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 세계를 굴리다 - 바퀴의 탄생, 몰락, 그리고 부활
리처드 불리엣 지음, 소슬기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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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비단 철만은 아니다. 철 보다는 좀 소음이 나겠지만, 바퀴 역시 철만큼 오늘 우리의 세상을 움직인다. 아마도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바퀴. 출퇴근 때도, 여행 갈 때도 그리고 마트에서도 우리의 바퀴의 힘을 빌린다. 그런 바퀴는 어떻게 세상에 태어나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만화나 영화에서 흔히 보았던 것처럼 바퀴는 정말로 석기 시대부터 있었을까? 그런데 문득 우리나라 조선 시대 사극 드라마가 생각난다. 사극 하면 흔히 보게 되는 가마. 고관대작들도, 양반집 규수들도 모두 네 사람이 드는 가마를 타고 다닌다.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그  때 분명 소가 끄는 우마차가 있는 것을 보면 조선 시대에도 바퀴의 효용성을 충분히 알려진 것 같은데, 어찌하여 바퀴의 힘을 이용한 교통 기관이 발달하지 않고 계속 사람의 힘에만 의지한 것일까? 혹시 드마라를 보면서 이런 궁금증을 가져 본 적 없었는지? 나는 가졌다. 같은 시기, 유럽에선 말이 끄는 마차가 등장했다. 그런데 유럽보다 문명이 그리 떨어지지 않은, 아니 어떤 의미에선 더 발달했을지도 모를(오로지 과학적 잣대로만 문명의 발달 정도를 파악하는 것은 너무 협소한 시각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조선에선 마차가 등장하지 않은 것일까? 그러고 보면 서양의 과학 기술이 본격적으로 소개된 뒤라 할 수 있는 일본 식민지 시대에도 사람들이 더 많이 이용했던 것은 사람이 끄는 인력거였다. 인력거가 일본에서 건너온 것을 감안한다면 동물을 사용한 교통 기관은 동아시아에서 자리 잡은 적이 별로 없다. 도대체 이것은 어찌된 연유일까? 바로 그 궁금증을 한 권의 책으로 모조리 풀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리처드 불리엣의 '바퀴, 세계를 굴리다'이다.



 이 책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바퀴의 역사를 담고 있지만 아주 논쟁적이다.

 왜냐하면 바퀴의 탄생과 흐름에 대한 기존의 학설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바퀴의 탄생에 있어서 결정적인 학설은 고고학자 스튜어트 피곳의 것이었다. 그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바퀴가 최초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컬럼비아대에서 중동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리처드 불리엣은 그것이 틀렸다고 말한다. 바퀴를 사용했던 가장 초기 흔적은 원래 동시대 유럽과 메소포타미아 유적에서 모두 발견되고 있는데, 피곳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바퀴의 창세기로 삼은 것은 연대를 측정하는 '탄소-14 연대측정법'을 적용할 때, 비슷한 수명을 지닌 나무의 '탄소-14' 감소 수준을 측정해 비교하는, 흔히 말하는 '나이테 조정'도 함께 해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않아 일으키게 된 착오라고 꼬집는다. 그리고 나이테 조정까지 감안하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아니라 유럽, 그것도 카르파티아 산맥의 구리 광산이 바퀴가 최초로 사용된 곳이라 주장한다. 그의 근거는 꽤나 설득력이 있는데, 그것은 책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바라고 여기서 비로소 그의 진짜 의문은 시작된다. 왜 하필이면 여기일까? 이 질문은 이 책 전체를 이해하는데 있어 정말 중요하다. 왜냐하면 기술과 환경의 관계에 대해 우리가 고정관념 비슷하게 가지고 있었던 생각에 균열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기술과 환경.

 우리는 지금까지 기술이 환경을 이끌고 간다고 생각했다. 에디슨이나 벨의 허다한 발명 스토리처럼, 한 천재의 영감과 노력 속에 기술이 태어나고 그것이 우리의 환경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킨다고 말이다. 그렇게 인간이 기술이 자연을 리드하고 환경은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바퀴를 매개삼아 펼치는 리처드 불리엣은 그 생각과 반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환경이 기술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다시 말해,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으로 보았던 토인비처럼 환경이 인간에게 어떤 한계를 부여하고, 그 한계를 초월하려는 노력에서 자연스럽게 결실을 맺게 된 것이 '기술의 발전'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구리 광산이 그렇다. 기원전 5,500년 전 당시 사람이 굳이 지하로 굴을 파고 구리를 캐냈던 이유는, 그런 구리라야 비싼 값에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대의 기술로는 아주 적은 구리밖에 못 캐냈고 많은 인부를 이용하면 수지가 맞지 않았다. 결국 적은 인원으로 보다 많은 구리를 캐내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사람이 등으로 져 날라야 하는 구리의 양이 또 문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소와 같은 짐승을 이용하면 되지 않ㅇ아 생각하실 것 같은데, 그 때의 기술로는 넓은 굴을 파는 게 어려웠기에 짐승은 굴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이렇게 여기를 막으면 저기가, 저기를 막으면 또 여기가 터져 나오는 문제에 대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바퀴를 이용하게 된 것이었다. 토인비 말대로 도전에 대한 응전의 결과였다. 이 때, 사용된 바퀴는 윤축이었다.


 바퀴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윤축, 독립 차륜 그리고 캐스터다. 이런 말이 생소하게 다가오실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윤축은 바퀴와 양 바퀴를 연결하는 축이 일체라 바퀴와 축이 함께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바퀴의 가장 초창기 형태로, 구리 광산에서 쓰던 바퀴도 윤축이었다. 독립 차륜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축은 움직이지 않고 바퀴만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윤축에서 독립 차륜으로 발달되었다. 우리가 영화에서 흔히 보는 사륜 마차는 이런 독립 차륜이다. 캐스터는 차축과 바퀴가 모두 다르게 회전하는 것을 말한다. 마트에서 흔히 사용하는 카트의 바퀴가 이런 '캐스터'라 할 수 있다. 카트를 이용한 경험을 떠올려 보면 독립 차륜과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금방 이해하실 수 있을 듯 하다. 카트는 우리가 방향을 이리저리 마음대로 바꿀 수 있지만 독립 차륜을 그렇게 할 수 없다. 서부 영화를 보면 마부가 마차의 방향을 급히 바꾸면 마차가 쓰러지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독립 차륜이라 그렇다. 바퀴는 이렇게 크게 세 단계로 발달되어 왔다. 우리는 바퀴가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이라 생각하는데, 리처드 불리엣은 실은 그게 근대에 들어와 새로 생겨난 생각이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바퀴의 역사는 비록 오래되었을망정 근대가 될 때까지 문명의 무대 변방으로 물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바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널리 사용 되지 못했다. 지형 때문이었다. 길은 좁고 험했다. 방향도 바꾸기 어렵고 옮기는 데 인간의 근력을 아주 많이 필요로 하는 바퀴 보다는 그냥 사람과 짐승이 옮기는 게 더 편했다. 사용이 별로 없으니 바퀴의 발달은 느렸고 그래서 독립 차륜이 생겨난 것은 그로부터 5백년이 지나, 지금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남부 지방인 흑해 북부의 평야 지대였다.



 이 때엔 짐승이 끄는 우마차가 많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무역이 성행했기 때문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우마차에 싣고 다녔던 것이 바로 주택이었기 때문이다. 흑해 북구 평야 지대의 사람들은 마차 위에서 먹고 자고 생활했다. 유목민이라서가 아니라 홍수의 공포 때문이었다. 기원전 5천년, 빙하기가 지나고 얼음들이 본격적으로 녹기 시작해 해수면이 올라갔다. 그래서 흑해 해안의 광대한 지역이 홍수로 물에 잠겼다. 더구나 그것은 한 번도 아니었고 시시때때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들은 정주를 할 수 없었다. 그들이 독립차륜으로 된 우마차에서 살게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렇게 독립차륜 역시 환경의 역습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바퀴는 그렇게 필요에 의해 우리 앞으로 도래했다. 우리가 영화에서 흔히 보았던 마차 역시 근대에 들어와 더욱 발전하게 된 교통의 발달이 가져온 게 아니었다.


 우리는 이것이 과학 기술이 가져온 수혜 같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리처드 불리엣에 따르면 심리적 효과가 더 크다고 한다. 더구나 마차가 발달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가마가 발달하게 된 이유와 놀랍도록 흡사한데, 그 이유는 대체로 두 가지다. 하나는 여성 억압과 관계가 있다. 당시 남성 중심 문화는 여성을 가급적 이동하지 못하도록 했다. 남성들은 그것으로 여성과 차이를 만들려 했고 또 그것을 차별의 근거로 삼았다. 그래서 남성은 말을 타고 멀리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여성은 가마나 마차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격리된 가운데 오직 짧은 거리만 움직일 수 있게 만들었다.



 우리는 마차가 처음부터 먼 거리를 이동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가능했다. 왜냐하면 당시의 남성들은 마차 타는 것을 아주 수치스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란슬롯이 선언했듯, 남자라면 마차를 똥을 피하듯 해야했다. 그것은 오로지 미천한 신분과 여성의 전유물이었다.


 16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남성들도 마차를 타기 시작했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분들이 고개를 갸웃거릴 것 같다. 분명 우리는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로가 타는 태양 전차라든가, 영화 '벤허'에서의 경주 전차처럼, 남자들이 말이 아니라 바퀴 위를 타는 것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랬다. 사실 바퀴는 실용적인 면보다 과시적인 면에서 더 많이 사용되었다. 이를테면 왕과 여왕이 백성 앞에서 행진할 때처럼 말이다. 그럴 때 바퀴는 타고 있는 사람의 신분과 권위를 그것을 쳐다보는 사람들과 확실히 구별하기 위해 크기도 더 커지고, 외양도 화려해졌다. 요컨대 '바퀴살'은 그런 용도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바퀴살이 하나의 나무에서 깍은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실은 그것은 여러 판자를 덧대어 만들어졌다. 꽤나 정교한 기술이 필요했기에 장인만이 할 수 있었다. 그런 바퀴는 누구나 쉽게 구하지 못하는 것이었으므로 가지고 있는 자의 권위를 수월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바퀴엔 이런 점이 있었다. 우리는 실용성이 바퀴를 지금처럼 발달시켰으리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바로 이런 과시 효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효과 때문에 바퀴가 발달해 온 것이었다. 남자들이 16세기에 이르러 마차에 타게 된 이유도 거기 있었다. 당시 '후스파 전략'이란 게 있었다. 전차를 이용한 전략인데 곳곳에서 승리를 거둬 남성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았다. 원래 전차는 조그만 장애물에도 걸려 넘어지는 등 전쟁에서 별 가치가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후스파 전략은 전차를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이제 전차는 용맹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용맹이야 말로 여성과 구별되려는 남성이 가장 바라마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성들이 마차를 타게 된 것이었다. 마차의 탑승이 자신의 남성성 과시로 삼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바퀴는 환경을 이끌기 보다 환경에 의해, 실용적인 면보다는 심리적인 면 때문에 오늘에 이른 것이었다.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술에 대한 생각에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어떻게 보면 스티브 잡스는 이런 기술의 모습을 보다 일찍 알아차린 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애플의 매력을 구매자의 심미적인 면과 심리적인 면에 보다 호소하도록 하고, 아예 구매자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매개체로 만든 것은 여러 면에서 16세기 이후 유럽 남성들이 마차를 타게 된 이유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인력거를 애용하게 된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기술은 그 자체의 효용성 보다 환경이나 사용자의 욕구 혹은 욕망에 맞아 떨어졌을 때 더 많이 발달했다. 스티브 잡스도 강조했듯이, 우리가 과학만큼 인문학도 열심히 연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기술의 수명 또한 인간 이해와 밀접하게 연관되기 때문이다. 기술의 진보를 더 많이 원할수록 우리가 인간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는 진리를 이 책은 바퀴의 운명을 통해 충분히 납득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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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안인희 옮김 / 돌베개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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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독일 이민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 나라 꼴이 하도 비이성적인 것들이 만연하다 보니 좀 더 이성적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염원이 커진 탓이다. 메르켈 총리 집권 이후 독일 사회에 대한 이런 저런 미담이 많이 전해진 탓에 오늘의 우리들에게 독일은 더없이 이성적으로 보인다. 이런 독일이 불과 70년 전에는 세계 대전을 일으키고 무려 6백만명의 유대인을 홀로코스트했다니(당시 유럽에 거주하는 유대인은 모두 9백만명이었다고 한다. 즉 나치는 전체 유럽 거주 유대인의 3분의 2를 학살한 것이다.) 얼른 믿겨지지 않는다. 이런 충격은 과거의 학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대표적으로는 죄르지 루카치가 있다. 만년에 그는 독일이 그렇게 된 것에 대해 시간을 많이 들여 연구했고 한 권의 책으로 펴내기까지 했다. 그 책의 제목이 바로 '이성의 파괴'였다. 그것은 루카치가 2차 대전까지 이르는 독일 역사에 대해 내린 단적인 정의이기도 했다. 철학사를 살펴보면 대단한 철학자들은 모두 독일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독일은 체제를 만들고 역사를 이끌어가는 이념의 궤적을 마치 인간의 등뼈처럼 떠받치고 있는 중심이라 할 수 있는데, 2차 대전 당시의 독일처럼 그토록 비이성적이고 광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파시즘이 나왔다는 것은 그야말로 '이성의 파괴'였고 그 말말고는 달리 부를 만한 말도 없었기 때문이다.


 죄르지 루카치가 주로 철학적인 시각에서 독일 파시즘이 탄생하게 되는 궤적을 추적했다면, 바로 전에 우리나라에 소개된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을 통해 히틀러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더욱 새롭고 넓게 만들어준 바 있는 독일 언론인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는 역사적인 시각으로 동일한 궤적을 훑는다. 지금까지 루카치나 빌헬름 라이히 그리고 에리히 프롬을 비롯하여 독일 파시즘의 출현에 대해 많은 이들의 분석이 있었지만 내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역사적으로 접근한 책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한층 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말들을 듣는 것 같았고 덕분에 더 깊이 알고 깨닫게 되는 바가 많았다. 비단 히틀러와 독일 파시즘만이 아니었다. 사실 비스마르크 시대에서 독일 파시즘까지 이어지는 시기는 현대 독일을 이해하는 데 있어 아주 필수적인 부분이다. 헌법만 공부해도 숱하게 듣는 것이 바로 이 시기다. 우리나라 헌법이 독일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주마간산으로 스치듯 만났던 게 내가 이 시기를 접했던 전부였다. 이 책을 읽고서야 이 시기에 대해서 제대로 알게 되었고 보다 더 선명하게 헤아리게 되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비단 독일 파시즘뿐 아니라 현대 독일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다면 꼭 이 책을 만나볼 것을 추천드리고 싶다.


 일단 하프너가 이렇게 역사에 집중하는 것은 독일 파시즘과 히틀러의 출현을 특이점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독일 파시즘과 히틀러가 그토록 비이성적인 면모를 보여준다고 해도 특정한 상황이 빚어낸 우연의 산물로 여기지 않는다. 이미 '도이치 제국'의 출현 시점이라 할 만한 비스마르크 시대부터 발아되어 있었던 것이 그때에 이르러 비로소 개화한 것으로, 그렇게 일종의 필연적인 결과처럼 생각한다. 적어도 독일 파시즘과 히틀러는 '도이치 제국의 역사'라는 바퀴가 잘못 들어선 경로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원래부터 이대로 구르게 된다면 가게 될 가능성이 많았던 곳 중의 하나였다는 것을 찬찬히 알려주는 책, 그것이 바로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이다.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그것을 기념하여 '핑크 플로이드'의 로저 워터스가 베를린 장벽에서 개최한 '더 월' 공연 현장을 배경으로 책의 사진을 찍어 보았다. 원래 이 책은 독일 통일이 되기 전에 발간되어 통일 독일에 대한 것은 책에서 빠질 수밖에 없었는데 독일 통일 후에 나온 90년 판의 후기에서 하프너는 독일 통일을 통해 다시금 부활한 거대한 도이치 제국이 이제 정말 독일이 과거의 역사적 교훈을 제대로 살리고 있는지 진실되게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과연 과거의 도이치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지 아니면 새로운 도이치 문제를 야기할지 미지수라고 하면서. 과연 지금의 독일인들은, 현재의 독일을 바라보는 타자인 우리들은 여기에 대해 어떻게 대답할지 궁금해진다.]



 이 점에서 이미 하프너의 관점이 대단히 독특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독일 파시즘과 히틀러의 출현을 분석했던 대부분의 책들은 필연 보다는 우연 쪽에 더 방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앞으로 하프너가 어떤 이야기를 펼칠지 흥미롭게 되는데 그러나 그만의 새로운 관점이 이것 하나만은 아니다. 그는 도이치 제국의 탄생 시점부터 모두가 잘 아는 1870 ~71년 사이가 아니라 실은 1848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도이치 제국'은 무엇보다 근대 들어와 거세게 성장하기 시작한 민족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그 민족주의가 거세게 터져 나와 이전까지 연방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도이칠란드를 '도이치 제국'이라는 하나의 국가로 혁명적으로 변화시킨 때가 1848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폴레옹 때문에 본격적으로 발흥하게 된 민족주의를 등에 업은 '도이치 제국'은 시작부터 많은 불안 요소가 내재된 봉합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내적으로는 군주제 체제를 옹호하는 세력들과 민족주의로 새로운 체제를 가져오려는 세력들 사이의 대립이 팽팽했고, 외적으로는 이제 하나의 국가가 되는 바람에 유럽 중부에 거대 국가가 출현하여 자신의 나라가 위험에 빠지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는 주변국들의 견제가 팽배했다. 그런 안팎의 상황 속에서 비스마르크는 중재를 위한 통합과 당시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던 제국의 식민지 쟁탈전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모처럼 태어난 도이치 제국을 이루고 유지시켜 나갔다. 


 비스마르크는 국내에서 보수주의 진영과 민족주의-자유주의 진영 사이의 타협에 기반하여 제국을 건설했다.(p. 55)

 비스마르크는 도이칠란트를 유럽의 주도적이고 지배적인 강대국으로 만들겠다는 목적을 갖지 않았다.(p. 49)


우리는 비스마르크를 흔히 철혈 재상이란 별칭으로 기억하는 것처럼 아주 카리스마 넘치고 냉혹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지만 하프너가 보여주는 비스마르크는 전혀 달랐다. 하프너의 비스마르크는 독일이 내외적으로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잘 헤아리고 그 존속을 위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취하는 지극히 이성적이며 타자 존중적인 인물이었다. 이런 비스마르크의 새로운, 아니 진실된 모습을 보게 된 것도 이 책을 읽은 커다란 보람이었다. 그러나 제 아무리 조심해도 남이 잘못하면 속절없이 일어나고마는 교통사고처럼 이런 비스마르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이치 제국의 앞날은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유럽 중부에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시멘트 벽'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는 주변 강대국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언제든 무슨 이유든지 간에 도이치 제국이 위협이 된다싶은 행동을 조금만 해도 압박해 왔다. 이에 대해 비스마르크는 그들의 생각이 오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설득하여 장차 있을 분쟁을 막았으나, 도이치 제국이 점점 형체를 갖추고 민족의식이 성장하여 독일인들 스스로 자긍심이 높아지자 이후의 체제는 이런 노력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드디어 빌헬름 황제 시대에 와서 그것이 오만으로 터져버리고 말았다.


 하프너는 강조한다.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빌헬름(2세) 황제 시대는 결코 혼란스럽지 않았다고, 오히려 비스마르크 시대보다 더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시대였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 내적 안정과 풍요가 뜻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원래 비스마르크 시대 전만 해도 독일인들은, 하프너의 말에 따르면, '근본적으로 소박하고 겸손한 민족이었다.(p. 89)'. 하지만 빌헬름 황제 시대에 들어와 나라가 더욱 성장하자 민족주의의 힘을 받아 독일인들은 '모든 계층을 막론하고 갑자기 원대한 민족적 전망, 민족적 목적을 눈앞에 그리게(p. 90)' 되었다. 동시에 그들의 애국심 또한 이전과 다른 성격의 것이 되어 이제 스스로 아주 특별한 존재, 미래의 강대국이라는 생각이 그저 느낌이 아니라 아예 확고한 의식(p. 90)으로 되어 버렸다. 이제 비스마르크가 추구했던 겸허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여기서 결론을 말하자면, 바로 이런 의식이 하프너는 독일 파시즘과 히틀러를 낳게 한 궁극적 원인이라고 본다. 하프너에 따르면, 이 의식은 결코 독일의 상황과 처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나온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독일의 현실이 긍정적인 쪽으로 한껏 부풀려진 것이었고 미래에 대한 지나친 낙관에 물든, 한 마디로 과장된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독일은 그것을 진실이라 믿었다. 끔찍한 자만심과 자기 숭배. 단언컨대, 오만이었다. 결국 그 오만이 1차 대전을 가져왔고, 그런 것을 겪었으면서도 반성되지 않아 끝내 히틀러와 독일 파시즘까지 낳고 말았다고 하프너는 보고 있다.


 문득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 반지'가 생각난다. '절대 반지'는 궁극의 힘을 가져다 주지만, 누구든 그것을 손가락에 끼는 사람은 한없는 집착과 타인에 대한 불신을 가졌다. 힘을 얻는만큼 그는 오만했고 스스로 고립되었으며 타인과 자신마저 파괴했다. 힘에는 그림자처럼 그런 오만이, 숭배에 가까운 자기애가 따라 붙는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일찌기 힘을 가질수록 경계하고 겸손하라고 말씀하셨고, '스파이더맨'은 '커다란 힘에는 커다란 책임이 따른다'고 강조하는 지도 모른다. 힘은 타인을 지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런 욕망을 갖는 자신을 억제하고 타인을 돕는데 써야 한다는 뜻으로 말이다. 독일은 분명 힘을 가진 민족이었다. 그 사실은 그들이 그토록 어려운 대외적 여건 속에서나 1차 대전 패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의 틀을 유지하고 다시금 번영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힘은 '절대반지'였다. 힘이 가진 의미에 대해 성찰하지 못하고 '힘이 있다'는 사실에만 집착하다 보니 그만 오만에 물들고 그것에 취해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시대가 올바른 것인가 사유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히틀러에게 1인 독재의 자리까지 허락하고 말았다.


 하프너는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공산주의자들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냈던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의 독재를 허용한 것에 대해 이런 분석을 내놓는다.


 1914년 8월의 분위기와 똑같이 1933년의 분위기도 큰 의미를 지닌다. 이런 분위기 전환이야말로 앞으로 나타나는 총통 국가의 진짜 권력 기반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감정, 민주주의에서 구원되고 해방되었다는 감정이다.(p. 226)


나 자신 아직 분명히 기억하는데 (히틀러가 촉발한) '민족주의 봉기'는 두 가지 뿌리에서 자라 나왔다. 첫째는 1933년 이전 몇 해 봉안의 정치적 불확실성에 대한 피로에서 나왔다. 사람들은 자기가 대체 어디 있는지 알고자 했고, 확고한 손길과 확고한 의지를 지닌 한 남자가 정상에 있기를, 질서가 잡히기를 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도이칠란트가 1914년처럼(그러니까 빌헬름 황제 시대처럼) 다시 하나가 되고, 위대하고 강력해지기를 원했다.(p. 227)


 다시 말해, 이 시기 독일 민중들은 왜소한 자신을 잊을 수 있도록 강한 무언가에 속한 존재라는 것 느끼길 원했다. 내가 강하고 위대한 것에 종속되어 '호가호위'하듯 자신의 존재를 실상보다 격상시킬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시대가 불안하고 혼란스러워 한 개인의 존재 가치가 한없이 줄어들수록 그 개인은 자신보다 보다 더 높은 권위, 커다란 존재에 종속되어 자신의 존재 가치가 과장 확대 되기를 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의 독일 민중들이 원했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내 미천함을 보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나를 좀 더 강하고 위대한 나로 느끼게 해 주기만 한다면 어떠한 비이성적이고 반민주적인 행위도 용납할 수 있다는, 바로 그 마음이 '히틀러'라는 괴물을 만든 것이었다. 히틀러는 민의를 대변하는 정당을 자신의 정당만 제외하고 모조리 없앴고, 사회주의자들을 비롯하여 자신의 체제에 걸림돌이 되는 많은 이들을 수용소에 가두거나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지만 독일인들은 눈을 감았다. 당시 독일의 목사 나틴 뇌묄러가 쓴 그대로였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프너에 따르면 히틀러의 총통 국가가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은 두 가지였는데, 그것은 바로 테러와 선전이라고 한다. 테러는 히틀러가 돌격대를 비스 호수 온천지에서 모조리 학살한 뒤에 만든 친위대가 자행했고, 선전은 괴벨이 맡았다. 이 두 가지가 히틀러에게 특히 중요했던 것은, 여기서 또 하나, 하프너의 이 책만이 알려줄 수 있는 독특한 분석이 드러나는데, 당시 독일 국가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대로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프너는 강조한다. 히틀러 때의 독일은, 도이치 제국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국가 속 국가들이 있었다고 말이다. 다른 한 쪽에 독일 시민들에 대하여 테러를 태연하게 자행하는 폭력 국가가 있었다고 한다면, 다른 한 쪽엔 친위대조차 법을 어기면 벌을 받고 남에게 손해를 끼치면 민사 재판에 따라 배상해야 하는 엄격한 법치 국가가 있었다. 그렇게 독일은 서로 모순되고 갈등하는 것들이 양립하는 아주 기묘한 체제였다. 하프만은 이것을 내면에 카오스를 가지고 있다는 말로 표현한다. 사정이 이렇다면 우리는 더욱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복잡하고 혼란한 상태라면 어떻게 만인 지상의 1인 총통 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을까 하고 말이다. 바로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이 테러와 선전이었다. 히틀러는 이것을 통해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국민의 일상을 통제했다. 친위대는 일상에서 독일 국민들이 사소한 잘못을 해도 영장없이, 재판없이 바로 태형을 가했다. 사람들은 예측 불허로 쏟아지는 폭력 앞에서 자신의 일상을 주관하는 국가의 권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은 분명 이미 공화국 국민으로서 민주적 경험이 오래된 독일 국민에게 정상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상황을 정상 상황으로 받아들였다. 바로 그것이 괴벨의 선전이 해낸 성과였다. 괴벨은 자신을 반대하던 자들까지 자신이 만드는 영화, 연극에 끌어들였고 큰 틀에서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되도록 검열 없이 대중들이 바라는 영화, 연극을 만들 수 있도록 하였다. 덕분에 독일 국민들은 아직도 지금이 정상 상황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괴벨이 독일 국민에게 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보다 이런 상황이 되었지만 그래도 당신의 일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는 환상이었고, 독일 국민은 자신이 피해를 입지 않는 한 그것에 별 비판 없이 탐닉했다. 히틀러는 그렇게 테러와 선전으로 국민과의 공조 체제를 확립했다. 그리고 이 확립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준 것은 바로 비스마르크의 유산이었다. 하프너는 비스마르크가 독일 국민들에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유산을 남겼다고 말한다. 바로 '천재적 지도자를 향한 갈망'과 '정당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다.(p. 258) 


 이것이 그대로 이어져 마침내 독일 국민들로 하여금 히틀러를 선택하게 했고, 히틀러의 반민주적인 체제를 용납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독일의 파시즘과 히틀러의 출현은 던져진 주사위의 눈처럼 어쩌다 맞이하게 된 것이 아니었다. 이미 비스마르크 시대부터 발아되어 언제든 분명 오고 말 것이었다. 


 히틀러가 없었어도 1933년 이후에 아마도 일종의 총통 국가가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히틀러가 없었어도 두 번째 세계 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다. 다만 수백만 유대인 학살만은 없었을 것이다.(p. 262)


 아무리 히틀러 통총 체제가 도이치 제국의 유산이라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프너는 유대인 학살만큼은 본래부터 없었던 오로지 히틀러만의 것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다시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되는 사실이 또 하나 등장하게 된다. 바로 '수정의 밤'이다. 1938년 11월 7일과 13일 사이 나치 친위대는 400명에 가까운 유대인을 공공연하게 살해하거나 자살하도록 이끌었다. 그리고 3만 명의 유대인들을 수용소에 가두었다. '수정의 밤'은 바로 이런 만행을 일컫는 명칭이다. 그런데 여기에 히틀러의 숨은 목적이 있었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하프너는 사실 이 '수정의 밤'이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것이며 그 목적이란, 독일 국민들로 하여금 유대인 박해에 스스로 참여하도록 선동하기 위해서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독일 국민이 아직 그 정도로 망가지진 않았던지(이 점에서 관동 대지진 때 유언비어에 홀려 서슴없이 조선인 학살에 나선 일본인들과 너무나 대비된다.) 그런 그들의 저의와 달리 독일 국민들은 전혀 동조하지 않았고 그래서 히틀러는 유대인 박해가 독일인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리라 예견하고 독일인들이 유대인 박해에 대한 정보를 쉽사리 얻지 못하도록 유대인 수용소를 독일에서 먼 지역에 만들었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하프너는 당시 독일인들이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알고 있었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과연 당시에 유대인 학살을 알았는지 몰랐는지에 대한 것은 아마도 오직 그 개인만이 답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 학살에 대해 독일 국민이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프너도 그렇게 말한다. 이미 히틀러의 독일이 비스마르크 시대의 유산에서 태어났다고 말하는 것 자체에서 그런 시대적 유산을 용인하고 제대로 된 성찰없이 승차해 온 독일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까 말이다.


 '국민 책임'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 책엔 사실 독일의 역사나 과오 보다 더욱 내게 살갑게 다가오는 내용이 있다. 바로 민주 사회의 시민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와 책임이다. 비스마르크의 시대나, 빌헬름 황제의 시대나, 바이마르 시대 그리고 히틀러가 집권하던 시기까지 포함하여 거기 살았던 독일인들은 한 가지 점에서 지금이 나와 전혀 다르지 않아 보였다. 바로 '사회가 분명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과연 그것을 보고 느끼는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 때의 독일인들은 시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냉정하게 파악하여 그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행동을 통해 실천하기 보다는 개인적 바람과 욕망에 더욱 치중하여 막연한 기대와 근거 없는 낙관 속에 그만 방관과 순응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가지게 된 것은 무엇이었던가? 그건 그들의 바람과 욕망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으니 결국엔 자유의 억압이자 박탈이었으며 전쟁이자 유대인 홀로코스트라는 자신들이 영원히 짊어지고 가야할 오욕이었다. 이러한 독일의 모습을 여실히 보다보니, 지금처럼 사회가 잘못 되어간다고 느낄수록 근거 없는 낙관이나 막연한 기대를 품지도 말고, '다음에'라는 말로 미루지도 말며, 남이 먼저 나서주기를 바라지도 말며, 해야 한다면 지금 당장 실천할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원하는 사회란 결코 절로 입 안으로 뚝 떨어지는 감 같은 것이 아니며, 부단한 관심과 성찰 그리고 실천으로 스스로 경작해야 하는 토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지금 히틀러 집권 초기만큼이나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고 있다. 갈수록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시대 앞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하는 것이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타산지석'이란 말도 있듯이, 때로 그 고민을 이런 상황을 먼저 경험한 이들을 통해서 한 번 풀어보는 것도 좋지않을까 생각된다. 분명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얻는 게 있을 것이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 체제가 어떻게 나타났고 지속되었는지, 그리고 비스마르크 이후의 독일의 현대 역사에 관심 있다면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는 정녕 놓쳐서는 안되는 책이다. 오늘의 우리 나라 상황을 보면서 제대로 된 시대에 대한 고민을 품게 된 이들에게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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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선언 - 레드스타킹부터 남성거세결사단까지, 드센 년들의 목소리
한우리 기획.번역 / 현실문화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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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여성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지금까지의 페미니즘 역사를 크게 3 단계로 구분한 바 있다. 1단계가 시몬느 드 보부아르로 대표되는 이른바 '평등 페미니즘'으로 보부아르의 유명한 말, '여성은 제 2의 성이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간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한 성으로, 그렇게 오로지 부정과 결여의 존재로만 있어왔던 것에 반기를 들고 남성과의 동등을 추구하는 페미니즘이라면, 2단계는 그런 평등의 추구가 실은 여성을 중성적인 주체로 만든다는 것에 문제 의식을 가지고 남성과 독립적인 여성만의 가치, 문화를 지향하는 페미니즘이다. 하지만 이런 여성 혹은 여성성의 강조도 그것을 너무 본질로 또 실체로 간주하다 보니, 그조차 남성과 남성성의 대비에서 나온 것으로 그 근원엔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는 한계가 있고 또 이런 이분법적 구도 자체가 오히려 페미니즘이 진화하는데 족쇄가 된다는 이유로 아예 남성과 여성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구도 자체를 없애버리려는 페미니즘이 뒤이어 나타났으니 그것이 바로 저 유명한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주장한 제 3 단계다. 이렇게 페미니즘은 단일하지 않고 이 속에도 종적으로는 겹으로 쌓인 여러 시대적 지층들과 횡적으로는 저마다 다양한 주장을 하는 지형들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런 지층과 지형들을 무시하고 페미니즘을 단순하게 규정하는 것은 커다란 잘못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잘못을 피하고 페미니즘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있어, 크리스테바도 언급한 바 있지만 역사적인 접근은 유용한 도움이 될 수 있다. 페미니즘의 개념과 주장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빚어졌으며 또 어떠한 반박과 재정립을 통해 진화했는지 구체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개념은 무에서 바로 툭 생겨나지 않는다. 개념들도 저마다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온갖 갈등들을 통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마모되고 형태를 잡아가는 것이 개념이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차원이 아니라 언제나 구체적 현실 속에서 매일 치열한 투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자신이 서 있는 진지를 방호하기 위해 이론적 무장을 했어야 했던 페미니즘은 더욱 그랬다. 그러므로 우리는 페미니즘이 걸어온 저 과거의 발자취도 마땅히 돋보기를 들이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기, 그것에 도움이 되는 책이 하나 나왔다. 제목은 '페미니즘 선언'. 부제가 재밌다. '레드스타킹부터 남성거세결사단까지, 드센년들의 목소리'. 페미니즘 역사에 대해 지식이 많으신 분들은 이 부제가 모두 페미니즘에 중요한 분기점들을 이루거나 페미니즘 진영을 들끓게 만들었던 선언들이라는 것을 잘 아실 것이다. 이 책은 부제가 말하는 대로 그런 선언문들을 모은 책이다. '레드스타킹 선언문'부터 메갈리아 남성 혐오 발언에 치를 떠는 분들이라면 더욱 기겁할 '남성거세결사단 선언문'까지 모두 9편의 선언문이 담겨 있다. 이 책은 60년부터 79년 사이에 미국에서 발표된 선언문을 모은 것이지만 원서가 있어 번역한 것은 아니다. 저자가 직접 선별하고 번역해 모은 것이다. 저자가 이 시기에 주목한 것은 래디컬(급진적) 페미니즘이 폭발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래디컬 페미니즘은 '여성 억압의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뿌리부터 파헤쳐 바꿔내려고 시도한 거대한 운동'(p. 18)이었다. 그만한 운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선 아직 그 시기만 천착해 다룬 책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당시 래디컬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핵심을 가장 잘 담아낸 9편을 선정하여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왜 미국의 래디컬 페미니즘을 지금 우리들 앞에 가져온 것일까? 거기엔 한 때 엄청 뜨겁게 타올랐던 메갈리안 논쟁이 있었다. 저자는 메갈리안을 '한국적 맥락에서 태어나 자생적으로 성장한 래디컬 페미니스트'(p. 21)로 보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 미국의 래디컬 페미니즘이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기에 메갈리안의 미러링이 증오를 불러일으킨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저자는 메갈리안의 미러링이 별종이 아니라 미국의 래디컬 페미니즘도 했었던 보편적인 것이라는 걸 독자들에게 주지시키려고 이 책을 발간한 게 아닐까 싶다. 적어도 한국의 자생적 래디컬 페미니즘 운동이 그냥 증오와 혐오의 대상이 되어 역사의 망각 속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한국 페미니즘 계보에 어떤 형태로든 남겨두기 위해서.(p. 21)


레드스타킹 심벌


 이런 의도로 모인 9개의 선언문은 크리스테바의 구분에 따르면 모두 제 2 단계에 속한다. 남성과의 단순한 평등이 아닌 여성만의 독립적인 가치, 문화를 강조하고 구현하는 흐름에 있는 것이다. 9개의 선언문은 연대기 순이 아니다. 순서가 왜 이렇게 되어있는지는 책에 나와 있지 않으므로 나도 모른다. 그냥 내 생각엔, 가장 온건한 것에서 가장 급진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순서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에 있는 '남성거세결사단 선언문'은 제목에서 받는 인상 그대로 정말 가장 급진적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나오는 '레드스타킹 선언문'은 이 시기 가장 중요한 선언문 중 하나다. 이 선언문을 발표한 레드 스타킹 단체 자체가 래디컬 페미니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단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들이 스스로를 '레드 스타킹'이라고 했던 것은 당시 남성 지식인들이 글을 쓰는 여성 지식인들에 대해 조롱의 의미로  '블루 스타킹'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다 강하고 혁명의 색깔이기도 한 '레드'를 그녀들은 들고 나왔다. 사실 그들은 혁명을 지향했다. 그들은 현 사회가 모든 권력이 남성에게 집중된 남성 지배 사회라고 규정했고 모든 제도와 물리력을 동원하여 여성들을 열등한 자리에 묶어두기 위해 억압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단적으로 '여성들은 억압받는 계급이다'라고 선언했다. 지금 여성들이 당하는 고통은 모두 남성 억압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들은 그런 개인 경험이 모두 정치적인 것이며 그런 경험들을 여성들 모두가 공유하여 여성의 계급 의식을 고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최종적으로 남성 지배 사회를 전복시키기 위해 그런 계급 의식을 지양하는 것을 자신들의 사명으로 삼았다. 이것을 시작으로 여성은 더이상 남성보다 부족하거나 남성이 결여된 존재로 스스로를 정의하지 않았다. 그보다 그런 자기 검열까지 강요하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부당한 권력 관계에 더 주목했다. 이렇게 '레드 스타킹 선언문'이 하나의 계급으로써의 여성을 확고하게 정립했다면 뒤이어 나오는 '드센년 선언문'은 남성의 시선으로 바라 본 여성성이 아닌, 여성 고유의 여성성을 강조하고 정립하는 선언문이다. '드센년(bitch)'은 남성 지배 질서에 편입되지 않는 모든 여성을 일컫는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말하자면, '남자들이 여성스럽지 못하다고 말하는 모든 여성의 면모가 실은 가장 여성적인 것(true woman)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드센년 선언문'인 것이다.


 드센 년은 여성을 노예로 부리는 사회 구조를, 여성은 집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회적 가치를 위협한다.(p. 58)

 드센 년은 여성이기전에 인간이기를 주장하기 때문에, 사회적 압박에 굴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솔직하기를 주장하기 때문에 아웃사이더가 된다.(p. 59)


 '드센 년 선언문'은 남성의 시각에 종속되지 않은 여성, 남성 문화가 길들일 수 없는 여성 문화를 구현하려고 한다. 그렇게 남성이 아닌 여성이기 이전에 고유하고 독립적인 인간 존재로써의 여성을 강조한다. 이어서 나오는 '강간 반대 선언문'과 '미스 아메리카 대회를 멈춰라' 선언문은 모두 이와 연장선 상에 있다. 뒤이어 나오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는 제 2 단계 페미니즘에서 가장 유명한 슬로건 중 하나로 '레드스타킹'이 선언한 것을 더욱 구체화하고 있다. 페미니즘 운동은 본질적으로 억압받고 차별받는 존재들의 해방을 지향한다.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은 동성애, 인종 차별과도 맥이 닿는다. '레즈비언 페미니즘 선언문'과 '흑인 페미니스트 선언문'이 바로 그것을 보여준다. 한 때, 페미니즘 진영에서 레즈비언과 흑인은 거기서도 차별 받는 존재들이었다. 아무리 같이 페미니즘을 주장하고 있어도 레즈비언이나 흑인은 거부당하기 일수였다. 보다 더 열등한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시야는 오히려 더 넓어졌고 그들 때문에 페미니즘은 좀 더 넓게 확장될 수 있었다. '자유로운 사회라면 동성애와 이성애라는 범주는 사라진다.'는 '레즈비언 페미니즘 선언문'의 말처럼 페미니즘은 이성애와 동성애의 구분을 점차 완화시켜 나갔고, '흑인 페미니즘 운동'은 백인 남성 중심 사회에서 흑인 남성 역시 차별받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 차별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더 넓게 포용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앤디 워홀을 총으로 쏜 것으로 유명해 영화까지 만들어진 바 있는 밸러리 솔래너스의 '남성거세결사단 선언문'은 아마도 이 책에 실린 선언문들 중 남성들에게 가장 논쟁을 불러 일으킬 것 같은데, 그것은 아예 남성 자체를 여성 보다 열등한 존재로 재정립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솔래너스는 단적으로 남성이 실은 여성이 되기를 원하는 존재로, 남성이란 정말은 불완전한 여성이라고 정의한다.


 불완전한 여자로서 남자는 자기 자신을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 즉 여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일생을 보낸다. 끊임없이 여성을 찾고, 여성과 친하게 지내며, 여성에게 녹아들어가기를 원한다.(p. 176)


  그러므로 여성이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한 운명이며, 현재의 남성 중심 사회를 모조리 전복시켜야 한다는 것을 신랄하게 설명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읽어보면 이 선언문이 얼마나 급진적인지 이내 알 수 있을 것이다.


밸러리 솔래너스의 삶을 그린 영화,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


 이렇게 대략적으로 선언문들을 소개해 보았다. 글이 다소 길어졌기에 여기서 총평을 해 보자면, 저자가 의도한 대로, 당시의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해 아주 잘 이해할 수 있는 책이었다. 생각해 보면, 혐오는 편견에서 비롯되고 오해는 고정관념이 불러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혐오와 오해를 피하려면 무엇보다 대상이 되는 존재를 제대로 알고 헤아리는 것이 필요하다. 페미니즘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앞에서 말했던 대로, 오랜 시간 종으로 횡으로 참으로 많은 변화와 다양한 맥락이 여기엔 존재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선언'은 분명 그 변화와 맥락에 대한 이해의 범위를 한층 더 넓히도록 만든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다면 지나칠 수 없는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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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에는 정신분석 - 노답 한국 사회의 증상 읽기 우리 시대의 질문 4
김서영 외 지음 / 현실문화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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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분석은 개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개인을 제대로 정신분석 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에 대한 정신분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개인은 그릇 속 물과 같아서 사회가 흔들리면서 만들어내는 파동에 영향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라캉은 이미 주체라는 것 자체가 '대타자'라는 상징 질서 안에 편입되면 더 이상 주체로써 기능하지 못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지금 사회 속 '나'라는 주체는 사회가 짜놓은 의미망 위에 찍어 놓은 하나의 좌표와 같다. 그러니 그 좌표만 분석해서는 지금 개인의 처지가 어떠한지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다. 진정한 해석은 오로지 그 좌표가 찍혀 있는 지도 전체를 헤아려야 가능한 것이다. 때문에 사회에 대해서 정신분석을 해야 한다. 이번에 나온 '헬조선에는 정신분석'은 바로 이렇게 현재 한국 사회의 중요한 병리적 증상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정신 분석을 해 보는 책이다.


 원래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연재된 것을 모은 책으로 '한국라깡과현대정신분석학회' 소속 9명의 학자들이 각자 쓴 9개의 글들이 모여있다. 저마다 다루는 사회 현상이 다르다. 백상현은 최근 들어 한껏 늘어난 멘토 의존 경향을 다루고, 김소연은 공부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 현상을 다루며, 이성민은 한국에서만 유독 엄격하게 자리잡은 선후배 관계를 초점으로 한국 특유의 수직적 관계를 분석하며, 정지은은 오포세대에 들어와 달라져 버린 결혼과 사랑의 의미를 정신분석적으로 되짚는다. 정경훈은 날로 극심해지고 있는 외모 지상주의를 분석하며 김석은 현재 한국을 가장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돈과 권력에 대한 집착을 그리고 이만우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혐오와 폭력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 홍준기는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세대 갈등과 한껏 높아져만 가는 불안 속에서 추구해야 할 사회적 대안을 모색하며 마지막으로 김서영은 이런 '헬조선'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온전한 주체가 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각 글마다 분석하고 있는 대상은 우리가 살면서 피부로 부딪히는 것들로 알고 보면 우리 역시 한 번은 이유나 가치 판단에 대해서 궁금하게 생각했던 것들이다. 그렇기에 라깡이나 바디우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인용되고 이론들이 전개되지만 거기에 별로 개의치 않고 살갑게 읽을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서술이 평이하기에 이해에 요구되는 허들이 그리 높지 않지만 말이다. 이런 글들에서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달리 보기'라 말할 수 있을 듯하다. 하나의 예로 멘토 열풍에 대해 분석한 첫 글은, 지그문트 바우만도 사람들이 삶에 대해 느끼는 불안과 공포가 커지면 커질수록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기 보다 누군가 대신 선택을 알려주기를 바라면서 자신보다 상위의 권위에 기대려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한 바 있는데, 이 글 역시 비슷한 논지에서 오히려 불안과 우울이야 말로 진정한 주체가 탄생하는 장소라고 말하면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자주 나타나는 텅 빈 풍경을 그 공간의 예로 든다. 사람들은 확고한 정체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것은 '해당 사회의 지식과 권위가 만들어 낸 환상에 불과'(p. 20)하며 '진리의 순간은 우리 자신을 규정하던 정체성의 지식들이 우리 자신의 자아를 완전히 장악하는 데 실패한 순간, 이러한 초과에 대해 우리 자신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아를 파악하려는 시도 속에서 실현'(p. 27)되며 그러므로 불안과 우울 그리고 공포 증상을 통한 내 정체성 붕괴의 경험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실은 시작(p. 31)인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텅 빈 시간 속에 고독하게 내버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그 때문에 더욱 기댈 멘토를 찾는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 시간과 공간은 진정한 주체가 되기 위해 환영해야 할 것이라며 이렇게 평소 우리가 근절하고 싶었던 불안, 우울 그리고 공포가 가진 긍정적 면모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지식과 해야 할 공부는 오로지 내 주체를 길들이거나 위축시킬뿐인 사회의 지식과 권위의 잔여물들이 아니라 그것들을 횡단하여 내재된 균열이나 그것이 미처 당도하지 못한 외부의 것들이며 진리를 주장하는 그들의 기만에 찬 가면을 벗길 수 있는 계보들에 대한 것이다. 바로 그것을 정신분석이 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정신분석이라는 조금은 색다른 도구로 그간 익숙한 한국 사회 문제들에 대하여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보도록 하기에 더욱 흥미롭게 다가오는 이 책은, 지금 '헬조선'에 누벼져 있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 한번쯤 관심을 가져보았다면 꼭 읽어볼 것을 감히 추천드리고 싶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얻는 게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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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여기에 뼈 하나가 있다 - 변증법적 유물론의 새로운 토대를 향하여
슬라보예 지젝 지음, 정혁현 옮김 / 인간사랑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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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보예 지젝의 '분명 여기에 뼈 하나가 있다'의 원래 제목은 '절대적 되튐'이다.

 되튐은 원래 화학 용어로 어떤 물체나 입자에 전자기파나 고속 입자가 와서 닿을 경우 운동량 보존의 법칙에 따라서 물체 또는 입자가 도로 튀어나가는 현상을 말한다. 다시 말해 되튐이란 부정(否定)의 운동이다. 그 되튐에 지젝은 '절대적'이란 말을 붙였다. 절대는 헤겔이 즐겨 사용했던 말이다. 대표적으론 '절대 정신'이 있다. 헤겔에게 절대란 완전성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절대적 되튐이란 절대적 부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변증법적 측면에서 부정이란 정립에 대한 반정립으로, 절대적 부정이라 함은 아무리 해도 종합적 정립에 이르지 못함을 말한다. 절대적 부정이란 메워질 수 없는 구멍,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다.


 지젝은 흔히 '포스트 모던 시대의 코뮤니스트'로 평가 받는다. 그는 포스트 모더니즘이 지하에 묻어 버린 거대 이데올로기가 아직도 생명을 다하지 않았다고 믿고 있으며 레닌 식의 대중 혁명 또한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마르크스가 아니라 마르크스가 변증법을 통해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기 전인 본래 모습의 '헤겔'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는 헤겔의 진정한 유산을 아직 우리가 상속받지 못했다고 여긴다. 주체에 대해, 유물론에 대해, 혁명에 대해 헤겔은 우리가 귀기울여 들어야 할 말들이 많다. 아니 이미 들린 말들도 오해로 점철되어 있다. 지젝은 그 오해를 불식시키려 하고 미처 듣지 못한 언어를 찾아 들려주려 한다. 그것이 바로 이번에 나온 '분명 여기에 뼈 하나가 있다'에서 지젝이 하고 있는 일이다.




 그가 헤겔의 복권을 통해 무엇보다 지우고자 하는 것. 그것은 악셀 호넷이나 로버트 피핀이 형성한 헤겔의 모습. 그러니까 '상호 인정'의 헤겔이다. 지젝은 그것을 '기가 꺽인 자유주의적 헤겔'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 되었다고 본다. 왜냐하면 지젝에게 헤겔의 생명은 인정이나 그 인정을 통해 서로 하나 되는 종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정이 아닌 적대, 영원히 종합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절대적 부정에 있기 때문이다. 일단 주체부터 부정의 산물이다. 피핀의 상호 인정이 가능하려면 타자를 인정하는 주체가 제대로 정립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젝은 그런 주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인다. 왜냐하면 피핀 식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상징 질서 내에 있어야 하는데, 상징 질서 즉 대타자에 편입된 주체는 지젝이 보기에 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 주체가 될 수 있는 곳은 오로지 상징적 좌표 들의 빽빽한 짜임 외부 뿐이다. 헤겔을 경유하여 지젝이 주체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주체는 주체로 정립되는 순간 주체가 아니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주체는 결코 정립될 수 없다. 그것은 오로지 현재의 행위를 통해 소급적으로 정립될 뿐이다. 현재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계기가 되어 과거 자신의 모든 것이 새롭게 바뀌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젝의 주체다. 때문에 주체는 늘 완전한 자신을 누릴 수 없다. 그는 늘 자신에게 뭔가 빠져 있음을, 나 자신과 완전히 일치되지 못함을 느낀다. 그렇게 항상 자기 자신에게서 소외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때문에 그는 현재의 자신이 아니라 늘 과거로 소급하여 자신을 정립한다. 그 때 주체가 출현한다. 그 과거란 것은 언제나 소급하는 현재의 시점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므로, 과거의 소급을 통해 출현하는 주체도 한없이 임시적이고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주체는 늘 부정에 의해 자신을 정립할 수밖에 없다. 제목을 그대로 따와서 말하자면 되튐이야 말로 주체의 형성 작용인 것이다. 나아가 지젝은 그런 주체들이 모여서 만드는 사회 운동 역시 실은 부정에 기초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주 상생을 말하고 조화를 말한다. 가진자들도, 가지지 못한 자들도 한결같이 서로에게 그것을 주문한다. 그러나 지젝은 그것이 그저 거짓 연기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하나의 예를 든다. 레비 스트로스가 '구조 인류학'에서 대서양 부족들 중 하나인 원네바고 부족 마을 건물들 공간적 배치에 대한 분석이다. 그 부족은 공교롭게도 '위에서 온 자들'이라 불리는 지배하는 집단과 '아래에서 온 자들'이라 불리는 지배 당하는 집단, 이렇게 두 집단으로 확고히 분리되어 있었다. 레비 스트로스는 두 집단에게 지금의 마을 공간 배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지배하는 집단은 마을에 배치된 집들이 중앙을 둘러싼 하나의 원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지배 당하는 집단은  비가시적인 경계로 엄격히 분열된 두 개의 다른 마을로 보았다. 분명 같은 공간적 배치를 보았지만 해석은 이렇게나 달랐다. 사회적 공간에 대한 인지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시각에 좌우된다. 그리고 본다는 것은 단순히 관찰만 하지 않는다. 그것은 의도를 드러낸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사실에다 투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각은 일종의 바람(desire)이다. 그렇게 지젝은 두 집단의 시각이 그들 스스로 가지고 있는 외상적인 중핵을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외상적인 중핵, '그것은 마을 주민들이 공동체를 조화로운 전체로 안정시키는 것을 방해하는 사회적 관계의 불균형을 상징화하거나 해명 혹은 내면화 하거나 그것과 타협할 수 없는 근본적인 적대'(p. 172)를 말한다. 지젝은 적대, 이것이야 말로 실재라 말한다. 주체는 외상을 통해 실재와 대면하는데, 바로 이 적대가 주체들의 외상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히 쓰는 조화, 상생 같은 단어는 사실 이런 적대를 교묘하게 위장한 가면이다. 조금만 생각해도 이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만 따져 봐도, 위에 있는 자들이 하는 조화나 상생의 진심은 사실 '우리가 하는 일에 제발 딴지 좀 걸지 마라. 네 놈들은 그저 우리가 시키는 대로 잘 따르기만 하면 돼!'인 것을 알 수 있고, 아래에 있는 자들의 상생은 '너희들은 너무 많이 가졌어. 이제 그것을 나눠 줄 때야.'인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실은 이렇게 서로에 대해 분명한 적대를 드러내고 있으면서 말로만 그것을 감추고 있을 뿐인 것이다. 지젝은 본질이 이렇다면 그것을 감출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가 헤겔의 복권을 통해 진정 추구하는 것도 국가에 의해 구조적으로 가리워진 적대적 폭력을 밝은 햇살 아래 드러내기 위해서다. 절대적 부정, 그것은 절대적 적대이기도 하다. 그 적대는 어떤 미사여구로도, 상징적 조작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오물이다. 국가는 자신의 존속을 위해서 어떻게든 그것을 세탁하려 하고 적대의 기를 꺾으려 하지만 지금의 백만 촛불처럼 그것은 결코 지워지지 않고 있다가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단번에 그리고 전면적으로 드러난다.


 지젝은 그 출현의 순간을 믿는다. 하지만 분명 많은 이들이 그의 믿음을 몽상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고, 당신은 잘못된 플랫폼에서 오지 않을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고. 우리 뒤에 놓여 있는 압도적인 시간의 과거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냐고.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신자유주의로 인해 사람들은 더욱 개인화 되었고, 인지 자본주의는 적대 보다는 통합을 가져올 것이라고. 하지만 그는 수긍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주체란 어차피 과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므로. 과거의 그가 무엇이든 현재의 그에겐 하등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므로. 그는 주체가 되튐으로 형성된다고 믿고 있으니까.


 주체는 언제나 이미 그것의 재현 속에서 사라지는 X이다. (...) 물론 우리는 과거의 현실을 바꿀 수 없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과거의 가상적 차원 뿐이다. 근본적으로 어떤 것이 새로 출현할 때, 이 새로운 것은 자신의 가능성 및 그 자신의 원인들과 조건들마저 소급적으로 창조한다. 하나의 잠재성은 과거의 현실 속으로 삽입될 수 있다.(p. 313)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무엇을 선택하고 행동하느냐를 통해 과거는 소급적으로 형성된다. 현재의 주체 행위에 되튀어 과거의 파장이 변하는 것이다. 그것은 시간의 단절을 가져오고 그 시간과 함께 움직이는 상징 질서의 그물망에서 빠져 나오도록 돕는다. 그래서 되튐은 진정한 자유에 속한다. 지젝은 말한다. 칸트가 실천 철학에서 말한 자유는 사실 불가능한 실재라고. 왜냐하면 진정으로 자유로운 행위는 우리가 한 행위가 정말로 자유로운 행위였는지 결코 확신할 수 없다는 단순한 의미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진정한 자유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불안을 야기하는 것은 우리의 행위가 진정으로 자유로웠을 가능성이다. 나아가서 이러한 불안을 어떤 병리적인 동기로 환원함으로써 이러한 외상을 길들일 가능성이다.(p. 527)


 병리적인 것, 불안, 우울증. 이것이야말로 주체를 주체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그는 본다. 그 모든 적대적 증상들이야말로 내가 진정 자유롭게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우리는 이 말을 얼른 납득하기 어렵다. 안정과 행복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지울 수 없는 외상을 대타자의 요구에 따라 길들이는 것에 불과하다. 나가 아닌 나가 되어 나인 것으로 알고 사는 가짜 나일 뿐이다. 절대적 되툄은 그런 가짜 나를 찢고 진짜 나를 되찾는 과정이다. 그리고 사회가 은폐하고 왜곡하는 안정과 평화의 기만적인 가면 또한 찢는 과정이다. 그 기만의 언어와 정보 왜곡 속에 세월호 아이들을 비롯하여 얼마나 무구한 생명들이 희생되고 상처 입었던가. '박근혜 게이트'는 지금 우리에게 우리를 길들인 대타자의 민낯을 보여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민낯에 대해 많은 이들은 거리로 나가 촛불을 밝혔다. 광화문 거리를 가득 메웠던 적대의 불빛. 그것은 진정한 주체의 강물이었고 자유의 파도였다. 우리는 그렇게 새로이 태어났고 역사도 태어났다. 바울의 이 말 그대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완전한 새것이 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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