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제션 - 그녀의 립스틱
사라 플래너리 머피 지음, 이지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미국의 작가 사라 플래너리 머피의 데뷔작, '포제션'은 제목에서 이미 밝히고 있는 것처럼 빙의(憑依)입니다.

 '포제션'이 가진 뜻 중엔 어떤 다른 이의 혼에 의해 육체가 소유되는 것도 있으니까요. 저는 이 빙의물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역시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인데요. 거기서 영매 역할을 맡았던 우피 골드버그가 자신의 육신을 이미 죽어 영혼이 된 패트릭 스웨이지에게 내어주죠. 그렇게 해서 연인 데미 무어와 직접 만나게 합니다. 우피 골드버그는 이 연기를 너무나 잘해내어 그 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흑인 여성으로는 두 번째 조연상을 거머쥐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포제션'의 주된 설정은 바로 그 영매가 기업화 되었다고 보시면 될 것 같네요. 주인공 여성 에디가 일하는 기업인 '엘리시움 소사이어티'는 죽은 영혼을 불러와 '바디'라고 불리는 직원 몸에 빙의시켜 그를 보고 싶어하는 산자들과 만나게 합니다. 어째서 이런 것이 가능한가라고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바디'들이 진짜 영매처럼 무슨 주문을 외우거나 수정 구슬을 쓰다듬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하는 영혼을 불러와 빙의를 가능케 만드는 '로터스'란 약이 있습니다. '바디'가 고객을 만나 만나고자 하는 영혼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은 뒤에 영혼이 생전에 지니고 있던 물건을 가지고 '로터스'를 먹으면 영혼을 소환해 빙의되는 것이죠. 물론 빙의가 되면 '바디'는 의식을 잃습니다. 빙의된 영혼에게 자신의 육체를 온전히 내어주는 그릇이 되는 것이죠. 주인공 에디는 이 '바디' 일을 무려 5년 째 해오고 있습니다.




 남에게 자신의 육신을 내어주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많이 하다보면 정체성의 혼란까지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바디'의 경우 대개 1 ~ 2년을 넘지 못합니다. 에디의 5년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인 것이죠. 어째서 에디만이 그것이 가능했는가? 그건 자신을 주장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에디는 자신을 조금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아예 자기를 텅 비우고 살아갑니다. 그렇게 '나'라는 게 없었기에 남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일이 오래 지속해도 될만큼 힘들지 않았던 것이죠. 그런데 한 남자 고객을 만나고 그런 에디의 삶에 균열이 생깁니다. 그 남자는 '패트릭 브래독'으로 최근 아내 실비아를 사고로 잃었습니다. 친구 부부와 함께 리조트로 놀러 갔다가 아내 혼자 호수 한 가운데서 익사 당한 채로 발견된 것입니다. 5년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어째서 패트릭만이 에디의 마음을 흔들 수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어쩌면 빙의한 실비아의 영혼이 강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에디는 겉잡을 수 없이 패트릭에게 빠져 듭니다. 그녀의 입술에 남은, 실비아가 자주 바르던 붉은 립스틱처럼 어떻게 해도 그를 향한 마음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회사의 규정마저 어기고 직장이 아닌 사적 공간에서 비밀리에 로터스를 습득, 패트릭을 위해 실비아가 되고자 합니다. 산 자신을 포기하고 죽은 아내가 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조차 쉽지 않은데요, 실비아 죽음에 얽힌 비밀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은 사고가 아니라 살해당한 것일 수도 있다는 정황이 서서히 드러나는 것이죠. 과연 에디가 찾아내는 진실은 어떤 것일까요? 그리고 그 진실을 알고도 에디는 패트릭의 죽은 아내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계속 지닐 수 있을까요? 이렇게 말하면 스릴러가 가미된 로맨스 소설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포제션'은 주체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소설이니까요. 그렇게 자신의 삶에 한 번도 주체가 되어보지 않았던 에디가 패트릭에 대한 사랑과 실비아의 존재로 점점 주체가 되어가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빙의와 사랑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타자에 대한 열림이라는 점에서 공통되기 때문입니다. '엘리시움 소사이어티'에서 일하는 '바디'에는 엄격하게 지켜야 할 규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떠한 경우든 고객과의 감정적인 접촉을 피하고 절대적인 거리를 둬야 한다는 것. 즉 타자에게 자신을 꼭꼭 잠궈두는 게 규율인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지요. 회사는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지키고 싶으면 빙의 하는 대상과 확실하게 거리를 둬야 한다고 말하지만 에디가 그랬듯이, 그 규율에 충실하면 충실할수록 자아는 빈 그릇이 되어가니까요.


 바로 이런 설정을 통해 소설은 더욱 명확하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드러냅니다. 진정한 주체가 되고 싶다면 타자와 변화에 더 많이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고 말이죠. 진실로 나답게 되는 것은 타자와 변화로 부터의 격리가 아니라 오히려 빙의처럼 겹침에 있다는 것을 에디 심리의 섬세하면서도 생생한 묘사를 통해 분명히 합니다. 이 소설은 출간된 그 해에 영국추리작가협회가 선정하는 존 크리시 대거상 롱리스트에 선정되었다고 하는데요, 거기엔 아마도 이러한 심리 묘사가 단단히 한 몫을 한 것 같습니다. 하여간 결론은 읽어볼만한 소설이라는 겁니다. 일단 설정이 참신하고 주체가 되는 것에 관한 이야기도 음미할만한 구석이 있으니까요. 빙의를 전면에 내세우는 작품은 잘 나오지 않는 편인데, 그런 면에서 흔치 않는 작품이니 색다른 것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만나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