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가까운 프랑스 이만큼 가까운 시리즈
박단 지음 / 창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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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만큼 가까운 시리즈'라고 창비에서 나오는 책이 있다.

 한 나라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려주는 책인데, 개인적인 생각으론 그 방면에서 최고의 것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나는 이 시리즈를 중국 편을 통해 처음 만났다. 중국으로 여행 가게 되어 읽어봤던 것인데 역사와 문화 그리고 현재 정치 상황을 망라 하면서 쉽고 자세하게 알려주어 중국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얻었다. 그래서 시리즈에 신뢰가 생겼는데 이번에 프랑스 편이 나오니 손에 잡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프랑스의 대선은 전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기존 정당이 하나도 대선 결선 투표에 참가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모두 보수 우익만 참가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정황으로 비록 그들의 지지율이 그리 압도적이지 못하였다고는 해도 확실히 프랑스의 정치 지형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였다. 어쩌다 이런 프랑스가 되었을까? 궁금해졌다. 그러다 새삼 내가 프랑스에 대해 뭘 알고 있는가에 생각이 미쳤고 이번 기회에 프랑스에 대해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있던 차에 '이만큼 가까운 프랑스'가 나와 준 것이다.



 당장 들여다 보았다. 프랑스에서 프랑스 노동 역사를 전공으로 하여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지금은 서강대 사학과 교수로 있는 박단이 책을 썼다. 책은 모두 6장으로 이뤄져 있는데 각 장 하나가 프랑스의 사회, 정치, 지리, 정치경제, 문화, 한불관계를 각각 다룬다. 쉽게 한 나라의 모든 부분을 고루 살펴본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중국 편이 그랬던 것처럼 프랑스 편도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했다. 첫 부분에 나오는 언제나 하나의 공화국을 지향하기 때문에 프랑스에선 다문화 정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부터 그랬다. 프랑스 하면 톨레랑스라서 다문화 정책이 당연히 있을 줄 알았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니 놀라웠다.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에서 중요한 것은 톨레랑스 보다 연대를 뜻하는 '솔리다디테'라고 한다. 그렇게 자신이 또 하나의 프랑스 자체라고 여기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에 평등에 대한 생각도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커서 사회 보장 제도가 일찍 자리잡았고 적극적으로 펼쳐졌다.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인물 하나를 만났는데, 바로 '아베 피에르'다. 2차 대전 때문에 프랑스에 주택 부족 문제가 심각해지자 집이 없어 겨울에 얼어죽는 사람이 많았는데, 당시 빈민 운동을 하고 있던 아베 피에르는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것보다 얼어죽을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면서 주인의 허락 없이 빈집에 들어가는 운동을 벌여 프랑스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시리아에는 사람이 없는 빈집이 있으면 누구나 들어가 제 집처럼 살 수 있는데 프랑스에도 그런 것을 추구하던 사람이 있었다는 게 흥미로웠다. 그런데 이렇게 솔리다디테가 강했던 프랑스가 여성에겐 어찌된 일인지 야박하게 굴었다. 페미니즘이 프랑스에서 처음 생겨난 말이라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1870년 경에 생겨난 이 말은 원래 여성적 특징을 보이는 남성 환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한다.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가장 먼저 사용한 나라답게 여성이 들고 일어난 것도 가장 빨랐다. 프랑스 혁명 때 여성도 남성 못지 않게 봉기하여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다. 1789년 10월, 파리 시장에 있는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베르사이유 궁까지 걸어가 왕을 접견하기도 했었다. 이런 일들이 당시 프랑스 남성에게 여성을 새로이 보게 만들었으나 여성에 대한 처우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혁명을 주도했던 급진 세력들은 오히려 여성에 대한 권리를 박탈하고 정치를 하지 못하도록 주도했다. 프랑스 혁명의 결과물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이 오직 남성만을 위한 것이며 여성에 대한 것은 빠져 있다고 비판하면서 스스로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을 발표한 올랭프 드구주는 프랑스 혁명 때 남성 못지 않게 적극적으로 활약한 유명한 혁명가였으나 결국 로베스피에르와 마라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이렇게 여성 혁명가의 입을 막은 혁명 세력은 아예 여성에겐 인간이 타고난 권리가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아내는 자기가 번 돈 조차 남편의 허락 없이 쓸 수 없는 등 여성을 철저하게 남성의 소유물로 만들어 버렸다.


 책엔 올 컬러의 사진 자료와 'Q&A'가 있어 더욱 이해를 돕고 부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여기는 들라크루아의 유명한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란 그림으로 그림 속 여인 마리안이 실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 혁명의 상징으로 만든 가상의 인물이란 걸 밝히고 있다. 여성을 그만큼 천시했으면서도 왜 상징은 여성으로 삼은 것일까? 혁명 주도 세력은 당시 공화국 개념이 생소한 민중에게 그들이 세우고자 하는 공화국이 좋은 것이라고 알릴 필요가 있었고 민중의 문맹률이 높았던 상황에서 이미지로 다가갈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공화국 이미지를 민중에게 친근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프랑스 국가는 여성으로 지칭하는 게 언어 관습이었으므로 혁명의 상징을 여성으로 한 것이라 한다.


 계몽 사상의 가장 밝은 빛이던 프랑스 혁명에도 이런 어둔 그늘이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는 이렇게 온전히 밝지만은 않은, 빛과 어둠 사이를 일렁이는 나라였다. '이만큼 가까운 프랑스'는 바로 그런 면모를 깊게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바로 그 불안한 일렁거림이 오늘의 극우 마리 르펜과 마크롱만의 대선 결선 투표를 자아낸 것인지도 모른다. 중국 편이 그랬듯, 프랑스 편도 프랑스에 대해 전보다 훨씬 깊이 이해하게 만들었다. '이만큼 가까운 시리즈'에 대한 신뢰가 더 깊어진다. 나는 이 책을 가급적 청소년들이 봤으면 좋겠다. 청소년이 읽어도 이해에 전혀 무리가 없게끔 쉬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교과서나 신문 보도로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폭 넓고 상세한 내용 때문에 한 나라를 훨씬 깊이 이해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누구나 오늘날의 세계를 너나 없이 연결되는 글로벌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다른 나라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 우리나라에 일어나는 일만큼 관심을 갖는 이는 별로 없고 강 건너 불 구경 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한 나라의 일이 마치 나비 효과처럼 다른 나라로 파급 되는 것을 우리는 참 많이 목격한다. 그런 면에서 다른 나라의 일도 나의 일처럼 관심 가질 필요가 있다. 언제 우리 일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일을 이해하는데 있어 아는만큼 보이는 법이라고 무엇보다 그 나라의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만큼 좋은 것도 또 없다. 거기에 '이만큼 가까운 시리즈'는 좋은 안내자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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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살아남기 - 우리가 몰랐던 신기한 전쟁의 과학
메리 로취 지음,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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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과학 하면 얼른 뭐가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대부분은 확증 파괴대량 살상이 주된 목적인 병기 제작 같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그러나 메리 로치의 책, '전쟁에서 살아남기'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전쟁 과학의 면모를 보여줍니다적을 무찌르고 승리해서 살아남는  아닌정말로 전쟁을 수행하는 병사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지키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전쟁 과학의 모습을 말이죠지금까지 전혀 생각해보지도 못했고 접해보지도 못했던 분야를 열어주는 책이라 읽으면서 사실 놀랐습니다. '아니이런 것까지 과학자들이 열심히 연구하고 있었단 말이야그것도 오직 병사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겠다는 일념으로?' 하고 말이죠그야말로  책은 좁은  시야를 활짝 열어주었습니다.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오늘의  연구와 실험이 전쟁에서 하나의 목숨이라도  살릴 것이라 믿으며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연구에 매진하는 과학자들을 보면서 세계가  생각보다는  희망찬 곳이라는  믿지 않을 수 없더군요. 이처럼 이 책은 우리가 전혀 몰랐던 전쟁 과학의 분야를 알려줄 뿐만 아니라 그것과 연관된 여러 과학적인 지식마저 습득하도록 하며 어느덧 세계와 인류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달리 만들어 줍니다. 그것이 바로 '워싱턴 포스트지가 미국에서 가장 유쾌한 과학 저술가로 평가한 메리 로치의 '전쟁에서 살아남기' 인 것입니다.



 과연 저자에 대한 '워싱턴포스트지의 평가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책은 피부와 온도 그리고 감각과 설사  여러 분야의 과학적 지식을 망라하고 있지만 결코 어렵다거나 지루하지 않습니다작가의 유머러스한 문장들이 곳곳마다 들어차 유쾌하게 읽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굳이 그것이 아니더라도 이 책을 중간에 덮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 같네요. 왜냐하면 책에 담긴 내용이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했던 것들로 가득이라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었거든요. 진정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런 기막히는 연구가 행해지는 것을 몰랐을 것이며 우리가 무심히 여겼던 것들이 의외로 인류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도 몰랐을 겁니다. 그런 것을 수시로 던져주니 아무래도 책에서 눈을 떼기가 어렵더군요. 


 너무 칭찬만 하는  아니냐구요하지만 과장이 아닌  어쩌죠감히 법정에서 선서도   있을만큼 제겐 좋은 책이었습니다올해의 가장 좋은 책으로 뽑을 수도 있을  같습니다.

 

  페이지부터  책은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아 버립니다여러분 대포 존재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닭을  대포입니다. 물론 죽은 닭이죠. '아니, 그래도 그렇지 불쌍한  가지고 무슨 만행이야?' 하면서 삿대질을 하기 전에, 왜   대포가 필요한지  이유를 얼른 말씀드리도록 할게요혹시 영화 '인디아나 존스' 3 보셨나요 코네리와 해리슨 포드가 부자지간으로 나오는 영화 말이죠거기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인디아나 존스 부자가 해변에서 전투기에게 공격을 받습니다주인공에겐 달리 대항할 수단이 없는 상황   코네리가 우산을 활짝 펼치고는 갈매기 무리에게 달려가 하늘로 날아오르도록 합니다마침 전투기가 다가오는 시점이었습니다갑자기 전투기는 비상한 갈매기 무리에 둘러싸이고 많은 갈매기들이 전투기에 부딪힙니다수많은 갈매기와의 충돌로 결국 전투기는 추락하고 맙니다이건 절대 영화적 과장이 아닙니다실제로 새들에게 부딪혀 비행기가 추락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고 합니다. 전쟁 중에는 더 그렇구요. 그래서 비행기를 새떼들과 부딪혀도 추락하지 않게끔 만들어야 하는데 강도의 실험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바로  대포인 것입니다몸무게 1.8킬로그램의 닭을 시속  650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쏘아 과연 비행기가 견딜 수 있는지 실험하는 것이죠하하그런 닭대포라니. '정말 희한한   있구나!'  만하지 않습니까? 세상 어딘가엔 지금도 죽은 닭이 펑펑 날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닭 대포의 실제 모습.


 이런 것들이 여기엔 잔뜩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 영화에서 전투 중에 위생병이 너무나 당황하여 부상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것을 볼 때가 왕왕 있습니다. 관객들은 그걸 보면서 인지상정을 여길 뿐, 놀랍게도 그런 것을 막는 훈련이 실행되고 있는 것은 모르겠죠. 영화 감독까지 데려와 무대와 각종 특수 효과 장치로 실제에 버금가는 치열한 전투 상황을 연출하여 위생병이 그런 상황에 심적으로 내성을 가지도록 만드는 훈련이 말이죠. 그리고 또 전쟁 과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연구되는 것 중 하나가 인간의 설사라는 것도 알 수 없을테죠. 역사적으로 전쟁 중에 적군의 총알에 맞아 죽는 병사 보다 이질이나 설사로 죽는 병사가 더 많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


 1848년 멕시코 전쟁 때 미국인 1명이 전투로 사망할 때마다 7명이 병으로 죽었으며, 대부분은 설사 때문에 죽었다. 미국 남북 전쟁 때 설사나 이질로 죽은 병사는 95,000명이었다. 베트남 전쟁 때는 말라리아에 걸려 입원한 군인보다 설사병으로 입원한 군인이 4배가 더 많았다.(p. 178)


 세계보건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연간 220만명이 설사로 사망한다고 합니다. 질질 싸는 것도 허투루 볼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설사 근절에 여념이 없는 한 학자는 오늘도 군대의 점심 시간에 밥을 먹고 있는 병사들의 테이블을 돌며 "왜 설사를 참고 견디나?"고 묻고 다닌다고 합니다. 병사들이 지사제를 사용하면 4~12 시간 정도면 설사가 멈춰 정상 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데 그걸 사용하지 않고 평균 3~5일 동안 설사를 참기 때문이죠. 그럴수록 안 좋은 것도 모르고 말이죠.


 냄새 폭탄은 또 어떻습니까? 2차 대전 때 미국은 일본 장교들에게 사용할 냄새 폭탄을 만드는데 꽤 심혈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일본인은 소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보고 있어도 아무데나 눌 정도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데 유독 대변에서는 그런 걸 많이 느낀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런 대변 냄새가 나는 소형 분무기 같은 것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주로 일본 장교에게 뿌려 냄새 때문에 부하들이 장교를 기피하게 만들고 장교 역시 부하들 앞에 나서지 못하게 만들 작정으로 말이죠. 네, 이런 것도 미국은 아주 진지하게 연구했습니다. 그것도 엄중한 기밀 프로젝트로 말이죠. 이름도 있었습니다. <누구, 나?> 폭탄이라는. 


 뭐든 깊이 들어가면 진지함과 개그의 차이 같은 건 없어져버리나 봅니다. 이런 내용들이 연타로 나오니 어떻게 중간에 덮어버릴 수 있겠어요? 거기다 메리 로치는 실제 그 현장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그 현장 체험기가 또 재밌습니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의 냄새도 달라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냄새를 잘 판별하여 병사가 스트레스를 받기 전 개입할 것을 목적으로 스트레스 냄새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인데, 여기에 메리 로치도 일조를 했습니다. 자신의 겨드랑이 냄새를 기부한 것이죠. 이러한 생생한 체험기까지 도처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더욱 '큭큭' 하면서 읽었습니다. 


 바야흐로 명절이 코 앞입니다. 선물처럼 한껏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 중이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해 드립니다. 가진 정보가 남달라서 지식의 범위를 확장시켜 줄 뿐 아니라 부담없이 읽을 수 있으며 재미도 충만하기 때문에 연휴의 편한 시간을 보내기에 딱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야말로 한 번 거닐어 볼만한 지식의 신세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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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1 02:25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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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5 15:52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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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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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만이다. 그러고 보니 리베카 솔닛의 책은 꼭 2년 주기로 만났던 것 같다. 그녀의 이름을 처음 뇌리에 각인시켰던 책, '이 폐허를 응시하라'를 읽은 2년 뒤에 우리나라에서 정말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킨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만났고 또 그 2년 후에 이렇게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와 해후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리베카 솔닛의 책이 그것만 나왔던 것은 아니다. '이 폐허를 응시하라'가 나오기 전에도 창비에서 '어둠 속의 희망'이 나와 있었고 민음사에선 '걷기의 역사'(이 책은 계속 절판이었다가 리베카 솔닛이 인기를 얻자 '걷기의 인문학'으로 제목을 바꿔 재간되었다.)가 나와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책들은 리베카 솔닛의 이름을 결정적으로 널리 알린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와 결이 참 달랐다. 넓게 보자면 모두 환경에 대한 책으로 지금 우리가 그녀의 이름을 대표적으로 인식하는 '페미니즘'은 아니었던 것이다. 원래 이 환경 분야가 리베카 솔닛이 전력을 기울이는 쪽이기도 했다. 그랬던 그녀가 왜 지금은 페미니즘 투사가 되었을까?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는 바로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을 들려준다.



 2014년 5월 23일. 미국 아일라비스타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22세의 남성 엘리엇 로저가 칼과 총 그리고 차량으로 모두 6명을 살해하고 13명을 부상입힌 것이다. 저지른 짓도 저지른 짓이었지만 그 동기가 더욱 충격이었다.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은 여성들과 그 여자들과 즐거이 어울리는 남자들에 대한 적개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원래 대학 여학생 사교 모임 회원들을 대량 살인할 계획을 세웠다. 그것이 여의치 않자 제 앞에 나타난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인 것이었다. 한 마디로 동기의 핵심엔 '여성 혐오'가 있었다. 많은 주류 언론은 그러한 동기를 무시하고 그저 한 정신병자의 소행으로 정리해버렸지만 개인들, 특히 여성들은 그럴 수 없었다. 적의와 살해의 대상이 바로 자신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동안 억눌려 있었던 목소리들을 분출시켰다. 주류 언론의 한결같은 침묵이 그 목소리들을 더욱 봇물 터지듯 흘러나오게 만들었다. 발달된 SNS를 통하여 '#yesallwomen(여자들은 다 겪는다)'이란 해시태그와 함께 그것은 거세게 흘러나왔다. 저마다 여성으로 살면서 당했던 고통, 가졌던 불안과 공포를 고백하는 물줄기였다. 


 여자들은 자신이 겪은 희롱, 위협, 폭력, 두려움을 말하기 시작했고, 서로의 목소리를 보강했다.(p. 130)


 계기가 우리나라와 참 비슷하다. 우리나라 역시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벌어진 한 살인 사건이 다시금 페미니즘에 주목하도록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물줄기가 아일라비스타에서 일어난 비극이 결코 단순한 하나의 사건이 아니며 실은 여성이 처한 현실의 적나라한 진실이 빙산의 일각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라는 걸 사방에 외쳤다. 봉기의 함성 그대로였다. 리베카 솔닛은 말했다. '2014년은 남성의 폭력에 항거하는 페미니즘 봉기의 해(p. 120)'라고. 


 이것이 환경 쪽에 머물러 있던 그녀의 발걸음을 바꾸었다. 환경을 버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에 대한 열정과 똑같은 크기로 페미니즘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그녀는 이 순간을 몇십년이나 기다리고 있었고(p.124) 마침내 타오른 그 불길을 언제까지나 타오르게 해야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와 이번에 나온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는 그런 마음의 산물이었다. 보다 인문학적이었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와 달리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더 많이 다룬다. 앞의 책이 총론이라면 이번 책은 각론 같은 느낌이랄까?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는 1부, '침묵이 깨어지다'와 2부, '이야기를 깨뜨리다'로 이뤄져 있는데, 제목 그대로 1부는 2014년을 기점으로 여성들의 침묵이 깨어진 것과 관련한 부분들을 다루고 있고 2부는 그동안 여성 위에 군림하고 있었던 남성의 이야기에 맞서 2014년에 출현하여 이제 하나의 점이 된 여성의 목소리를 어떻게 남성의 이야기 못지 않은 이야기로 만들어 갈 것인가를 보다 구체적인 차원에서 말하고 있다. 여기에 오직 이 책을 위해 리베카 솔닛이 쓴 '모든 질문의 어머니'가 서문 격으로 나와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제가 무엇인지 부각시켜 준다.


 아무래도 이 책의 중핵이라 할 부분은 '모든 질문의 어머니'와 1부 맨 처음에 나오는 '침묵의 짧은 역사'가 될 듯 하다. '침묵의 짧은 역사'에서는 그동안 남성 중심 사회가 여성에게 가해 온 침묵에 대해 이야기하며 왜 여성들이 그 침묵을 적극적으로 깨뜨려야 하는지 알려준다.


 당신이 여자로서 어떤 노선을 취하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이었던 분야로 진출한 경우 괴롭힘은 어차피 따라붙기 때문이다. 당신이 말한 내용이 아니라 당신이 말한다는 사실 자체가 괴롭힘을 끌어들인다.(p. 90)


 이런 괴롭힘에도 불구하고 침묵을 거부하고 꾸준히 목소리를 내었던 여성들이 있었기에 그래도 지금은 과거에 말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 말할 수 있고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하는 등 변화를 일으켜 왔다. 특히 여성과 관련하여 오늘의 세상이 진전한 게 있다면 모두 그 목소리들이 만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그 진정한 이름으로 부르는 일, 힘 닿는 데까지 진실을 말하는 일, 어떻게 우리가 여기까지 왔는지를 아는 일, 특히 과거에 침묵당했던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는 일, 수많은 이야기가 서로 들어맞거나 갈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 혹시 우리가 가진 특권이 있다면 그것을 사용해서 특권을 없애거나 그 범위를 넓히는 일. 이 모든 일이 우리가 각자 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는 그렇게 세상을 만든다.(p. 117)


 그리고 그런 목소리를 내는 것을 당당하게 할 수 있도록 필요한 태도를 '모든 질문의 어머니'는 말해준다. 그것은 현재 상태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상식으로 굳어진 것도 진리는 아니며 아직은 잠정적으로 그렇게 받아들여진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리베카 솔닛은 행복도 달리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행복은 무엇보다 질문이 없는 상태인 까닭이다.


 요즘 우리의 행복에 대한 집착은 이런 다른 질문들을 던지지 않으려는 방편일 지도 모른다. 우리 삶이 얼마나 광활할 수 있는지, 우리 노력이 얼마나 효과적일 수 있는지, 우리 사랑이 얼마나 넓을 수 있는지를 모른 척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p. 27)


 그렇지 않아도 원래 낙원이라는 단어의 어원 또한 산크리스트어로 사방이 벽으로 가로막힌 정원이라고 한다. 이렇게 행복이든, 낙원이든 실은 누군가 '여기까지다' 하고 한계를 지어놓은 것 안에서의 안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동물원 우리에 갇힌 동물들 처럼 말이다. 이 책의 제목이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라서 하는 말인데 여기서 질문은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하나는 남성이 여성에게 하는 질문이다. 그 질문은 사실 낙원의 벽과 같다. 질문 받는 여성에게 자기만의 고유한 주체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 여성을 사회가 규정한 규격화된 정체성에 채집한 곤충처럼 고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여성이 흔히 받는 질문으로 들고 있는 '아이는?'  못지않게 여성이 반복적으로 받는 질문이 또 하나 있으니, 그건 바로 '일을 하면서 육아는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이다. 그런데 남편에게는 누구도 묻지 않는다. 이 질문은 오직 여성에게만 행해진다. 왜 남자는 그런 질문에서 자연스럽게 배제되고 또 그런 것이 당연시 되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여기엔 합당한 이유가 없다. 당연히 의심을 하고 질문이 되어야 하는 사항인 것이다. 이렇게 질문은 다르게 사용된다. 여성이 받는 질문은 간접적인 정체성의 강요인 경우가 많지만 여성 스스로 제기하는 질문은 자신을 가두고 있는 벽을 초월하려는 탈주인 것이다. 리베카 솔닛은 이러한 의심과 질문을 소중히 한다. 모두 여성 스스로 자신의 고유한 주체성을 형성하며 지속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2부에 나오는 소설 '롤리타'와 영화 '자이언트'에 대한 글은 그 의심과 질문을 구체적으로 실천한 모습이기도 하다.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는 읽어보면 바로 느낄 터인데,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후속작 느낌이 강하다. 그 책과 똑같이 여러 지면에 발표한 글들의 모음이며 페미니즘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 책이 아나 떼레스 페르난데스의 그림들을 실었듯이 여기에도 리베카 솔닛의 오랜 친구이기도 한 빠스 데 라 깔사다의 그림들이 곳곳에 삽입되어 있다. 그러니 아직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을 읽지 않았다면 이 참에 둘을 같이 묶어서 읽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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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9-12 0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에서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는 서양의 세계 제패의 힘은 ˝질문˝이었다고 말합니다. 그건 매우 의미심장한 말인데 우리는 흔히 퉁쳐 ˝이성˝의 힘을 강조하지만 좋은 질문, 의문을 갖고 제시하고 행동에 담지 않는다면 이성도 고약한 똥덩어리일 수밖에 없다는 걸 공감하게 되죠.

헤르메스 2017-09-13 20:53   좋아요 0 | URL
앗, AgalmA 님도 그 책 읽으셨군요. 저도 읽었답니다.^^ 전 알쓸신잡이 한창 방송할 때 읽어서 그런지 책에서 자꾸 알쓸신잡이 연상되더라구요. 아무튼 꽤 재밌는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질문과 의문에 대해 하신 말씀, 적극 공감합니다. 살아가면서 더욱 정답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거대한 후퇴 - 불신과 공포, 분노와 적개심에 사로잡힌 시대의 길찾기
지그문트 바우만.슬라보예 지젝.아르준 아파두라이 외 지음, 박지영 외 옮김 / 살림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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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는 후퇴하고 있다. 누군가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과거의 것들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세계화를 찬양한 지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이주민을 막으려 나라의 빗장을 걸어 잠그기 바쁘다. 자신의 이익을 조금 손해 보더라도 인류 전체의 공영을 위해 힘을 쓰던 국가들은 이제 빠르게 그런 움직임을 걷어들이고 자신의 주머니가 얼마나 채워져 있는지만 신경쓰고 있다. 양극화가 도래했고 빈익빈 부익부가 흑사병처럼 거세게 퍼져나가고 있으며 인종주의가 부활하고 외국인 혐오가 증가하며 가부장주의가 활개를 친다. 시대적으로 한 물 간 것들이라 여겼던 것들이 무덤에서 부활하여 어느새 우리 옆가지 찾아와 버린 것이다. 영국의 브렉시트와 미국의 트럼프 당선은 이러한 거대한 후퇴를 보여주는 뚜렷한 증거가 되었다. 브렉시트는 유럽 연합으로 대표되는 세계화에 대한 거부였고 트럼프 당선은 포퓰리즘의 복권이었다. 그 두 사건을 많은 이들이 충격 속에 받아들였고 도대체 이 시대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하면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궁금해 했다.


 이런 우리의 의문과 불안을 알고 전 세계의 유명한 지식인들이 나섰다. '거대한 후퇴'는 세계적 석학들의 지금 시대에 대한 진단이자 이러한 난국을 파국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대안의 제시로 가득한 책이다. 



 제목의 '거대한 후퇴'는 칼 폴라니의 유명한 책인 '거대한 전환'에서 따온 것이다. '후퇴'란 말은 사회 발전과 진보로부터 멀어지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쓴 것이다. 올리버 나흐트바이란 학자는 이를 두고 '퇴행하는 현대화'라 부르기도 했다. 칼 폴라니는 놀랍게도 오늘 날의 이 후퇴를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이 상품이 되는 시장경제사회가 되면 분명히 거기에 대해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어날 것이라 내다봤었다. 모든 것이 시장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에 반대하여 국가가 능동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바라게 되고 그리하여 국가 주도의 복지 국가로 변해가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즉, 어떤 하나가 지배적인 상황이 되면 필연적으로 대항 운동이 일어나는데, 알고 보면 그 대항운동이란 사실 반동 운동으로 방어적으로 과거로 회귀 하려는 태도인 것이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 국가 주도의 복지 국가도 당연히 반동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현재의 신자유주의다. 복지국가의 전반적인 축소와 사회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모든 국가적 개입에 대한 공격을 기조로 하는.


 이런 신자유주의가 우리 시대를 지배한 것도 오래되었다. 자연히 이제 거기에 대한 대항 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2011년에 일어난 월가 점령이 대표적이다. 지난 겨울 우리나라의 촛불 집회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탄생도 세계적으로 보자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에 기대어 오로지 제 배만 채울 줄 알았던 체제의 기득권 세력들은 모두 새로운 시대의 썰물 속에 깨끗이 쓸려가야 할 적폐세력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흐름이 무덤에 있어야 할 존재들을 좀비처럼 불러내게 된 것은 이전과 다르게 변화가 담아야 할 규모는 전 세계적으로 커졌는데, 아직 그 규모에 걸맞는 이념과 규범 체제를 마련하지 못한 데 있다. 다시 말해 지금은 전 세계적 규모의 일종의 아나키 상태라 할 만하다. 시대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대로 알려주는 좌표가 아직 미비하다 보니 기억 속에 늘 미화되기 마련인 과거의 것들이 과장, 왜곡 되어 정말 좋은 것으로 착각하고 사람들이 앞다투어 귀의하고 있는 형편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브렉시트요, 트럼프 당선이었다.


 그렇다고 힐러리 클린턴이 대안이었던 것도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더 끔찍한 선택일 수 있었다. 이 책에 실린 유명한 페미니스트 학자 낸시 프레이저는 이러한 사실을 통렬하게 보여준다. 그녀는 무엇보다 페미니즘이나 인종 차별 반대주의 그리고 성소수자 운동 처럼 현재 신사회운동의 주류가 월가와 실리콘 밸리 그리고 헐리우드와 연합하는 것을 비판한다. 이런 식으로 인지 자본주의 즉 금융 세력과 손을 잡는 바람에 이러한 운동들이 오히려 사회 보장을 후퇴시키고 제조업과 중산층의 삶을 파괴해 온 정책들이 마련되고 집행되는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낸시 프레이저는 그런 움직임을 진보 신자유주의라 부르고 클린턴과 오바마 정부로 구현되었다고 본다. 클린터과 오바마는 금융 세력과 손잡고 노동자의 생활 여건을 지속적으로 악화시켰다. 노조를 약하게 만들었고 실질 임금을 하락시켰으며 일자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맞벌이 가정이 증가하도록 이끌었다. 서브 프라임 사태에도 불구하고 금융 세력들이 조금도 상처입지 아니하고 계속 주머니를 든든히 채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클린턴과 오바마의 뒷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흔히 진보라 불리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착취를 교묘하고 은밀하게 했을 뿐이다. 하지만 빼앗아 간 몫도, 노동자와 빈민의 삶이 무너진 정도도 그들이 더 컸다. 트럼프에 대한 지지는 바로 그런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자신의 몫을 마구 앗아가기만 하고 조금도 돌려주려 하지 않는 금융 자본주의에 대한 적대였다. 힐러리 클린턴은 그 세력을 대표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트럼프로 돌아섰던 것이다.


 페미니즘과 월 가는 힐러리 클린턴을 중심으로 완벽하게 담합한 유유상종 무리였다.(p. 87)


그들이 여성, 소수자 그리고 동성애자 운동에 대해 거부감을 느꼈던 것도 여기에 있었다. 노동자, 빈민들이 느끼는 삶은 전혀 달라진 게 없는데 그런 운동들이 점점 부상하자 마치 사회가 꽤나 달라진 것처럼 포장되고 정작 자신들이 사회로부터 받아야 할 관심조차 받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사회가 그 운동들에 주목하는 것은 자신이 받아야 할 관심을 가로채 버린 것과 같았다. 지금 미국 민중들이 보여주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적의는 이런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의 중장년 여성들이 힐러리 클린턴 보다 트럼프를 더 많이 지지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현재도, 노후도 갈수록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되는 상황 속에서 여성 지위 향상 보다 경제적 지위 향상이 더 먼저였던 것이다.


 이 책에 있는 모든 학자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대안은 바로 이것이다. 진정한 좌익의 부활.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맑스의 계급 해방을 따르던 거대한 좌익은 무너졌다. 아무도 이제 계급 해방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석학들은 이제 거기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보다 구체적이고 확실한 이념 아래에서 개별 운동이 아니라 보다 높은 차원에서 전체 운동의 맥락을 헤아리며 정말 필요한 목표를 향해 연대할 수 있도록 말이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맑스의 논문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세계를 너무 빠르게 바꾸려고 했다. 이제 세계를 자기비판으로 재해석하고 우리의 책임을 검토할 때가 되었다.(지젝, p. 360)


 그러고 보니 샌더스 선거 유세 때 흑인 여성들이 샌더스의 연단을 점거해 샌더스를 몰아내고 오로지 자신들의 목소리만 쏟아내던 광경이 생각난다. 샌더스의 연설을 듣기 위해 모인 많은 이들이 그들을 비난했으나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흑인이고 여성인 점을 내세워 사람들이 '정치적 올바름'이 없다고 공격했다. 이런 식의 분리, 차이가 곧 적대가 되는 흐름을 막는 것이다. 시대의 거대한 후퇴는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 농단이 우리나라 국민에게 그랬듯이 사람들에게 보다 본질적인 가치, 정의와 평등 그리고 공정에 관심을 갖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가치를 지키고 확대하기 위하여 사람들의 움직임을 이끌어 낼 것이다. 너무 낙관적인 전망인가? 그런데 지젝 역시 그런 전망을 갖는다. 그는 마오쩌뚱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며 글을 끝맺는다.


 하늘 아래 거대한 무질서가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다.(p. 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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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7-08-01 0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라고 할까 그런 건 앞으로 가다가 뒤로 다시 돌아가기도 한다더군요 지금이 뒤로 가는 땐가 싶은 생각이 조금 들기도 합니다 그렇다 해도 예전 것이 정말 좋은지 더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때 안 좋았기에 바뀌기도 했는데... 옛날 일이기에 좋게 여기는 것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릴 때는 좋았는데,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감상에 빠지지 않아야 할 텐데...


희선

헤르메스 2017-08-10 19:37   좋아요 1 | URL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라는 말씀에 저 역시 동의해요. 아마 기성 세대들이 박정희 시대에 대해 향수를 느끼는 것도 그와 연장선상에 있을 거예요. 프로이트는 이런 것을 두고 퇴행이라고 부르더군요. 현실에서 겪는 어려움이 클수록 어린 시절 처럼 자신이 아무 걱정 없이 보호받을 수 있었던 과거가 대비되어 더욱 좋은 것으로 부각되고 현실의 고난을 무시하거나 거기서 달아나기 위해 미화된 과거에 스스로 취한다고 말이죠. 퇴행하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고 과거든, 현재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는 게 보다 성숙한 태도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천 명의 눈 속에는 천 개의 세상이 있다 - 세상을 보는 각도가 조금 다른 그들
가오밍 지음, 이현아 옮김 / 한빛비즈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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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손을 내밀어 악수하지만 

가슴속에는 모두 다른 마음

 각자 걸어가고 있는거야

 아무런 말없이 어디로 가는가

함께 있지만 외로운 사람들


- N.EX.T '도시인' 중에서

 범죄 소설을 즐겨 읽는다. 단순히 재미만을 위한 독서는 아니라고, 딴엔 인간 이해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서라고 은근히 정당화 시키고 있다. 살면서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중엔 내가 가진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이런 줄 알았는데 실은 저런 인간인 게 밝혀지는 반전을 선사한 이들도 다수였다. 사람은 양파껍질과도 같이 이 정도면 제법 다 파악했겠거니 싶다가도 또 전혀 새로운 유형이 나타나 내 입을 떡 벌리게 만드는 존재였다. 그러니 알고 싶었다. 할 수 있는 한 보다 많은 유형의 인간을 만나고 싶었다. 범죄 소설은 거기에 제법 유용했다.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없는 갖가지 형태의 인간들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소시오패스, 싸이코패스 까지도. 거기다 범죄를 매개로 한 것이라,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내부의 음험한 성격이나 욕망이 적나라하게 발현되기 마련이라서 더욱 안성맞춤이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또 있었다. 그는 중국인이다. 이름은 가오밍.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저 사람에 관심이 많아서, 저마다 얼마나 다른 마음들을 가지고 있는지 보고 싶어서 그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나와는 다르게, 픽션이 아니라 실제의 사람들을. 그것도 평범한 이들이 아니라 마음에 커다란 병이 있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들을. 누가 원한 것도 아닌데, 자신만의 순수한 호기심으로 그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시간 여유가 생기는 대로 족족 중국 전역의 정신병원과 공안부 및 유관기관들을 찾아가 그들을 인터뷰했다. 이번에 나온 '천 명의 눈 속에는 천 개의 세상이 산다'는 바로 그 기록이다. 한 아마추어가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위해 집념과 끈기로 이루어낸 산물이다.



 여기에는 그렇게 만난 36명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그것을 모두 6장에 나눠 담았다. 사람들이 정말 다양하다. 우리가 흔히 다중인격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고 남들이 귀신에게 씌었다고 할 정도로 다른 사람을 똑같이 모방하는 여자도 있으며 매리 셀리의 소설에 나오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처럼 죽은 자를 되살리겠다며 시체를 반복적으로 훔치는 남자도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는 이런 경우 흔히 그들이 어떤 망상이나 우연히 갖게 된 충동 때문에 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 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고 나름 꽤나 논리 정연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아무리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행위도 그들의 입장에선 해야 할 이유가 충분한 합리적인 행위였다. 저자는 자신의 판단은 가급적 접어둔 채로 그들의 육성 고백을 최대한 담아낸다. 그것도 자신에 대해서 차분하게 충분히 설명하기 때문에 읽으면서 이들이 예외가 아니라 그저 나와는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나 받아들이는 태도가 좀 다른 보통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니 같은 것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얼마나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점차 납득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육체에 갇혀 있다. 나는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세계를 이렇게 보고 있지만, 다른 사람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내가 그들의 눈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내가 보는 그대로 그들도 보고 있겠거니 추정할 뿐이다. 그 추정을 살면서 배운 온갖 지식을 근거로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진실로 과연 그럴까? 혹시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가 자신이 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인공 지능이 만든 가상 현실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처럼 별안간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이 실은 타인들에게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나는 언젠가 이런 생각을 했다. 나만 그럴까? 많은 이들이 한 번은 나처럼 남도 나와 같은 세상을 보고 있는지 궁금증을 가지지 않았을까? 타인들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어 불안도 느껴보지 않았을까? 헤겔에 따르면 우리에겐 본래적으로 타인에게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고 한다. 인정 욕구가 하나의 본성처럼 자리잡은 것은 어쩌면 내 인식이 철저하게 내 육체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에서 오는 외로움과 불안함 때문인 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정이란 이름으로 타인에게로 끊임없이 가 닿으려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을 남도 같이 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이 책도 저자의 그런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타인은 어떻게 세계를 보고 있을까? 과연 그들도 나처럼 보고 있을까?' 이 질문에 보다 확실한 대답을 얻고자 그는 평범한 시야에서 가장 벗어나 있는 이들의 시선까지 알려 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것은 외로움이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어떻게 하든 결국 '나' 혼자구나 하는 생각. 마주 보는 세상이 이렇게 보이는 것도, 이런 상념을 일으키는 것도 오직 나 혼자 뿐이라는 생각. 분명 천 명의 눈 속엔 천 개의 세상이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그것이 천 개의 외로움으로 보인다.


 우리는 저마다 끝까지 외로운 존재들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타인에 대해 조금은 관대해질 수 있지 않을까? 동병상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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