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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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만이다. 그러고 보니 리베카 솔닛의 책은 꼭 2년 주기로 만났던 것 같다. 그녀의 이름을 처음 뇌리에 각인시켰던 책, '이 폐허를 응시하라'를 읽은 2년 뒤에 우리나라에서 정말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킨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만났고 또 그 2년 후에 이렇게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와 해후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리베카 솔닛의 책이 그것만 나왔던 것은 아니다. '이 폐허를 응시하라'가 나오기 전에도 창비에서 '어둠 속의 희망'이 나와 있었고 민음사에선 '걷기의 역사'(이 책은 계속 절판이었다가 리베카 솔닛이 인기를 얻자 '걷기의 인문학'으로 제목을 바꿔 재간되었다.)가 나와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책들은 리베카 솔닛의 이름을 결정적으로 널리 알린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와 결이 참 달랐다. 넓게 보자면 모두 환경에 대한 책으로 지금 우리가 그녀의 이름을 대표적으로 인식하는 '페미니즘'은 아니었던 것이다. 원래 이 환경 분야가 리베카 솔닛이 전력을 기울이는 쪽이기도 했다. 그랬던 그녀가 왜 지금은 페미니즘 투사가 되었을까?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는 바로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을 들려준다.



 2014년 5월 23일. 미국 아일라비스타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22세의 남성 엘리엇 로저가 칼과 총 그리고 차량으로 모두 6명을 살해하고 13명을 부상입힌 것이다. 저지른 짓도 저지른 짓이었지만 그 동기가 더욱 충격이었다.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은 여성들과 그 여자들과 즐거이 어울리는 남자들에 대한 적개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원래 대학 여학생 사교 모임 회원들을 대량 살인할 계획을 세웠다. 그것이 여의치 않자 제 앞에 나타난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인 것이었다. 한 마디로 동기의 핵심엔 '여성 혐오'가 있었다. 많은 주류 언론은 그러한 동기를 무시하고 그저 한 정신병자의 소행으로 정리해버렸지만 개인들, 특히 여성들은 그럴 수 없었다. 적의와 살해의 대상이 바로 자신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동안 억눌려 있었던 목소리들을 분출시켰다. 주류 언론의 한결같은 침묵이 그 목소리들을 더욱 봇물 터지듯 흘러나오게 만들었다. 발달된 SNS를 통하여 '#yesallwomen(여자들은 다 겪는다)'이란 해시태그와 함께 그것은 거세게 흘러나왔다. 저마다 여성으로 살면서 당했던 고통, 가졌던 불안과 공포를 고백하는 물줄기였다. 


 여자들은 자신이 겪은 희롱, 위협, 폭력, 두려움을 말하기 시작했고, 서로의 목소리를 보강했다.(p. 130)


 계기가 우리나라와 참 비슷하다. 우리나라 역시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벌어진 한 살인 사건이 다시금 페미니즘에 주목하도록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물줄기가 아일라비스타에서 일어난 비극이 결코 단순한 하나의 사건이 아니며 실은 여성이 처한 현실의 적나라한 진실이 빙산의 일각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라는 걸 사방에 외쳤다. 봉기의 함성 그대로였다. 리베카 솔닛은 말했다. '2014년은 남성의 폭력에 항거하는 페미니즘 봉기의 해(p. 120)'라고. 


 이것이 환경 쪽에 머물러 있던 그녀의 발걸음을 바꾸었다. 환경을 버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에 대한 열정과 똑같은 크기로 페미니즘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그녀는 이 순간을 몇십년이나 기다리고 있었고(p.124) 마침내 타오른 그 불길을 언제까지나 타오르게 해야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와 이번에 나온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는 그런 마음의 산물이었다. 보다 인문학적이었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와 달리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더 많이 다룬다. 앞의 책이 총론이라면 이번 책은 각론 같은 느낌이랄까?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는 1부, '침묵이 깨어지다'와 2부, '이야기를 깨뜨리다'로 이뤄져 있는데, 제목 그대로 1부는 2014년을 기점으로 여성들의 침묵이 깨어진 것과 관련한 부분들을 다루고 있고 2부는 그동안 여성 위에 군림하고 있었던 남성의 이야기에 맞서 2014년에 출현하여 이제 하나의 점이 된 여성의 목소리를 어떻게 남성의 이야기 못지 않은 이야기로 만들어 갈 것인가를 보다 구체적인 차원에서 말하고 있다. 여기에 오직 이 책을 위해 리베카 솔닛이 쓴 '모든 질문의 어머니'가 서문 격으로 나와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제가 무엇인지 부각시켜 준다.


 아무래도 이 책의 중핵이라 할 부분은 '모든 질문의 어머니'와 1부 맨 처음에 나오는 '침묵의 짧은 역사'가 될 듯 하다. '침묵의 짧은 역사'에서는 그동안 남성 중심 사회가 여성에게 가해 온 침묵에 대해 이야기하며 왜 여성들이 그 침묵을 적극적으로 깨뜨려야 하는지 알려준다.


 당신이 여자로서 어떤 노선을 취하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이었던 분야로 진출한 경우 괴롭힘은 어차피 따라붙기 때문이다. 당신이 말한 내용이 아니라 당신이 말한다는 사실 자체가 괴롭힘을 끌어들인다.(p. 90)


 이런 괴롭힘에도 불구하고 침묵을 거부하고 꾸준히 목소리를 내었던 여성들이 있었기에 그래도 지금은 과거에 말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 말할 수 있고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하는 등 변화를 일으켜 왔다. 특히 여성과 관련하여 오늘의 세상이 진전한 게 있다면 모두 그 목소리들이 만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그 진정한 이름으로 부르는 일, 힘 닿는 데까지 진실을 말하는 일, 어떻게 우리가 여기까지 왔는지를 아는 일, 특히 과거에 침묵당했던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는 일, 수많은 이야기가 서로 들어맞거나 갈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 혹시 우리가 가진 특권이 있다면 그것을 사용해서 특권을 없애거나 그 범위를 넓히는 일. 이 모든 일이 우리가 각자 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는 그렇게 세상을 만든다.(p. 117)


 그리고 그런 목소리를 내는 것을 당당하게 할 수 있도록 필요한 태도를 '모든 질문의 어머니'는 말해준다. 그것은 현재 상태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상식으로 굳어진 것도 진리는 아니며 아직은 잠정적으로 그렇게 받아들여진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리베카 솔닛은 행복도 달리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행복은 무엇보다 질문이 없는 상태인 까닭이다.


 요즘 우리의 행복에 대한 집착은 이런 다른 질문들을 던지지 않으려는 방편일 지도 모른다. 우리 삶이 얼마나 광활할 수 있는지, 우리 노력이 얼마나 효과적일 수 있는지, 우리 사랑이 얼마나 넓을 수 있는지를 모른 척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p. 27)


 그렇지 않아도 원래 낙원이라는 단어의 어원 또한 산크리스트어로 사방이 벽으로 가로막힌 정원이라고 한다. 이렇게 행복이든, 낙원이든 실은 누군가 '여기까지다' 하고 한계를 지어놓은 것 안에서의 안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동물원 우리에 갇힌 동물들 처럼 말이다. 이 책의 제목이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라서 하는 말인데 여기서 질문은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하나는 남성이 여성에게 하는 질문이다. 그 질문은 사실 낙원의 벽과 같다. 질문 받는 여성에게 자기만의 고유한 주체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 여성을 사회가 규정한 규격화된 정체성에 채집한 곤충처럼 고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여성이 흔히 받는 질문으로 들고 있는 '아이는?'  못지않게 여성이 반복적으로 받는 질문이 또 하나 있으니, 그건 바로 '일을 하면서 육아는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이다. 그런데 남편에게는 누구도 묻지 않는다. 이 질문은 오직 여성에게만 행해진다. 왜 남자는 그런 질문에서 자연스럽게 배제되고 또 그런 것이 당연시 되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여기엔 합당한 이유가 없다. 당연히 의심을 하고 질문이 되어야 하는 사항인 것이다. 이렇게 질문은 다르게 사용된다. 여성이 받는 질문은 간접적인 정체성의 강요인 경우가 많지만 여성 스스로 제기하는 질문은 자신을 가두고 있는 벽을 초월하려는 탈주인 것이다. 리베카 솔닛은 이러한 의심과 질문을 소중히 한다. 모두 여성 스스로 자신의 고유한 주체성을 형성하며 지속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2부에 나오는 소설 '롤리타'와 영화 '자이언트'에 대한 글은 그 의심과 질문을 구체적으로 실천한 모습이기도 하다.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는 읽어보면 바로 느낄 터인데,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후속작 느낌이 강하다. 그 책과 똑같이 여러 지면에 발표한 글들의 모음이며 페미니즘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 책이 아나 떼레스 페르난데스의 그림들을 실었듯이 여기에도 리베카 솔닛의 오랜 친구이기도 한 빠스 데 라 깔사다의 그림들이 곳곳에 삽입되어 있다. 그러니 아직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을 읽지 않았다면 이 참에 둘을 같이 묶어서 읽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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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9-12 0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에서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는 서양의 세계 제패의 힘은 ˝질문˝이었다고 말합니다. 그건 매우 의미심장한 말인데 우리는 흔히 퉁쳐 ˝이성˝의 힘을 강조하지만 좋은 질문, 의문을 갖고 제시하고 행동에 담지 않는다면 이성도 고약한 똥덩어리일 수밖에 없다는 걸 공감하게 되죠.

ICE-9 2017-09-13 20:53   좋아요 0 | URL
앗, AgalmA 님도 그 책 읽으셨군요. 저도 읽었답니다.^^ 전 알쓸신잡이 한창 방송할 때 읽어서 그런지 책에서 자꾸 알쓸신잡이 연상되더라구요. 아무튼 꽤 재밌는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질문과 의문에 대해 하신 말씀, 적극 공감합니다. 살아가면서 더욱 정답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