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명의 눈 속에는 천 개의 세상이 있다 - 세상을 보는 각도가 조금 다른 그들
가오밍 지음, 이현아 옮김 / 한빛비즈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모두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손을 내밀어 악수하지만 

가슴속에는 모두 다른 마음

 각자 걸어가고 있는거야

 아무런 말없이 어디로 가는가

함께 있지만 외로운 사람들


- N.EX.T '도시인' 중에서

 범죄 소설을 즐겨 읽는다. 단순히 재미만을 위한 독서는 아니라고, 딴엔 인간 이해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서라고 은근히 정당화 시키고 있다. 살면서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중엔 내가 가진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이런 줄 알았는데 실은 저런 인간인 게 밝혀지는 반전을 선사한 이들도 다수였다. 사람은 양파껍질과도 같이 이 정도면 제법 다 파악했겠거니 싶다가도 또 전혀 새로운 유형이 나타나 내 입을 떡 벌리게 만드는 존재였다. 그러니 알고 싶었다. 할 수 있는 한 보다 많은 유형의 인간을 만나고 싶었다. 범죄 소설은 거기에 제법 유용했다.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없는 갖가지 형태의 인간들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소시오패스, 싸이코패스 까지도. 거기다 범죄를 매개로 한 것이라,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내부의 음험한 성격이나 욕망이 적나라하게 발현되기 마련이라서 더욱 안성맞춤이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또 있었다. 그는 중국인이다. 이름은 가오밍.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저 사람에 관심이 많아서, 저마다 얼마나 다른 마음들을 가지고 있는지 보고 싶어서 그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나와는 다르게, 픽션이 아니라 실제의 사람들을. 그것도 평범한 이들이 아니라 마음에 커다란 병이 있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들을. 누가 원한 것도 아닌데, 자신만의 순수한 호기심으로 그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시간 여유가 생기는 대로 족족 중국 전역의 정신병원과 공안부 및 유관기관들을 찾아가 그들을 인터뷰했다. 이번에 나온 '천 명의 눈 속에는 천 개의 세상이 산다'는 바로 그 기록이다. 한 아마추어가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위해 집념과 끈기로 이루어낸 산물이다.



 여기에는 그렇게 만난 36명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그것을 모두 6장에 나눠 담았다. 사람들이 정말 다양하다. 우리가 흔히 다중인격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고 남들이 귀신에게 씌었다고 할 정도로 다른 사람을 똑같이 모방하는 여자도 있으며 매리 셀리의 소설에 나오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처럼 죽은 자를 되살리겠다며 시체를 반복적으로 훔치는 남자도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는 이런 경우 흔히 그들이 어떤 망상이나 우연히 갖게 된 충동 때문에 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 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고 나름 꽤나 논리 정연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아무리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행위도 그들의 입장에선 해야 할 이유가 충분한 합리적인 행위였다. 저자는 자신의 판단은 가급적 접어둔 채로 그들의 육성 고백을 최대한 담아낸다. 그것도 자신에 대해서 차분하게 충분히 설명하기 때문에 읽으면서 이들이 예외가 아니라 그저 나와는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나 받아들이는 태도가 좀 다른 보통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니 같은 것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얼마나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점차 납득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육체에 갇혀 있다. 나는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세계를 이렇게 보고 있지만, 다른 사람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내가 그들의 눈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내가 보는 그대로 그들도 보고 있겠거니 추정할 뿐이다. 그 추정을 살면서 배운 온갖 지식을 근거로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진실로 과연 그럴까? 혹시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가 자신이 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인공 지능이 만든 가상 현실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처럼 별안간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이 실은 타인들에게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나는 언젠가 이런 생각을 했다. 나만 그럴까? 많은 이들이 한 번은 나처럼 남도 나와 같은 세상을 보고 있는지 궁금증을 가지지 않았을까? 타인들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어 불안도 느껴보지 않았을까? 헤겔에 따르면 우리에겐 본래적으로 타인에게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고 한다. 인정 욕구가 하나의 본성처럼 자리잡은 것은 어쩌면 내 인식이 철저하게 내 육체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에서 오는 외로움과 불안함 때문인 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정이란 이름으로 타인에게로 끊임없이 가 닿으려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을 남도 같이 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이 책도 저자의 그런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타인은 어떻게 세계를 보고 있을까? 과연 그들도 나처럼 보고 있을까?' 이 질문에 보다 확실한 대답을 얻고자 그는 평범한 시야에서 가장 벗어나 있는 이들의 시선까지 알려 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것은 외로움이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어떻게 하든 결국 '나' 혼자구나 하는 생각. 마주 보는 세상이 이렇게 보이는 것도, 이런 상념을 일으키는 것도 오직 나 혼자 뿐이라는 생각. 분명 천 명의 눈 속엔 천 개의 세상이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그것이 천 개의 외로움으로 보인다.


 우리는 저마다 끝까지 외로운 존재들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타인에 대해 조금은 관대해질 수 있지 않을까? 동병상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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