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후퇴 - 불신과 공포, 분노와 적개심에 사로잡힌 시대의 길찾기
지그문트 바우만.슬라보예 지젝.아르준 아파두라이 외 지음, 박지영 외 옮김 / 살림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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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는 후퇴하고 있다. 누군가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과거의 것들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세계화를 찬양한 지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이주민을 막으려 나라의 빗장을 걸어 잠그기 바쁘다. 자신의 이익을 조금 손해 보더라도 인류 전체의 공영을 위해 힘을 쓰던 국가들은 이제 빠르게 그런 움직임을 걷어들이고 자신의 주머니가 얼마나 채워져 있는지만 신경쓰고 있다. 양극화가 도래했고 빈익빈 부익부가 흑사병처럼 거세게 퍼져나가고 있으며 인종주의가 부활하고 외국인 혐오가 증가하며 가부장주의가 활개를 친다. 시대적으로 한 물 간 것들이라 여겼던 것들이 무덤에서 부활하여 어느새 우리 옆가지 찾아와 버린 것이다. 영국의 브렉시트와 미국의 트럼프 당선은 이러한 거대한 후퇴를 보여주는 뚜렷한 증거가 되었다. 브렉시트는 유럽 연합으로 대표되는 세계화에 대한 거부였고 트럼프 당선은 포퓰리즘의 복권이었다. 그 두 사건을 많은 이들이 충격 속에 받아들였고 도대체 이 시대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하면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궁금해 했다.


 이런 우리의 의문과 불안을 알고 전 세계의 유명한 지식인들이 나섰다. '거대한 후퇴'는 세계적 석학들의 지금 시대에 대한 진단이자 이러한 난국을 파국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대안의 제시로 가득한 책이다. 



 제목의 '거대한 후퇴'는 칼 폴라니의 유명한 책인 '거대한 전환'에서 따온 것이다. '후퇴'란 말은 사회 발전과 진보로부터 멀어지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쓴 것이다. 올리버 나흐트바이란 학자는 이를 두고 '퇴행하는 현대화'라 부르기도 했다. 칼 폴라니는 놀랍게도 오늘 날의 이 후퇴를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이 상품이 되는 시장경제사회가 되면 분명히 거기에 대해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어날 것이라 내다봤었다. 모든 것이 시장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에 반대하여 국가가 능동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바라게 되고 그리하여 국가 주도의 복지 국가로 변해가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즉, 어떤 하나가 지배적인 상황이 되면 필연적으로 대항 운동이 일어나는데, 알고 보면 그 대항운동이란 사실 반동 운동으로 방어적으로 과거로 회귀 하려는 태도인 것이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 국가 주도의 복지 국가도 당연히 반동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현재의 신자유주의다. 복지국가의 전반적인 축소와 사회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모든 국가적 개입에 대한 공격을 기조로 하는.


 이런 신자유주의가 우리 시대를 지배한 것도 오래되었다. 자연히 이제 거기에 대한 대항 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2011년에 일어난 월가 점령이 대표적이다. 지난 겨울 우리나라의 촛불 집회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탄생도 세계적으로 보자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에 기대어 오로지 제 배만 채울 줄 알았던 체제의 기득권 세력들은 모두 새로운 시대의 썰물 속에 깨끗이 쓸려가야 할 적폐세력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흐름이 무덤에 있어야 할 존재들을 좀비처럼 불러내게 된 것은 이전과 다르게 변화가 담아야 할 규모는 전 세계적으로 커졌는데, 아직 그 규모에 걸맞는 이념과 규범 체제를 마련하지 못한 데 있다. 다시 말해 지금은 전 세계적 규모의 일종의 아나키 상태라 할 만하다. 시대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대로 알려주는 좌표가 아직 미비하다 보니 기억 속에 늘 미화되기 마련인 과거의 것들이 과장, 왜곡 되어 정말 좋은 것으로 착각하고 사람들이 앞다투어 귀의하고 있는 형편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브렉시트요, 트럼프 당선이었다.


 그렇다고 힐러리 클린턴이 대안이었던 것도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더 끔찍한 선택일 수 있었다. 이 책에 실린 유명한 페미니스트 학자 낸시 프레이저는 이러한 사실을 통렬하게 보여준다. 그녀는 무엇보다 페미니즘이나 인종 차별 반대주의 그리고 성소수자 운동 처럼 현재 신사회운동의 주류가 월가와 실리콘 밸리 그리고 헐리우드와 연합하는 것을 비판한다. 이런 식으로 인지 자본주의 즉 금융 세력과 손을 잡는 바람에 이러한 운동들이 오히려 사회 보장을 후퇴시키고 제조업과 중산층의 삶을 파괴해 온 정책들이 마련되고 집행되는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낸시 프레이저는 그런 움직임을 진보 신자유주의라 부르고 클린턴과 오바마 정부로 구현되었다고 본다. 클린터과 오바마는 금융 세력과 손잡고 노동자의 생활 여건을 지속적으로 악화시켰다. 노조를 약하게 만들었고 실질 임금을 하락시켰으며 일자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맞벌이 가정이 증가하도록 이끌었다. 서브 프라임 사태에도 불구하고 금융 세력들이 조금도 상처입지 아니하고 계속 주머니를 든든히 채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클린턴과 오바마의 뒷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흔히 진보라 불리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착취를 교묘하고 은밀하게 했을 뿐이다. 하지만 빼앗아 간 몫도, 노동자와 빈민의 삶이 무너진 정도도 그들이 더 컸다. 트럼프에 대한 지지는 바로 그런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자신의 몫을 마구 앗아가기만 하고 조금도 돌려주려 하지 않는 금융 자본주의에 대한 적대였다. 힐러리 클린턴은 그 세력을 대표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트럼프로 돌아섰던 것이다.


 페미니즘과 월 가는 힐러리 클린턴을 중심으로 완벽하게 담합한 유유상종 무리였다.(p. 87)


그들이 여성, 소수자 그리고 동성애자 운동에 대해 거부감을 느꼈던 것도 여기에 있었다. 노동자, 빈민들이 느끼는 삶은 전혀 달라진 게 없는데 그런 운동들이 점점 부상하자 마치 사회가 꽤나 달라진 것처럼 포장되고 정작 자신들이 사회로부터 받아야 할 관심조차 받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사회가 그 운동들에 주목하는 것은 자신이 받아야 할 관심을 가로채 버린 것과 같았다. 지금 미국 민중들이 보여주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적의는 이런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의 중장년 여성들이 힐러리 클린턴 보다 트럼프를 더 많이 지지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현재도, 노후도 갈수록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되는 상황 속에서 여성 지위 향상 보다 경제적 지위 향상이 더 먼저였던 것이다.


 이 책에 있는 모든 학자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대안은 바로 이것이다. 진정한 좌익의 부활.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맑스의 계급 해방을 따르던 거대한 좌익은 무너졌다. 아무도 이제 계급 해방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석학들은 이제 거기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보다 구체적이고 확실한 이념 아래에서 개별 운동이 아니라 보다 높은 차원에서 전체 운동의 맥락을 헤아리며 정말 필요한 목표를 향해 연대할 수 있도록 말이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맑스의 논문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세계를 너무 빠르게 바꾸려고 했다. 이제 세계를 자기비판으로 재해석하고 우리의 책임을 검토할 때가 되었다.(지젝, p. 360)


 그러고 보니 샌더스 선거 유세 때 흑인 여성들이 샌더스의 연단을 점거해 샌더스를 몰아내고 오로지 자신들의 목소리만 쏟아내던 광경이 생각난다. 샌더스의 연설을 듣기 위해 모인 많은 이들이 그들을 비난했으나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흑인이고 여성인 점을 내세워 사람들이 '정치적 올바름'이 없다고 공격했다. 이런 식의 분리, 차이가 곧 적대가 되는 흐름을 막는 것이다. 시대의 거대한 후퇴는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 농단이 우리나라 국민에게 그랬듯이 사람들에게 보다 본질적인 가치, 정의와 평등 그리고 공정에 관심을 갖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가치를 지키고 확대하기 위하여 사람들의 움직임을 이끌어 낼 것이다. 너무 낙관적인 전망인가? 그런데 지젝 역시 그런 전망을 갖는다. 그는 마오쩌뚱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며 글을 끝맺는다.


 하늘 아래 거대한 무질서가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다.(p. 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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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7-08-01 0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라고 할까 그런 건 앞으로 가다가 뒤로 다시 돌아가기도 한다더군요 지금이 뒤로 가는 땐가 싶은 생각이 조금 들기도 합니다 그렇다 해도 예전 것이 정말 좋은지 더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때 안 좋았기에 바뀌기도 했는데... 옛날 일이기에 좋게 여기는 것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릴 때는 좋았는데,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감상에 빠지지 않아야 할 텐데...


희선

ICE-9 2017-08-10 19:37   좋아요 1 | URL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라는 말씀에 저 역시 동의해요. 아마 기성 세대들이 박정희 시대에 대해 향수를 느끼는 것도 그와 연장선상에 있을 거예요. 프로이트는 이런 것을 두고 퇴행이라고 부르더군요. 현실에서 겪는 어려움이 클수록 어린 시절 처럼 자신이 아무 걱정 없이 보호받을 수 있었던 과거가 대비되어 더욱 좋은 것으로 부각되고 현실의 고난을 무시하거나 거기서 달아나기 위해 미화된 과거에 스스로 취한다고 말이죠. 퇴행하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고 과거든, 현재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는 게 보다 성숙한 태도가 아닐까 생각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