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 - 꼿꼿하고 당당한 털의 역사 사소한 이야기
커트 스텐 지음, 하인해 옮김 / Mid(엠아이디)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고양이 집사로 사는 일은 한 편으론 털과의 전쟁이다. 검은 옷은 세심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잘 입지 못하게 되고, 냄비 뚜껑은 잘 덮어놓아야 하며, 탁자 위에 둔 컵에 물을 따를 때에도 한 번은 들여다 보아야 한다. 목구멍에서 뭔가 묘한 이물감을 느끼지 않으려면. 인간에게서 나오는 털도 그 양을 무시하지 못하는데, 동물에게서 나오는 털까지 숟가락도 아니고 주걱으로 얹어 놓고 있다 보니 치우고 또 치우다가 절로 이런 원망과 푸념이 뒤섞인 질문을 하게 되는 걸 어쩔 수 없다.

 '신은 왜 하필 이런 털을 만든 것일까?'


 아마도 이런 질문을 '헤어'의 저자 커트 스텐이 들었다면 내게 '뭘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하고 있어?' 하면서 바로 역정을 내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그에겐 '털'이 자기 밥그릇이니까 말이다. 그는 털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다. 그것도 무려 30년이나. 얼른 '헤에? 털만 연구하는 학자도 있어?'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나만 그랬나? 하긴 별로 신기할 게 없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학자들은 바닷 속 물고기처럼 많고 다들 별의별 것을 다 연구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이런 반응이 그리 별나진 않은 모양이다. 털만 연구한 그가 30년이 지나 비로소 털의 역사에 대한 책을 쓰기로 결심하게 만든 것도 바로 이런 반응이었으니까. 그 일은 그가 자주 다니는 이발소에서 일어났다. 어느 날 이발사가 머리를 깎다가 우연히 몇 년동안 다녔는데도 한 번도 묻지 않았던 그의 직업을 물었다. 그가 털을 연구한다고 하자, 이발사는 재밌는 농담을 들은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암묵적으로 '그런 걸 연구하는 사람이 어딨어?' 하는 반응을. 그것으로 작가는 보통 사람들이 털에 대해 아주 '협소하고 근시안적인 시각에 갇혀 있다(p.15)'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서 사람들을 해방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털의 전체적인 그림과 털이 인간의 삶에 이제까지 해온, 그리고 앞으로 기여할 역할에 대해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p.15)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글의 대상인 '헤어'는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다.




 이 책엔 정말 털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일단 털은 진화의 과정 중에 태어났다. 털이 주로 포유류에게만 있다는 점에서 털의 기원과 역할은 아무래도 파충류와 비교해봐야 할 것 같다. 그랬을 경우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포유류는 파충류와 달리 태양의 직접적인 도움 없이 내부의 신진대사를 통해 스스로 열을 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포유류는 파충류와 다르게 야간과 추운 지방에서도 사냥 활동이 가능했는데, 피부는 그런 체내의 열을 보존할 수 있게끔 진화했다. 털 역시 바로 거기에 맞춰 생겨났고 진화해왔다고 한다. 털이 가진 역할이란 무엇보다 모든 종류의 열이동의 차단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단열이야말로 피부와 털 모두에게 있어 가장 본질적이며 중요한 역할인 것이다. 때문에 포유류에겐 한가지 습관이 생겨났다. 개라면 더우면 혀를 길게 내밀며 헐떡거리고, 고양이라면 혀로써 털을 닦는 행위 말이다. 이 모든 게 사실은 몸을 식히려는 몸짓이었다. 그동안 고양이를 키우며 '그루밍' 하는 것이 단순히 몸을 깨끗하게 만드는 행위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 책을 보니 체온을 떨어뜨리는 행위이기도 했던 것이다. 새삼 털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인간은 털을 없애는 쪽으로 진화해 온 것일까?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가 인류를 '털 없는 원숭이'라고 부를만큼 포유류 중에서 인간만이 유일하게 몸에 거의 털이 없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 바로 두뇌의 온도 때문이었다. 인간의 두뇌가 발달하면서 털이 있는 인간에겐 큰 문제가 하나 생겼다. 그건 바로 두뇌가 열에 매우 민감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털은 단열 효과로 체내의 열을 유지하거나 증가시킬 뿐 감소시키지는 못한다. 점점 커져만 가는 두뇌에겐 굉장히 걱정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인류는 지금처럼 털을 가급적 없애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던 것이다. 아마도 이런 진화론적 경험이 그대로 DNA의 기억으로 남아 동서양을 막론하고 털 없는 것을 털 있는 것보다 더 우월하게 여기도록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구약성서에서 털이 없는 야곱이 사냥에 능하고 털이 많은 에서를 속여 그 시대 가장 중요한 권리인 장자권을 가져왔듯이, '성경에서 털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선택받은 자(p. 87)'로 나오고 17~21세기 제국시대 말기의 중국철학자(책에는 이렇게만 나와 있는데 어떤 시대를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21세기는 지금이므로 현재의 중국을 제국이라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기원전이라는 말이 빠진 것이 아닐까 싶고, 여기서의 제국은 중국 최초 통일 국가인 진나라를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다음에 말할 내용은 당시 유학자들의 주장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들도 인간다움은 몸에 자라는 털의 양과 반비례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헤어'는 이런 이야기를 자세하고도 쉽게 들려준다. 생물학적 측면만이 아니라 문화적 측면까지 아울러 세세하게 짚어주기 때문에 커트 스텐의 야심처럼 아무래도 털을 새롭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18세기까지만 해도 모발 관리는 중요한 건강 관리 중 하나였기 때문에 이발사가 외과 의사 역할을 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20세기 이전 미국에서 이발소는 주로 흑인들 차지였다는 것은 몰랐다. 흑인 노예들 중 일부 주인의 치장을 담당했던 이들이 나아가 주인들이 경영하는 이발소를 맡아 일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1860~80년 사이 흑인은 전국의 이발소를 독점하고 결국 19세기 말부터 흑인 고객까지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때를 기점으로 흑인의 이발소는 흑인들 커뮤니티의 아주 중요한 장소로 자리매김해왔다. 미국 영화 중에 '바버샵'이라는 게 있는데, 그 이발소 역시 흑인 공동체 사회에서 중요한 소통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그것이 현대와 생겨난 게 아니라 실은 오랜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흥미로웠다. 가발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었다. 프랑스 혁명 전에 가발은 유럽 전역에서 귀족 신분과 권력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고 한다. 털이 많은 것은 야만인으로 취급받는데, 머리카락이 많다는 것은 왜 교양과 권력의 상징이 되었을까? 이것은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조선시대까지 상투를 틀어서라도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을 금기시했다.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엔 당시 널리 유행했던 신비주의 사상 때문에 머리카락에 영혼이 깃든다는 생각까지 퍼져 있었다고 한다. 다른 털과 달리 머리카락은 건강과 매력 그리고 성적인 메시지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성경 속 삼손의 이야기는 아마도 이것에 대한 가장 뚜려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헤어'는 인간의 털을 넘어 동물의 털까지 속속들이 알 수 있는 재밌고도 흥미로운 책이다. 늘 매만지거나 뽑고 얼른 치우기만 했지 깊이 헤아려보지는 않았던 털에 대해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면 좋은 안내자가 되어줄 것 같다. 그렇다고 고양이 털을 좀 더 기분좋게 치우게 되지는 않더라만... 하아... 나는 또 고양이 털을 쓸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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