉각 기술이 필수적이다. 외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도록 입자를 아주 단단한 상태로 고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냉각 기술은 미래에 아주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 새삼, 냉각 기술이 가져올 문명의 변화가 기대되지 않을 수 없었다. 순간 이동이 가능한 세상이라니, 얼마나 멋진가. 그 때에 이르면 정말 우리는 박민규 소설처럼  냉장고 속으로 들어갈 지 모르겠다. 먹히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다른 세상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톰 잭슨의 '냉장고의 탄생'은 멋진 책이다. 단순히 냉장고에 대해서만 들려주지 않고, 인류가 어떻게 차가움의 원인을 규명하고 정복하게 되었는지, 거기에 연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목조목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오늘의 냉장고를 위해 이렇게 저렇게 연구한 이들이 많았다. 지금의 편리는 바로 그런 사람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얼음에 끼었던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지금 얼음의 무한 자유를 누리게 될 수 있었다고나 할까? 어쨌든, 냉장 과학과 기술의 역사와 미래를 알고 싶은 분들에겐 딱 좋은 안내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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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수치심 -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마사 너스바움 지음, 조계원 옮김 / 민음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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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혐오와 수치심'은 '시적 정의'로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마사 너스바움의 책이다. 그녀는 계속 '공적인 삶의 중요성'을 강변해왔다. 공적인 삶이란 단순히 말해,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뜻한다. '시적 정의'는 바로 그런 삶을 영위하는데 문학적 상상력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란 이야기였다. 따지고 보면 타인의 삶이란 우리 자신과 멀다. 타인의 내면을 내 마음처럼 볼 수 없고, 그가 삶에서 당하는 체험을 내 피부처럼 느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상상력을 필요로 하게 된다. 바로 타인의 상황을 마치 나의 일처럼 여기는 상상력이다. 그럴 때 문학은 좋은 토양이 된다. 문학은 무엇보다 타인의 삶으로 가득하고, 우리는 독서를 통해 그들의 상황과 내면을 경험할 수 있다. 문학은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을 만들어 준다. 그런 면에서 공적인 삶을 보다 바람직한 것으로 만든다. 이기가 아닌 이타, 이용이 아닌 배려, 강요가 아닌 이해의 장으로. 그래서 너스바움은 교육이나 재판 같은 공적 제도가 문학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그녀에겐 뚜렷한 지향점이 있다. 쉽게 말해, 타인과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삶을 꿈꾸는 것이다. 이것을 고려하면 그녀가 왜 '혐오와 수치심'에 주목하는 지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생각해 보면, 혐오와 수치심은 타인과의 연대를 막는 대표적인 감정이 아니던가! 너스바움은 감정에 주목한다. '시적 정의'에서 강조한 문학적 상상력의 대상 역시 따지고 보면 타인의 감정이었다. 그녀는 감정이 우리가 생각하듯이 비이성적이며 자연 발생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이성적이며 원인에 따른 결과라고 본다. 그래서 그녀는 감정에 대해 '인지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감정은 배고픔이나 목마름 같은 욕구와 다르다. 왜냐하면 감정의 경우에는 믿음이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감정은 대상에 대한 훨씬 더 많은 사고를 수반한다. (p. 64)


 감정에 주목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그녀는 공공성이 있는 공적 제도들을 탐구하는데, 그 제도들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법이다. 그런데 그 법이 감정에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감정이 인지적 산물이며 지금 우리의 법이 감정 상태를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의 1장에서 충분히 논증한다. 그런 법과의 상관관계에 있어 혐오와 수치심은 더욱 중요해지는데, 그것은 혐오와 수치심이 무엇보다 범죄를 규정하는 형법의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형법은 어떤 것이 범죄가 되는가를 규정한다. 여기서 법과 도덕은 구별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비도덕적이라고 해서 다 범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흔히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말을 한다. 쉽게 표현하면, 비도덕적인데다 처벌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내버려둘 수 없는 것에 대해서만 국가는 범죄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어느 정도 비도덕적이어야 국가가 범죄로 규정하고 개입하는가?


 여기에 대해 '자유론'을 쓴 존 스튜어트 밀이 하나의 원리를 내놓았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해악의 원리(이 책에서는 '위해의 원리'로 번역하고 있다.) 다. 즉 동의하지 않은 상대방에게 위해가 될 행위만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원리다. 달리 말해, 스스로 자신에게 해로운 행위를 하거나 해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대방이 동의를 하고 자유롭게 위해 행위에 참여한 경우는 법으로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이다. 영미법계는 이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이렇게 밀의 원리를 따를 경우 문제가 생긴다. 혐오는 위해의 원리에 잘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엔 동성애자를 처벌했다. '이미테이션 게임'이란 영화로 이제는 우리들에게도 제법 이름이 알려진 앨런 튜링을 생각해 보라. 그는 절대 해독이 불가능하다던 독일군의 암호 '애니그마'를 풀어 연합군이 2차 대전에서 승리하도록 만들었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당시 영국에 있었던 동성애자 금지법에 의하여 범죄자가 되어 법원으로부터 화학적 거세형을 받았다. 결국 그는 거세로 인한 우울증으로 사과에다 독약을 주사하여 그것을 깨물고는 죽는다. 그러나 동성애는 상대방에게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밀의 원리를 따른다면 결코 범죄가 될 수 없다. 앨런 튜링이 자살했던 것은 오로지 동성애에 대한 혐오 때문이었다. 그런데 데블린은 이런 혐오마저 범죄로 규정하려 했다. 그는 도덕도 법으로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학자였다.


 미국에도 그런 법이 있다. 이른바 소도미 법이다. 그 법은 불륜, 간통, 동성애 행위를 포함하여 상호 합의 아래 이뤄지는 다양한 형태의 성관계를 범죄로 규정한다. 앞서 밀의 원리에 따르면 상대방의 동의가 있으면 범죄가 되지 않는다. 이 법은 법이 감정을 기반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확한 사례다. 그것이 아니면 이 법은 성립할 수 없다. 밀의 원리에 명백하게 저촉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블린은 이 법을 옹호한다. 혐오를 범죄로 규정하는 것은 밀의 원리에 위배된다. 하지만 데블린은 밀의 원리를 따른다고 하면서도 혐오를 범죄로 규정한다. 데블린의 생각은 이러하다. 사회가 유지되려면 상호 준수해야 할 최소한의 도덕성이 확립되어 있어야 하는데 혐오는 바로 그 도덕성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너스바움은 그런 데블린의 생각이 도덕의 최소한으로 자신의 존재를 규정했던 형법의 기본 정신을 무시하고 있다고 본다. 물론 데블린이 말하는 최소한의 도덕성이 사회의 존속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헌법에서 보장한 기본권이 되어야 하지, 혐오를 근거로 할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데블린의 후예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카스, 밀러 그리고 케이헌이 그러하다. 모두들 위해의 원리에 해당되지 않는 혐오도 법이 포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너스바움은 2장에서 그들의 논리를 차례로 논파한다. 그리고 그런 혐오는 법에 전혀 불필요하다는 것을 설득력있게 논증한다.


 그런 다음, 3장에서 너스바움은 혐오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지 파헤친다. 사람들은 특정 대상에 대해 왜 혐오감을 갖는 것인가? 그녀는 단적으로 혐오는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라고 밝힌다. 혐오는 우리의 불안과 공포의 산물인데, 우리가 혐오하는 대상을 잘 살펴보면 거기엔 두 가지 공포가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하나는 전염의 공포요, 다른 하나는 추락의 공포다. 이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즉 우리는 내가 지금보다 훨씬 더 추락한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 때 혐오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말 피하고 싶은 것인데, 얼마든지 나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 그것이 바로 혐오의 감정을 배태한다.


 최근 강남역 묻지마 살인으로 저변에 깔려 있던 여성 혐오가 비로소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부상했는데, 너스바움에 따르면 그것도 다 설명이 된다. 물론 이것은 수치심을 이야기할 때 나오는 것이지만 혐오의 경우에도 들어맞는 설명이다. 왜냐하면 특히나 남성의 경우, 자신이 느끼는 수치심이 곧잘 혐오로 연결되는 까닭이다. 너스바움은 여성 혐오가 남성이 아주 어릴 때부터 받는 사회화 과정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남성은 어릴 때, 여성과는 다르게 사회화 된다. 여성들은 부모에게서 자신의 감정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잘 표현하며 다른 이의 감정에 자주 공감하도록 하는 사회화를 거치지만, 남성의 경우엔 반대다. 아무도 자신의 내적 세계를 탐구하고 표현하라고 말해주지 않으며 어떤 감정 상태에 대해 물어도 남자니까 하는 식으로 간단한 대답으로 마무리 된다. 남성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보단 무시하거나 감추도록 훈련 받는다. 꽃을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 우는 것도 모두 자신의 흠이 된다. 그런 남성성의 강요는 자기 내부에 존재하는 여성성을 수치스럽게 여기도록 만든다.


 35년간 남학생을 치료해 온 임상 심리학자 댄 킨들론과 마이클 톰슨에 따르면 소년들이 흔히 보이는 공격성은 결코 테스토스테론의 효과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호르몬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느끼는 여성성을 자신의 부족함으로 받아들여 그것이 공격적인 적대감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혐오는 자신의 수치와 관계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나약하다는 생각 때문에 추락에 대한 불안이 생겨나고, 그러다 결국 나도 저렇게 되겠구나 하는 전염의 공포가 엄습한다. 여성 혐오는 이렇게 자리 잡는다. 결국 여성 혐오란 자신이 느끼는 여성성에 대한 편협하기 그지 없는 적대의 산물인 것이다. 다시 말해, 나의 부족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 결국 타인에 대한 혐오로 이어진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 여성성이 절대 부족함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것은 오로지 사회의 강요가 초래한 왜곡된 시선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에서 고통을 느낀다면 사회가 잘못된 안경을 씌운 것에 있다. 더구나 그 색안경은 얼마든지 버려도 되는 형편없는 것이다. 그러니 여성 혐오 또한 100% 부조리일 뿐이다.


 '혐오와 수치심'은 그렇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혐오가 얼마나 말도 안되는 것인지 충분히 논증해 보인다. 논의는 체계적이고 내용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서 쉽게 혐오와 수치라고 말은 하지만 그것의 형성과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는 우리들에게 충분한 사유의 시간을 선사한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분노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홧김에 저지르는 폭행이나 상해치사가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아마도  우리가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어떻게 지혜롭게 풀어야 할까?'에 대해, 너스바움이 남성의 사회화에 대해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제대로 생각해 보지도 못했고 교육 받지도 못했기 때문에 더욱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너스바움의 말마따나 감정은 이성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책을 길잡이 삼아 자신의 감정들에 대해 차분히 헤아려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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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전야의 최면술사 - 메스머주의와 프랑스 계몽주의의 종말
로버트 단턴 지음, 김지혜 옮김 / 알마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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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78년 2월. 한 독일인 의사가 파리에 도착한다. 그의 이름은 프란츠 안톤 메스머. 그는 프랑스에서 단단히 한 몫 벌어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에겐 팔릴만한 것이 있었고 그것은 그만의 특별한 이론이었다. 그는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어떤 유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보지 못했으면서도 발견했다고 주장했는데 증거를 요구하는 이들에게 뉴튼의 만유 인력을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진 대학자 뉴튼의 말에 따르면 별과 별 사이에도 인력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아무 것도 없는 진공 상태에서 어떻게 힘이 작용할 수 있겠느냐며 그것은 분명 내가 말하는 유체가 인력을 매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당시는 과학이 지식인 계층에게 호사가의 취미로 널리 유행하고 있어서 그런 식의 과학적인 논증은 쉽게 사람들의 납득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것만이 성공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제대로 먹혀들어갔던 것은 바로 다음에 있었다. 그는 그런 유체가 모든 생명체에게도 존재한다고 말했고 인간의 모든 생로병사마저 유체가 주관한다고 설파했다. 유체만 잘 관리하면 암도 치유가능하다고 하면서 실제 치료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그는 치료를 위해 방을 만들었다. 하지만 정작 그가 하는 일은 없었다. 환자가 그 방에 들어가서 만나는 것은 기이한 별자리들이 수놓인 벽을 배경으로 거울들이 반사하는 특이한 빛과 이상한 소음 그리고 부드러운 하모니카 연주가 전부였다. 그런데도 환자들은 자신의 병이 치료되었다고 고백했다. 메스머는 그 방의 모든 것은 인간의 유체를 자극하고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 말했다. 완치의 고백이 이어지자 프랑스 전역에서 메스머의 인기가 폭발했다. 라파예트, 니콜라 베르가스, 장 루이 카라 그리고 자크 피에르 브리소등 그를 옹호하고 뒤따르는 지식인들도 늘어났다. 수없이 몰려드는 환자들 때문에 메스머는 많은 환자들을 한꺼번에 치료하는 '위기의 방’을 만들었고, 아예 사람들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통 같은 것을 대량으로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다. 그래도 인기는 꺾일 줄 몰랐고 시중에는 어느새 가짜 통들이 속출했다.


 프랑스 언론들은 메스머의 치료 방법이 기존 의학을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 보도했다. 그러니 프랑스의 의학계가 메스머를 곱게 볼 리 없었다. 메스머와 의학계 간에 유체의 실체와 치료의 진실을 두고 대대적인 공방이 벌어졌고 결국 우리도 잘 아는 화학자 라부아지에와 벤자민 프랭클린까지 가세한 위원회가 메스머의 주장을 검증했다. 결론은 ‘유체를 확인할 수 없다’로 났고 바로 기득권 지식인들의 대대적인 공세에 밀려 메스머는 프랑스 바깥으로 추방되었다. 이것이 정확히 프랑스 대혁명 11년 전에 일어난 메스머 유행의 전말이다. 로버트 단턴의 책, '혁명 전야의 최면술사'는 바로 이것을 담는다. 단순히 상황을 독자에게 알리는 것은 이 책의 목적이 아니다.




 미국의 유명한 유럽사 학자인 로버트 단턴은 해바라기 같은 사람이다. 그는 언제나 프랑스 대혁명 하나만 바라본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보인다. 그에게 프랑스 대혁명은 하나의 기적과도 같다. 당시 프랑스 민중 대부분은 문맹이었다. 프랑스 혁명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종종 루소와 같은 지식인들의 책들이 혁명으로 이끄는 선구자 격이 되어 민중이 들고 일어나는데 커다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말한다. 지식인들의 언어와 논리가 없었다면 굶주림으로 마구 들끓고 있었던 체제에 대한 민중의 분노도 혁명으로 쉽게 결집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 프랑스 민중은 그 책들을 읽을 수 없었다. 거기다 당시의 민중은 오래도록 왕정에 익숙해져 있었다. 프랑스 혁명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민중은 왕의 손만 잡아도 자신의 병이 치유될 것이란 믿음이 널러 퍼져 있었다. 마르크 블로크의 ‘기적을 행하는 왕'은 당시 그런 믿음이 기층 민중에게 얼마나 널리 퍼져 있었으며 오래도록 신앙처럼 뿌리내리고 있었는지 잘 보여 준다. 왕은 민중에게 태양왕 루이 14세가 천명한 것처럼 거의 신과 같은 존재였다. 무지와 빈곤에 찌들었던 프랑스 민중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빈곤층과 저학력 소유자들이 박근혜를 더 많이 지지하는 것과 똑같이 듯 전통적 권위에 맹목적으로 순응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은 신과 같은 왕을 단두대로 보내는 혁명을 일으킬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단턴에게 프랑스 혁명은 기적이었고 그 기적을 가능하게 만든 것을 단턴은 쫓았다. 그는 수많은 의문을 쫓는다. 혁명으로 향하는 움직임을 선도했던 지식인들의 사상들은 과연 어떤 식으로 민중에게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일까? 압도적인 문맹 상황으로 볼 때, 책이 그 역할을 할 수 없었다면 분명 다른 경로가 존재했던 것이 아닐까? 어쩌면 민중 스스로 혁명의 주체로 성장하게 된 것은 아닐까? 그는 오래도록 거기에 천착하면서 마치 CSI와도 같이 끈질기게 그 흔적과 징후를 추적했다. 그는 정말로 태양만 바라보며 꽃봉오리를 돌리는 해바라기 같았다. 이번에 나온‘혁명 전야의 최면술사'를 읽고나니 더욱 그렇게 여기게 되었다. 이 책은 68년에 나온 로버트 단턴의 첫 책인데, 여기서 부터 메스머주의와 프랑스 혁명 사이의 연결 고리를 마치 해부하듯이 상세하게 분석하여 어떻게 혁명 사상이 민중에게 광범위하게 유포될 수 있었는지 그것을 밝히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턴은 일단 지금의 상식으론 얼른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메스머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로 우리의 시각을 교정할 것을 권한다.


 ‘메스머주의가 오늘날에 터무니없이 보인다고 해서 역사가들이 이를 외면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메스머주의야말로 1780년대 글을 아는 프랑스인들의 관심에 완벽히 부합했기 때문이다.(p. 33)


 단턴은 당시 프랑스에서 과학이 왜 인기가 있었는지를 밝혀 프랑스가 혁명까지 가는 여정에 있어 메스머주의가 했던 역할을 드러낸다. 그 때 과학은 열기구나 비행기등 민중들에게 신기한 눈요기 거리들을 맣이 제공했다. 그런 실험이 있다는 소식이 신문에 보도되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구경했다. 그들에게 그 광경은 경이였고 오로지 신을 중심으로 돌았던 세계에 인간의 위대함이 거대한 지진을 일으키는, 한 마디로 자신의 세계관이 전복되는 체험이었다. 다수의 농민들은 하늘 높이 올랐다가 내려온 열기구에서 나오는 사람에게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당신은 인간입니까? 신입니까?(p. 49)


 이제 왕은 신이 아니었다. 과학자가 신이 되었다. 왕족이나 귀족들조차 그들이 보여주는 실험을 지상에서 한 명의 구경꾼이 되어 쳐다보았다. 과학은 엄격하게 나뉘었던 신분 제도에 평등을 가져왔다.


  퐁텐이라는 이름의 한 평민 출신 젊은이는 1784년 1월 19일 리옹을 막 출발한 몽골피식 열기구에 뛰어들었고 왕자, 백작, 기사 그리고 그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 다른 유명인사 승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지상에서는 내가 당신들을 우러러보았지만 이곳에서 우리는 대등하다.”프랑스의 젊음을 일깨운 행동이었다.(p. 227)


 이것은 그만큼 민중 자신을 사회의 주체로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과학은 신의 섭리가 아니라 자연 속에서 저절로 이뤄지는 질서를 보게 했으며 질병도 악마의 시험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기도로 해결하기 보다는 그 원인을 스스로 곰곰이 따져보게 만들었다. 즉 모든 현상을 대하는데 있어서 주체로 행동하게끔 자극한 것이다. 단턴은 이런 식으로 루소의 책보다 구경거리로써의 과학이 민중을 더 계몽했다고 본다.


 메스머주의는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메스머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과학은 민중에게 유리되어 있었다. 그것은 복잡한 계산이었고 어려운 수식으로 구성된 논리라 민중이 접근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민중에게 허락된 것은 구경으로 참여하는 것 뿐이었다. 그랬던 간격을 바로 메스머주의가 좁혔다. 이론에 어느 정도 비합리적인 면과 신비한 면이 있었던 덕분에 정통 과학이 요구하는 복잡한 수식과 이론의 짐을 덜 수 있었고 자연히 민중의 언어로 보다 손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이다. 로버트 단턴은 메스머주의가 정확히 과학이 사이비 과학과 신비주의로 변해가는 스펙트럼의 중간 부근에 자리잡고 있다(p. 68)고 말한다. 그렇기에 메스머주의는 과학이 열어놓은 민중을 주체로 만드는 길을 더욱 가속화 시킬 수 있었다. 


  실제로 이런 메스머주의의 힘을 일찍 알아본 자들이 있었다. 바로 당시 프랑스에 있었던 급진주의자들이었다. 지금 이 체제로는 더 이상 안되니 앙시앙레짐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급진주의자들에게 메스머주의는 참으로 매력적인 물건이었다. 과학이 지닌 민중을 주체로 자각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민중이 가장 손쉽게 받아들이는 과학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메스머주의를 통해 자신들의 급진 사상을 민중에게 전파시키려 하였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나중에 메스머주의는 푸리에와 생시몽등 초기 사회주의 운동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로버트 단턴은 이런 식으로 주류 역사에서 그저 한 순간의 해프닝으로만 간주했던 메스머주의와 프랑스 혁명 사이의 연결 고리를 촘촘히 발굴해 낸다. 그리고 소개되는 수많은 사료와 인용이 단턴의 견해를 꽤나 설득력있게 만든다.


  프랑스 학자 르네 지라르는 모델론을 말한 바 있다. 쉽게 말하자면 혁명 같은 거대한 이념으로 기층 민중을 움직이기 위해선 그들이 쉽게 이해하고 모방할 수 있는 중간 모델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단턴의 논지를 따라가다 보면 절로 르네 지라르의 모델론이 떠오르게 된다. 프랑스 대혁명은 바로 그런 중간 모델들이 존재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메스머주의가 바로 그런 중간 모델이었다. 여기서 자신들의 사상이 문맹이 많은 대중들에게 쉽게 전달할 수 없다는 한계를 일찍 깨닫고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이유로 편견없이 메스머주의를 받아들인 프랑스 급진주의자들에게 주목하게 된다. 그들은 대의를 위해 엘리트로서의 자존심은 던져 버리고 어떻게든 민중의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민중이 처한 상황과 그들에게 놓인 현실적 한계를 먼저 헤아리고 그걸 그대로 인정한 다음 그것을 출발점으로 하여 자신들의 대의를 설득하려 한 것이다.


 이런 급진주의자들의 모습을 보다 오늘날 우리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정말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다들 유행가의 후렴구처럼 국민, 국민 하지만 정작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대의를 몰라준다고 오히려 국민을 타박한다. 설득하려는 최소의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들이 말하는 것만이 진리이며 국민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오해라고 공박할 뿐이다.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제발 ‘혁명 전야의 최면술사’를 읽어서라도 자신의 대의를 실현하려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꼭 좀 깨닫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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