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필리버스터를 통해 그간 몰랐던 매력적인 정치인들을 쏙쏙 만나다보니, 갑자기 나의 세미갓, 커트 보네거트가 생각났다.

 그의 에세이집, '나라 없는 사람'을 보면 '어떤 사람이 얼간이인가?'란 제목의 글이 있다.



  제목대로 얼간이에 대한 이야기다. 커트 보네거트가 생각하는 얼간이는 자기 생각이 없는 사람, 스스로의 노력으로 타인의 말을 검증하지 않고 무턱대고 믿고 따라하는 사람이다. 커트 보네거트에 따르자면 우리나라는 KBS,MBC,SBS를 비롯한 조중동, JTBC를 제외한 온갖 종편 기자들, 필리버스터에서 박근혜 이름만 나오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 반사적으로 왈왈 짖어대는 새누리 의원들, 그리고 자신을 쉽게 해고하고 통신이든, 금융이든 마구잡이로 사찰하겠다고 하는 여전히 묻지마 지지를 보내고 있는 35%의 지지자들과 같은 얼간이들로 넘쳐나고 있는 셈이다.


 아무튼, 커트 보네거트는 자신이 생각하는 얼간이를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말로 설명한다.

 우리나라 교과서에까지 등장하여 우리도 잘 아는 말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의 이 한 마디 말 때문에 소련의 스탈린과 중국은 종교 탄압을 거행했다. 때문에 아시다시피 거기엔 종교는 없다. 우리는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아마 스탈린과 중국이 해석했던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종교는 인민을 부당한 현실에 수동적으로 길들이고 저항 의지를 앗아가는 '백해무익(실제, 중국에서 이렇게 표현했던 것으로 안다.)'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커트 보네거트는 그런 해석이 아니라고 한다.

 그의 말을 직접 인용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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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탈린 치하에서 자행되었고 지금도 중국에서 계속되고 있는 종교 탄압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이런 탄압을 정당화하기 위해 독재자들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카를 마르크스의 말을 들이댄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그 말을 했던 1844년 당시, 아편과 아편 추출물은 누구나 복용할 수 있는 유일한 진통제였다. 마르크스 자신도 아편을 복용한 적이 있다. 그는 아편을 먹고 통증이 일시적으로 가라앉자 대단히 고마워했다. 마르크스는 그저 종교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비탄에 빠진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지 그걸 비난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말은 금언이 아니라 일반적인 설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그런 얘길 썼던 당시 우리 쪽에서는 아직 노예들이 신음하고 있었다. 자비로운 신으 눈으로 과거를 되돌아볼 때, 카를 마르크스와  미합중국 중 어느 쪽이 더 인간적인가?

 스탈린은 마르크스의 언급을 법령으로 바꿔치면서 좋아라 했고 중국 독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하면 그들이나 그들의 목표에 반대하는 성직자들을 몰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많은 사람들도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해, 사회주의자들은 종교와 신을 부정하며 그러기에 지독하게 불쾌한 종자들이라고 주장해왔다."

*****


  솔직히 커트 보네거트의 몇 배 이상으로 마르크스를 공부했을 스탈린이나 중국 독재자들이 마르크스가 어떤 의미로 그 말을 썼는지 몰랐을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그들은 자신들의 정권 장악에 방해가 되는 성직자나 종교 세력들을 몰아내려고 그 말을 이용한 것 뿐이다. 그리고 그 때 많은 이들은 마르크스의 원저를 읽지도 않고 단지 그 말만 듣고 스탈린과 중국 독재자들이 성직자들과 종교 세력들을 일소할 때 모른 척 하거나 지지를 보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도 잘 알고 있다고 여겼으나 실은 스탈린과 중국 독재자들에게 농락당한 것 뿐이었다. 한 마디로 얼간이가 된 것이다.

 종교와 신을 부정한다며 사회주의자들을 불쾌한 종자들이라고 공격한 미국인들도 얼간이인 것은 다르지 않다. 솔직히 그들에게도 마르크스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따윈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뇌리엔 오직 저 잡놈의 사회주의자들을 제대로 공격해서 지지자들을 줄여야겠다는 생각만 있었을 테니까.


 힘을 가진 권력의 말에 진실은 없다.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약자를 보호할 때 뿐이다.

 그렇지 않고 권력이 약자를 내몰기 위해 말을 사용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아름다운 말이라 한들 술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말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부화뇌동하는 것은 얼간이에 지나지 않는다.


 말은 무섭다. 펜은 정말 칼보다 강하다. 언론이 장악되고 한없이 한 편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우리나라. 지금의 필리버스터는 그 사실을 등골이 오싹하도록 알리고 있다. 4년 동안, 그들의 저 많은 노력들이 우리의 눈과 귓가에 일절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니! 경악은 분명 나만의 것이 아니었으리라. 많은 이들이 필리버스터를 보고, 국회까지 찾아가 방청하는 것은, 이명박 시절 나꼼수에 열광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우리 모두는 지금 사회에 대한 의식이 있다. 이명박 시절에도 그랬다. 분명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어디서도 나와 같은 생각을 들을 수 없었다. 세상은 순탄하게 흘러가기만 했다. 왜 이럴까? 이상하다. 나만 괜히 삐딱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이런 생각도 한다. 그래, 나 혼자 이런 생각가져서 뭐 하겠어? 내가 뭐라고? 자포자기와 자학도 한다. 약한 나, 외로움만 커져 간다. 그 때, 나꼼수가 나왔다. 그리고 말해주었다.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고! 네가 틀린 게 아니라고!


 우리는 바로 그런 지지와 응원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던 것이다. 신념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위축과 소멸을 향해가는 신념을 굳건히 하고, 결기를 돋울 지지와 네가 생각하고 있는 길로 계속 뚜벅뚜벅 걸어가도 된다라는 응원. 우리는 정말 그런 게 필요했던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사를 따라 내려가면 몸은 편하다. 하지만 의식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잘 알고 있다. 적어도 괴물이 아니라면 말이다. 저 경사 아래로 내려가려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 지 우리는 잘 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 우리 정체성마저 좌우할만큼 우리에게 있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도.

 그 본질적인 것을, 그것이 없다는 삶의 의미마저 부정당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한없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그래도 비탈을 오르려 매달린다. 손으로 단단히 흙을 거머쥐고 매달린다. 힘들다. 그런 나를 비웃고 내려가는 이들 사이에서 외롭다. 그 때, 나꼼수가 나타나 같이 올라가자며 내 엉덩이를 밀어주었던 것이다. 적어도 내게 나꼼수는 그랬다.


 비탈길을 오르려 애쓰는 이들에겐 정말로 그런 게 필요하다.

 희망은 상상만으로는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필리버스터가 그 일을 하고 있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며, 보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노력하는 이들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내 몸과 엉덩이를 밀어주는 사람들의 존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오랜 시간 사막을 횡단하다 가까스로 오아시스를 찾은 이와도 같이, 반갑고 기쁘다.

 커트 보네거트도 그랬다. 너무나 냉소적이었던 그 사람, 아주 회의적이었던 그 사람. 그렇다고 희망을 버리지도, 변화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에게도 우리의 필리버스터 처럼 자신의 엉덩이를 밀어 줄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같은 글의 마지막에서 그는 그 사람을 소개한다. 그의 이름은 파워스 햅굿(Powers Hapgood).



 미국에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회주의자인데, 커트 보네거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 본다.


*****

 나는 그들과 동시대인 사회주의자 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인디애나 폴리스의 파워스 햅굿이다. 햅굿은 전형적인 촌뜨기 이상주의자였다. 사회주의는 이상주의다. 데브스처럼 햅굿도 중산층 출신이었고 이 나라에 경제적 정의가 더 광범위하게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더 좋은 나라를 원했다. 그뿐이었다.

 하버드를 졸업한 후 햅굿은 탄광 노동자로 일하면서 노동자 형제들에게 임금 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노조를 결성하자고 주장했다. 또한 1927년에는 메사추체츠 주에서 무정부주의자 니콜라 새코와 바살러미오 반체티의 처형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햅굿의 부모는 인디애나폴리스에서 통조림 공장을 운영해 많은 돈을 벌었다. 파워스 햅굿은 공장을 물려받자마자 그것을 종업원들에게 넘겨주었고 얼마 후 공장은 파산하고 말았다.

 우리는 2차 대전이 끝난 후 인디애나폴리스에서 만났다. 당시 그는 산업별 노동조합의 간부였다. 노동쟁의가 가벼운 싸움으로 번졌을 때 햅굿은 증언을 하기 위해 법정에 출두했다. 판사는 그를 보자 이렇게 물었다.

 "햅굿씨, 나와주셨군요. 당신은 하버드 대학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당신처럼 버젓한 사람이 왜 그런 삶을 택하셨소?"

 햅굿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존경하는 판사님, 그건 예수의 산상수훈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우리 팀 파이팅! (p. 22 ~ 23)

*****


 이렇게 커트 보네거트에게도, 우리들에게도 당신 혼자가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이들이 필요하다.

 이탈리아 감독 파솔리니가 말했던 반딧불 같은 것들이...



   그가 한 젊은이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했던 1975년. 2월에 그는 한 글을 발표한다. '반딧불에 대한 논고'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거기서 그는 반딧불을 무솔리니와 같은 서슬 퍼런 독재 치하에서도 비록 반딧불처럼 미약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절멸되지 않았던 민중들의 저항의 상징으로 삼았다. 결국 그 반딧불은 그보다 훨씬 광막했던 무솔리니 체제의 어둠을 몰아내었다. 그래서 반딧불은 파솔리니에게 희망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것을 바탕으로 쓰여진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의 '반딧불의 잔존'은 희망과 저항 의지는 추상적인 상상만으로 가능하지 않고 무엇이든 감각할 수 있는 실제 이미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다. 물론 이 책이 실제 목적하는 바는, 파솔리니가 논문에서 했던 절망, 그러니까 무솔리니 체제 아래에서도 생명을 잃지 않았던 반딧불이 현대 소비 사회에서는 소멸되어 버렸다는 절망에 반박하는 글이지만 말이다. 그는 파솔리니의 체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끈질기에 남아있는 반딧불의 계보를 여기서 들려준다.

 커트 보네거트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란 말로 경고한 것처럼, 그저 지배적인 해석과 현상에 함몰된 나머지 스스로 애써 찾아보지도 않고 덮어놓고 타협하고 쉽게 포기해 버리는 바람에 놓쳐버린 희망과 저항의 흔적들을 말이다.

 위베르만은 말한다. 이미지는 결코 죽지 않는다 라고.


 희망도 그럴 것이다.

 필리버스터가 이렇게 찾아온 것처럼.

 '잘 알지도 못하기에 포기 역시 이르다'는 말을 이 순간, 단단히 새겨 두련다.

 그리고 커트 보네거트처럼 희망의 반딧불이 되어 준 필리버스터에 나온 의원들에게 이렇게 외쳐주고 싶다.

 우리 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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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6-02-29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를 100개정도 누르고 싶은 글..

ICE-9 2016-03-05 00:41   좋아요 0 | URL
앗, 기네스님 이런 격한 공감, 진심으로 너무나 감사합니다^^

시이소오 2016-02-29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팀 파이팅!!

ICE-9 2016-03-05 00:42   좋아요 1 | URL
시이소오님도 우리 팀이죠? 함께 파이팅 외쳐주기로 해요^^

2016-03-01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5 0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