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강
핑루 지음, 허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핑루의 새로운 작품이 이렇게 나오다니, 반가웠다.

 작가로서의 경력만 벌써 30년이고 대만에서 아주 유명한 작가이지만 그간 우리나라에서는 그녀의 작품을 보기가 힘들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나온 그녀의 작품은 단 두 편. 하나는 그녀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데뷔작 '옥수수 밭에서의 죽음'이 실려 있는 단편집이고 다른 하나는 쑨원의 아내인 쑹칭링의 삶을 그린 '걸어서 하늘 끝까지'이다. 둘 다 아주 인상적인 작품이기에 '핑루'라는 이름을 뇌리에 새겨둘 수밖에 없다.


 나도 그랬다. 작가에게 매력을 느껴 그녀의 더 많은 작품을 보고 싶었지만 만날 수 없었다.

 그러다 이렇게 2015년에 나온 '검은 강'을 만나게 되었으니 어찌 반갑지 않을 수 있으랴! '검은 강'은 그리 늦지 않게 우리에게 소개되어 더욱 기뻤다. 지금까지 나온 핑루의 소설들은 늦어도 너무 늦게 우리에게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옥수수 밭에서의 죽음'은 원래 83년에 나왔다. 그리고 '걸어서 하늘 끝까지'는 95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2013년과 2014년에서여 소개되었다. 늦어도 너무 늦은 것이다. 그것도 '걸어서 하늘 끝까지'가 먼저 소개되어 어느 정도 반향을 얻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옥수수 밭에서의 죽음'마저 만나지 못 할 뻔했다. 자꾸 이렇게 책과 상관없는 사설을 늘어놓은 것은 '검은 강'을 읽고나니 더욱 그녀의 작품에 대한 허기를 느끼게 되는 탓이다. 이제 또 한동안 볼 수 없을테니, 왜 이렇게 핑루의 작품이 많이 나오지 않는 거냐고 이 자리를 빌어서나마 하소연 할 밖에.


 사실 '검은 강'의 스타일은 '옥수수밭에서의 죽음'과 '걸어서 하늘 끝까지'와 많이 닮았다.

 이미 하나의 사건이 벌어지고 난 뒤에 소설이 시작하여 그 이유에 대해 탐문해 나가는 건, '옥수수밭에서의 죽음'과 닮았다. 그리고 사건에 관계되는 자 중에 가장 중심이 되는 두 사람을 택해 서로 번갈아가며 화자 역할을 하는 것은 '걸어서 하늘 끝까지'와 유사하다. 이처럼 '검은 강'은 스타일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핑루의 서술 스타일이 이미 데뷔 때부터 완성되었으며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어떤 이들은 핑루를 말할 때 꼭 여성 작가라는 것을 밝히기도 한다. 그것은 그녀의 글 쓰는 스타일 때문으로 핑루는 자신의 글에서 철저하게 여성적인 면모를 지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글이 어떤 성별로 다가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의 글쓰기 근간을 이루는 것은 저널리즘이다. 그것은 그녀가 오래도록 저널리스트로 일한 것에서 기인한다. 이것은 또한 그가 작품을 형성하는 중요한 뼈대가 되기도 한다. 핑루는 언제나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나 존재했던 인물에 대해 작품을 쓴다. 실제 사건 그대로 다루지는 않지만 그래도 출발은 어디까지나 정말로 발생한 사건이며 실존 인물이다.



 '검은 강' 역시 그러하다.

 이 소설은 대만의 신베이시에서 실제로 일어난 '마마하우스 커피점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커피점의 여자 점장이 단골이었던 노인과 그의 아내를 먼저 커피에 약을 타 마시게 하여 의식을 잃게 한 뒤 강으로 끌고 가 칼로 살해한 사건으로 범인이 여성이라는 점과 범행의 잔혹함 때문에 대만 사회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당연히 그 사건을 두고 뜨거운 논란이 벌어졌다. 소설가는 보통 이렇게 중요한 논란거리가 되어버린 사건에 더더군다나 자신의 작품으로는 발을 담그지 않으려 한다. 이런 논쟁에 뛰어드는 경우, 그것이 아무리 소설이라 하여도 작품을 통해 아무래도 특정 태도를 보이게 마련이니 어떻게든 논쟁의 불길이 자신에게 옮겨붙기 때문이다. 작가로선 얻는 것은 적고 잃을 것은 많은 행위이다. 그러나 핑루는 과감하게 뛰어든다. 이 사건의 2심 판결이 2014년 9월에 났으니, 핑루는 소설로 논쟁에 거의 현재형으로 참여한 것이다. 그것도 모두가 괴물로 손가락질하는 자의 내면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말이다. 찬찬히 그리고 깊게. 이런 식의 재현이 많은 원성과 비난을 부를 것을 능히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 핑루는 그토록 대담하다. 그럴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문학적 신념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여론은 때로 언론의 부추김을 입어 감정적이 되어 편향된 시야를 가지기 쉽다. 고루 다 들여다보고 판단해야 하는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단정 지어 버리는 어리석음으로 한 인간 또는 가족의 삶이 산산이 부서지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 달리 볼 수 있는 시야를 열어주고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였다면 지켜질 수도 있는 삶이었다. 특히나 대만은 오래도록 독재국가였다. 거기다 장제스에 의해 원래 그 땅에서 살았던 원주민이 가혹한 차별을 당했다. 누군가의 자의적 판단으로 사람들의 소중한 삶이 무참히 짓밟히는 게 허다하게 일어났다. 핑루는 그것을 목격했다. 그러니 이런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그 삶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달리 볼 수 있는 시야를 자신이 열어주어야겠다고. 여기 당신들이 쉽게 짓밟는 발 아래 그 자체로 존중되고 헤아림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어야 겠다고.

 바로 그런 신념의 체화(體化)가 핑루의 소설이다.


 그러므로 핑루는 사건이 아니라 사람을 쫓는다.

 그녀가 언제나 결과보다 이유에 천착하는 것도 사람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기 위해서다. 그는 묻는다. '왜 그녀는 그런 범죄를 저질렀는가? 어째서 그들은 그녀의 희생자가 되어버렸는가?'. 핑루의 탐침은 나침반의 자침이 언제나 북극을 가리키듯 거기서 떠날 줄을 모른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그녀는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담아내려 한다 '걸어서 하늘 끝까지'에서 쑨원과 쑹칭링의 삶을 여과없이 그렸던 것과 마찬가지다. 핑루의 작품은 언제나 전기(傳記)의 성격을 지닌다. 자신이 아는 것과 원하는 것에 비추어 자신이 담고자 하는 타인의 삶을 섣불리 재단하지 않는 것이다. 핑루는 자신이 그리는 인물을 독자가 가급적 투명하게 만나길 원한다. 작가의 시선이 독자의 시선이 되지 않도록 그는 그저 단순한 매개자로만 남으려 한다. 혹시 독자들이 자신의 시선에 오염될까봐 독자가 여러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실제에서 그대로 가져온 정보들을 병기하기도 한다. '검은 강'도 그러하다. 우리는 여기서 챕터가 하나 끝날 때마다 그와 관련된 실제 사건에서의 목소리들을 보게 된다. 피고인이나 피해자 혹은 그들의 지인 또는 언론 보도나 댓글에서 나왔던 말들을 말이다. 그런 식으로 핑루는 비록 자신의 손 끝에서 창조된 인물이지만 그 진정한 초상은 독자 스스로 구현하도록 이끈다. 그리하여 그 인물의 삶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도 작가가 아니라 독자가 할 수 있도록.

 이런 식으로 핑루는 자신의 신념을 실천한다.


 우리의 문화는 인성이라는 의제와 감추어진 동기에 깊이 파고드는 것에 흥미가 없습니다. '악한 사람'의 동기를 파헤치는 것을 시간 낭비로 치부하죠. 살인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일찌감치 대중에게 공개 처형당해 일벌백계의 본보기가 되거나,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만으로 '선한 사람'이라는 보루 안에 안전하게 숨길 수 있습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검은 강'은 비록 소설이지만 '악한 사람'을 변호하는 것, 또는 죽은 사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게 만들어 불필요한 상해를 입히는 것으로 오인받을 수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소설이 사건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하고, 인성이라는 문제에 회색 지대를 남겨 출구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p. 290 ~291)


 제목의 '검은 강'은 부부가 살해된 단수이허 기슭에 있는 강을 뜻하지만, 제목의 의미는 거기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검은 강'은 핑루가 바라보는 사회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그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타인의 삶을 자신의 삶만큼이나 중하게 여기지 않기에 타인의 삶을 편향되게 바라보는 것도, 섣불리 단죄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사회이다. 그래서 '검은 강'이다. 그 어떤 삶도 자신만의 고유한 빛을 온전히 지니지 못한 채, 사람들의 무시와 단정 속에 그들의 검은 빛으로 흡수되기 때문이다. 검은빛은 모든 빛을 자신의 색깔로 빨아들인다. 그들의 규정이 곧 진실이 되는 것이다. 핑루는 그 검은 강에 빛의 너울을 자아내려 한다. 모두의 삶에 저마다 지니고 있는 빛을 되찾아 주는 것이다.


  '검은 강'은 그런 마음으로 가득하다.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태도로 자신의 목소리를 어떻게든 타인에게 강요하려 드는 이런 선동의 시대에선 더욱 소중해질 수밖에 없는 마음이다. 핑루의 마음이 여전히 거기에 머물러 있어 반갑다. 그 마음을 더 많이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현대문학이 그렇게 해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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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9-01 14: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핑루 작가의 다른 책들도 번역이 돼서
나왔으면 싶네요.

아마 잘 팔리진 않겠지만.

ICE-9 2017-09-02 02:04   좋아요 0 | URL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로또라도 당첨된다면 마구 구입해 시장 좀 만들어 줄 텐데요.. 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