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시선 - 합본개정판 모중석 스릴러 클럽 2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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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자리의 날개는 참으로 약하다. 손 끝으로 잡아 조금만 힘주면 바스라진다. 때로 삶은 그런 잠자리 날개와도 같다. 아주 사소한 계기로 평온했던 삶이 송두리째 전복되기도 하는 것이다. 어떤 소설의 제목처럼 참을 수 없는 삶의 가벼움을 그것도 아주 예민하게 느끼는 작가, 그가 바로 할런 코벤이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언제나 느닷없는 공격을 당한다. 콧노래를 부르며 모퉁이를 돌았는데 갑자기 강도가 겨눈 총구를 맞이한 것과 유사하다. 예측할 수 없었던 시간과 장소에서 불현듯 들어온 것이기에 블랙홀에 붙잡힌 빛처럼 삶은 사정없이 끌려 들어간다. 그 혹은 그녀들의 삶은 갑자기 암흑이 된다. 이유를 알 수 없기에 더욱 짙어버린 어둠 속에서 몸으로 더듬으며 진실과 구원을 찾아 나가야 한다. 그들에게 진실은 곧 구원이다. 지금 겪고 있는 환란(患亂)의 이유를 찾는 것이 곧 현재의 고통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인 것이다. 이것이 할런 코벤이 선사하는 미스터리가 가지는 이채로운 점이다. 그의 미스터리는 다른 것과 다르게 독특한 작용을 한다. 이것은 셜록처럼 풀어야 할 트릭이 아니다. 필립 말로처럼 도덕적으로 무너진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거나 개인의 신념을 타락시키려 유혹하지도 않는다. 할런 코벤의 미스터리는 전혀 부정적인 게 아니다. 설령 주인공이 그로 인해 목숨마저 위험할 정도로 고통 받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왜냐하면 코벤의 미스터리는 지금 삶이 가짜라는 것을 알려주는 전서구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가 지금까지 진짜라고 믿었던 앤더슨으로써의 삶이 가짜라고 알려주었던 '빨간 약'. 할런 코벤의 미스터리는 바로 그것이다. 한 마디로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탈옥을 위해 준비된 숟가락.


 "진짜 삶을 찾게 해 주는 할런 코벤의 빨간 약, 자네도 한 번 먹어볼 텐가?"


 어떻게 그렇게 되는가?

 과거 때문이다. 코벤의 소설에서 주인공이 당하는 곤경은 대부분 과거와 관련이 있다. 그는 과거 사건의 피해자였거나 가해자였다. 상실의 아픔을 억지로 잊었거나 책임을 회피했다. 주인공이 과거에 어떤 행위를 했건 간에 늘 존재하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사건을 직시하지 않고 회피하려 했다는 것. 그저 잊거나 책임을 피하기 위해 달아났다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고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과거는 아주 솜씨가 좋은 술래다. 어디에 숨든 늘 자신을 찾아낸다. 자신에게 양심이라는 내부고발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 혹은 그녀는 진실이든 책임이든 싸우기 싫어서 도피를 선택했지만 그것은 또 다른 싸움의 시작일 뿐이었다. 바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억과의 투쟁. 그 기억은 계속 주인공에게 말한다. 지금 네 삶은 가짜라고, 진실과 책임을 외면하는 한 진짜 삶은 너에게 없다고. 하지만 과거와 대면하는 게 고통스런 주인공은 쓴 약을 억지로 삼키는 마음으로 모르쇠 한다. 잠깐이라도 고통을 외면하기 위해 마약을 맞는 사람과 다를 게 없다. 이것은 결코 올바른 삶이 아니다. 이대로라면 악순환만 계속 될 뿐이다. 뭔가가 나타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과거와 대면하여 진실을 알고 그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하여 망각과 회피로 일관된 가짜 삶의 질곡으로부터 건져내야 하는 것이다. 바로 그런 일을 하는 것이 미스터리다. 그것은 너구리처럼 굴 속 깊은 곳에서 움츠리고만 있는 자신을 나가서 진짜 삶과 대면하라고 내몰기 위해 피우는 연기와 같다. 연기가 매캐우면 매캐울수록 자아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진짜 삶과 마주하려고 나가게 될 것이다. 코벤의 미스터리가 이와 같다. 그의 미스터리가 납치와 살인처럼 어둡고 잔혹한 색채를 띠는 이유는 단 하나, 구원을 향한 탈출의 속도를 높이는 데 있는 것이다.


 

2004년에 발표된, '단 한 번의 시선'은 이러한 코벤 미스터리의 결정체와도 같은 작품이다. 제목에서부터 할런 코벤 특유의  '아주 사소한 계기로 절단나는 삶'이 바로 드러나 있다. 주인공은 남편과 두 명의 어린 자녀가 있으며 직업이 화가이나 지금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슬럼프를 겪고 있는 그레이스. 그녀의 삶은 정말 아주 사소한 것 하나 때문에 절단 나 버린다. 그것은 바로 사진 현상소에서 찾아온 가족 사진들 속에 끼어 있던 이상한 사진 한 장(원제 그대로 JUST ONE LOOK!). 분명 자신이 찍은 사진이 아닌데다 아무래도 사진 속 인물 하나가 남편 같아서 남편에게 보여줬더니, 그 날 밤 갑자기 차를 몰고 집을 떠난 남편은 그대로 실종되어 버린다. 그렇게 느닷없이 닥쳐온 곤경 앞에서 지금껏 평온한 삶을 살던 그레이스는 어찌할 바 모르고, 남편 사건은 점점 실종에서 납치라는 게 밝혀진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를 압박해오는 15년 전 그녀의 과거. 그것은 '보스턴 대학살'이라는 이름으로 전 미국을 전율하게 만들었던 사건이었다. 한 록 뮤지선 콘서트 장에서 일어난 그 사건은 누군가 쏜 총 한 방 때문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서로 앞다투어 달아나느라 치이거나 깔려 목숨을 잃었는데, 그레이스는 그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목숨을 건진 유일한 생존자였다. 마치 자신의 이름대로 그레이스, 즉 축복을 받은 것처럼.


 하지만 그녀는 사건을 기억하지 못한다. 왜 콘서트 장에 갔으며 어떻게 목숨을 구할 수 있었는지, 그 날의 기억을 모조리 상실한 것이다. 그것은 정말 기억 상실인 것일까? 혹시 그 날의 고통과 죄책감을 애써 잊기 위한 심리적 방어는 아닐까? 남편의 실종과 함께 불시에 나타난 인물인 칼 베스파가 그것을 상기시킨다. 그는 '보스턴 대학살'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이자 암흑계의 거물. 칼 베스파는 남편의 실종이 15년 전 사건과 관계있을 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한 편, 정체불명의 사진은 그레이스에게 남편에 대한 의혹을 일으킨다. 사진 속 남편을 보고 있는 한 여성의 모습은 남편이 숨긴 과거가 슬쩍 꼬리를 내민 것 같았으며 지금까지 남편의 삶을 잘 안다고 여겼지만 어쩌면 아는 게 하나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렇게 사진 한 장은 그레이스가 잘 안다고 여겼던 삶의 모든 것들을 'PAINT IT BLACK' 하면서 진실과 출구를 도저히 찾을 수 없는 무저갱 깊숙이 빠뜨려 버린다.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오는 방법은 그 바닥까지 내려가서 밑바닥에서 다시 발을 차고 올라오는 것이라고 하던가? 그레이스 역시 그렇게 된다. 모든 것을 잃게 된 그 순간, 홀연히 자신이 정말 알았어야 할 진실, 보았어야 할 사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레이스에게 공포와 불안 속에서 좌충우돌했던 무저갱은 한 마디로 통과의례와 같은 것이었다. 그레이스는 이제야 진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고 비로소 자신의 이름대로 그레이스, 즉 축복을 받은 것이다.


 [사람의 삶이 가진 경계란 이렇게 낮고 연약할지 모른다. 외형의 경계 안에서 움츠린 채로 자기 보호에 급급하기 보다는 오히려 상처를 직시하고 그 진실과 책임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것이 진정으로 자신을 보호할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 것이라는 걸 말하는 게 아닐까 생각되는 원서의 표지(너무 확대 해석인 지도^^;).]


 많은 미스터리들은 우리 역시 삶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이런저런 문제들을 다룬다. 할런 코벤의 미스터리가 다른 미스터리들과 다른 점이 있다고 한다면, 다른 미스터리들은 그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한 탐색의 시선을 바깥 세계로 돌리지만, 코벤의 미스터리는 탐침을 자기 내부로 향하게 한다는 데 있다. 고뇌와 불안을 가져오는 문제가 있을 때, 코벤이 독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연어가 되라는 것이다. 바깥 탓을 하려는 것들에게 현혹되지 말고 근원으로 열심히 회귀하는 연어처럼 자기 내부로 거듭해서 깊이 깊이 들어가라고 그는 조언한다. 이는 '단 한 번의 시선'에 나오는, 또 한 명의 가정 주부 샬레인 스웨인이 너무나 잘 보여준다. 그녀는 권태와 우울에 빠져 있었다. 열정적인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던 남편과는 이미 오래전에 몸과 마음 모두 멀어졌고 현재의 늙고 초라한 모습과는 너무나 멀었던 과거 화려한 모습에 대한 미련만 곱씹으며 그러느라 더욱 비대해진 우울 속에서 무의미한 나날만 보내고 있었다. 처음 그녀는 그런 비참과 우울의 나날 속에서 자신을 건져내 줄 무언가를 오직 바깥에서 찾았다. 바로 옆집의 한 남자. 하지만 그것은 결코 구원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남편 목숨만 위험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러나 불현듯 그녀가 참여하게 된 미스터리(옆집 남자를 훔쳐보다 그녀가 발견한 미스터리는 그야말로 미스터리하게 진행된다.)는 결국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이며,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를 알게 만든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적극적으로 미스터리 속에 감춰진 진실을 알려고 하고 거기에 따르는 자신의 책임마저 다한 결과였다. 바로 이러한 샬레인 스웨인의 경로가 할런 코벤의 미스터리가 독자에게 주고자 하는 것의 원형이라고 생각된다. 자신을 두렵게 만드는 진실이라 할지라도 외면하지 말고 정직하게 직시하며 책임져야 할 것은 기꺼이 책임지는 태도. 샬레인 스웨인은 바로 그것을 나타내며 결국 소설에서 그럴 수 없는 이들은 모두 파멸했다. 이것은 또한 모든 것의 배후에 있는 범인과 얼마나 정반대의 모습인가? 회피와 무시로만 일관하는 것은 더 큰 비극만 부를 뿐이라는 것을 이 인물만큼 명확하게 보여주는 이가 또 있을까 싶다. 아, 하나 있긴 있구나. 우리나라의 박근혜, 최순실, 김기춘, 우병우 일당. 그들이 구속되면 할런 코벤의 이 소설이나 사식으로 넣어줘야겠다.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런 돈조차 쓰기 아까운 존재들이다. 어차피 넣어줘도 안 읽을 것 같다. 그들 중 둘은 드라마만 열심히 본다고 들었던 것 같으니. 여하튼, '단 한 번의 시선'은 독특한 미스터리 세계를 선보이는 할런 코벤의, 그런 미스터리의  결정체라는 점에서 꼭 한 번 만나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미스터리가 내적으로 깊어지면 어떤 형상이 되는지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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