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에 걸린 소녀 밀레니엄 (문학동네) 4
다비드 라게르크란츠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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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이게 꿈이야 생시야? 

 갑자기 내 앞에 출현한 책을 보고 볼부터 일단 꼬집었습니다. 얼얼한 통증 속에서도 책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맙소사! 진짜였던 것입니다. 정말 계속된 것입니다. 저자의 죽음으로 3부로 끝나버려 너무나 아쉬웠던, 그래서 3부를 읽을 땐 되도록 천천히 읽어 결별의 시간을 하염없이 지연시켜야 했던 그 <밀레니엄> 시리즈가 돌아온 것입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밀레니엄 시리즈가 돌아온 것은 의미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 사람이 돌아와야 밀레니엄 시리즈의 귀한 역시 의미 있는 것입니다. 밀레니엄 시리즈에 있어서 붕어빵의 앙꼬라 할 수 있는 바로 그 사람. 네, 맞습니다. 구태여 이름까지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부르겠습니다.


 리스베트 살란데르!

 3부작을 끝으로 이제 영영 못 만나나 했던 그녀가 이렇게 떡하니 다시 찾아 온 것입니다. 그것도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하지만 3부작에서 계속된 그녀 과거의 이야기와 여전히 이어진 채로! 그것도 3부작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간절히 제가 바랐던 것, 그러나 이뤄질 수 없다고 여겼던 것인 리스베트 살란데르의 과거 이야기가 완전히 결말 짓는 것을 보고싶다는 갈망을 충족시키는 형태로! 이러니 제가 어떻게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환영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밀레니엄 시리즈의 4편인 '거미줄에 걸린 소녀'를 말이죠. 비록 저자가 원작자인 스티그 라르손이 아니라 해도.



 네, 저자가 다른 사람입니다. '다비드 라게르크란츠'라고 하는군요. 스티그 라르손과 똑같이 스웨덴 출신에다 관록 있는 범죄 전문 기자 출신 작가로 스웨덴에선 꽤나 유명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번역 소개된 '앨런 튜링 최후의 방정식'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저도 아직 이 책은 못 읽어봤는데, '거미줄에 걸린 소녀'가 밀레니엄의 팬으로서 제법 높고 깐깐하다고 자부하는 제 눈에 너무나 마음에 들었으므로 그 책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거미줄에 걸린 소녀'는 천재 해커인 리스베트의 면모가 한껏 살아난 작품으로 해킹과 보안의 세계가 수학과 맞물려 본격적으로 펼쳐지는데 '앨런 튜링의 최후의 방정식'과 연관 있어 보입니다. 무엇보다 소설 초반에 등장하여 미스터리를 낳는 존재가 되는, 인공지능의 세계적 권위자 프란스 발데르가 아무래도 앨런 튜링을 모델로 쓴 것 같거든요. 남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자신의 연구에만 매진하며 그것을 위해 인간관계까지 기꺼이 희생한다는 점에서 앨런 튜링의 그림자가 엿보이네요. 실제 튜링은 동성애자로 결혼을 한 적도, 아버지가 된 적도 없지만 프란스 발데르는 분명 튜링이 결혼을 하여 아버지까지 된다면 과연 어떨까 하는 상상에서 태어난 것 같아요. 물론 다비드 라게르크란츠가 맞다고 확인해주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튜링이라 생각하고 읽으니 더 재밌더군요. 그래서 프란스의 최후가 더욱 안타깝기도 했지만 말이죠.


 스웨덴 판도 표지에 삼부작과 통일성을 주었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커버이기도 합니다.


 아, 이런 기쁜 마음에 주저리 주저리 떠들었더니 아직 줄거리조차 소개하지 않았네요. 당신의 이마에 내 천자(川)가 그려지기 전에 얼른 말하도록 할게요. 소설은 한 남자의 회심으로 시작합니다. 그가 바로 프란스 발데르입니다. 그는 늘 자신을 형편없는 아버지로 여겨왔어요. 연구를 핑계대고 가족을 소홀히 한 까닭이죠. 더구나 하나밖에 없는 자식은 여덟 살이 되었는데도 말 한 마디 못하며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폐아인데도 말이죠. 아내와 이혼하고 자식마저 버리고 미국으로 떠났다가 몇 년이 지나 그는 이제껏 못했던 아버지 역할을 다하기 위해 스웨덴으로 돌아와 다른 남자와 결혼한 아내에게서 아들 아우구스트를 데려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이 아우구스트에게 놀라운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눈으로 본 것을 마치 사진으로 찍은 것처럼 똑같이 그리는 능력이죠. 그것을 통해 프란스는 아우구스트가 '서번트'(자폐아 열 명 중 한 명은 '서번트'라고 합니다.)라는 것을 알게되고 자신이 연구하고 있던 인공지능 개발까지 중단하고는 아들의 서번트 능력을 개발하는데 주력합니다. 놀랍게도 아우구스트의 서번트 능력은 그림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처럼 수학에도 엄청난 재능이 있었습니다. 원래 서번트는 하나의 능력만 가질 수 있는데 아우구스트는 두 가지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것까지 보게 되자 프란스는 아우구스트의 천부적인 능력을 증진시키는 것을 자신의 사명이라 생각하고 오직 아들의 양육에만 심혈을 기울입니다.


더스트 커버를 벗긴 모습입니다. 은근히 분위기가 있네요.


 한편, 밀레니엄 시리즈 또 하나의 주인공이자 '밀레니엄' 지의 대표 기자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는 퇴출될 위기에 처합니다. 재정난 때문에 노르웨이의 미디어 그룹인 세르네르의 투자를 받아들인 적이 있는데 그것을 주도한 장본인이자 미카엘이 신출내기 기자이던 시절 동료이자 친구이기도 했던 오베가 그룹 내 자신의 입지가 흔들리자 그 위기를 빠져나갈 목적으로 '밀레니엄'의 근본 편집 방침에 간섭을 해 온 것입니다. '밀레니엄'이 전적으로 거부했던 친 기업적인 기사나 가쉽 거리를 쓰라고 말이죠. 여기에 미카엘이 반발하자 그를 쫓아내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위기에 봉착한 미카엘에게 리누스란 남자가 찾아옵니다. 미카엘이 프란스 발데르를 꼭 만나봐야 한다면서 말이죠. 네, 여기서 미카엘과 프란스의 접점이 생깁니다. 리누스는 프란스가 미국에서 돌아온 것은 모종의 이유가 있는데 그건 '솔리폰'이란 회사가 자신의 기술을 도둑질한 증거를 잡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어쩌면 그것은 거대한 비리일지 모르니 프란스 발데르를 만나봐야 한다고 말이죠. 반신반의하는 미카엘에게 리누스는 프란스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 말해줍니다. 그것을 도와준 한 여성 천재 해커가 있었다고 말이죠. 미카엘은 그가 누군지 바로 짐작합니다. 여기서 드디어 등장합니다. 그토록 재회하고 싶었던 우리의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말입니다. 그렇게 미카엘은 2부에 했던 방법을 다시 사용하여 몇 년만에 리스베트와 연락을 시도합니다.


표지를 넘기면 이렇게 저자의 사인과 스웨덴과 스톡홀롬 시내 지도가 있습니다. 뒷면에도 스톡홀롬 근교와 군도 지도가 있습니다.


 그런 리스베트는 3부에 뒤이어 여전히 개인적인 추적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아버지 살란데르가 남긴 어두운 유산을 말이죠. 리스베트는 아버지의 죽음과 더불어 아버지가 건설한 범죄조직이 사라졌다고 믿지 않습니다. 하나를 잘라내면 두 개의 머리가 자라는 히드라처럼 아직도 이 세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버지의 유산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유산을 찾아내 깡그리 파괴할 때 비로소 아버지에 대한 복수도 완성된다고 믿는 리스베트는 해커로서의 능력을 총동원하여 해킹의 난공불락 요새였던 국토안보부까지 무너뜨리며 드디어 유산의 꼬리를 찾아냅니다. 바로 '더 스파이더'라는 이름의 조직을 말이죠. 네, 제목에 나와있는 거미줄은 바로 그 조직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거미줄에 걸린 소녀'란 두말 할 것도 없이 그 조직과 소녀, 리스베트의 대결에 대한 암시였던 셈이죠. 제목처럼 정말로 조직과 리스베트 간의 한 판 승부가 펼쳐집니다. 상세한 소개는 읽으며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위해 생략하도록 할게요. 다만 리스베트 혈육과 관련된 중요한 사실 하나가 밝혀진다는 것만 말하겠습니다. 리스베트의 혈육과 관련하여 2부와 3부에 걸쳐서 그렇게나 지속적으로 말해왔는데 아직도 남아 있는 게 있다니! 궁금하시죠? 그렇다면 얼른 4권을 읽으세요? 분명 저처럼 5권과 얼른 만나게 되기를 간절하게 바랄 것입니다.


 그런데 조직의 이름이 '스파이더'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조직의 수장이 거미와 같은 존재였던 것이죠. 거미처럼 자신의 존재감이란 거미줄로 타인을 꼼짝 못하게 만들어 제 멋대로 조종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습니다.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그는 언제나 중심입니다. 늘 아웃사이더로 다른 이들과 잘 못 섞이며 배척 받는 것도 당연했던 리스베트와는 그야말로 정반대인 것이죠. 때문에 둘의 대결이 더욱 흥미롭습니다. 더하여 여기엔 리스베트가 <밀레니엄> 시리즈 내내 이어지는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하게 되었고 해킹의 세계로 빠져들었는지에 대한 것도 나옵니다. 그만큼 리스베트의 내면으로 더 깊이 들어가게 합니다.


 리스베트가 그 때 얼마나 이해했고 나중엔 어느 정도나 알게 됐는지는 전혀 모르네. 어쨌든 살라첸코가 자기 엄마만 괴롭힌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거야. 이자가 다른 여자들의 삶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맹렬한 분노에 사로잡혔어. 바로 그 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리스베트가 태어났다고 할 수 있네. 여자를 증오하는 남자들을...

 "증오하는 여자."

 "정확하네.(...)" (p. 427)


 팬으로서 작가가 바뀌면 아무리 똑같은 캐릭터가 나온다고 해도 뭔가 튀거나 어색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당연히 걱정하게 마련입니다. 실은 저도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돌아오는 것만으로 기쁘긴 했지만 혹시 이상한 모습을 보이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건 기우로 끝났습니다. 스티그 라르손의 리스베트 그대로더군요. 개성과 매력은 한결같으면서 능력만 좀 업그레이드한 느낌이었습니다. 어쨌든 변함 없어 좋았습니다. 덕분에 아무런 어색함 없이 다시 찾아온 밀레니엄 시리즈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습니다. 작가가 전작을 많이 연구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도 스티그 라르손의 리스베트와 무리없이 어울리는 것을 보면 말이죠. 그래서 리스베트가 본격적으로 활약할 5부가 더욱 기대되는군요. 4권을 다 읽은 지금,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어서 5권을 읽고 싶다'는 것. 기다리다 현기증으로 쓰러지기 전에 얼른 나와 주세요.


 스웨덴에서 만든 영화 <밀레니엄> 시리즈. 누미 라파스가 리스베트를 연기했었죠. 이 역할로 '에이리언 프로메테우스'의 주연까지 되었구요. 갈수록 여전사가 되는 리스베트의 모습을 누미 라파스가 잘 소화했기에 전 리스베트 하면 누미 라파스 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너무 지나서(삼부작은 2009년에 나왔습니다.) 4편이 영화로 만들어져도 다시 리스베트 연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야속한 세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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