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도시 Z
데이비드 그랜 지음, 박지영 옮김 / 홍익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아마존. 과학 기술이 이처럼 발달한 오늘날에도 그 곳이 여전히 미지의 공간으로 남아 있다는 것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인류가 그렇게 내버려둔 건 아니다. 오랫동안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학자들이 아마존을 완전히 파악하려 노력했지만 인간의 탐구심은 아마존을 겹겹이 싸고 있는 무성한 밀림을 뚫기가 어려웠다.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이토록 인간에게 적대적인 환경을 가지고 있는 아마존에 과연 문명이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토양은 곡물이 자랄 수 없을 만큼 척박하고 치명적인 질병을 불러오는 각종 동식물이 지천에 있으며 인간의 생명을 가차없이 위협하는 육식동물마저 즐비한 아마존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문명을 이룩할 정도로 정착할 수 있었겠느냐는 얘기다. '리바이어던'으로 유명한 토머스 홉스는 아마존에 대해 아예 이렇게 단정해버리기도 했다.


 그곳엔 예술도, 학문도, 사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최악은 끝없는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공포다.


 당시만 해도 문명의 성립 여부에 대해서는 환경 결정론이 우세했다. 어떤 문명이 태어나고 번성하려면 환경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금지된 것에 매혹되기 마련이고 주류 입장에 반기를 들고 싶은 충동 역시 생기기 마련이다. 환경 결정론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자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그들은 자신의 꿈과 명성을 위해 문명 불가의 대지로 낙인 찍힌 아마존으로 기꺼이 뛰어들었다. 정말로 많은 이들이 영국이 제국이었던 시절부터 아마존을 탐험하러 떠났다. 거기에 있다는, 아마존에도 문명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증거가 될 전설의 '잃어버린 도시 Z'를 찾아서 말이다. 그러나 도시는 발견되지 않았다. 탐험에 성공한 이들보다 실패한 이들이 훨씬 많았고 끝내 아마존에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19세기 가장 유명한 탐험가 '퍼시 H 포셋'도 그 중 하나였다. 아니, 그는 그들 중 가장 유명한 자였다. 솔직히 그는 가장 성공이 점쳐지던 탐험가였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사건이기도 하다.



  때는 1864년. 당시 라틴 아메리카가 잦은 국경 분쟁을 겪고 있었다. 파라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볼리비아 등 국경을 맞대고 있던 국가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전쟁을 일으켰다. 당시 '검은 금'이라 불릴 정도로 인기가 높은 자원인 '고무' 를 차지하기 위해서였다아마존은 고무가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었고 많은 나라들은 아마존 주변으로 국경을 이루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그들은 검은 금의 유전과도 같은 아마존을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게 위해 싸우고 있던 것이었다.


  세계적으로 수요가 많은 자원이라면 무조건 제 주머니 안에 넣어야 하는 영국이 이것을 가만 내버려 둘 리 없다. 영국은 얼른 분쟁의 원인이 되는 국경을 명확히 정리한다는 명분으로 아마존에 대한 정보를 상세하게 파악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자면 발로 답사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바로 그 때, 떠올랐던 사람이 모로코에서 분쟁이 일어났을 때 단신으로 놀라운 활약을 보여준 자신의 정부 스파이이기도 한 유명 탐험가 '퍼시 H 포셋'이었다. 영국 정부는 그를 당장 아마존으로 보냈고, 그는 영국이 부여한 임무를 성공리에 완수했다. 그렇게 한 번 아마존을 무사히 관통한 그였기에 '잃어버린 도시 Z'를 찾아가는 이번의 탐험 역시 성공할 것이라 내다보는 것은 당연하달 수 있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그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명성이 워낙에 높았기에 아마존에서의 그의 실종은 탐험 역사에서 전설로 남았다. 많은 사람들이 포셋의 생사 여부를 알기 위해 아마존을 찾아 떠났고 원주민에게 죽었다거나 거기에 정착하여 아들을 낳았다거나 하는 온갖 풍문들이 나돌았다. 물론 여전히 그의 최후에 대해선 밝혀진 바가 전혀 없다.


  비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에 관심이 많고 주로 그런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미국 여러 유명 잡지에 전문적으로 기고하고 있는 데이비드 그랜은 2004년, 역사적으로 미스터리한 죽음들을 추적하다 '잃어버린 도시 Z'를 찾아 떠났다가 실종되어 버린 퍼시 해리슨 포셋에 대한 글을 만나게 되었다. 그 글에 매혹된 그는 포셋처럼 정말 아마존에 고대 문명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자기가 직접 포셋의 발자취를 따라 아마존을 탐험할 생각을 한다. 그는 결코 탐험가도 아니고 탐험은 커녕 사냥이나 등산조차 좋아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잃어버린 도시 Z'는 바로 그렇게 하여 탄생된 책이다. 이 책에는 그가 어떻게 포셋의 발자국을 따라 나서게 되었는지에 대한 자전적인 이야기와 아마존과 포셋의 여정 그리고 실종 후에 일어난 여러 사건들까지 충실히 담겨져 있다.



 소년 시절, 잡지에 간간히 소개되던 탐험 이야기에 매료 당한 바 있거나 아직도 그 때의 로망을 잊지 못하여 코난 도일의 '잃어버린 세계'나 로버트 E 하워드의 '솔로몬 케인' 혹은 헨리 라이더 해거드의 '솔로몬 왕의 광산'을 뒤적이는 사람들과 아마존 그리고 포셋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이들에겐 아주 즐겁고 흥미로운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아마존에 대한 자세한 정보나 당시 많은 이들이 공포를 느꼈던 아마존 정글 속 식인종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정말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거기서 아마존에도 문명이 있었다는 게 밝혀지는 것이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 문명의 흔적이 사람의 발길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는 그런 곳에 있었던 곳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존재했다는 것이다. 분명 '잃어버린 도시 Z'를 찾아 떠났던 많은 이들이 수없이 거쳐갔을 거기, 그런데도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이 문명의 흔적을 보지 못했던 것일까? 그건 바로 굳어진 생각 때문이었다. 그들 모두는 서양의 문명 관습에 너무나 길들어져 있어서 그것과 전혀 다른 자연 환경의 아마존이 서양 문명과 완전히 다른 형태로 문명을 만들었을 가능성은 조금도 생각해 보지 못하고 그저 서양 문명과 닮은 꼴의 건조물을 찾으려 했기에 늘 다니던 길목에 버젓이 있었던 흔적조차 쉬이 놓쳐버렸던 것이다.


 그것은 유럽인과 아마존 사람들의 태생적 차이 때문일 것입니다. 유럽은 비좁은 땅에 많은 인구가 살기 때문에 건축물이 하늘을 향해 치솟는 수직적 형태를 띨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아마존을 비롯한 남미 대륙은 땅이 넓기 때문에 건축물을 굳이 높이 쌓을 필요가 없습니다. 중국의 고대 건축물이 하나같이 수평적 형태인 이유도 남미의 그것과 동일합니다.(p. 313)


 두말 할 것도 없이 적폐의 생각이 만들어낸 사각이었다. 비단 아마존이나 문명만이 아니라 이런 일이 바로 우리 삶에도 비일비재할 것이라 본다. 무조건 옛 것에 집착하고 나만이 옳다는 생각에 빠져버리는 바람에 정작 자신이 찾고자 하는 것도 보지 못하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 조차 어이없이 놓쳐버리는 일이.


 

  이번에 나온 '잃어버린 도시 Z'는 사실 두 번째의 발간이다. 이렇게 책이 다시 나온 것은 이 책을 원작으로 하여 제임스 그레이 감독이 만든 영화가 곧 개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리틀 오뎃사'로 데뷔했는데 그 때부터 내내 한 개인이 낯선 공동체에 적응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2013년에 나온 전작 '이민자'가 대표적이다. '잃어버린 도시 Z' 또한 서양 문명에 깊숙이 침윤된 자가 그의 눈에 한없이 낯선 아마존에 섞여드는 과정이니 그레이가 늘 해왔던 것의 연장선 상에 있는 셈이다. 4년 동안 자신의 작업에 대한 그의 생각이 또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영화가 기대된다. 찰리 허냄이 맡아 연기한 포셋은 원래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닥터 스트레인지'를 찍느라 하차하는 바람에 찰리 허냄에게 돌아갔다. 포셋과의 싱크로율은 컴버배치가 높기 때문에 그가 주연을 하지 못한 건 좀 아쉽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그렇게 좋은 영화도 아니었기에 더 커지는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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