맙소사!

 영화를 본 뒤 내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이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공각기동대'를 만드는 줄 알았는데, 이거야 원 '토탈 리콜'을 만들어 놓았잖아!


 안다. 모든 작품들은 개별적이다. 설사 원본이 있다고 해도 거기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

 내가 '맙소사'를 느낀 건 원본이 되는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의 주제와 달라서가 아니다.

 영화 자체의 문제다.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모두 보신 분은 이 영화가 애니메이션에서 얼마나 많은 부분을 따왔는지 아실 것이다.

 영화 초반 장면부터 시작해서 건물 습격 장면을 비롯하여 참 많다. 공간에 대한 묘사도 그렇고 하물며 건물 위로 비행기 지나가는 것까지

 애니메이션에서 가져왔다. 영화 마지막은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유명한 소령이 광학미채로 사라지는 장면이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크레딧 화면에서 흘렀던 카와이 켄지의 음악이 영화 크레딧에도 그대로 흐른다.

 그러니 '맙소사!'다.


 애니메이션에서 관객을 매혹시켰던 장면들을 이렇게나 많이 가져와 놓았지만

 정작 그 장면이 이야기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전혀 헤아리지 않아 이번 영화에서는 아주 엉뚱하게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원본에 대한 수많은 인용이 말하고자 하는 것과 전혀 다르게 쓰여 이 영화 내부의 정합성을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하하하!

 헛웃음이 나오는 것을 그칠 수 없다.

 오시이 마모루가 왜 초반에 광학미채 장면을 썼는지, 후반의 스파이더 탱크와 소령이 싸우는 의미가 무엇인지?

 인형사가 그 영화에서 무엇을 뜻하는지, 쿠제 히데오와는 왜 맞지 않는지?

 정말 자신이 그 장면들을 가져 오면서도 그것이 지금 자기가 말하는 것과 어울리는 것인지 전혀(영화를 보니 이렇게 단정지을 수밖에 없다.)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광학미채 자장면을 마지막에 마치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서비스 하듯 넣었겠지.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막대한 제작비, 그것에 돈을 준 중국의 두 회사 때문일까?

 아무래도 원본의 이야기는 많은 관객들이 이해하기엔 무리가 있을테니(원본은 일본에 개봉했을 때조차 흥행 참패했다. 그래서 공각기동대 속편은 제작사가 공각기동대라는 이름을 붙이면 저번처럼 흥행이 안되니까 그냥 '이노센스'로 하자고 했을 정도다.) 관객들이 보다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로 방향을 틀어버리는 바람에 이런 참사가 벌어진 것일까?


 모르겠다. 내겐 너무나도 그리운(난 공각기동대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상영했던 96년, SICAF에서 봤다. 아직도 그 날 '공각기동대' 애니메이션을 봤을 때의 충격이 생생하다. 너무나 경이로워서 포스터가 그려지 티셔츠를 구입했고 그것을 한동안 입고 다녔다.) 작품이라 실사로 만들어진다기에 잔뜩 기대하고 봤는데 주제는 그렇다쳐도 영상과 이야기가 이렇게 따로 노는 건 납득하기 어려웠기에 보지 말 것을 후회하는 중이다.


 이런 글을 쓰는 건, 이런 말을 할 사람이 가까이에 없기 때문이다. 보고나서 정말 이 영화에 대해 뭔가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그런 말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게 이렇게 답답한 것이구나 처음 느꼈다. 그만큼 애정하는 작품이라 그런가 보다.

 어쨌든 어디다 쏟아낼 길이 없기에 여기다 내지른다.

 영화 리뷰는 언제든 쓸 것이다.

 조목조목 말하지 않고 냅다 이런 말만 싸질러 놓는 건 그래도 열심히 만든 이에게 예의가 아닐테니.

 지금은 감상 소감만 말해 둔다.


 '맙소사'라고...


 그건 그렇고 요즘 누가 원본 따위에 신경 쓰나?

 필립 K 딕의 '토탈리콜' 같은 건 이미 한 물간 이야기다.

 더구나 순종을 찾고 원본을 고집해서 자꾸만 사람들 불안과 혈압 상승을 부추기는 트럼프 시대에...

 

 스칼렛 요한슨은 괜찮았다. 바트도 좋았고...(원본에는 없는 바트가 눈을 잃게 되는 연유를 영화는 보여준다.)

 쿠제(맞다. TV판 2기에 나온 그 쿠제다. 영화엔 인형사가 나오지 않는다. 그 쿠제의 카리스마를 이 영화에서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영화에는 그 쿠제를 이용했던 고다 카즌도도 나온다. 정확히 이름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얼굴 모습이 고다와 많이 닮았기에 하는 말이다. 쿠제가 있는 곳으로 알려진 바에서 요한슨에게 춤추라고 명령하는 사람을 말한다.)는 화면이 어두워 잘 보지 못했다. 마지막 장면의 표정조차 잘 볼 수 없었다.

 키타노 다케시가 또 헐리우드 사이버펑크 영화에 캐스팅 되었다.

 로버트 롱고가 필립 K 딕의 원작으로 만든 '조니 메모닉(우리나라 개봉명이 뭔지 기억이 갑자기 안 난다.)'에 이은 두 번째다.

 그 때는 야쿠사였는데 이번엔 야쿠사를 잡는 공안이다.

 사고로 얼굴의 표정이 없어졌기에 사이버펑크 분위기에 어울려서 캐스팅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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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7-03-31 0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다시피 《공각기동대》는 원작 만화가 1989년~1997년에 걸쳐 나왔고, 만화 영화는 1995년에 나왔죠. 지금으로부터 28년 전부터 태동했다고 할 수 있는데요. 1996~1997년 당시 《공각기동대》를 보고 한국 영화에서는 거의 접해볼 수 없었던 cyborg, cyberpunk, cyberbrain(電腦) 등등의 개념이라든가 사유 세계, 상상력의 전개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받고 놀라워하고 열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충격받고 놀라워하고 열광하는 데서 그쳤을 뿐 그것을 심층적으로 분석 · 탐구 · 연구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죠. 해서 한국은 그런 장르를 창작하거나 영화로 제작하는 문화의 단계까지 나아가는 건 꿈조차 꿀 수 없었다고 봅니다. 일본은 적어도 1980년대 말~1990년대 초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저런 개념들과 사유 세계를 폭넓게 상상하고 경험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죠. 반면 한국은 지금 21세기 초에서야 알파고 충격을 경험하고 나서부터 저런 비슷한 개념들과 사유 세계에 겨우 눈을 뜨게 된 것은 아닌가 합니다(사회 전반적인 측면에서). 일제 식민지 노예 상태에서 풀려난 것이 1945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겨우 72년 전이니까 한국은 모든 측면에서 늦을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2017년 할리우드판 《공각기동대》는 과연 저런 조건에 놓인 한국인들한테 어떤 사유를 던져줄지 궁금합니다.

ICE-9 2017-03-31 23:07   좋아요 0 | URL
qualia님 말씀 고맙습니다. 제가 공각기동대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 봐서 그 때 분위기를 조금은 잘 알고 있는데요. SICAF 상영 전에 키노에서 먼저 공각기동대가 나왔을 당시 똑같이 많은 관심을 받고 평가가 좋은 애니메이션이 ‘마크로스 플러스‘를 포함하여 두 편 더 있어 함께 소개했었죠. 물론 비평 탑은 공각기동대였습니다. 키노 때문인지 입소문인지 SICAF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공각기동대를 보러 왔었습니다. 코엑스 광장에 꽤 긴 줄이 있었을 정도로 말이죠. 아마도 이번 영화판 보고 실망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 때 봤던 이들이 아닐가 해요. 그 뒤로, 그 때는 아직 인터넷이라는 게 발달하지 않아서 공식적인 팬덤의 존재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공각기동대는 무조건 필수 관람작이었습니다. 대부분 영화 동아리에서도 함께 보고 많이 토론한 것으로 알고 있고 ‘공각기동대‘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 성인 취향 SF 애니메이션이 나오기도 했었죠. 말씀하신대로 일본은 이미 그 쪽에 충분한 토양이 마련되어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그 때 비로소 본격적으로 사이버펑크가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싶긴 합니다. 물론 그 전에도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라든가 ‘토탈 리콜‘ 같은 것이 어느정도 사이버 펑크의 가교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사이버 펑크를 주제로 한 sf 단편집도 나왔던 걸로 압니다. 제 생각에 저변에선 사이버펑크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분명 있었지만 그 수가 너무도 일천했기에 주류로 나아가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sf의 영토란 지극히 협소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개인들간의 관심이 있었기에 영화 ‘매트릭스‘도 쉽게 받아들여지고 인기를 얻은 게 아닐까 싶어요. 그 ‘매트릭스‘는 공각기동대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죠.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한 ‘루시‘가 ‘아키라‘에서 영향을 받은 것과 똑같이 말이죠. 아마도 영화판으로썬 우리들에게 별로 사유할 거리를 던져주진 못할 것 같습니다. 영화판 주제는 철지난 것들이기 때문이죠. ‘공각기동대‘ 때는 정말로 많은 논의들이 있었는데, 영화판이 좀 더 사이버펑크 적으로 존재론적 주제를 지녔다면 그 때의 논의들이 좀 더 발전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로는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네요. 쓴다고 쓰긴 했는데 과연 제대로 된 댓글일지 모르겠습니다. 두서가 많이 없을텐데 널리 양해하시고 읽어주세요. 그리고 qualia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