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무력 정치사 - 민족주의자와 경찰, 조폭으로 본 한국 근현대사
존슨 너새니얼 펄트, 박광호 / 현실문화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국 미시간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일본 호세이대에서 강사로 있는 존슨 너새니얼 펄트의 '대한민국 무력 정치사'는 국가가 자신의 통치를 유지, 강화하기 위해 민간 행위자들과 공모, 협력하는 것을 다루고 있다. 바로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말이다.


 국가들이 비국가 폭력 전문 집단과 협력하는 것은 놀랍지 않다. 그 역사는 오래되었고, 근거도 분명하다. 국가가 형성되는 초기 과정에서 국가 행위자들과 국가추구자들은 필요에 따라 해적, 용병, 불법 무장 단체, 깡패와 협력하곤 했다. 따라서 약하거나 이행기에 있는 사회에서, 혹은 이행기에 있는 약한 사회에서 그런 협력이 발생해왔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난해한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은 고능력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 행위자들이 자국 내에서 초법적 폭력을, 더욱이 자신들이 보호할 책임을 지고 있는 자국 시민들에게 그런 폭력을 수행할 때 민간 행위자들과 공모하게 되는 조건이다.(p. 9)


 이것은 우리에게 그리 어렵게 다가오지 않는다. 한국은 OECD에 들어갈 정도로 고능력의 국가가 되었지만 오늘도 재개발 현장에선 철거 용역들이, 거리에선 어버이 연합 같은 관제 데모 단체들이 활개를 치고 있으니까 말이다. 정주영이 노조를 진압하기 위해 처음 만들었던 '구사대'가 이제는 전혀 낯설지 않듯이, 국가 권력과 결탁한 민간 행위자들은 우리의 일상 속 깊이 들어와있다. 존슨 너새니얼 펄트는 왜 이런 상황이 일어났고 무엇이 그런 것을 지속시키고 있는지 이 책에서 뒤쫓는다. 모두 8장에 걸쳐 그것을 다루는데, 2장은 이 책에서 사용하고 있는 이론과 방법에 대한 설명이고 결론인 8장을 제외한 나머지가 구체적인 한국 현실을 바탕으로 하여 어떻게 국가가 민간 협력자들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이르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국가가 강제력을 민간에게 하청하게 되는 것은 주로 국가의 강도와 상관관계가 있다(p.35) 여기서 '강도'란, 워싱턴대 정치학 교수인 조엘 미그달이 정의한 개념인데, '국가가 사회에 침투해 사회적 관계들을 조정하고 자원을 추출해 확고한 태도로 자원을 적절히 사용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즉, 국가가 제 사회적 관계들에게 얼마나 자율성을 확보하고 있느냐가 관건인데, 그것이 작을수록 민간에게 강제력을 하청하는 정도는 많아진다. 예를 들어, 친일과 한국 전쟁으로 정당성이 없어서 자율성이 보잘 것 없었던 이승만은 반대 세력을 누르는 수단으로 정치 깡패를 많이 이용했다. 그것은 쿠데타를 통해 역시 아무런 정당성 없이 정권을 잡게된 박정희도 마찬가지였다. 그 후, 박정희의 지배체제가 공고해지고 자율성이 강화되자 정치 깡패들은 자연히 토사구팽 되었다. 그런데 경제 위기가 닥쳐오고 지금까지 경제 성장을 떠받치고 있었던 노동자 저임금을 더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자 박정희 체제는 다시 민간에게 강제력을 하청했다. 즉 경제 불안과 거센 민주화 요구로 인해 자율성이 축소되자 민간에게 자기 대신 폭력 행위를 해달라고 손을 내민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이 단순히 자율성의 축소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가 유심히 들여다 보는 것은 당시 중산층의 성장이다. 저임금 기조에 기반한 경제 성장으로 늘어난 중산층이 국가의 직접적 폭력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던 것이다. 박정희는 중산층이 노동자에게 가담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중산층이 가장 혐오스럽게 여기는 국가의 직접 폭력을 은폐하기 위해 민간 폭력 집단을 대신 내세웠던 것이다. 겉보기엔 민간 대 민간 사이의 일로 보이도록 말이다.


 이것은 박종철 고문 치사가 6월 항쟁을 낳았다는 것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난다. 6월 항쟁의 특징은 중산층이 대대적으로 국가에 대한 투쟁에 뛰어들었다는 것인데 그것을 가져온 '박종철 고문 치사'는 한 마디로 국가가 국민을 직접 살인한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바로 이것, 중산층을 노동자 및 진보 세력과 철저히 분리시키는 것이 오늘날도 계속되는 강제력 민간 하청의 결정적 이유라고 저자는 본다.


 권위주의 시기에 중산층은 초기의 노동운동을 지지했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점점 더 투쟁적이 되고 노동쟁의도 증가하면서 둘은 분열됐다. 민주적 선거 획득이 대개 중산층을 달랬지만 정권의 선언에는 노동이라는 사회경제적 관심사는 포함되지 않았다. 민주적 선거 이후에도 투쟁적이고 폭력적인 노동 관련 충돌이 계속되자 노동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생겨났고, 중산층은 노동운동이 '도덕적 권위'를 잃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경제적 또는 정치적 안정성에 대한 실재적이거나 인식된 위협들, 이를테면 친정부 언론이 잦은 노동쟁의의 결과라면서 쉽게 제시할 수 있는 사건들을 접하게 되면서 노동에 대한 중산층의 인식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p.152)


 저자의 이런 말은 국가가 사실은 폭력을 자행하고 있으면서도 구조적으로 은폐하여 부재의 가상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속시켜 나간다는 지젝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중산층의 폭력에 대한 태도에 대해선 다시 깊은 비판과 성찰의 시선이 필요한 것 같으나 이 글에선 무리일 것 같다. 다만 지금 계속되고 있는 촛불 집회만 해도, 물론 이것이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비폭력이었기 때문에 천만 이상이 참여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중산층은 되도록 사회가 안정되길 바란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늘 지키고 싶으니까. 하지만 폭력의 목격은 사회의 불안을 가중시킨다. 중산층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아마도 폭력 같은 것으로 사회의 경계가 무너지는, 홉스가 말한 '만인에게 만인이 늑대가 되는 사회'일 것이다. 그들의 인식을 억지로 바꾸려고 하기 보다는 그것을 수용하면서 사회 개혁을 진전시켜 나가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어쨌든 그들의 지지와 참여가 필요하니까 말이다.


 '대한민국 무력 정치사'는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철거 용역, 어버이 연합 같은 관제 데모 세력들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일상적으로 보기에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존재들이었는데, 그들의 탄생과 정착의 과정을 보면서 미래에 다시 그들을 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 현대사를 새로운 측면에서 바라보도록 했던 책이기도 했다. 국가와 결탁하여 국가 대신 폭력을 자행하는 존재들에 대해서 알고 싶다거나 관심이 있었다면 '대한민국 무력 정치사'는 좋은 길잡이가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