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세습 - 중산층 해체와 엘리트 파멸을 가속하는 능력 위주 사회의 함정
대니얼 마코비츠 지음, 서정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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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을 쓴 토마 피케티는 우리의 세계가 날로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에 있으며 그것이 가장 커다란 갈등을 일으킬 불씨라고 지적한 바 있다. 신자유주의가 주류가 된 이후로 빈익빈부익부 현상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상위 1%의 부가 하위 99%의 부 총합과 맞먹을만큼. 물론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다. 브랑코 밀라노비치의 '홀로선 자본주의'는 앞으로 우리 사회는 엘리트 계층이 더욱 공고화되어 다른 이들과의 사이에 놓인 틈을 더욱 크게 벌릴 것이라 내다보았다. 무엇보다 상속과 교육의 힘을 빌어서 말이다. 엘리트 계층은 수중에 있는 많은 돈으로 높은 수준의 교육을 자손에게 받게 해 출발점을 다르게 만들 수 있으며 재산까지 상속시켜 그들의 게토를 더욱 잘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타고난 신분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에 따라 과실을 나눠주는 것으로 자신을 정당화해 왔다. 그러나 지금의 자본주의는 그 능력주의를 심히 왜곡하고 있다는 게 그 책이 가진 중요한 요지 중 하나다. 이런 말에 관심이 간다면 '홀로선 자본주의'와 더불어 이 책 역시 한 번 꼭 읽어보면 좋겠다. 현재 예일대 로스쿨 교수인 대니얼 마코비츠가 쓴 '엘리트 세습'이란 책이다.

 



  

 그는 사회의 불평등을 주로 연구한다. 이 책은 점점 심해지고 있는 불평등이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지 단적으로 제시한다. 그건 바로 능력주의라는 걸. 현대의 능력주의는 순수한 의미에서 능력주의가 아니다.무엇보다 많은 부와 권력을 가진 엘리트 계층에 의해 그건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 그들은 많은 수입을 보장하는 좋은 일자리를 자신의 능력으로 얻었다고 말하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걸 가능하게 만든 것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그가 속한 가족의 힘이기 때문이다. 일단 상속이 있다. 그들은 윗 세대에서 물려받은 재산을 그대로 자신의 자손에게 투자한다. 상위 1%가 자식에게 투자하는 금액은 상속받는 것까지 고려한다면 무려 천만 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한다. 이렇게 태생부터 출발점이 달라지기 때문에 능력이라는 건 별 상관이 없다. 거기다 거기에 뒷받침이 된 자본으로 그들은 가장 수준 높은 교육을 별 어려움 없이 누릴 수 있다. 요즘 미국의 직장은 직장에서 받아야 할 업무 교육을 더이상 직장에서 담당하지 않고 대학원이나 그 상위코스에 미루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다시 말해 대학원이나 박사 과정을 통과한 이에게 더 많은 취직 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곳을 수료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든다. 가난한 자들은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일대 법학 대학원을 조사했더니 가난한 이는 겨우 3%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들 중 대다수는 부모 중 한 쪽은 반드시 고소득을 가진 전문직이었다. 

 

 능력주의는 모두 출발점이 같다는 데 정당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런 건 없다. 오직 자신의 능력만 가지고 관통할 수 있는 통로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엘리트 계층은 일부러 많은 돈이 있어야만 가능한 쪽으로 사회를 점점 몰고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돈으로 가능한 것 또한 개인의 능력이라고 사람들에게 최면을 걸면서. 엄연한 진실은 현재 선망하는 직업을 가진 대부분의 이들은 자신의 능력 보다 운이 좋아 그걸 이뤄줄 수 있는 부모를 만난 게 더 크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 더이상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는 없다. 허울만 남은 능력주의의 신화를 믿는 한 계속 그럴 것이다. 엘리트 계층만 특혜를 누리는 현재의 구조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특히 교육과 상속 부분에 있어서. '엘리트 세습'을 읽으면 그것의 개혁이 얼마나 시급한 과제인지 선먕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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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1-01 0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열심히 하면 잘 사는 사람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많이 어렵다고 하더군요 잘사는 사람은 잘살고 못사는 사람은 못사는... 앞으로 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그러면 더 안 좋겠습니다 가진 사람이 사회에 돌려주기도 해야 할 텐데...

날짜가 바뀌고 1월 1일이 됐어요 새해가 왔다 해도 어제와 다르지 않게 지내겠지만... 달력은 다시 12장이 됐습니다 그건 좋지 않나 싶네요 하루하루 지나고 한달 한달 가면 아쉽겠지만... 덜 아쉽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러지 못하는군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에 읽고 싶은 책 보시고 늘 건강하게 지내세요


희선
 
뉴호라이즌스, 새로운 지평을 향한 여정 - 명왕성을 처음으로 탐사한 사람들의 이야기
앨런 스턴.데이비드 그린스푼 지음, 김승욱 옮김, 황정아 해제 / 푸른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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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7월 14일.

 이 날은 태양계 탐사에 있어서 정말 뜻깊은 날이다. 왜냐하면 이 날, 비로소 인류가 태양계에 있는 행성 모두를 탐사했기 때문이다. 그 마지막 행성은 아쉽게도 지금은 그 지위를 잃어버린 명왕성. 그러나 이 별은 오직 명왕성 탐사만을 목적으로 한 뉴호라이즌스 호가 지구를 떠날 때까지만 해도 행성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명왕성이 퇴출된 날은 뉴호라이즌스 호가 발사되는 날이었다. 어쨌든 우주 탐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겐 잊을 수 없는 이벤트임은 분명하다. 아무래도 명왕성 탐사를 떠난 뉴호라이즌스 호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누가 어떻게 그 프로젝트를 준비했고 성공시켰는지 그 과정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정말 좋은 책이 하나 나왔다. 그 프로젝트를 처음 입안했고 마침내 성공까지 시킨 앨런 스틴이 쓴 '뉴호라이즌스, 새로운 지평을 향한 여정'이 번역되어 나온 것이다. 



 앨런 스턴이 명왕성 탐사 계획을 추진한 것은 무려 1987년부터다. 그는 86년에 터진 비극적인 사건, 즉 첼린저 호가 공중 폭발된 사건에서 큰 충격을 받고 자기 삶 전체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당시 NASA는 금성으로 보낼 마젤란 호 계획과 목성으로 보낼 갈릴레오 호 계획이 추진 중이었는데 아무도 명왕성 탐사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거기에 생각이 미친 그는 자신이라도 나서서 명왕성 탐사 계획을 진행시켜야겠다고 생각했고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해 뛰어난 학자들을 섭외하는 것에 나섰다. 그  때, NASA의 행성 탐사 계획은 여론의 지지도에 따라 많이 영향 받았기 때문이다. 앨런 스틴이 원하는 명석한 두뇌들이 많이 참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왕성 탐사 계획은 늘 다른 행성 탐사 계획에 뒤쳐졌다. 너무나 멀고 크기도 작아 탐사에 별 이익이 없다고 여겨졌던 까닭이다. 앨런 스틴의 팀은 그렇지 않다는 걸 열심히 설득했고(그 이유는 책에서 아주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드디어 2001년 마침내 10년 평가 팀에 선정되어 명왕성 탐사 로켓을 설계,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NASA의 예산은 한정되어 있었고 그 비용으로 어떻게 저 태양계 외곽에 위치한 명왕성까지 가게 할 수 있을 것인가가 큰 화두로 떠올랐다. 그들은 결국 보이저 호 무게의 약 절반인 350KG의 우주선을 만드는 것(실제 우주선의 무게는 400KG이 넘었지만)과 가급적 착륙이 아닌 지나가면서 탐사를 하는 것으로 결정을 한다. 여기에 앨런과 같은 팀은 로버트 파커 박사가 경로에 대해 아주 혁신적인 제안을 한다. 무게가 많이 줄어든 탓에 로켓이 목성까지 곧장 날아가는 것이 어려웠는데(목성의 중력을 이용해야 명왕성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그건 먼저 로켓의 방향을 태양 쪽으로 돌려 금성과 지구의 중력을 이용해 목성까지 날아가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2006년 1월에 지구를 떠난 뉴호라이즌스 호는 많은 우여곡절 속에서 태어난 것이었다.


 '뉴호라이즌스, 새로운 지평을 향한 여정'은 그런 과정을 소상히 담는다.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어려운 말들이 잔뜩 나올 것 같겠지만 책은 이대로 영화로 만들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이해가 쉽고 흥미진진하다. 우주 탐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그리고 명왕성에 대해 많이 알고 싶었다면 이 책만큼 그 기대를 충족시켜 주는 책은 또 없는 것 같다. 한 사람이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 나가는 장대한 드라마로도 읽힐 수 있기에 이런 논픽션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꽤 좋은 선물이 되리라 믿는다.



뉴호라이즌스가 찍은 명왕성의 사진. 

인류는 이렇게 선명한 명왕성의 모습을 뉴호라이즌스 호 덕분에 처음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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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 우리 몸 안내서
빌 브라이슨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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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이 있다. 내 생각엔 몸에 대해서도 꽤 해당되는 말인 듯하다. 공기가 없어져봐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 것처럼 우리의 몸 역시 아픔이라는 위기가 닥쳐오고 나서야 비로소 신경을 쓰고 관심을 쏟게 되니까 말이다. 다음엔 더 안정적이고 좋은 몸이 될 수 있도록. 


 여전히 진행중이며 언제 끝날지도 도저히 알 수 없는 코로나 19 사태는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건강의 소중함과 더불어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몸에 대해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거듭 상기시켜 준, 그런 면에서 고마운 기회였다. 거기에 마침 좋은 안내자가 출현하기도 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로 지루해 보이기만 했던 일상이란 세계의 모든 구석 구석이 저마다 깊은 내막이 서려 있음을 알려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눈으로 나를 둘러싼 세계를 보게 만들었던 작가, 빌 브라이슨이 자신의 저력을 십분 발휘하여 몸에 대해 쓴 책을 들고 나왔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바디 : 우리 몸 안내서'란 책이다.


 하얀 색의 담백한 표지로 된 이 책은 내게 이제 곧 몸 속 여행을 떠나는 잠수정으로 보였다. 

 작가에 대한 신뢰가 차고도 넘쳤기에 나는 당장 하얀 잠수정의 승선 티켓을 끊었다. 푸짐한 몸집에 어울리는 푸근한 미소로 날 맞이하는 작가는 오늘의 가이드를 맡았다는 설명과 함께 악수를 정중히 청하더니 날 전망이 가장 좋은 일등석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기대하라는 뜻으로 살짝 윙크를 보낸 다음 운전석에 앉아서 시동을 걸고 천천히 잠수정을 우리의 몸 안으로 이동시켰다. 이윽고 그가 설명을 하려고 운전석 옆의 마이크 스위치를 켜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내 두 눈 앞으로 사람을 이루고 있는 원소들이 영화 '스타워즈'에서 한 솔로의 팰콘이 워프를 할 때 그러하듯 무수한 빛 알갱이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나는 집중을 위해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그가 설명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눈과 귀를 한껏 열었다.


 



 그렇게 나는 주석과 참조 문헌 목록 그리고 역자 후기를 빼면 장장 517 페이지에 이르는 인체 탐험 여행을 시작했다.  사람을 만드는 방법을 시작으로 '피부와 털'을 지나 '결말(여기서 결말이란 책의 결론 같은 것이 아니라 죽음, 노화, 폐경 등 우리 몸이 만날 수 있는 종말적인 상황에 대한 것을 이른다.)'에 이르기까지 도합 23 곳을 거치는 일정이었다. 아무래도 의학적인 건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어서 몸에 대한 것 역시 그 분야에 속하는 지라 머리 깨나 아픈 여행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정말 문자 그대로 기우였다. 어려운 건 하나도 없었고 어찌나 설명을 잘 하는지 뭐든 다 귀에 쏙쏙 들어와 박혔던 것이다. 여전히 그는 박학다식했고 뇌, 머리, 입, 목, 심장, 신경, 소화기관 등등 그 어디에서건 그것에 대한 정보들을 이걸 어찌 다 알고 있을까 하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올 정도로 엄청나게 쏟아내었다. 


 당신은 뼈가 호르몬을 생산한다는 걸 알고 있었는가? 우리는 뼈가 단순히 몸을 지탱하는 정도의 일만 하고 있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았다. 뼈는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혈구를 생산하는 것은 물론 화학물질을 저장도 하고 소리 또한 전달했다. 당신이 듣는 자기 목소리는 실은 모두 귀가 아니라 자신의 머리뼈가 울리면서 나는 소리인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뼈는 오스테오칼신 호르몬까지 생산하는데 이것은 기억과 활력을 증진시킬 뿐만 아니라 남성의 생식력 증진에 기분 조절까지 하고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멍하시 서 있기만 하는 것처럼 보였던 뼈는 알고보니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일꾼이었던 것이다. 또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은 뒤로 오래도록 품었던 의문도 이 책 덕분에 풀리게 되었다. 그 의문은 바로 마들렌 과자에 관한 것이다. 소설에서 주인공 마르셀이 우연히 맡은 마들렌 과자 냄새 때문에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유년 시절의 일을 갑자기 기억해내는 장면이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프랑스 판 표지.



 바로 후각이 기억을 불러 일으킨 것인데 나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무척 궁금했다. 그걸 책을 통해 마침내 알게 된 것이다. 신기하게도 후각은 오감 중 유일하게 시상하부를 거치지 않는다고 한다. 후각을 통해 취득한 정보는 곧장 후각 겉질로 가게 되는데, 그 후각 겉질은 기억 생성을 담당하는 해마 바로 가까이에 있다. 따라서 특별한 냄새는 과거에 그것을 맡았던 때의 기억을 홀연히 소환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말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나 또한 자주 혼동해서 썼던 심근경색과 심장정지의 차이점을 이 책을 통해 분명히 확인한 것과 같이 기존의 알았던 것도 새롭게 제대로 알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추운 날이면 어김없이 줄줄 흐르는 콧물처럼 아주 일상적인 몸의 반응 또한 허파에서 나오는 따뜻한 공기와 콧구멍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가 만나 응축되는 바람에 나오는 것이란 걸 체득하게 되었다.  사람이 달릴 때 다른 유인원들과 달리 머리가 흔들리지 않는 건 우리 머리 뒤쪽에 인간에게만 있는 목덜미 인대 덕분이라는 것도.


 이러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두 가지를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몸에 대해서 아는 건 불과 1%도 안된다는 것과 몸이라는 것이 이토록 많은 정보가 알알이 깃들어 있을 정도로 거의 우주에 맞먹을만큼 참으로 경이로는 장소라는 걸. 그는 다시 한 번 해내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로 세계를 보는 내 눈을 일신(一新)했던 것처럼 '바디 : 우리 몸 안내서'를 통해 내 몸을 바라보는 내 눈을 일신(一新)한 것이다.


 덕분에 이제 내 눈엔 내 몸이 더이상 단순한 유기체로 보이지 않는다. 

 빌 브라이슨이 어떤 하나의 조직을 설명할 때, 그 조직만 말하지 않고 그와 관련된 건 뭐든, 질병과 그것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사람이나 그 업적까지 통합하여 설명하듯(이 점은 과학자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간 '거의 모든 것의 역사'와 비슷하다.) 내 몸 또한 그렇게 해야 그 전모가 제대로 밝혀질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조직이 내 몸은 모든 조직이 긴밀한 상호 작용 속에서 유기적으로 잘 통합된 총체(總體)였으니까. 마치 직립보행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머리와 목을 비롯한 많은 부위가 다른 영장류와 달라졌으며 두뇌를 활용하느라 몸에 더 많은 열이 발현하기에 다른 포유류와 달리 인간만이 피부에 털이 없게 되었듯이 말이다. 내 몸의 그 어떤 부분도 고립된 채로 남아 있는 게 없었고 아무리 미미한 것이라 하더라도 아무런 이유없이 존재하는 것도 없었다. 다 진화 과정 속에서 필요에 의해 형성된 것이었다. 왜 있는지 모를 속눈썹조차 실은 인류가 광범위한 상호 협력을 위한 방향으로 진화한 탓에 서로의 감정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건 이 책을 통해 정말 처음 알았다.


 달리 보면, 달리 이해하게 된다. 

 똑같이 빌 브라이슨도 몸을 달리 보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거기서 일어나는 갖가지 양상들을 달리 헤아리도록 이끌었다. 통증이나 열 같은 부정적인 현상 또한 어떤 조직의 파손이라기 보다는 보존을 위해 뭔가 하고 있거나 해야 한다는 신호로 더 받아들여야 옳았다. 그 시야가 비단 몸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었다. 나와 다른 타자 또한 달리 가늠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몸에 대해 알면 알수록 몸을 가지고 사람들을 이리저리 나누는 게 부질없어 보이는 까닭이다.


 특히 피부가 그렇다. 피부는 인종 차별을 낳는 대표적인 요인이다. 그러나 책에 따르면 우리의 피부색이란 자연적으로 결정된 게 아니라 농경 사회가 됨에 따라 임의적으로 가지게 된 것에 불과하다. 사람은 몸에 여러가지 좋은 일을 하는 비타민 D를 필수적으로 섭취해야 했는데 농경 생활을 하게 됨에따라 그 전에 채취나 수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비타민 D의 양이 자연히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농경 사회를 했던 인류들은 밝은 피부색을 갖게 되었다. 그것이 햇빛과 만나 더 많은 비타민 D를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피부색은 내가 사는 곳에 따라 가지게 된 것에 불과했다. 이런 걸 가지고 인종차별을 하다니,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다시는 'BLACK LIVES MATTER!'라는 구호를 외치게 만든 사건들이 일어나선 안 될 것이다.



 [인류는 어떤 몸을 가졌던 다 같은 몸을 가진 동등한 하나라는 뜻으로 찍어 본 사진]



 이처럼 몸에 대해 산더미와 같은 정보를 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몸이 가진 수수께끼가 완전히 다 풀린 것은 아니다. 아직도 밝히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 우리 몸엔 여전히 많이 남아있는 것이다. 나이가 든 사람이라면 누구든 언젠가 근심거리가 되는 나이가 들수록 털이 점점 더 많이 빠지는 이유는 물론이고 주걱턱이 고민인 사람이라면 분명 한 번은 의문을 품어봄 직한, 왜 인간만이 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것조차 규명되지 않았다. 우리 몸엔 인간이 탐침이 닿지 못하는 심연이 즐비하지만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알게 된 게 어디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빌 브라이슨의 말에 따르면 인류가 자신의 몸 안에 무엇이 있는지 해부를 통해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가 지나고 나서라니까 말이다. 미국 드라마 제목 때문에 우리에게도 꽤 낯익을, 오래도록 의학의 기본 교재로 자리잡았던 '그레이의 해부학'이 출간 된 것도 겨우 1861년이다(그레이 혼자 쓴 것이 아니라 카터와 같이 썼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런데 그레이가 째째한 인사라 카터에게 수익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을 거라는 소개가 재밌었다. 의학 분야에서 훌륭한 업적을 이뤘지만 인성이 좋지 못해 그걸 망치는 학자들도 많았다. 지성이 인성을 보증하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브라이슨의 책에 저장된 방대한 양의 지식들 대부분은 인류가 기껏해야 200년 남짓한 시간에 다 밝혀낸 것이란 의미다. 그러니 낙관하게 된다. 그 심연도 언젠가 밝혀질 것이라고. 그것도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리. 그렇게 되면 우린 더욱 더 내 몸과 타인들을 달리 보고 헤아리게 되리라.


 가득 심취해서 들었더니 어느새 종착역에 와 있었다. 이만한 분량의 책을 어쩌면 이렇게도 빨리 읽어버릴 수 있었을까? 내가 한 일인데도 믿기지 않아 난 멀뚱한 눈으로 빌 브라이슨이 조용이 미소짓고 있는 얼굴만 쳐다 보았다. 오른손으로 내 어깨를 두드리며 어떻게 여행은 만족하셨는지 몯는 브라이슨에게 난 오른 손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좋았다고 연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 배를 둥그렇게 쓰다듬었다. 지적 포만감으로 그득하다는 의미로. 부디 브라이슨이 자기 배를 놀리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경험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지적 쾌감만큼 사람을 중독시키는 것도 또 없다는 걸. 한 번 그걸 제대로 맛보게 되면 끝없이 갈구하게 마련이다. 계속해서 충족되기를. 여기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작동하지 않는다. 어디 또 나를 놀라게 할 새로운 지식 없나 하면서 부릅 뜬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게 만드는 지독한 허기만 존재할 뿐. 물론 거기에도 간조(干潮)의 시간은 어김없이 닥쳐온다. 책이 그 충족을 채워주지 못해 지적 쾌감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버리는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디 : 우리 몸의 안내서'는 그렇지 않다. 오직 만조(滿潮)의 시간만 있을 뿐이다. 혹시 당신도 나처럼 지적 쾌감을 추구하고 있었다면 기꺼이 이 책을 추천한다. 페이지마다 가득 밀려와 나의 내부를 채우는 몸에 대한 새로운 지식들 속에서 당신도 분명 나와 똑같은 걸 경험하게 되리라. 그걸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에서 말한 것을 살짝 바꿔 이렇게도 말해보련다.


 '그런즉 누구든지 '바디 : 우리 몸의 안내서'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내가 빌 브라이슨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그가 내 배를 쓰다듬는 걸 오해하여 불쾌하였다면 제발 이것으로 용서해주기를. 

 당신의 다음 가이드도 받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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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랑은 지금 행복한가요? - 기시미 이치로의 사랑과 망설임의 철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오근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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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책이  기다려지는 작가가 있다기시미 이치로도   하나다.

 그의 '미움받을 용기'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에 소심하고 서투른 나를 더이상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게 했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는 가운데 보다 용기를 갖고 타인 앞으로 나아가도록 해 주었다. 그런 그 내게 무엇보다 시선을 바꾸는 사람으로 각인되었다. 살면서 내가 느낀 피로와 가지게 된 염려와 공포가 사실은 내가 엉뚱한 곳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라는 걸 깨닫게 하여 정말로 바라보아야 할 곳을 주시하도록 해주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의 신작을 늘 기대하게 된다. 이번엔 또 어떤 것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줄까 하고.


  그러던 차에이번에 나온 그의 책인, ‘당신의 사랑은 지금 행복한가요?’ 만났다.

 이번엔 내가 가장 많이 고민하기도 했던 사랑에 대한 것이라 더욱 반가웠는데 책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 또한 한결 같아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많이 해서 이젠 너무나  안다고 여기고만 있었던 사랑에 대해 내가 사실은 많은 것을 오해하고 있었으며 잘못된 안경을 쓰고 바라보고 있었다는  정말 깊이 느끼도록 했던 것이다.

 사랑이란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내게 사랑은 정말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 적지 않은  사랑의 역사에서 사랑이 쉬웠던 적은   번도 없었다때로는 내가 준만큼 주지 않는 상대를 보며 그걸 느꼈고 때로는 도저히 이해할  없는 이유로 결별을 선언하는 상대를 보면서도 그걸 느꼈아무리 많은 노력을 하고 세심하게 살펴도 싸움은 있었고 불안이 사라지지 않았다행복하기 위해서 사랑했는데 정작 가장 커다란 불행을 사랑이 가져다  적도 있었다


 그러므로 사랑은  질문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사랑 자체에 대해 생각해  적은 없었다. 사랑이라는 개념은 내게 당연한 것이었고 오직 사랑이 가져다주지 못하는 행복에 대해서만 의혹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솔직히 말해  책의 제목인 ‘당신의 사랑은 지금 행복한가요?’ 질문은  또한 뇌리에 자주 떠올린 것이었다그러나 무수한 질문만 쌓일 뇌리를 눈부신 빛으로 채우고 마음을 시원하게 만드는 대답은 찾지 못했다더러 사랑에 관한 책도 찾아봤지만 어떤   문제와 전혀 무관한 뜬구름만 잡고 있는  같았고  어떤 건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을  있는 잔재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시미 이치로의 책은 과연 달랐다.

  어떤 것이 진정한 사랑인지 가늠하게 했고 어떤 사랑을 해야 내가 그토록 바랐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지도 깨닫게 했다. 다 읽고 난 뒤의 내 마음은 그야말로 오랜 가뭄 끝에 쏟아지는 장대비를 만난 기분이었다. 


 그것은 어떻게 이뤄졌는가? 현학적이거나 복잡한 설명 덕분이 아니다. 나는 그리 많이 아는 것도 아니고 현명하지도 않으므로 만일 그랬다면 내 마음은 더 복잡하기만 했을 것이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쉬운 문장과 차분한 어조로 나 또한 사랑을 하면서 많이 했던 친숙한 질문들을 통해 그리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저 손만 잡아 끄는 인도는 아니었다. 그건 주로 사랑의 풍경에서 어디를 봐야할지 가리키고 짚어주는 식으로 진행되었는데 그 대부분은 사랑을 하면서도, 잃어버린 사랑의 아픔과 미련을 곱씹으면서도 미처 응시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그는 먼저 사랑이 힘들었던 내게 힘든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나는 사랑이 쉽지 않은 것이 내가 너무 부족한데다 사랑에 서툴러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는 내가 특별히 못나서도 아니고 한 개인의 문제도 아니라고 말한다. 연애든, 결혼이든, 쉽지 않은 것은 모두 마찬가지인데 그건 우리가 거기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걸 아들러의 말을 빌려 이렇게 전한다.


 우리는 혼자서 달성할 수 있는 과제와 여럿이 함께 달성해야 하는 과제에 대해서는 교육을 받아왔지만, 둘이서 수행하는 과제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배워오지 않았습니다.(p. 26)


 여기서 '둘이서 수행한다는 말'과 '배운다'는 말이 중요하다. 이 책이 사랑에 대해 보여줄 가장 중요한 것들이 이 두 가지에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사랑할 때 저지르기 쉬운 잘못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랑할 때, 남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은 자신만 생각할 때가 많다. 


 이 말을 시작으로 저자는 그간 우리가 사랑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많은 고정관념들을 바꾸도록 한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이 넌지시 암시하듯이, 사랑은 어디까지나 내가 잘하고 못하고에 달린 지극히 혼자만의 문제라 흔히 생각하지만 실은 둘이 대등하게 참여하여 함께 만들어 가는 작업이며 많은 이들이 결혼을 연애의 골인 지점이라 여기듯이 사랑을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행위이며 어떤 지점에 이르면 완결되는 존재라 치부하고 있지만 그와 다르게 진실로 사랑엔 종착지 같은 것은 없으며 과정 속에서 늘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비로소 사랑이라 말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사랑은 어디까지나 자연스러운 감정의 영역으로 특별히 배울 필요도 없고 의지를 들여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웬걸, 사랑 역시도 그것을 안정적으로 지속시키기 위해선 늘 의지를 들여야 하며 보다 나은 사랑을 원한다면 계속해서 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미처 보지 못하고 헤아리지 못했던 사랑의 의미와 면모들을 바로 내가 했었던 고민과 주위에서 쉽게 보게 되는 일들을 경유해 친절하게 짚어주니 사랑에 대해 그동안 내가 참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면에서 1부의 연애와 2부의 결혼에 뒤이어 본격적으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는 3부가 참 많이 와닿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부분 역시 그간 사랑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오해와 착각을 많이 불식시켰는데, 무엇보다 사랑을 생각할 때 '사랑받는다'는 수동적인 측면말고 '사랑한다'는 능동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게 그랬다. 우리는 워낙에 자기 중심적이라 타인을 위한다는 사랑을 하면서도 내가 사랑하는 것보다는 내가 사랑받는 것에 더 많이 천착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사랑함의 모자람보다 내 사랑받음의 모자람에 서운함이 들 때가 많은 것이다. 기시미 이치로는 무엇보다 이러한 자기 중심적인 사랑에서 이탈할 것을 권한다.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직시하고 이런저런 핑계나 구실을 대지말며 사랑이 가진 이상(理想)적인 정의대로 행하라고. 


 중요한 것은 사랑받는 것이 아니고 사랑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대해서는 앞으로 차분히 고찰해가겠습니다.(...) 또한 설사 이상적인 사랑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사랑은 이래야 한다는 그 이상을 알고 품고 있으면, 현실의 사랑에 대한 태도 역시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도저히 그런 식으로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이상이야말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기준입니다.(p. 125)


 그리하여 그는 세 가지를 강조한다. 하나는 정신과 의사인 가미야 미에코의 말을 빌려와 사랑의 대상을 한정하지 않는 '비인칭적인 사랑'이고, 


 비인칭적인 사랑이 개인적인 사랑의 기초가 되어야만 합니다. 개인적인 사랑이란 비인칭적인 사랑을 알고난 뒤에 비로소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내가 유일무이한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싫지만 당신은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당신은 유일무이한 당신은 아닙니다. 만약 마음이 바뀌면 금세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사람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p. 128)


 다른 하나는 마르틴 부버의 개념을 빌려와 사랑하는 상대를 소유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바라볼 것을 말하는 '해후(邂逅)'이며, 마지막으로 그 관계 속에서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나온, 아리스토텔레스의 '에네르게이아(energeia)' 개념을 빌려서 말하는 '지금-여기'에 대한 중시이다.


 살아있다는 것을 에네르게이아로 파악하면 인생의 어디쯤에 있는지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인생은 항상 완성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경험도 에네르게이아입니다. 다시 말해 처음과 끝이라는 식의 뭔가가 있는 게 아니고 사랑의 어떤 단계나 완전한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무시간성 안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경험에 있어서는 그것이 언제까지 계속되느냐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p. 147)


 관계가 오래 지속되는 것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입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여러 가지 일이나 앞으로 생길 일을 생각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지금 여기'를 둘이서 열심히 살 수 있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어져 갈 것입니다.(p. 229)


 이러한 사랑의 보편성과 과정의 중시는 지금까지 내가 사랑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불안의 진실된 모습을 보게 하였다. 생각해 보니 내가 사랑을 하면서 그토록 불안하고 근심했던 것은 대부분 지금 내가 사랑하고 있는 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과 사랑의 완성된 형태를 가정하고 어서 빨리 거기에 이르고자 하는 조급함에서 기인하고 있었다. 그만큼 난 상대를 '가지냐 못 가지냐?'라는 식의 소유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었고 함께 한 대부분의 순간들을 도구적인 의미로만 간주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사랑하는 나 자신보다 사랑받는 나 자신을 더 중히 여긴 결과였으며 사랑이 실패로 끝났을 때 나는 언제나 날 버린 상대를 탓했지만 정작 책임을 묻고 제대로 따져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라는 것 또한 절실히 깨달았다. 불안과 근심이 상대에게서 온다고 생각했지만 진실은 모두 나 스스로 일으킨 먼지구름이었던 것이다.


 알고보니 난 용기가 없었다.

 기시미 이치로의 '용기'란 다름아닌 관계 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용기(p. 33)다. 나만 바라보고 나만 위하는, 자기 중심적인 관계가 아니라 나와 남을 모두 대등한 인격으로 존중하며 함께 만들어 나가는 매 순간의 경험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그런 관계 속으로 뛰어드는 용기다. 이건 다시 말해 타인을 위해 나를 내려놓는 용기이며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용기이다. 저자에 따르면 아들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랑을 확고한 것으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파트너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안락하게 만드는 것임을 배워야 한다.( p. 173)


 맞다. 나는 사랑을 할 때 파트너보다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안락하게 만드는 것을 더 많이 생각했다. 상대가 그렇게 되어야 사랑이 안정되는 것인데 내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더 많이 생각했으니 사랑이 늘 불안과 근심의 존재가 된 것도 당연했다. 이런 식으로 기시미 이치로는 여러 번 사랑을 하면서도 한 번도 보지 않았고 묻지 않았던 사랑의 의미와 진정한 사랑의 태도를 응시하게 하면서 내 모습 또한 직시하게 했다.


 이 책 초반에서 그가 말했던 그대로 내 '라이프스타일'을 말이다.


 저자에 따르면 아들러는 사랑을 '라이프스타일'의 관점에서 파악해야 한다(p. 49)고 말했단다. 상대가 바뀌어도 똑같은 실패를 거듭하는 것은 연애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이제 이 말은 내게 코페르니쿠스적 전회(轉回)가 되었다. 사랑의 실패에 대한 내 반응은 언제나 분노와 원망일 뿐, 나를 법정에 새워놓고 찬찬히 살피는 자성(自省)의 단계로는 단 한 번도 나아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그 지축(地軸)을 옮겨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자기 중심에서 타자 중심으로. 기시미 이치로의 말마따나 나를 온전히 내던지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이렇게 하다 실패하면 나만 진짜 바보되는 것 아냐?' 하면서 계산하지도 말고


 라이프스타일은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니고 '바꾸고 싶지 않다'는 것이 본심입니다.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으로 대처하면 다음 한 발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물론 그건 미지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일입니다. 이를 두려워하여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고 싶지 않다, 바꾸고 싶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라이프스타일이 당신의 연애를 불행하게 한다면 라이프스타일을 바꿀 용기를 내야만 합니다. 라이프스타일을 바꾸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p. 52)


 사랑과 관련하여 내 라이프스타일을 돌이켜보건대, 난 저자의 표현 그대로 '응석받이'였다. 아마도 첫째로 태어나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면서 원하는 걸 쉽게 얻었던 내 '최초의 기억(p. 53)'이 날 그렇게 형성했을 것이다. 


 사랑엔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사랑엔 이해타산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될지 여부로 사랑을 선택하는 일은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 사람은 내게 있어서 유용한 사람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응석받이로 자란 사람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p.117)


 이런 '응석받이'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기시미 이치로는 거기에 대한 설명 역시 빠뜨리지 않는다. 3부까지가 사랑과 그 방법에 관한 총론적인 부분이라면 4부인 '행복해지기 위해 알아야 할 사랑의 기술'은 각론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불행한 러브스토리를 피할 수 있는, 그런 것을 초래하는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이 여기에 나와 있는 것이다. 먼저 이 부분을 보고 제목만 읽는다면 사랑에 대해 말하는 책에서 흔히 들었던 말로 여기기 싶겠지만 나처럼 3부까지 전개된 기시미 이치로의 인도로 사랑에 대해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된 이라면 여기에 있는 그 어느 말도 쉽사리 흘려 듣지 못할 것이라 믿는다. 예를 들어 상대에 대한 관심만 봐도 그렇다. 자주 우리는 내가 관심 받는 것만큼 상대에게 관심을 주면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기시미 이치로는 사랑은 절대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라고 말한다. 내가 설령 원하는만큼 관심 받지 못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상대방에게 온전히 관심을 기울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아들러가 말하는 '공동체 감각(p. 186)'이며 무엇보다 바로 그런 관심이 응석받이의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킬 것이라면서 말이다.


 이해 역시 그러하다. 사랑을 할 때 우리는 이해하기 보다는 더 많이 이해받길 원한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구구절절 변명부터 나오며 남탓부터 먼저 하게 되는 건 그 때문이다. 모두 나는 상대를 잘 이해하고 있는데 정작 상대는 나만큼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하지만 저자는 상대를 이해한다는 생각 자체가 착각이라고 말한다. 상대를 제대로 알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일단 잘 알 수 없다는 걸 전제하고 더 잘 알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라는 의미로 말이다. 이처럼 지속적으로 타자를 내 쪽으로 끌어들이지 말고 먼저 타자 곁으로 가서 있어주기를 권한다. 힘겨루기를 멈추고 이해보다는 찬성부터 해주라는 등, 그 방법을 세세하게 알려주면서...


 물론 앞서도 언급했듯, 이 말들은 그리 새롭지 않다. 하지만 같은 말이라 하더라도 의미를 제대로 새기고 나면 전혀 다르게 들린다. 말이 마음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할 정도로 깃털처럼 가벼워진 것은 그 의미를 헤아리지 않고 상투어처럼 남발한 탓이기도 하다. 그동안 우리가 허다하게 듣고 보았던 사랑의 조언 또한 그렇지 않을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제대로 된 가르침 없이 암기하듯 무작정 들었고 또한 그 중심이 상대가 아니라 오롯이 내게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말, 나아가 방법이 지니는 의미의 비중을 소홀이 했던 것이다. 달리 보면 같은 말도 얼마든지 다르게 보인다. 4부에 나와 있는 말들이 정녕 그러하다. 제대로 되새기고 조금씩이나마 항상 실천하다보면 그 모든 것이 진정한 사랑에 걸맞는 라이프스타일로 변화시키는 초석이 되어 줄 것이다.


 이만하면 왜 내가 이 책에서 진정 해갈되는 기분을 느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까?

 여하튼, 오랜 시간에 걸쳐 이 책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사랑에 대해 참 많이 생각해 본 것 같다. 영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의 주인공 존 쿠삭처럼 과거의 사랑을 계속 떠올리면서 가장 근원적인 차원에서 그 사랑이 어쩌다 실패에 이르게 되었는지 돌이켜보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 가장 근원적인 차원이라 말하는 것은,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바라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고 그 시야 속에서 단 한 번도 소환하지 않았던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심판대에 올려 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내가 표현한만큼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음을. 내 사랑은 그저 나만 위하고 더 많이 가지려 애쓰는 제국에 지나지 않았음을. 그러므로 내 사랑 역시 타자를 식민지로 삼은 제국이 예외없이 멸망의 길을 걸었던 것처럼 실패할 수밖에 없었음을.


 그러나 이런 진실을 확인했지만 예전처럼 앞으로의 사랑이 더이상 두렵지는 않다. 오히려 더 기대되고 가급적 얼른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당연히 제대로 된 사랑의 의미와 방식을 소상하게 알려준 기시미 이치로 덕분이다. 얻은 게 많아서 아무래도 단 한 번의 독서로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줄기차게 이 책을 벗하게 될 듯하다. '당신의 사랑은 지금 행복한가요?'란 질문에 대해 당당하게 '행복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내 사랑을 위한 든든한 지원군 삼아서. 

 나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서 부디 세상에 행복한 사랑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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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혹된 사상들 - 인류를 사로잡은 32가지 이즘, 개정증보판
안광복 지음 / 사계절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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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컵 같은 국제 경기에서 한국 팀이 일본 팀에게 지면 괜히 열이 받는다.

 작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선 우리나라에 귀화한 외국인 선수가 메달을 따서 화제가 되었는데 그걸 보면서 한국인이 메달 땄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머리와 가슴에 분명 태극 마크가 있었지만 그냥 외국인이 딴 것만 같았다. 이러는 내가 잘못인 걸 안다. 경기의 승패나 메달을 따고 안 따고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그런 감정이 드는 걸 어쩔 수 없다. 그럴 때마다 새삼 놀라게 된다. 민족주의가 이토록 내게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구나 하고.


 사람의 의식은 절로 형성되지 않는다.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는 사회화를 거친다. 가정에서 또 학교에서 나를 둘러싼 세계와 그 세계 속의 나의 위치와 처신을 어떻게 헤아리고 실천해야 하는지 교육이란 이름으로 주입받는 것이다. 그 대부분을 이루는 것이 바로 사상이다. 사상은 단순한 말의 집합체나 관념의 더미가 아니다. 우리 현실의 대부분을 구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 또한 형성하고 있다. 그건 내가 자본주의나 민주주의가 아닌 세상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처럼 사상은 내 생각과 판단 그리고 행동 모두에게 암묵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상을 안다는 건, 나아가 그 궤적을 살펴본다는 건, 그저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다. 그건 곧 나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 의식이 그런 사상들의 영토이니까 말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자주 잊고 살아간다.


 너무 익숙하면 그렇게 된다.

 공기나 물이 왜 존재하고 있는지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되는 걸 피에르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라고 불렀다. 우리의 무의식 깊은 곳까지 자리 잡아 마치 내 신체처럼 뗄레야 뗄 수 없게 되었다고 말이다. 나의 몸이란 곧 그런 사상들의 아비투스다. 그래서 일본 팀에게 한국 팀이 졌을 때처럼 거의 반사신경처럼 감정적 반응이 자동으로 나오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마주하면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나를 이루고 있는 사상들이 다 바람직한 것일까?'


 미국의 SF 작가 시어도어 스터전은 '과학 소설의 90% 쓰레기다. 그러나 모든 것의 90%도 쓰레기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모든 사상이 다 좋을 수 없다는 것 정도는 받아들여도 좋을 것 같다. 그러니 우리 몸에 아비투스로 자리잡은 사상들 또한 분명 알곡과 쭉정이가 있을 것이다. 사상들을 훑어 본다는 건, 단순히 나를 둘러싼 세계의 기축을 잘 헤아리는 일로 그치지 않는다. 그건 동시에 내 내면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들을 살펴보는 일이자 어느 것이 좋고 안 좋은지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감별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처럼 사상을 살펴보는 일은 결코 나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그동안 잘 몰랐던 그러나 확실히 내 생각과 판단, 행동 모두를 어느 정도 제약하면서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내 진짜 초상에 확대경을 바짝 들이미는 일이니까 말이다.


 '대한민국 1세대 철학 교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안광복의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은 그러한 좋은 확대경이 되어주는 책이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은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 깊은 영향을 미쳤던 사상을 모두 32가지로 정리해 담고 있다.

 '32가지'라는 말에 나도 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읽기 전에 머리로 내가 아는 사상들을 이리 저리 떠올려 보았는데 맴도는 게 몇 안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처음을 여는 '공화주의'부터 마지막 '관료주의'까지, 당신이 한 번이라도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는 '주의'는 거의 다 나온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어떤 사상이 궁금하든, 여기서 해소할 수 있을 거라는 얘기다. 책의 형식에 대해서도 말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은 사전처럼 죽 나열하지 않고 모두 다섯 개의 범주( '정치', '철학과 예술', '국가',' 경제' 그리고 '사회')로 구분해 그 범주 별로 사상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래서 보다 체계적으로 사상들을 헤아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사상은 아무래도 작가의 말마따나 속도보다 방향을 중시하는데, 대부분 무언가에 주안점을 두고 그 방향을 설정하기 마련이다. 책에서 구분한 범주는 바로 그런 주안점이 어디있는지 알게 한다. 거기에 맞춰 사상을 헤아리면 그 전모가 좀 더 쉽게 습득될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사상은 기존 사상에 대한 반발이나 저항에서 태어난 경우가 많다. 제국주의와 민족주의가 그러하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그러하듯 말이다. 범주 별로 헤아리면 사상들의 이러한 관계가 드러나 좀 더 유기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도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분명 제대로 음미해 볼 기회가 없었기에 막연한 가운데 서로 따로 놀기만 했던 사상들이 이 책으로 이리저리 제 짝과 친구들을 찾아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이렇게 말해도 선뜻 이 책을 들추지 못하게 만드는 염려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무래도 사상을 다루는 책이니까 어려우면 어쩌지 하는 것 말이다. 그렇다면 너무 괘념치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일단 설명이 정말 쉽고 다양한 인용과 현실 사례들을 들어 이런 책을 처음 접하는 이라 할지라도 부담없이 소화하도록 만드니까 말이다. 쉽다고 해서 설렁설렁 말하는구나 하고 넘겨짚으면 안된다. 이 책의 가장 커다란 미덕은 평이하게 한 사상에 대해 숙지해야 할 것을 정확하게 짚어준다는 것이다. 그 명암까지 말이다. 어떤 사상이든 완벽하지 않다. 영화 '1987'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자유민주주의는 반공주의로 변질되어 독재의 기초를 놓았고 죄 없는 이들을 함부로 잡아다 고문까지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자유를 빼앗고 커다란 고통에 빠뜨렸다. 자본주의는 또 어떤가? 모든 관계를 상품으로 만들고 오로지 자본만 중시하는 바람에 배금주의를 낳았고 아동을 중노동으로 혹사시키는 비윤리적인 처사 또한 비일비재하게 만들었다.


 사상은 비유하자면, '마징가 Z'와 다를 바 없다.

 나가이 고가 그린 원작만화에서 주인공은 자기 할아버지에게 마징가 Z를 물려받는데 할아버지가 이런 말을 하면서 넘겨준다.


 "신이 되어 인류를 구원할 수도, 악마가 돼서 세계를 멸망시킬 수도 있다!"



  사상도 다르지 않다. 잘 쓰면 사람을 지키지만 못되게 쓰면 남을 해치는 칼인 것이다. 사상이 가지고 있는 그런 어둠을 잘 인지해야만 사람을 이롭게 하는 진정한 사상이 될 수 있다. 덧붙여 그것이 바탕을 이루고 있는 나 역시 보다 더 제대로 된 삶을 살 것이다. 이는 자유민주주의가 가진 어둠을 헤아리지 못하여 지금도 맹목적인 신념에 차서 국정농단으로 국민에 의해 쫓겨난 이를 위하여 태극기를 열심히 휘두르고 있는 노인분들만 봐도 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이면을 짚어줄 뿐만 아니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의문과 거기와 연관지어 살펴볼만한 책까지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사상을 안다는 게 사유의 종착지가 아니라 사유의 출발이라는 것을 잘 알려준다고 하겠다. 작가의 다음과 같은 말 그대로다.


 책에 소개된 32가지 사상을 하나하나 짚어 나가며 독자들이 매의 눈으로 우리 시대를 진단하고 미래의 지도를 스스로 그려 나가시길, 나아가 자신만의 '사상'을 만들어 나가시길 간절히 바라 본다.(p. 8)


 이는 곧 더 나은 사회에 대한 모색이자 더 새롭고 나은 나의 모색이기도 하다. 결국 이 책을 읽는 일은 나무를 심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나무를 아무 땅에나 그냥 심지 않는다. 지금 심고자 하는 땅의 토질이 어떤지 구석구석, 면밀하게 살핀다. 나무를 울창한 숲이 되도록 자라나게 하려면 부지런히 더 좋은 토질을 가진 땅을 찾아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나무란 바로 '더 나은 미래'다. 토질을 살피는 건, 나라는 지층을 이루고 있는 게 뭔지 아는 일이다. 그 앎을 바탕으로 더 좋은 미래가 자랄 수 있는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그것도 어느 한 사상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더 많은 사상을 접하고 능동적인 사유를 통해 거기서 찾아낸 좋은 것을 포용해 나가면서.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은 바로 그런 일을 도와줄 것이다.


 안주라는 말을 했고, 제목에 '매혹'이란 말이 나와서 그런지 문득 세이렌의 유혹을 받는 오디세우스가 떠오른다.



  세이렌의 노랫소리는 너무나 매혹적이다. 누구든 듣기만 하면 그 노래에 취해 제정신을 놓아버린다. 그리고 그 노래에 이끌려 자기가 죽는 줄도 모르고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오디세우스가 돛대에 자기 몸을 묶고 있는 건 그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매혹과 관련지어 말한다면, 매혹에 안주한다는 건 곧 죽음이란 걸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사상 또한 그렇다. 어떤 사상이든 매혹 속에 안주하면 독선과 독재가 되었고 끝내 자신과 다른 많은 이들에게 엄청난 고통과 불행을 안겼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파시즘이 되어버린 독일의 나치와 소련의 스탈린 체제만 봐도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안주해선 안된다. 매혹이 멸망으로 이끄는 현혹이 아니라 보다 더 풍성한 삶으로 인도하는 문이 되기 위해선 나를 매혹시킨 것이 무엇인지 늘 살피고 거기서 어떻게 하면 나쁜 것을 피하고 좋은 것을 살려낼 것인지 항상 생각해야 한다. 사상이 진정한 자양이 되는 것은 언제나 부단한 성찰에 있는 것이다. 중세의 어둠을 계몽주의가, 또 그 계몽주의의 어둠을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찾아낸 것처럼.


 그러므로 우리 역시 안주하길 거부하여 키르케의 돼지가 되는 운명을 피할 수 있었던 오디세우스처럼 길을 떠나야 한다. 과거의 나라는 울타리 밖으로 박차고 나와 보다 더 새로운 나라는 '이타카'를 향하여 자신만의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어디서 어떻게 출발해야 할 것인지 알려주는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은 그 쉼 없는 걸음 속에서도 좋은 동반자가 되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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