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중서부의 부엌들
J. 라이언 스트라돌 지음, 이경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요리에 관한 소설을 읽는 일은 참 즐겁습니다. 그건 허기가 없을 때 읽어도 그렇습니다. 아, 이게 아닐까요? 오히려 허기가 질 때, 요리 이야기를 읽는 건 더 고통스러울까요? 마치 한없이 출출한 야밤에 '심야식당'이나 '고독한 미식가'를 볼 때처럼? 뭐, 그래도... 어떤 때는 맛있게 요리된 음식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을 때가 있잖아요? 그와 똑같이 먹음직스럽게 진행되는 요리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소설을 하나 만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위대한 중서부의 부엌들'이란 책입니다.


 무엇보다 제목이 제 시선을 확 사로잡았습니다. '위대한 중서부의 부엌'이라니!  보기만 해도 맛있는 요리들이 무진장 나올 것 같은 제목이 아닌가요? 거기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미국 중서부의 요리들이 가득 나온다고 하니, 어떤 사람들은 미국 요리만큼 대단찮은 것도 없다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도전 정신이 아직 강하고 그런 제게 미국 중서부 요리는 미지의 대지와 같은 지라 탐험해보고 싶은 욕망이 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처음 읽을 때는 그저 중서부 요리에 대해 아는 것만으로도 괜찮겠다 생각했는데, 웬 걸! 아주 재밌는 소설이었어요. 작가는 역시나 중서부인 미네소타에서 태어나고 자란 'J. 라이언 스트라돌'이란 남자인데 놀랍게도 이 소설이 데뷔작이네요. 제가 '놀랍게도'를 쓴 것은, 데뷔작이라는 게 얼른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재밌고 참신한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에바 토르발'이라는 여성이에요. 이 여자에 대한 소개는 이것 하나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미국의 '대장금'. 그 대장금처럼 음식을 한 입만 먹어봐도 그 어떤 미세한 재료까지 다 알아 맞추는(이런 장면을 읽을 때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한 것인데' 하는 대장금의 BGM이 절로 깔렸다는.) 뛰어난 미각의 소유자인데다 그것을 바탕으로 단 한 번의 만찬을 위해 지불해야 되는 돈이 무려 5천 달러인데도 사람들이 그것도 줄을 서서 몇 년의 기다림도 마다하지 않고 몰려드는 훌륭한 요리사가 되니까요. 성장 과정도 비슷해요. '대장금'처럼, 아주 어려서부터 부모를 모두 잃었고(엄마는 에바가 아기일 때 어떤 남자와 바람이 나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떠났고, 그 뒤 얼마 안 있어 아빠는 갑자기 사망합니다.) 어린 시절엔 동급생에게 말못할 괴롭힘을 당했으며 아주 가난한 환경에서 홀로 남은 양아빠를 병수발해야 했으니까요. 다시 말해, 그 대장금처럼 편안하게 요리사가 될 환경은 아니었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에바가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요리사가 될 수 있었나가 이 소설을 감상하는 하나의 핵심 포인트 입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이 소설은 에바 토르발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에바 토르발의 입장에서 전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에바 토르발이 주인공처럼 나오는 것은 오직 딱 하나, 두 번째 장인, '초콜렛 아바네로'밖에 없어요. 그건 에바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자신을 무던히 괴롭히는 동급생을 자신이 벽장에서 몰래 키우고 있던 고추를 이용하여 거하게 복수한다는 내용이죠. 여기서만 에바 토르발이 주인공으로 나오고 다른 장에서는 모두 다른 사람들이 주인공입니다. 우리는 각 장의 주인공이 되는 인물을 통해 그들의 시선으로 간접적으로 에바를 봐야만 하죠. 이 구성이 제겐 참신했습니다. 요리사가 주인공인 소설의 경우 대부분은 '대장금'처럼 그를 무대의 정중앙에 세워두고 어떻게 그가 시련을 딛고 성공하게 되었나만 보여주니까요.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러지 않고 주변 인물의 내면을 끌고 들어와 그들은 왜 에바가 이룬 것을 놓쳐버렸나를 더많이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거꾸로 에바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보여줬던 것이죠. 결국 '위대한 중서부의 부엌들'은 정말로 많은 중서부 요리들이 나오긴 하지만 요리 보다 삶, 그것도 실패자의 삶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는 소설이었던 겁니다. 하기사 삶과 요리가 다르지 않긴 하죠. 삶은 요리를 만드는 과정과 많이 닮아 있으니까요. 소설에도 그런 말이 나와요. 마지막 부분의 연회 장면에서 요나스가 손님들에게 에바의 요리에 대해 '여러분은 지금 에바의 인생을 맛보셨습니다'라고 하거든요. 이처럼 요리를 매개로 성공 보다는 실패가 더 많이 존재하는 우리네 삶을 풀어간 이야기가 바로 '위대한 중서부의 부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내 삶의 꼬라지가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이 소설을 읽으면서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한 번 찬찬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뭐, 이런 걸 따지지 않아도 이야기 자체만으로 충분히 재미있기 때문에 요리를 주제로 한 진짜 근사한 소설을 만나고 싶으셨다면 주저하지 말고 이 소설을 손에 들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혹시 이자크 디네센의 '바베트의 만찬'이란 소설을 읽어보셨나요? 제가 참 좋아하는 소설인데, 파리에서 가장 뛰어난 요리사가 파리 코뮌 때 프랑스 정부에 맞섰다는 이유로 노르웨이로 숨어 들어와 과거를 숨기고 한 집의 하녀가 되어 살아가다 자신의 복권이 당첨되자 그 당첨금을 모조리 단 한 번의 만찬을 위해 써버린다는 내용으로 이 만찬 장면이 '위대한 중서부의 부엌'에서 에바가 달마다 여는 만찬과 흡사하기에 이 소설을 읽으면 얼른 생각나는 작품입니다. '바베트의 만찬'에서 디넨센은 그 요리사, 바베트를 통해 진정한 예술가는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 보다 자신이 원하는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노력 자체를 즐기는 존재라는 것을 아주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에바도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노력 자체를 즐기는 것엔 주어진 환경도 포함됩니다. 주어진 환경이 아무리 척박하다 해도 거기에 굴하지 않고 그 한계 내에서 자신의 꿈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것이 바로 디넨센의 바베트와 에바가 걸어가는 길이죠. 이렇게 보자면 상세하게 말하지 않아도 이 소설 속의 다른 인물들이 왜 실패했는지, 특히 에바를 버린 진짜 엄마 신시아와 비교하여(소설의 마지막은 이 신시아가 주인공입니다.), 감을 잡으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기회를 날려버립니다. 그게 정말 자신에게 소중한 기회였다는 것을 언제나 아주 뒤늦게 깨닫게 되죠. 그런데 정작 그 순간, 놓친 기회만 아쉬워하지, 왜 그렇게 되었나에 대해선 잘 생각해 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놓쳐버린 보상을 중심으로만 생각하지, 그렇게 어리석은 선택을 낳았던 삶의 태도에 대해선 제대로 시간을 들여 복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 소설은 그런 복기의 시간을 가져다 줍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실패자의 얼굴에 과거의 언젠가 우리 얼굴이 언뜻 겹치기 때문이죠. 저는 소설의 주제와 관련하여 왜 이 소설이 하필이면 요리를 소재로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것은 요리야말로 재료로 주어진 것이 최선의 가치를 가지도록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란 걸 말이죠. 주어진 것보다 요리사의 능동적인 작업이 가치의 모든 것을 좌우합니다. 아마도 인생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해요.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환경을 탓하지 말고 그것으로 최상의 맛을 낼 수 있는 자신만의 레시피를 지금부터 만들어보라고!


 이 소설을 읽고 난 뒤에 당신이 만들게 될 레시피는 과연 어떤 것일까요? 문득 궁금해지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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