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트라비아타의 초상 - 개정판 변호사 고진 시리즈 2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와우! 결말에서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도진기 작가의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을 읽고 난 뒤 든 첫 소감입니다. 정말 충격적인 반전이 있군요.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은 도진기 작가의 초기작입니다. '붉은 집 살인사건'에 이은 두 번째 작품으로 알고 있어요. 그것이 이번에 새로이 '황금가지'에서 나왔네요. 눈길을 확 잡아끄는 노란 표지로.



 베르디의 유명한 오페라 제목이기도 한 '라 트라비아타'는 '길을 잃어버린 여인'을 뜻합니다. 살해된 정유미를 뜻하는 것일까요? 표지의 열쇠는 사라진 104호의 현관 열쇠입니다. 그 곳은 정유미와 함께 발견된 시신의 남자가 거주하는 곳이죠. 아마도 범행 방법을 알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단서라 표지에 나온 것 같습니다.


 도진기 작가에겐 두 가지 시리즈가 있습니다. 하나는 어둠의 변호사 '고진'이 활약하는 시리즈고, 다른 하나는 해결사 '진구'가 활약하는 시리즈죠. 그동안 진구 시리즈는 제법 많이 만나봤는데, '고진' 시리즈는 처음입니다. 아, '진구' 시리즈에서 그가 한 번 까메오처럼 출연한 것을 본 적도 있군요. '가족의 탄생'이란 작품에서 말이죠. 어쨌든 그렇게 '라 트라비아타'로 고진 시리즈와 첫 대면을 해봤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솔직히 말해, 진구에겐 미안하지만 '진구' 시리즈 보다 더 좋았어요. 아마도 제가 '본격파'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은 순도 100%의 본격 미스터리이니까요.


 아, 본격이라는 말은 순수하게 추리로 트릭을 풀고 범인 찾기에만 집중하는 소설을 말합니다. 그동안 도진기 작가의 본격 미스터리를 안 접해본 것은 아니지만 그건 모두 단편이었습니다.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처럼 장편으로 만나본 것은 처음인데, 정말 잘 썼더군요. 처음부터 끝까지 잔뜩 몰입하게 만들었습니다. 소설은 '붉은 집 살인 사건'에서 등장한 이유현이 법정에서 커다란 실망감을 얻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서초구의 한 독신자 아파트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범인을 잡아 재판에 넘겼는데 한 변호사의 도움으로 풀려난 것이죠. 그 방법이 실로 절묘했기에 이유현은 그 변호사가 누군지 능히 짐작합니다. 바로 '붉은 집 살인 사건'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어둠의 변호사 '고진'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그것을 깨달은 이유현이 고진에게 전화로 연락하면서 이야기는 이제 독자를 그 살인 사건의 현장으로 데려갑니다.


 피해자는 정유미라는 25세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집인 204호 거실에서 목에 송곳이 박혀 죽은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시신 한 구가 더 있습니다. 남자로, 그는 나중에 바로 아래층인 104호에 사는 사람이고 살해된 정유미를 예전부터 스토킹해 오던 인물로 밝혀집니다. 이 사건을 경찰이 발견하게 된 것은 정유미의 애인 김형빈의 신고였습니다. 김형빈은 정유미와 통화하다 '강도다'라는 말을 듣고 얼른 경찰에 신고한 것입니다. 이제 서초경찰서 강력반 팀장 이유현의 수사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 사건 난해하기 그지 없습니다. 정유미의 현관은 비밀번호를 눌러야 들어갈 수 있는 도어락이 걸려 있는데, 그 비밀번호는 정유미와 애인 김형빈만 알고 있다고 합니다. 이 집엔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할머니도 한 분 드나들고 계셨는데 정유미는 자신에게도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았으며 언제나 그녀가 먼저 열어줘서 들어갔다고 진술합니다. 살해된 현장엔 그 어디도 강제로 침입한 흔적이 없기 때문에 알리바이가 확인된 김형빈을 용의자에서 제외하면 침입 경로는 오직 베란다 하나 뿐입니다. 이것은 아파트 입구 CCTV를 확인한 결과 다른 외부 침입자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기에 더욱 굳어지게 됩니다. 그래도 혹시 동기를 가진 범인이 있지 않을까 하여 정유미 주변 인물을 샅샅이 탐문했지만 너무나 깨끗하여 결국 동기가 아니라 범행 방법에 치중하여 베란다 침입이 가능한 물품을 언제나 사용할 수 있는 자를 체포합니다. 그런데 그 자가 고진의 조력으로 풀려난 것입니다. 따지듯 자신을 찾아온 이유현에게 고진은 범인이 정말 흥미로운 존재라며 자신의 추리를 들려줍니다. 이 때부터 고진의 추리쇼가 3회에 걸쳐서 상연됩니다. 한 번에 그 세 가지를 다 말하는게 아니고 하나씩 풀어놓는데 그 하나만 듣고 이유현이 수사하게 됩니다. 그러나 막히고 그러면 고진이 두 번째 가능성을 들려주고 또 막히면 세 번째 가능성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마치 3막으로 된 추리극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고진의 추리 정말 탁월합니다. 그 방법에 나름 놀랐습니다. 이 사건엔 두 가지 트릭이 있습니다. 하나는 '심리트릭'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차 트릭'입니다. 이 트릭을 하나하나 논파해 내는 고진의 추리가 정말 절묘합니다. 본격 미스터리를 즐기는 것은 어디까지나 어려운 트릭을 정교한 추리를 통해 아귀가 딱딱 맞게 해결하는 것을 보는 쾌감 때문이죠. '라 트라비아타'는 그런 쾌감을 충분히 선사합니다. 소설에서 고진은 이유현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현대의 기술 앞에 범죄의 설자리는 갈수록 없어지고 있다고들 말하지. 지문, DNA, 혈흔 분석 같은 거야 물론 예전부터 있었지만, 요즘은 사건 생기면 딱 세 가지만 보면 되잖아? 휴대폰, 이메일, 그리고 통장 계좌. 이거만 뒤져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누구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지 다 나와. 그래서 전통적인 추리 소설의 트릭은 대부분 현대에는 성립이 안 돼. 하지만 말이야. 난 좀 생각이 달라.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 만큼 새로운 트릭의 지평도 그만큼 넓어진 거야. 수사 기관을 속일 수단도, 기발한 범죄의 여지도 얼마든지 더 생겨난 거야. 그런 내 이론을 범인이 그대로 실현해 보여 줬어. 정말 재미있지 않나? 하하하."(p. 160 ~ 161)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은 그야말로 그런 고진의 생각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놀라운 반전까지 마련되어 있는데, 이것이 또 전혀 뜬금 없지 않습니다. 이 말은 사전에 단서가 다 제시되어 있으며 꼼꼼하게 읽고 잘 추리했다면 알 수 있다는 것이죠. 한 번 도전해 보시죠. 당신은 과연 범인을 찾아낼 수 있을까요? 이런 점까지 더해 도진기 작가가 왜 초기에 발표한 두 작품만으로도 명성을 얻었는지 잘 알겠더군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면 한 번 꼭 읽어보세요. 분명 어릴 때 셜록 홈즈나 엘큘 포와로의 추리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즐거움을 다시 맛보게 해 줄 것입니다. 정작 도진기 작가는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을 읽고 미스터리계에 입문했다고 하지만요. 후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