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티모어의 서
조엘 디케르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살면서 한 번은 하게 마련인 질투. 질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얼마 없습니다. 들뢰즈는 질투를 주체가 절대적 한계에 이르렀을 때 가지게 되는 감정이라 말했죠. 자기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질투를 하게 된다고 말이죠. 질투가 사랑에서 많이 나오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겁니다. 사랑은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에 달린 일인데, 한 사람의 마음만큼 내 뜻대로 하기에 어려운 것도 또 없으니까요. 한 마디로 질투란 내가 가진 결핍과 그것을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한계에 대한 자각입니다. 그 결핍과 한계가 우월한 타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닥쳐오는 것이죠. 거기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 즉 결핍과 한계를 그대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그것을 부정하고 어떻게든 내 힘으로 메우려 하느냐에 따라 삶은 전혀 다른 결말을 준비합니다. 


 셰익스피어였던가요? 질투가 겸허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한 것은. 그렇게 결핍과 한계를 겸허하게 인정하면 질투는 더 나은 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동력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결핍을 메우고 한계를 없애는 것에만 집착하면 '오셀로'처럼 자신의 삶마저 깡그리 파괴되겠죠. 조금은 뜬금없게 질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이번에 읽은 조엘 디케르의 '볼티모어의 서'가 바로 질투에 대한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조엘 디케르는 이미 그의 이름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작품이기도 한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적이 있죠. '볼티모어의 서'는 그에 뒤이은 작품으로 '해리 쿼버트'의 주인공 마커스 골드만이 그대로 등장합니다. 그렇다고 '해리 쿼버트'의 속편인 것은 아닙니다. 주인공만 같을 뿐 실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죠. 전작은 해리 쿼버트 교수와 관련한 사건이었지만 이번 소설은 마커스 골드만 자신과 관계있는 사건이니까요.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새로운 소설을 쓰기 위해 마커스는 플로리다에 있는 보카레이턴으로 갑니다. 거기서 하루는 집 잃은 개를 발견하여 주인을 찾아주는데, 뜻밖에도 예전의 연인이었던 알렉산드라인 겁니다. 8년 전, 마커스는 자신의 사촌인 힐렐 집안에 잇달아 닥쳐온 비극 때문에 알렉산드라를 떠났었죠. 비록 헤어졌지만 그녀에 대한 미련이 언제나 있었던 마커스는 알렉산드라와 재회한 김에 다시 사랑의 불길을 지필 수는 없을까 하여 자신이 찾아준 개를 빌미로 만남을 이어갑니다. 알렉산드라가 이미 다른 남자와 사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알렉산드라를 통해 다시 한 번 그녀와 열렬하게 사랑했던 과거의 시간을 떠올린 마커스는 그 시절 알렉산드라 못지 않게 자신의 인생을 온통 지배했던 '골드만 갱단'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습니다. 그 시절 마커스는 비슷한 또래의 사촌 힐렐과 그의 아버지이자 마커스의 큰 아버지가 되는 사울이 거둬들여 키우게 된 우디와 늘 붙어 다녔는데 모두 형제가 없었던 지라 결속을 다진다는 의미에서 지어붙인 이름이 바로 '골드만 갱단'이었습니다. 거기에 힐렐의 이웃이 된 알렉산드라와 그의 오빠 스콧이 합류합니다. 마커스는 그때부터 알렉산드리아에 대한 사랑을 키워갔는데 힐렐 또한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마커스는 '골드만 갱단'을 기준점으로 하여 과거의 이야기들을 하나 하나 풀어갑니다.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오고 가며 전개됩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보였고 만날 때마다 마커스의 가족을 주눅 들게 만들었던 큰아버지의 가족이 어떻게 점차 무너져 갔던가를 중심으로 해서 말이죠. 그 몰락의 중심에 바로 질투가 있었던 겁니다. 소설은 마커스 아버지와 힐렐의 아버지를 통하여 처음부터 그것을 보여줍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모두 누가 봐도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 큰아버지에겐 살갑게 대하고 그렇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마커스 아버지는 냉정하게 대하는 것으로 말이죠. 그것을 통해 사회적 성공이야말로 타인의 인정을 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을 안 마커스는 사울을 자기 인생의 이상적 모델로 여깁니다. 힐렐은 변호사인 아버지와 의사인 어머니를 닮아 뛰어난 머리를 가졌지만, 몸이 왜소해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합니다. 빈센트란 아이가 그것을 주도했는데 정말 엄청난 괴롭힘을 받습니다. 거기서 힐렐을 구해준 것이 우디였습니다. 원래 우디와 힐렐은 아무 관계 없었는데, 소년원에 있는 우디를 힐렐의 아버지 사울이 특별한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그에 보답하기 위해 정원 가꾸는 일이라도 하려고 왔다가 빈센트가 힐렐을 구타하려는 것을 보고 달려가 도와준 것이 인연이 되어 힐렐과 우디는 형제보다 더 친하게 지냅니다.


 소설은 한동은 마커스까지 가세한 '골드만 갱단'의 이런 저런 좋은 추억을 보여주다 무엇보다 아름답고 인자했던 큰어머니의 사고를 기점으로 어두운 색채를 늘려갑니다. 힐렐과 우디 그리고 큰아버지 사울 모두 소설이 진행될수록 가파른 경사의 몰락 아래로 굴러떨어집니다. 그것은 필연이 아니었습니다. 얼마든지 달리 비켜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락의 골짜기로 떨어져 버린 것은 질투 때문이었습니다. 사울은 자신을 무엇보다 이상적 모델이라 여기던 힐렐과 우디가 자신보다 이웃 패트릭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자 그 이유가 순전히 자기보다 부유하고 성공한 탓이라 생각하여 패트릭을 질투한 나머지 그만 삶의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아내가 아무리 애정을 갈구해도 모른 척 하고 말지요. 똑같은 실수를 마커스 역시 합니다. 스포일러가 되기에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결국 알렉산드라와 결별까지 하게 만들었죠. 이처럼 소설 곳곳엔 질투가 있고 그 질투가 낳은 파국이 수놓아져 있습니다. '볼티모어의 서'를 한마디로 정리하라고 하면,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질투의 대장정'이라고.


 우리 눈앞을 스쳐 가는 소설 속 오셀로의 계승자들을 보노라면 아무래도 새삼 질투의 의미를 되새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결국 무엇 때문에 질투하고 왜 거기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하고 말이죠. 그것이 바로 지독한 자기애의 산물이라는 것을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문득 깨닫습니다. 그들이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의 삶마저 붕괴시키는 어리석은 선택과 행동을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너무 사랑하고 과신한 결과니까요. 질투의 순간은 내 한계를 절감하고 나를 새롭게 바꿔야 한다는 신호였지만 자기애에 깊이 빠져버린 이들에겐 그저 자신에 대한 무시이자 삶이 이유 없이 가한 공격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에 대하여 내려놓기보다는 더 움켜쥐려 했고 그럴수록 자신이 힘껏 움켜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자신의 심장이란 걸 깨달아야 했습니다. '볼티모어의 서'는 알고 보면 그런 '어리석음의 연대기'입니다. 오늘도 질투 때문에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분이 어딘가 계시겠죠? 그런 분 머리맡에 살짝 놓아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우리 모두 익히 경험한 바이지만 질투한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억울과 분노의 질투는 자신만 더 나쁘게 만들 뿐입니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보다 좋은 변화의 계기로 삼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일 것입니다. 문득 박찬옥 감독의 영화 '질투는 나의 힘'이 떠오르네요. 그 영화도 제목처럼 질투를 중심에 놓고 다루는 작품이었죠. 질투가 오로지 부정적인 경험인 것만은 아니며 그것을 타인과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긍정하는 계기로 받아들인다면 더없는 자기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잘 보여주었습니다. 


 '볼티모어의 서' 또한 이런 자각을 어느 순간 가져다줍니다. 648 페이지의 두툼한 분량이지만 일단 잡고 읽으면 그건 별문제가 아닐 겁니다. 몰입시키는 힘이 있으니까요. 질투로 혹독한 속앓이를 해 보신 분이 있으시다면 이 소설을 벗하며 그 질투가 과연 내게 무엇을 남겼나 헤아리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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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7-11-01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 그런 생각해요 다른 사람이 나보다 나아서 좋아하겠지 하는... 그게 자기애일까요 자신한테 자신이 없는 것 같기도 한데... 자신을 먼저 좋아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누가 어떤지는 마음 쓰지 않을지도 모르죠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다시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생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이 그런 건 아니겠습니다 다른 사람 마음은 다른 사람 거다 생각하면 좀 편해지기는 하겠지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