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클래식 세트 - 전3권 더 클래식 시리즈
문학수 지음 / 돌베개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옛사랑이 뽀얀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하루는 베란다에 있는 벽장 정리를 했다. 그러다 이사 올 때 나중에 정리하겠다고 넣어두고는 지금까지 내내 잊어버리고 있었던, 클래식 CD가 빼곡하게 담긴 박스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게 넣어둔 것이 벌써 3년 전이다. 한 때는 누군가의 말처럼 하루라도 안 들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을 정도로 좋아했었는데, 어쩌다 3년이 되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버린 것일까? 케이스에 쌓인 먼지를 손가락으로 닦아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관심도, 열정도 그리고 사랑도 다 유통기한이란 것이 있다더니, 정말인 것 같았다. 그러나 기한이 있다고 해서 다 소진되는 것도 아니었다. CD들을 하나하나 꺼내보면서 그걸 깨달았다. 아주 어렵게 구해서 너무나 기뻤던 CD들이 있었고 이제는 만나볼 수 없는 이가 선물해 준 CD가 있었으며, 가장 힘들었던 때에 정처없이 떠났던 여행지의 한 가게에서 구매한 CD들도 있었다. CD에 얽혀 있는 그런 기억들이 마치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마들렌처럼, CD를 보자마자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랬다. 어떤 것이든 그냥 사라지는 것은 없었다. 관심이든, 열정이든 그리고 사랑이든 내가 쏟은 그만큼 그것은 확실히 남아있었다. 다만 나설 때가 아니기에,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마음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언제든 자신을 불러줄 날을 기다리며. 그러니 이렇게 재회의 순간이 찾아오자, 내가 언제 잤냐는 듯이 부리나케 나와서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안아줄 수 있었겠지. 나는 그런 순간을 경험하고 있었고 그래서 CD 하나하나가 거기에 투영된 과거의 나와 만나게 하는 타임머신 같았다. 기억만이 아니었다. CD를 플레이 하면 그 선율이 가장 명징하게 나를 찾아왔던 순간의 내 감정과 생각마저 환기할 수 있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오랜만에 재회한 클래식을 다시 찾지 않을 수 없었다. 드라마를 보면 첫사랑과 아주 오랜만에 재회한 남자가 과거보다 더 열렬히 사랑하게 되는 일이 있는데 지금 내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재회의 여파로 결국 난 세 권의 책까지 만나게 된 것이다. 바로 현재 경향신문에서 음악을 담당하고 있는 문학수 기자가 쓴  '더 클래식'이란 시리즈를 말이다.

 흔히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을 한다. 내가 경험해 보니, 클래식만큼 이 말이 잘 들어맞는 곳도 또 없는 것 같다. 단순히 듣는 것과 곡에 관련된 이런저런 정보와 사연들을 알고 듣는 것은 확실히 차이가 있다. 작곡가가 어떤 시대적 상황 아래서 어떤 마음으로 곡을 썼으며 곡의 전개 방식 같은 것을 알고 들으면 모르고 들었을 때보다 훨씬 이해의 폭과 깊이가 넓고 깊어질 뿐만 아니라 선율 또한 뇌리에 오래 남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남자 작곡, 그 여자 작사'란 영화에 이런 대사가 있었던 게 기억난다. 휴 그랜트와 드류 베리모어가 주인공 커플인데, 남자는 작곡가이고 여자는 작사가이다. 작곡가인 남자가 노래 가사를 무시하는 투로 말하자, 여자가 이렇게 항변한다.

 '선율이 처음 만난 누군가에게 끌리는 것과 같다면 가사는 그들이 대화를 하는 것과 같지. 가사는 그 만남에 그들만의 스토리를 주고 마법처럼 그들의 관계를 단단하게 만들어줘.'
 
 클래식도 마찬가지다. 감상의 진정한 목적이 온전히 내 것으로 소화하는데 있다고 한다면 알고 들을 때라야 곡은 진짜 내 것이 된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율을 그냥 듣기만 하는 것은 잎새 위를 흐르는 이슬과 같다. 그것이 가진 아름다움을 잠시 감각할 수 있겠지만 내게 오래 머물지 못한다. 나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는 것은 기억에서 쉽게 지워지기 때문이다. 그걸 머물게 하고 나아가선 마음 속에 단단히 정박시킬 수 있는 것. 그 닻이 바로 곡에 대한 지식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나는 듣는 것만으로는 그치지 않고 거기에 대해 알려줄 책도 같이 찾았다. 그런 내 눈에 들어온 책이 바로 문학수 기자의 '더 클래식'이었던 것이다.

 나는 원래 이제는 고인이 되신 안동림 교수의 '이 한 장의 명반'이란 책으로 클래식에 입문했다. 사실 소장한 CD들 다수도 거기서 추천한 음반들이었다. 그 책을 다시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연주가도, 음반도 너무 오래된 시절의 것이라 지금 다시 읽기에는 아무래도 세월의 격차가 컸다. 좀 더 시대를 따라잡은, 보다 업데이트 된 지식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더 클래식'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일단 외관이 날 사로잡았다. 마침 '더 클래식' 시리즈가 세 권으로 완결 되었는데, 그것을 기념하여 출판사에서 특별히 한정판 박스 세트를 내놓은 것이다. 외관이 클래식답게 중후했다. 겉면에 작곡가들의 이름을 새긴 글자체도 어딘가 서양의 고서(古書)를 연상시켜서 좋았다. 나는 이런 시각적인 것에 무척 약하다. 남들이 팔랑귀라고 한다면 나는 팔랑눈인 것이다. 사이렌의 노래 소리에 홀린 오디세우스와도 같이 외관이라는 미끼를 덥석 물어 버린 나는 이 책이 내 요구에 부응하는 책인지 바로 검색에 들어갔다.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풍문으로 들어보니, 내가 원하는 책 같았다. 하여, 좀 부담 되는 거금이었지만 아끼지 않고 바로 구입했다.

 그렇게 우리는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더 클래식 세트 한정판 박스의 외관.
항상 박스 세트 살 때 걱정되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박스가 약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다행히 박스는 튼튼해 잘 구겨질 것 같지 않았다. 부피도 두툼해서 소장할 맛이 제법 났다.

 표지만으로 만족하지 못하실 분들을 위하여 옆으로 펼쳐 전면을 담아 본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작곡가들의 이름이 이렇게 앞과 뒤로 새겨진 디자인이다.

  어느 정도 소장할 맛이 나는가를 확인시키기 위해 이번엔 세워서 펼쳐 보았다.
중앙 아래의 '101'이란 숫자가 보이는데  '더 클래식' 시리즈가 소개하는 곡이 모두 101곡인 것을 나타내는 것 같다. 하나 아쉬운 것은, 가죽 느낌이 나는 색을 입혔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면 더 고풍스럽고 소장할 맛이 나지 않았을까? 

 열면 이렇게 '더 클래식' 세 권과 책에 소개된 음반만 따로 모아 놓아서 음반 찾기에 편한 '더 클래식 추천 음반' 소책자가 함께 들어있다. 이 소책자는 '더 클래식 세트'를 구입하면 사은품으로도 받을 수 있는데, 나는 모르고 사은품으로 소책자를 주문했다. 이렇게 나처럼 두 권을 가지게 된 분들도 있을 것이다.

 표지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요즘 LP 재발매가 활발하게 되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클래식이 가장 전성기였던 때가 그래도 LP 시절인지라 거기에 대한 향수를 나타낸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책 내용에 무척 어울리는 디자인이다. LP의 라벨을 책에서 소개하는 시대의 음악 분위기에 맞게 색깔을 달리한 것도 좋다.
 이렇게 나란히 놓아 보니, 언뜻 신호등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그것도 노렸으려나~^^

  뭔가 인상적인 장면을 하나 넣고 싶어 빈약한 머리를 총동원하여 낸 아이디어에 따라 CD를 배경으로 찍어 보았다.
이 사진을 찍은 것은 책을 다 읽고 난 뒤로, 책 아래의 CD들 하나하나가 내게 다 각별한 의미를 남긴 것처럼, 이 책도 이제 아주 각별해질 것 같다. 아마도 클래식을 벗하는 동안 내내 자주 들춰 보지 않을까 싶다.

 자, 외모는 실컷 감상했으니, 이제는 그 내면을 살필 차례다.
 과연, 나는 미끼에 현혹 당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원했던 바로 그 존재를 제대로 만난 것일까?

 인내심이 부족한 당신을 위하여 얼른 대답한다면, 후자다. 그렇다. 나는 내가 찾았던 책을 딱 만난 것이다. 
 그래도 리뷰랍시고 이 글을 쓰고 있으니, 내 주관적인 기준에만 맞춰 이 책을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리뷰가 의미를 가지는 것은 그래도 타인의 공감을 얻을 때다. 그러니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 책에 대해 말해 본다.

 보통 사람들에게 클래식의 위상이란 철학과 거의 비슷하다. 한 마디로 철학처럼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인 것이다. 다가가기엔 난해와 지루함의 허들이 너무 높은 탓이다. 그래서 철학을 너무나 사랑하여, 거기서 향유하는 행복을 좀 더 많은 이들에게 나눠주려고 대중화를 지향하는 이들은 되도록 쉽고 재밌게 철학을 설명하려 든다. 클래식도 마찬가지다. 이것을 '독자에 대한 배려'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학수 기자의 '더 클래식'은 그런 배려가 넘치는 책이다.

 일단 책의 편집부터가 그러하다.
 앞서 말했듯이 여기서는 101곡을 소개하고 있는데, 각 곡을 한 챕터씩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말이다.

 101곡의 노래가 모두 위 사진처럼 시작하는데 색깔도, 밑의 그림도 다 다르다. 이렇게 시각적으로까지 모든 곡을 별개의 장으로 구분하여 그만큼 찾기 쉽고 기억하기 편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안동림의 '이 한 장의 명반'에 실린 사진이나 그림들은 대부분 흑백이라 시각적인 쾌감이 별로 없는 편인데, 이 책은 그런 것도 주려한 노력이 역력하게 느껴진다.( 옆의 CD는 이 꼭지에서 추천한 음반. 카라얀과 베를린 필의 68년 녹음이다.)


 이렇게 작곡가의 사진(사진은 슈만이다.)과 곡에 관련된 그림들(아래)까지 큰 도판으로 삽입하여 더욱 이해를 돕고 있는 것이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이 많던데, 작가가 특별히 좋아하는 화가라 그런 것일까?(아래의 CD는 슈만의 '시인의 노래'에서 추천한 분덜리히의 음반.)
 

  이 그림이 실린 곳은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인데, 참 궁금했던 곡이었지만 정작 안동림의 '이 한 장의 명반'에는 소개되지 않아 많이 아쉬웠었다. 그런데 '더 클래식'엔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서 참 반가웠다. '더 클래식'을 좋아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여기에 있다. 거기다 설명만 있었던 게 아니라 저자는 '이 곡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가사의 의미를 마음 속으로 따라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독일 레퀴엠의 노래 가사마저 다 번역해 실어 두었다. 마침 사진 아래에 있는 오토 클렘페레의 '독일 레퀴엠' 음반을 가지고 있어 번역한 가사를 옆에 두고서 음악을 감상해 보았다. 역시 모르고 들었을 때보다 곡에 투영된 정서들을 훨씬 더 살갑게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만이 아니고 슈베르트, 슈만 그리고 말러에서도 그랬다. 노래가 나오면 번역한 가사를 적어 두었다. 이런 식으로 책은 독자들이 되도록 클래식과 쉽게 친해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물론 이런 경향은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곡의 설명에선 더욱 현저하다.

 클래식의 초심자나 문외한도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한 어조로 쉽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여기서 안동림 교수의 '이 한 장의 명반'과 결정적인 차이가 나타난다. 굳이 안동림의 '이 한 장의 명반'을 예로 든 것은, 지금까지 가장 대표적인 클래식 가이드 책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곡을 먼저 소개하고 마지막에 추천 음반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더 클래식'의 형식과 유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겹치는 곡들도 물론 많다. 그런 이유로 얼른 안동림 교수의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을 또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게 될 수도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좀 더 최신의 지식을 얻고 싶어서 이 책을 구했지만(이제와 말하지만 '더 클래식'은 그런 내 요구에 부응했다. 무엇보다 추천 음반인데, 최근의 녹음까지 다 섭렵해서 좋은 음반을 소개해 놓아 마침 최근엔 어떤 좋은 음반들이 있나 궁금했던 마음을 풀어주었다. 국내에서 구입 가능한 음반 위주로 추천한 것도 이 책을 더욱 마음에 들게 했다.), 그렇지 않을 분들도 많으실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여기서 안동림 교수의 책과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차이점에 대해 말해 보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책만이 가진 가치가 더 한층 잘 부각되지 않을까 한다.


 일단 안동림 교수의 '이 한 장의 명반'은 곡의 소개로 직접 뛰어든다. 그러니까 작가에 대한 설명과 그 작가가 어떻게 이런 곡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것보다 곡 자체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설명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클래식'은 같은 곡이더라도 원근법으로 접근한다.


 먼저 가장 넓은 범위의 시대적 상황을 훑은 다음, 보다 범위를 좁혀서 작곡가의 생애를 더듬고 그리고 마침내 곡 자체로 다가간다. 그래서 곡에 대한 설명만 들을 때보다 훨씬 더 입체적으로 그 곡을 이해하게 만든다. 물론 그 곡이 태어난 저간의 사정을 알게 되므로 곡을 더 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 3권의 말러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가 대표적이다. 안동림 교수의 책에선 이 곡을 쓰게 된 말러의 상황이 잠깐만 언급되고 노래 소개에 훨씬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반면 문학수 기자는 '말러가 쓴 교향곡 상당수가 그 음악적인 씨앗은 노래에 있다'고 하면서 그가 노래에 몰두하게 된 배경을 작가의 삶을 통하여 먼저 독자에게 상세하게 알려주려 한다. 그것을 통해 독자는 말러가 일찍부터 가난과 폭력 그리고 비극에 노출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노래가 바로 그 경험을 바탕으로 나온 것이며 말러 개인의 지극히 인간적인 고뇌의 산물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노래 속에 은밀히 깃들었던 말러 자신의 초상이 독자 눈 앞에 서서히 드러나는 것과도 같다. 이제 음악은 말러의 발화가 되고, 독자의 감상은 대화가 되어간다. 음악이 독자의 피부 가까이 와 닿을 수밖에 없다. 노래의 가사가 선율에 스토리를 부여하고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대화를 통해 음악과 청자 둘의 관계를 확실히 맺듯이, 문학수 기자가 소개한 말러의 생애도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설명 방식은 세 권 모두에 걸쳐 지속적으로 투영되어 있는 신념의 소산이기도 하다. 그는 음악이 결코 그것을 만든 사람과 또 그것을 둘러싼 사회와 별개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술과 개인 그리고 사회는 상호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생각이 음악 자체에 대한 소개 보다는 그것을 만들고 낳아버린 사람과 사회에 대한 설명을 보다 많은 비중으로 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독자는 음악만 보았을 때는 보지 못했던 면을 주시하게 되고, 덕분에 음악에 대한 이해도 좀 더 범주를 넓혀서 입체적으로 하게 된다. 무엇보다 음악을 단순한 추상이 아닌 인간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도 현실적인 삶의 희노애락과 구체적인 욕망과 이상까지 투영된.


 이런 이유로 설사 나처럼 '이 한 장의 명반'을 읽었더라도 이 책을 만나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같은 곡을 전혀 다르게 볼 수 있게도 하고, 거기서 접해보지 못했던 곡에 대한 사연을 여기서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까. 물론 클래식을 즐겨 듣는 사람에겐 이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같은 곡도 저마다 다른 지휘자와 연주자들의 다양한 버전(version)으로 감상하는데는 이미 익숙하니까 말이다. '이 한 장의 명반'과 '더 클래식'도 그렇게 읽으면 될 것 같다.


 결국 이 책은 몸(형식)과 마음(내용)을 다하여 클래식이 어렵고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을 클래식과의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고, 몰랐던 매력을 보고 알게 하여 독자 쪽에서 먼저 다가가도록 만드는데 성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문외한과 초심자만 만족시키는 책은 아니다. 내가 그랬듯이 어느 정도 클래식과 친숙한 사람들도 이 책에 녹아든 곡이 탄생한 시대의 상황이나 작곡가의 삶을 통해 설령 아주 익숙한 곡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만들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렇게 문외한과 초심자 그리고 기성의 팬들 모두를 두루 만족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클래식'은 클래식 가이드로서는 감히 최고의 책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으며, 예전에 '이 한 장의 명반'이 클래식 가이드로써 차지했던 위상과 역할을 이제 '더 클래식'이 물려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서양에서 상품 이름이나 제목에 '더(THE)'를 붙일 때는, 동종의 상품이나 작품에 비추어서 더 뛰어날 자신이 있을 때다. 내 생각엔 충분히 그럴만해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