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경제 - L’economie des inegalites
토마 피케티 지음, 유영 옮김, 노형규 감수 / 마로니에북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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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성과연봉제가 이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성과연봉제는 업무능력과 성과를 등급별로 평가, 임금에 차별을 두고 저성과자는 해고시키는 게 방침인 제도다. 정부는 일단 공공기관부터 그것을 적용하려는 참인데, 현재 노조의 반발이 꽤나 거세다. 물론 취지는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 서비스가 주목적인 공공기관에서 사기업처럼 업무 능력과 성과를 일률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공 기관의 무능과 부패는 대부분 권력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자행되는 낙하산 인사로 인한 것인데 그 책임을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일만하는 일반 직원들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이다. 결국 성과연봉제는 임금 억제와 쉬운 해고가 골자다. 근본적으로 부자 감세로 인한 재정 부족 상황을 노동자의 희생을 통해 타개하려는 데 있다. 단적으로 소득 불평등 심화에 일조하는 정책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불평등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토마 피케티는 이렇게 되는 이유로 전체 소득에서 노동을 통해 얻는 소득의 비율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꼽는다. 그는 그것을 선명히 나타내기 위해 피케티 공식이라는 것을 고안했다. 공식에 대입하면 피케티 지수가 나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국민 전체 소득 중 자본 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을 가리킨다. 피케티는 이 지수가 1950년 이후로 계속 증가해 왔다고 한다. 즉 원래 가지고 있는 자본에서 얻는 소득이 노동을 통해 얻는 소득보다 갈수록 더 많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부의 획득이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보다 오로지 세습을 통해 더 많이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단어인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란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닌 것이다. 정태인 교수가 피케티 공식에 따라 우리나라의 피케티 지수를 산출했는데, 우리나라 전체 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몫이 무려 절반에 가까운 48%였다고 한다. 절반에 가까운 소득이 아무 노동 없이도 가능하다니, 정말 우리나라 불평등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피케티는 이 지수가 앞으로 더욱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라 본다. 당신이 흙수저라면 앞으로의 미래도 현재만큼이나 암울하다는 예언인 것이다. 이 운명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피케티는 조세 정책에 승부수를 띄운다. 


 무엇보다 오직 자본을 압박하는 조세만이 자본과 노동의 진정한 재분배를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다.(p. 91)


 지금까지는 경제 성장이 우리의 생활을 향상시킨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피케티에 따르면 OECD 국가의 경우, 1983년부터 1995년까지 부가 비약적으로 성장했는데, 같은 시기 노동자들의 삶은 별반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실질 임금의 하락으로 삶의 질은 전반적으로 낮아졌다. 한 마디로 성장의 과실은 결코 노동자에게로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보수들이 흔히 주장하듯, 경제 성장이 더 좋은 삶을 가져다 주진 않는다. 한 마디로 넌센스에 불과하다. 때문에 기댈 곳은 오직 재분배 정책밖에 없다. 그것도 자본 소득에 집중된 재분배 정책이어야 한다. 거기에 가장 실질적이며 커다란 효과를 얻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조세 정책이다. '21세기 자본론'에서 피케티가 강조한 부유세는 바로 이러한 현실에 대한 고찰에서 나왔다. 그러면서 그는 인적 자본 성장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반적인 불평등도 그렇지만 부국과 빈국 간 불평등의 핵심은 생산 수단의 불공평한 분배가 아니라 인적자본의 불공평한 분배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정해야 한다.(p. 112)


 이 인적 자본을 평등하게 배분하는 것이 바로 '효율적 재분배'다. 피케티는 재분배 정책에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높은 임금과 낮은 임금 사이의 격차를 완화시키는 '기초적 재분배'이고 다른 하나는 인적 자본 형성 과정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여 개인의 학력간 능력간 차이를 없애는 '효율적 재분배'다. 이를테면 효율적 재분배란 로스쿨처럼 돈과 부모의 배경이 있어야만 배움의 기회가 허락되는 것을 근절하고, 독일이나 프랑스의 대학 학제처럼 누구나 균등하게 어려움 없이 자신의 인적 자본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하는 것이다. 가난한 학생들이 부유층 못지 않게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장학금 같은 지원 제도를 정부가 광범위하게 마련하는 것. 이런 것이 바로 효율적 재분배라 할 수 있다. 즉 부유세를 통해 확충된 재정이 효율적 재분배를 위해 쓰이는 것이다. 결국 이런 식의 인적 자본의 성장 주도가 궁극적으로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심한 불균형을 해소할 것이라 보고 있다. 갈수록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여기저기서 보다 높은 계층으로 올라갈 사다리를 치워버리는 것을 보게되는 요즘, 피케티의 이런 조언은 아무래도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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