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의 여자들 1 - 4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4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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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 어떤 책은 행운의 여신이 함께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적절한 타이밍에 우리 앞에 나타나는 일이 있다. 이번에 나온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 제 4부, '카이사르의 여자들'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4부와 5부는 로마 역사상 가장 커다란 족적을 남긴 카이사르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왜 그런 이야기에 적절한 타이밍 운운을 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 때 로마의 상황이 바로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과 참으로 유사하기 때문이다.카이사르가 황제에 오르기까지의 로마는 그야말로 보수와 반동의 흐름이 날로 격심해지던 때였다. 만민이 평등하고 고귀한 명예를 추구하던 공화국의 이념은 어느새 사라지고 '파트리키'로 불리는 귀족들이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서 오로지 자신만의 사익만 추구하기에 여념이 없었기에 '반동'이었고, 그러면서 밑으로 부터 불어오는 변화의 바람을 묵살하기에 바빴으므로 '보수'였다. '원로원'은 원래 의회 민주주의의 기치를 높이 세우는 곳이었으나 이제는 권력의 헤게모니를 독점한 그들의 위치를 정당화하고 확장시키는 게 하는 일의 전부인, '그들만의 기구'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한 원로원의 변모는 누구도 '파트리키'를 견제할 수 없음을 뜻했다.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선거에서 표를 얻고, 자리를 얻는 게 가능했다. 재판도 돈만 있으면 배심원을 매수해 판결을 쉽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꿨다. 재판까지 갈 것도 없었다. 돈과 권력 그리고 인맥만 있다면 설령 폭력을 쓴다해도 괜찮았다. 고용 승계 문제로 마찰을 빚던 탱크 로리 기사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야구방망이로 마구 구타한 뒤 맷값이라며 돈을 던져준 최철원 전 M&M 대표나 자신의 아들이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때린 점원들을 조폭을 동원 청계산으로 끌고가 쇠파이프로 때린 한화 김승연 회장이라면 환영할만한 세상이 이미 로마에선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파벌이 권력을 쪼개 나눠가졌고 파벌에 속하는 이의 그 어떤 비행과 불합리한 인사도 파벌의 비호 아래서 없는 일로 유야뮤야 되거나 합리적인 조치로 되어 버렸다. 단언컨대, 로마는 침몰 중인 배였다. 민주주의의 붕괴 속에 그 침몰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었다. 이런 로마의 모습에서 어떻게 현재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막강한 비선 실세와 그에 의한 수렴 청정만 없었을 뿐, 그 때의 로마는 지금 우리나라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밑으로 부터 계속 변혁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바로 그것을 가장 잘 이용하는 사람이 '카이사르의 여자들'에서도 등장하는, 나중엔 카이사르와 함께 행동하게 되는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였다. 그러나 이건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질 사실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카이사르가 로마 정치의 중앙 무대에서 활약하던 당시의 로마는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지금의 우리가 그렇듯이 누구나 로마의 앞날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런 모두에게 로마는 분명 갈림길에 서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미 공화국의 이념과 민주주의는 붕괴되고, 갈수록 소수에게 부와 권력이 집중되고 있는 로마를 이대로 내버려 두고 그것의 과실만 탐닉할 것인가? 아니면 그런 로마를 전복하고 공화국의 이념과 민주주의를 부활시키기 위해 새로운 로마를 만들 것인가? 카이사르 시대의 로마 지식인들은,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키케로, 소 카토, 클로디우스 할 것 없이 모두 이런 갈림길 앞에 서 있었고, 결국 자신의 신념이든, 탐욕이든 길을 선택하고 걸어나갔다. '카이사르의 여자들'은 바로 그런 여정을 담는다. 그래서 비슷한 시대의 어둠과 시대적 고민을 가진 우리들에게 더욱 살갑게 다가오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다.



 그런데 왜 제목은 '카이사르의 여자들'인 것일까?

 여기서 콜린 매컬로의 재치가 느껴진다. 이것은 분명 '간통의 황제', 부하들에게 '대머리 오입쟁이'로 불렸던 카이사르의 화려한 간통 전력을 살짝 비꼬고 있기 때문이다. 카이사르는 로마 역사상 가장 화려한 여성 편력을 자랑한다. 그는 이런 쪽에 전혀 개의치 않는 도덕관을 가지고 있어 미혼과 기혼을 불문하고 많은 여성들과 잠자리를 가졌다. 하지만 왕성한 성욕 때문만은 아니었다. 카이사르는 야심이 아주 커다란 자였으나, 그 야심을 이뤄줄만한 재력도, 인맥도, 힘도 없었다. 그랬기에 권력자의 아내와의 간통은 자신의 야심을 채울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발판이었다. 어떻게 그토록 많은 여성들이 쉽게 카이사르에게 넘어갈 수 있었을까 하고 왠지 궁금하게 여기실 분들을 위해 밝혀두자면, 여성들은 주로 육체가 아니라(그가 비록 잘생기긴 했어도 계속 빠지는 머리가 그의 육체적 매력을 감소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카리스마 때문에 반했다고 한다. 그 정부들중 카이사르를 가장 헌신적으로 사랑한 여인이 바로, 이 소설에서 가장 처음에 나오기도 하는, 세르빌리아다.


 세르빌리아는, 혹시 모르실 분들을 위해 소개하자면, 훗날 폼페이우스 극장에서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의 어머니다. 브루투스가 카이사를 암살할 당시, 브루투스는  로마 정치인들 중 가장 도덕적인 인물이라 평가받고 있었다. 또한 카이사르가 자신의 오른팔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가장 신임하던 자였다. 그런 브루투스였기에, 그가 암살에 가담한 것은 희생당한 카이사르 뿐만 아니라 로마인 전체에게도 참으로 커다란 충격이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카이사르는 암살하는 자들에게 완강히 저항하다가, 자신을 찌른 사람이 브루투스란 걸 알고 난 뒤엔 저항을 멈추고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였다 한다. "브루투스. 아들아, 너마저!'란 유명한 말을 남기고서 말이다.


 칼을 치켜 든 브루투스에게 카이사르가 그 말을 하고 있다.


 카이사르가 죽기 전에 남긴 이 최후의 말 때문에 오랫동안 역사학자들은 카이사르와 브루투스가 사실은 부자 지간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카이사르가 간통으로 유명하기도 했고 살아 생전에 카이사르가 브루투스를 워낙 각별하게 아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감안하고 읽으면 이 소설 첫 부분이 꽤나 중요하게 다가올 것이다.


 여기서 콜린 매컬로의 독특한 접근이 부각된다.

 왜냐하면 콜린 매컬로가 가장 많은 상상력을 불러 일으킨 카이사르와 브루투스의 관계를 시작부터 부자 관계가 아니라고 딱 못을 박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브루투스는 소년의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세르빌리아는 자신의 아들을 카이사르의 딸과 약혼시키려 카이사르의 집으로 찾아가면서 아직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는 고백을 하는 것이다. 세르빌리아와 카이사르의, 저 역사적으로 유명한 간통은 그 뒤에 비로소 시작된다. 콜린 매컬로는 아마 이것으로 골육 상잔이라는 막장 요소를 피하고 브루투스의 카이사르 암살을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신념 차이에 의한 것으로 정리해 두려는 것 같다.


 '같다'라고 막연하게 말하는 것은 이것을 확신하지 못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또 하나의 콜린 매컬로의 독특한 접근이기도 한데, 그것이 바로 세르빌리아의 셋째 딸, '데르티아'다. 콜랜 매컬로는 '데르티아'를 카이사르와 세르빌리아 사이의 자식으로 만든다. 그런데 이 '데르티아'가 어떤 존재가 되는가를 알고나면 이런 설정이 정말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와의 운명적 대결, 흔히 말하는 내전에 승리한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에게 가담하여 자신에게 가장 적대적이었던 일부 귀족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세르빌리아에게 3분의 1 가격으로 낙찰해 주는데, 그 때 로마인 사이에 '카이사르가 그렇게 한 것은 세르빌리아가 자신의 딸 데르티아를 카이사르에게 정부로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란 소문이 공공연히 떠돌았기 때문이다. 만일 콜린 매컬로의 설정 대로라면 이 상황은 그야말로 막장이 될 수밖에 없는데, 콜린 매컬로가 '부녀지간'이라는 설정을 가지고 이런 상황을 어떻게 설득력있게 넘어갈 것인지 자못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이렇게 시작된 '카이사르의 여자들' 1부의 이야기는 카이사르가 최고 신관이 되어 로마의 정치 무대 중앙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에서 끝난다. 그러는 한 편, 앞으로 더욱 선명하게 될 갈등 관계들이 얽혀든다세르빌리아는 자신의 야망을 대신 채워 줄 아들 브루투스에게 늘 재산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마침 동생 카이피오의 상속자가 브루투스인 것을 알고 동생을 살해하여 그것을 마련한다. 그러나 카이피오는 소 카토가 너무나 사랑하는 형제였다. 그렇지 않아도 서로 원수인 세르빌리아와 카토는, 아직 카토가 카이피오 죽음의 진실을 알지는 못하지만, 그 갈등 관계가 더욱 첨예화될 예정이다. 그렇지 않아도 카토는 카이사르를 싫어한다. 원리 원칙을 철저히 고수하고 그것을 어기는 자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여 비난하며 처벌을 집행하는 카토의 눈에 원리 원칙에 충실하기 보다는 이길 수 있다면 선동이나 금력 등 모든 자원을 이용하는 카이사르가 곱게 보일 리 없다. 더구나 세르빌리아가 카이사르와 부정한 관계고, 카이사르가 자신의 아내도 건드렸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 눈은 더욱 매서워졌다. 실제 역사에서도 카토와 카이사르의 관계는 내내 적대적이었는데, 콜린 매컬로는 상상력을 통해 이 둘의 갈등을 더욱 현실적으로 만들었다. 이런 카토는 자신을 잘 따른다는 것을 미끼로 하여 브루투스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다. 세르빌리아가 브루투스를 통해 이루려는 야망의 모습을 알고 있기에 카토는 브루투스를 그것과 전혀 다른 인물로 만들어 어릴 때부터 지녔던 세르빌리아에 대한 원한을 풀려는 것이다. 한편 선동 정치의 달인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는 '누구든 거두는 자에게 재난을 가져오는 자'라는 세간의 명칭답게 자신의 복수 리스트를 하나 하나 결행해 나간다. 그러다 그는 같은 편인 것처럼 다가가 사람들을 동요시켜 내부에서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즉 정치 선동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을 통해 그는 자신의 최대 원수인 키케로에게 일격을 가할 준비를 차근 차근 해 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1권은 더욱 본격적으로 진행될 인물들 사이의 갈등 관계들을 세공해 나가기 시작하는, 일종의 밑밥이라 말 만하다. 이런 내용들이 여전히 매력적인 콜린 매컬로의 문장들로 펼쳐진다. 대사는 맛깔나고(개인적으로는 특히나 선정적인 묘사가 압권이었다.) 장면들이 좀 더 드라마틱해져서 이번 작품은 더욱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앞으로 펼쳐질 카이사르의 이야기엔 모든 정치 체제에 운명적으로 따르게 되는 보수와 혁신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변화시키려는 자, 그 변화를 없애려는 자 그리고 양쪽을 오가면서 타협하는 자들이 저마다 생생하게 되살아나 자신의 선택을 보여주고 옹호를 구할 것이다. 한 마디로 우리는 인물로 구현된 각 담론들을 두루 살펴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한 번쯤 관심이 있었다면 그 관심을 이번 작품을 통해 풀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카이사르와 당시 로마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분들에겐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만큼 로마에 대해 생생한 묘사와 재미 그리고 독특하면서도 깊이 있는 해석을 보여주는 책은 달리 또 없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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