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 소녀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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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년이나 정신과 의사로 일해 온 플로레스에게 레베가 레이어 검사가 한 남자를 데리고 온다. 남자의 이름은 포겔. 얼마 전 이 곳 아베슈를 뒤흔들었던 애나 루 소녀 실종 사건을 담당한 형사다.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외과 병원으로 가야지 왜 정신과? 검사는 필요한 게 있다고 한다. 바로 이 형사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한 어젯밤 행적이 궁금하다는 것이다. 검사는 플로레스에게 부탁한다. 이 남자를 상담하여 어젯밤 무엇을 했는지 알아내 달라고. 그렇게 포겔의 고백으로 애나 루 실종 사건에 얽힌 이야기가 흘러가기 시작한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릴러 작가가 된 도나토 카리시가 2015년에 발표한 '안개 속 소녀'는 이렇게 출발한다. 그런데 플로레스와 포겔이 만난 날은 애나 루가 실종된 지 무려 62일이나 지난 후다. 과연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길래 애너 루 실종 사건을 맨 앞에서 진두 지휘하던 형사가 갑가지 용의자가 된 것일까? 마치 그 궁금증을 풀어주겠다는 듯이 작가는 포겔의 고백을 매개로 하여 독자를 실종 이틀 후, 크리스마스 때로 데려간다. 포겔이 실종 사건을 지휘하기 위하여 아베슈 마을로 파견되어 온 날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오지의 마을, 아베슈. 조용히 몰락해가던 중이었으나 뜻밖에 형석이라는 귀중한 광맥이 발견되어 다시금 되살아나는 중이다. 하지만 그 부활의 과실은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았으니, 혜택을 입어 졸지에 졸부가 된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하고 점점 더 가난에 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있는 자들은 부를 과시하고 없는 자들은 그런 자들을 혐오한다. 마을은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깊은 심연을 둔 채 양 쪽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실종 된 소녀 애나 루는 고립된 아베슈 마을만큼이나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 환경 속에서 그래도 고양이를 사랑하는 구김살 없는 아이로 자라났다. 특별한 문제도 갈등도 없었다. 이 말은 뚜렷한 용의자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랬기에 실종 사건 수사는 난관에 부딪혔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려운 사건을 곧잘 해결한 포겔이 특별히 아베슈 마을로 파견되었다. 그런데 같이 온 형사 보르기는 포겔의 수사에서 어떤 위화감을 느낀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애나 루 실종 사건의 제 1 원칙은 애나 루를 찾는 것인데, 포겔의 관심은 오직 범인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애나 루에 대한 것보다 범인에 대한 말을 더 많이 하며 '그는 유명세를 원하니 무대를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둥 '괴물을 수풀에서 내몰아 정체를 밝혀야 한다'는 둥의 이야기만 한다. 아무래도 포겔의 목적이 누구나 다 바라듯이 애나 루를 찾아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도록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범인을 잡아 자신의 명성을 드높이는데 있는 것 같다. 포겔의 주특기는 미디어의 적극 활용이다. 그러나 애나 루의 무사생환을 위한다면 혹시 납치했을 지도 모를 범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하여 미디어는 되도록 쓰지 않는 게 현명하다. 그러나 포겔은 미디어를 이용하는데 거침이 없다. 이것만 봐도 포겔은 애나 루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관심은 오직 어떻게 하면 연기를 계속 피워 그것을 피해 뛰쳐나온 너구리를 포획할까 뿐이다.


 결국 한 남자가 덜커덕 걸려든다. 이름은 로리스 마티니. 애나 루가 다녔던 고등학교 문학 교사다. 클리어란 미모의 아내와 모니카란 십대 딸과 함께 6개월 전에 갑자기 아베슈로 이사왔다. 갑작스런 이주 때문에 졸지에 친한 친구와 헤어져야 했던 모니카는 그것을 주도한 엄마 클리어와 사이가 좋지 않다. 그런데 그들이 갑자기 이사해야 했던 이유가 있었다. 변호사로 잘나가던 클리어가 자신의 모든 경력을 포기하면서까지 아베슈로 와야 했던 이유가. 마티니가 포겔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그가 타고 다니던 차 때문이었다. 그 차는 애나 루를 거의 스토킹 하듯 촬영한 영상에서 애나 루가 있던 장소마다 마치 애나 루를 따라다닌 것처럼 반복적으로 등장하여 수사진을 긴장케 했는데, 그 차의 주인이 바로 마티니였던 것이다. 이 사실이 밝혀지는 부분이 정말 압권이다. 무심코 있다 복부로 강렬하게 들어오는 훅을 맞게 된 느낌이었다. 포겔은 유일하게 수면 위로 떠오른 용의자 마티니를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다. 그는 이번 수사를 멋지게 해결하여 명예 회복을 해야 한다. 이전에 맡았던 손가락 테러리스트 수사에서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가 용의자로 점찍은 회계사를 증거 조작까지 해서 잡아 넣었는데 그만 조작 사실이 들통나는 바람에 자신의 명성에 커다란 금이 가고 만 것이다. 그는 부하 직원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워 가까스로 파면되는 것을 면했다.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여 늘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라는 스포트라이트의 한 가운데 있었던 포겔은 마약 중독에 버금가는 그 쾌락을 다시 한 번 누려보고자 애나 루 사건을 적극 활용하기로 한다. 그래서 동기도 부족하고 증거도 불충분한 마티니를 미디어 맛사지를 통해 이웃과 가족 모두에게서 고립시켜선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지게 하고 그의 특기인 증거 조작으로 감옥에 집어 넣는다. 미디어의 영향력은 대단해서 사람들은 삽시간에 애나 루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오직 덤불 속에서 뛰쳐나온 늑대처럼 마티니에게만 관심을 갖는다. 마녀 사냥이 시작되고 평범하지만 성실했고 가정적인 남자에다 친절한 이웃인 마티니는 제대로 된 변호의 기회조차 한 번 얻지 못하고 미성년자나 유혹하는 음험한 괴물로 낙인찍힌다. 사정을 제대로 헤아리려는 시도는 없이 심판만 하기 바쁘다. 그것은 아내 클리어와 딸 모니카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대로 포겔의 계획대로 되어가나 했는데 9회말 투아웃까지도 경기 결과를 섣불리 예단할 수 없는 야구 시합처럼 갑자기 뜻밖의 물건이 포겔에게 도착한다. 한 대의 노트북. 거기엔 30년 전에 소녀 여섯 명을 납치하고 사라져 버린 '안개 속 남자'에 대한 사건 파일이 소개되어 있었는데 그가 노린 여섯 명의 소녀에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애나 루처럼 빨간 머리에 주근깨가 있는 소녀라는 것. 파일은 애나 루의 범행이 단독범이 아니라 30년 전 연쇄 살인의 부활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놀란 포겔은 얼른 노트북을 보낸 사람을 확인한다. 지금은 은퇴한 기자. 과연 이것은 진실일까? 정말 30년 전 '안개 속 남자'가 부활하여 다시금 저지른 범죄인 걸까? 그렇다면 포겔은 어떻게 해야 하나? 다시 또 증거 조작을 저지르고 말았는데. 느닷없이 나타난 단서에 두렵고 복잡한 심정이 된 포겔은 기자를 만나러 간다. 과연 그것은 또 어떻게 플로레스와의 대화로 연결되는 것일까?


 예측 불허의 이야기 전개와 출중한 페이지터너 능력이 도나토 카리시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 '안개 속 소녀' 역시 주특기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이야기를 가지고 노는 재주가 상당하다. 이 소설엔 두 번의 놀라운 반전까지 마련되어 있는데 그것이 결코 억지스럽지 않기에 더욱 그렇게 보인다. 마티니는 소설 속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언제나 '악당'의 역할이다(p. 136)라는 말을 하는데, 마치 그것을 실천하기라도 하듯 이 소설은 악인 열전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악인들로 넘쳐나고 있다. 한 소녀가 사라졌고 생사여부 또한 밝혀지지 않았는데 소설 속 인물들 대부분은 거기에 별 관심이 없다. 모두들 어떻게 하면 그것을 밑천 삼아 떡고물을 많이 떨어지게 할까만 신경 쓴다. 실종되어 돌아오지 않은 애나 루는 우리들에게 아무래도 세월호 참사의 아이들을 연상시키는데, 그래서 더욱 그들의 행태가 분노를 자아내게 만든다. 오직 마티니의 아내, 클리어만이 애나 루 소식에 대해 노심초사 신경을 쓴다. 같은 딸을 가진 엄마로서 결코 자신과 먼 이야기가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 클리어를 제외하고 애나 루는 제목 그대로 안개 속에 가려져 있다. 그런데 그 안개는 결코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없이 인위적인 것이다. 미디어가 피워 놓은 안개이니까 말이다. 제목의 안개는 정확히 그것을 가리킨다. 포겔과 그와 짝자꿍이 된 미디어의 이기심이 피워 낸 안개. 그것이 사람들이 정말 봐야 할 곳을 보지 못하게 눈을 가리고 포겔과 미디어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만 보게끔 짙은 안개를 피워냈다. 세월호 참사 때, 박근혜 무리들과 거기에 야합한 언론들이 그랬던 것과 똑같이. '안개 속 소녀'는 바로 그러한 미디어의 행태를 매섭게 비난하는 작품이다. 소설에서 포겔은 플로레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제가 해야 할 일은 사건을 지켜보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이었습니다. (...) 우리 모두에겐 괴물이 필요했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른 누군가보다 자신이 더 낫다고 느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전 그런 사람들이 원하는 먹잇감을 던져줬을 뿐입니다.(p. 132 ~ 133)


 사실 이러한 포겔의 고백은 지금의 미디어가 하는 것 그대로다. 한겨례, 경향, JTBC, 오마이뉴스도 예외는 아니다. 조국의 어머니가 이사장으로 있는 웅동학원이 마치 어마어마한 탈세를 한 양 과장하고 강경화 남편이 살기 위해 지은 집을 부동산 알박기로 몰아가며, 김부겸의 아내가 얼마되지 않는 비상장주식 신고 누락을 마치 엄청난 금액을 고의로 누락한 것처럼 포장하는 것과 같은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괴물을 찾아내는 게 아니라 괴물을 만들어내는 게 지금 언론이 하는 일이었다. 포겔이 하는 것과 똑같이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멋대로 조작하고 왜곡한 괴물을 우리보고 뜯어 먹으라고 던져준 것이다. 그들은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을 포장하고 있으나, 그들의 말은 정직한 게 아니었고 오로지 독일 뿐이었다. 우리들을 자신들과 같은 괴물로 만들기 위한. 괴물을 만들어내는 자들이 계속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우리 모두들 자신과 같은 괴물로 만드는 것. 우리가 그들처럼 괴물이 되어 점점 더 비이성적이 되고 정의나 도덕이 아니라 오로지 이기심에 물들어갈 때, 그들의 일은 점점 더 영향력을 가지게 되고 거기에 드는 수고는 적어질테니까. 그들은 우리가 아직 미몽 속에 빠져 있으며 자신들이 우리를 진실로 선도하고 있다고 악을 쓰지만, 사실 그들이 인도하는 곳은 더 깊은 안개 속이다. 우리가 계속 무지와 혼돈 속에 함몰되어 있는 것만이 그들이 원하는 것이니까. 문재인 정부 한 달. 특히 인사청문회를 둘러싼 보도 행태를 보며 더 절절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들이 특종이라며 요란하게 호각 소리를 내면 낼수록 그것은 우리를 더 짙은 안개에 둘러싸게 만드는 주술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제 그런 눈속임과 선동에서 눈과 귀를 닫아야 할 때다. 인위적 안개는 스스로 뚫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 수동적 수용이 아니라 능동적 파악이 될 때, 우리는 타인을 괴물로 삼지도, 또 우리 자신이 괴물이 되지도 않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 우리의 눈과 귀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바로 그들이 안개를 피우는 진정한 목적이기도 한, 그들이 안개로 가리려 하는 희생자와 약자들의 모습과 목소리다. 누구도 애나 루의 행방에 대해 관심 갖지 않을 때, 유일하게 신경을 썼던 형사 보르기가 다음과 같은 것을 배웠던 것 그대로.


 희생자들도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

 희생자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사건에 관한 진술을 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이 부분은 수사 초기부터 무시되곤 한다. 하지만 희생자들에게도 목소리가 있다. 그들의 과거가 대신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단지 누군가가 귀를 기울여주면 될 뿐이다.(p.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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