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업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픽업'은 더글러스 케네디의 첫 단편집이다. 모두 12개의 단편들이 실려 있는데, 길이는 제각각이다. 나는 아직 케네디의 장편을 만나 본 적이 없다. 때문에 읽으면서 장편을 먼저 읽어보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짧은 호흡의 소설로는 그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이런 세계를 그리고 있는지 잘 알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모르면서 읽는 것은 내게 편하지 않았다. 내게 편한 독서란, 글에 투영된 작가의 마음이 오롯이 전달되어 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다가온 심상이 전적으로 내 착각에 불과하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지만 그 불편함을 쉬이 눈감고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일단 문체가 가볍고, 대사들은 살아 있으며 이야기가 중간에서 그만둘 수 없을만큼 흥미를 계속 잡아 당겼기 때문이었다. 339페이지에 담겨진 12개의 단편들을 읽는 데 들인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일이 없고 장시간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반나절에 다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뭐, 이런 정보 따윈 당신에겐 별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아마도 보다 중요한 것은 ''픽업'이 무슨 이야기냐?' 일 것이다. 12개의 단편들을 모조리 관통하는 단어를 하나 꼽으라면 그것은 '실패'라 하겠다. 스스로 완벽하게 세워놓았다고 자부했던 계획이 실패하는 이야기, 사랑에 실패하고, 결혼에 실패하는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우리와 별로 멀지 않은 이야기다. 살면서 우리도 겪는 일이니까 말이다. 다만 이렇게 실패하는 이들이 모두 사회에서 아주 잘 나가는, 그렇게 지위도 제법 높고 돈도 많이 벌며 능력도 제법 출중한 이들이라는 점에서 우리와 차이가 날 뿐이다. 케네디는 유독 그런 인물들을 단편의 주인공으로 내세웠는데, 내가 원래 좀 이상해서 그런가 이것이 좀 더 내 흥미를 끌었다. '하필이면 왜 이런 사람들의 사랑과 결혼 생활을 다뤘을까?' 하고 말이다. 어쨌든 이런 사람들은 나와 멀다. 내겐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들이 겪는 경험은 언제든 내 것일 수 있지만, 그들의 처지는 내 것일 수 없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했다. '아, 어쩌면 이것이 우리들이 아주 보편적인 실수요, 실패라는 걸 알리기 위한 것은 아닐까?'


 지위의 격차, 빈부의 격차 그리고 능력의 격차에 상관없이 우리는 똑같이 실수하고 실패한다. 자기에게 찾아온 진짜 사랑을 깨닫지 못하며, 지나치게 자신에게만 골몰하느라 정작 타인의 모습은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내 허기를 채우는 것에만 매달리느라, 무시된 타인의 허기가 결국은 내게 어떤 복수를 감행할지도 헤아리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는 청맹과니다. 나만 보고, 나 밖에 못 본다. 그래서 엎어지고, 상처입고, 눈물을 흘린다. 우리나 그들이나 똑같이.


 그렇다면 이것은 '조건'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 자체의 문제다. 내 지위가 높아진다고 해서, 능력이 뛰어나게 된다고 해서, 부유하게 된다고 해서 달라질 문제가 아닌 것이다. 내 처지나 상황이 아니라 내가 달라져야 해결 될 문제다. 하긴, 우리가 만나는 문제들 중에 안 그런 것이 어디있겠냐 만은.


 단편집 '픽업'은 바로 그런 깨달음을 위해 '픽업(pick up)'된 12개의 이야기들이다. 본질적인 면에서 나와 다를 것 없는 사람들이 결국엔 바로 이것을 깨달아가는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의 삶에는 왜 불행이 만연할까? 우리의 삶이 불확실하기 때문일까? 인생이 절망과 실패로 점철되어갈 때 우리는 왜 그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으려고 하지 않는가? 자기 자신을 속이며 살아온 사람이 과연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다음에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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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6-09-22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글라스 케네디 ...좋아요ㅎㅎ

ICE-9 2016-09-23 00:06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이 좋아하시는 작가였군요. 저도 장편을 만나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