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의 탄생 - 차가움을 달군 사람들의 이야기 사소한 이야기
톰 잭슨 지음, 김희봉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냉장고의 전생은 훌리건이었을 것이다'. 이런 첫문장으로 시작하는 박민규의 소설 '카스테라'는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중고 냉장고에 관한 이야기다. 그처럼 냉장고는 사실 우리 일상에서 가장 무거운 실존이다. 365일, 단 한 번도 OFF 되는 일이 없는 존재. TV를 안 보는 하루는 있어도, 냉장고를 열지 않는 하루는 없다. 거기다 이제 스마트 냉장고의 시대가 열리면서 냉장고는 더욱 가정의 중심이 되었디. 박민규가 묘사했던 대로, 냉장고가 가정의 신으로 군림할 날도 머지 않은 것이다. 아니, 이미 현실인지도...


 이런 냉장고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을까? 매일 냉장고 문을 열면서도 이것이 어떻게 우리 삶에 출현하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걸 비로소 이번에 나온 톰 잭슨의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제목은 '냉장고의 탄생'. 저자 톰 잭슨은 과학과 기술을 역사적 맥락으로 설명하는 것을 즐기는 영국 출신의 프리랜서 작가라고 한다. 냉장고 역시 그런 맥락으로 다루지만, 그의 설명은 단순히 냉장고의 발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의 이야기가 담는 범주는 훨씬 넓어서, 아예 인류가 지금처럼 '차가움'을 지배하게 된 여정 전체를 망라한다. 그래서 책의 시작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얼음 창고에 대한 기록이 있는 수메르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18세기, 당시 시리아 국경 지역을 지배하던 짐리-림은 '테르카'에 가로 6미터, 세로 12미터의 얼음 창고를 지었다. 그것이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얼음이 인간 문명 안으로 들어온 첫 걸음이었다. 목적은 지금과 똑같이 상하기 쉬운 음식물의 보존과 저장 때문이었다. 얼마 전에 나온 우리 나라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조선 시대만 해도 얼음이 권력과 자본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데, 인류가 얼음을 자의적으로 생산할 수 있을 때까지 문명이 있는 곳 어디서나 얼음은 늘 그랬다. 그런 얼음이 자본과 권력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차갑다'는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그런 '차가움'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 연구했던 과학자들 덕분이었다. '차갑다'는 것은 '뜨겁다', 즉 열의 반대이므로, 차가움의 정체와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선 열의 정체와 원인을 먼저 규명할 필요가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근대에 이르기까지 열은 계속 '실체론'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학자들은 열을 일으키는 어떤 실체를 가진 입자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을 '플로지스톤'이라 불렀다. 차가움은 연소를 통해 바로 이 '플로지스톤'이 빠져나가 일어나는 현상으로 이해되었다.(데카르트의 이론이 대표적이었다.) 그것은 수은을 이용하여 최초로 만들어진 토리첼리의 온도계를 통해 공기의 압력으로 인해 열과 차가움의 온도가 변한다는 것을 밝혀낸 로버트 보일의 시대까지 변함없이 이어졌다. 스코틀랜드의 과학자, 로버트 블랙은 물체의 온도가 변하는 이유를 특정 물질의 감소 때문이라고 하면서 그 물질을 '칼로릭'이라 명명 하기도 했다.(지금 흔히 사용되는 '칼로리' 단위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 패러다임의 균열을 일으킨 과학자는 바로 프랑스의 라부아지에 였다. 바야흐로 공기가 이전처럼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여러 입자가 뒤섞인 '혼합물'이라는 것이 그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그는 열을 공기 중의 산소가 다른 물질과 반응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그래서 그런 열을 일으키는 기체란 의미로 산소를 Oxygen(라부아지에는 '산을 만드는 것'이라는 의미로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물론 산소는 산에 대해 아무런 역할을 못 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거기에 대한 라부아지에의 오해가 낳은 산물이었다.)이라 불렀다. 그것을 시작으로 열을 일으키는 공기 중의 미세 입자에 대한 연구가 계속 이뤄진 뒤, 비로소 제임스 프레스콧 줄에 의해 열은 에너지라는 것이 밝혀진다. 학창 시절 물리 교과서에서 '줄의 법칙'으로 흔하게 만났던 그 줄 맞다. 차가움은 이제 에너지가 공급되지 못한 상태로 정의된다. 


 그리고 1852년, 그는 형인 톰슨과 함께 하나의 법칙을 발표한다. 바로 압축된 기체를 좁은 관이나 구멍을 통해 팽창시키면 기체의 온도가 내려간다는 법칙이다. 줄에 의해 온도는 이제 기체 안의 입자들이 얼마나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나의 반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입자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면 온도가 올라가고, 반대면 내려간다. 입자가 움직이지 않으면 않을수록 차가워진다. 그런데 압축된 기체를 일시에 팽창시키면 입자 사이의 거리가 멀어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과 비슷한 상태가 된다. 그래서 온도가 내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중대한 발견이었다. 결정적으로 인류가 온도를 지배하게 된 계기였다. 결국 이 법칙을 통해 우리는 냉장고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냉장고가 지금처럼 보편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선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1880년대 미국에서만 얼음이 500만톤 소비되었으나, 대부분은 자연에서 얼음을 채취하며 냉장시켜 소비자들에게 배달하는 형식이었다. 당시는 자연에서 얻은 것은 순수하다는 믿음이 있어, 강물이나 호수에서 채취한 얼음을 그대로 먹었는데, 덕분에 장티푸스와 이질이 창궐하여 인공 얼음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게 되었다. 가정용 냉장고는 프랑스의 수도사 마르셀 오디프렌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 그는 와인을 시원하게 보관하는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그러다 결국 냉장고까지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산화황을 사용한 것이었다. 전기를 사용하는 냉장고는, 1911년 제너럴 일렉트릭사가 처음으로 특허를 얻었다. 초기의 냉장고는 '모니터 톱'으로 냉장고 위쪽에 원통형 압축기와 응축기가 돌출되어 있는 형태였다. 냉각된 공기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덜 차갑게 되기 때문에 모니터 톱은 위쪽에 얼음을 만드는 부분이 있었다. 지금은 양문형으로 냉각기가 별도로 설치된 냉장고가 보편적이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냉장고 대부분은 냉동실이 가장 위쪽에 있는 형태였다. 이런 형식이 이미 냉장고 초창기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냉장고의 시작과 현재의 다양한 응용까지 설명한 다음 톰 잭슨은 이런 차가움을 만드는 기술의 미래까지 보여준다. 얼른 냉동 인간 정도는 예상할 수 있으나 저자가 보여주는 미래의 모습 역시, 그가 서술한 기술의 과거만큼이나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  그는 이 냉각 기술이 텔레포테이션(즉, 순간 이동이다.)까지 응용되리라 보고 있다. 왜냐햐면 냉각 기술이 양자컴퓨터를 실현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컴퓨터는 연산을 순차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지만, 양자컴퓨터는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단번에 아주 많이 그리고 복잡한 연산을 할 수 있다. 그래서 '텔레포테이션'에서 순간 이동한 지점에서 인간을 출발하기 바로 전 상태로 다시 복원하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텔레포테이션은 존재 그대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일단 시작 점에서 존재를 빔 상태로 만들기 위해 죽이고, 도착지에서 다시금 재생시키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죽음과 재생의 과정이므로, 죽기 전의 상태로 재조합 하기 위해 엄청나게 빠르고 복잡한 계산이 가능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빨리, 빈틈없이 이뤄져야 하므로 양자컴퓨터가 존재하고 나서야 가능하다. 그런데 양자컴퓨터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극저온의 냉각 기술이 필수적이다. 외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도록 입자를 아주 단단한 상태로 고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냉각 기술은 미래에 아주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 새삼, 냉각 기술이 가져올 문명의 변화가 기대되지 않을 수 없었다. 순간 이동이 가능한 세상이라니, 얼마나 멋진가. 그 때에 이르면 정말 우리는 박민규 소설처럼  냉장고 속으로 들어갈 지 모르겠다. 먹히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다른 세상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톰 잭슨의 '냉장고의 탄생'은 멋진 책이다. 단순히 냉장고에 대해서만 들려주지 않고, 인류가 어떻게 차가움의 원인을 규명하고 정복하게 되었는지, 거기에 연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목조목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오늘의 냉장고를 위해 이렇게 저렇게 연구한 이들이 많았다. 지금의 편리는 바로 그런 사람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얼음에 끼었던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지금 얼음의 무한 자유를 누리게 될 수 있었다고나 할까? 어쨌든, 냉장 과학과 기술의 역사와 미래를 알고 싶은 분들에겐 딱 좋은 안내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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