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토버리스트 모중석 스릴러 클럽 37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반전은 스릴러가 재미있으려면 필요한 동력과도 같다.

 강한 인상은 자주 강한 반전으로부터 왔다. 때문에 스릴러는 저절로 하나의 한계 지점을 가지게 되었다. 바로 ‘역순의 불가능성’이다. 반전이 가능한 것은 언제나 두터운 베일로 가려진 미래의 예측 불가능성 덕분이었다. 하여 작품 시간의 순서는 미래에서 과거로 거꾸로 흘러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가장 충격적인 반전 소설이라 할 수 있는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을 생각해 보라. 엘쿨 포와로가 이미 범인을 밝힌 상태에서 거꾸로 소설이 진행된다면 분명 그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은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만큼의 충격을 절대 주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도서추리라는 것도 있다. 예전에 유명했던 추리 드라마 ‘형사 콜롬보’처럼 처음부터 범인과 범행을 밝히고 시작하는 것이다. 순서가 뒤바꼈다는 의미에서 ‘도서추리’라 부른다.


 그러나 이 장르의 주안점은 반전이 아니다. 이미 범인과 범행이 다 밝혀졌으므로 반전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장르가 더 주안점을 두는 것은 ‘서스펜스’다. 과연 범인이 잡힐까, 안 잡힐까? 독자는 범인에 감정 이입하여 그 과정을 긴장감 넘치게 경험할 뿐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도서추리는 단지 범인과 범행을 먼저 보여줄 뿐, 시간의 역순은 아니다. 소설 속 시간은 언제나 미래로 흐른다. 어쨌든 역순은 반전을 포기해야 가능하다.  현실에서는 불확정성의 원리 때문에 미래로의 타임 슬립이 불가능하지만 스릴러에서는 반전 때문에 과거로의 타임 슬립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과연 예외없는 법칙은 없었던 것일까? 그걸 가능하게 한 작품이 나왔다. 바로 링컨 라임 시리즈로도 유명한 제프리 디버의 ‘옥토버리스트’다.



 이 책 전체가 제프리 디버의 매지션즈 샐랙트와 같으므로, 독자는 디버가 확고하게 지배하는 게임의 룰 안에 있다는 의미에서 감옥 이미지를 배경으로 찍어보았다. 표지의 영어 문장은 첫 시작이 되는 챕터 36의 마지막 부분을 가져왔다. 즉, 실제론 이 소설의 결말이다. 당신은 표지에서부터 이것을 읽고 시작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결말의 진짜 모습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소설은 이렇게 역순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사진은 소설 속 챕터의 모습을 인용한 것.


반전 때문에 역순이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옥토버 리스트’는 오히려 반전을 위해 역순을 취한다. 정면승부! 이건 보란듯이 확고한 역순의 불문율에 도전하겠다는 것이니  흡사 창을 휘두르며 단신으로 조조의 백만 대군 속으로 뛰어드는 조자룡과도 같다.



데이빗 보위의 출세작인 '지기 스타더스트'는 영화로 만들어진 적도 있는데 사진은 그 ost의 안쪽 면을 찍은 것. 커버의 보위의 사진이 불에 타들어가는 것을 거꾸로 배열했다. 뒤쪽 커버엔 완전히 다 타버린 사진이 찍혀있다. 형식이 정확히 '옥토버 리스트'와 똑같은 지라 생각나서 같이 찍어 본 것. (앗, 몰랐는데, 저 아래의 것은 냥이의 발...! 언제 들이밀었단 말이냐!^ ^;)


사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위에 인용한 챕터의 시작 페이지를 넘기면 이렇게 어김없이 사진 한 장이 등장한다. 챕터 내용 중의 한 장면을 찍은 것인데 제프리 디버가 직접 찍었다. 그냥 흥미를 돋구기 위해 넣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나중에 가서야 깨닫게 된다. 그야말로 매지션즈 셀렉트!


 그럼, 결말은? 과연 소설은 결말에서 시작한다. ‘뭐야? 그럼, 시시하겠는 걸!’ 하지만 막상 읽으면 ‘정말 이게 결말이란 말이야?’ 궁금하게 여길 것이다. 무언가 중간에서 흐지부지 끝난 느낌이 강하다. 마지막에 나올 시작의 반전을 위해 뭔가를 감춘 것이 분명하다. 역시 반전의 백만 대군이 가진 힘은 강했던 것일까? 조자룡이 된 제프리 디버는 그래도 한쪽 팔은 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아니다! 역순 보다도, 마지막의 반전 보다도 더 놀라운 반전이 하나 있으니, 그건 바로 우리가 보았던 그리고 흐지부지하다고 생각했던 시작이 확실한 결말이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걸 아주 마지막에 가서야 한 문장으로 알게 된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 깜짝 영상이 나와서 진짜 결말을 보여주는 영화와 같다. 그리고 깨닫는다. 두 눈으로 보고 있었는데도 몰랐다는 것을. 이것이야말로 소설의 진정한 체크메이트다!


 독자로 하여금 흥미를 가지고 뒷 페이지를 넘기게 하려면 종결을 감출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래서야 완벽한 역순이라고도 할 수 없다. 체스의 체크에 불과하다. 진정한 역순, 외통수인 체크메이로 만들려면 시작은 어디까지나 진짜 결말이어야한다. 진짜 결말을 스포일러하면서도 뒷 페이지를 아니 넘길 수 없게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것! 이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제프리 디버는 해 낸 것이다. 그것도 성공적으로! 끝까지 하나도 놓치지 말고 읽어라! 그래야 진짜 결말을 알 수 있다. 그것을 위해 제프리 디버는 책 자체를 하나의 퍼즐로 만들었다. 어떤 의미에선 책 자체가 매지션즈 셀렉트다. 이 소설은 진짜 독자와의 게임인데 제프리 디버는 게임을 확고하게 지배하면서 거기로 뛰어든 독자를 가지고 놀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진짜 즐기는 방법은 되도록 아무 것도 모르고 게 좋다. 그래서 이야기의 소개는 과감히 생략하기로 한다. 세세한 분석을 할 수 없는 것도 나로서는 실로 유감이다. 아무튼 읽는 동안은 꼼꼼히 읽어야 한다. 책의 모든 것이 단서다. 과정의 재미는 그 디테일의 역순에서 나온다. 


 단언컨대, ‘옥토버 리스트’는 가장 인상적인 스릴러 중 한 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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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5-02-23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이거 큰일이네요
제가 링컨 라임 시리즈를 하나씩 사모으다가 이제 슬슬 질려서 홀랑 팔아치우려고 새해 결심을 했는데.. 오늘 헤르메스님의 유혹을 마주치는군요

아아.... 가장 인상적인 스릴러라니, 과감하게 결말부터 시작이라니 ㅠ

헤르메스님 설 잘 지내셨죠? ^^

ICE-9 2015-02-23 01:02   좋아요 0 | URL
앗!! 마녀고냥이님, 어느 틈에 오셨다 가셨나요? 정말 반갑습니다^ ^ 마녀고양이님은 설날 잘 보내셨나요? 저는 연휴 후유증이 오래 갈 것 같은 기분이네요, 하하^ ^; 솔직히 디버의 경우, 저는 본류인 링컨 라임보다 이런 스탠드 얼론이 더 재밌더군요. 예전에 `엣지` 읽으면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이 작가 게임을 아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옥토버 리스트`는 그런 성향이 한껏 드러난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

마녀고양이 2015-02-27 17:43   좋아요 0 | URL
실은 최근에 `엣지`를 읽었는데
책장이 너무 안 넘어가서 고생을 좀 했어요. 아무래도 제프리 디버의 작품은 잠시 쉬었다 읽어야 할까봐요.
그러니 너무 유혹하지 마셔요.... 아하하.

yamoo 2015-02-24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재밌을 거 같은 책이네요....요즘 스릴러나 추리소설 찾고 있었는데...제대로 걸린 느낌입니다..ㅎㅎ

내친김에 로버트 러들럼의 책처럼 재밌는 첩보소설 3권 정도 추천 부탁드립니당~

ICE-9 2015-02-27 00:01   좋아요 0 | URL
저는 꽤 인상 깊게 읽은 작품인데 yamoo님 마음에도 드셨으면 좋겠네요^ ^
오, 스파이 소설이라고 하면 전 언제나 존 르 카레의 작품을 추천합니다.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가 데뷔작인데 이언 플레밍이 구축한 스파이 소설을 한 단계 진화시켰다고 보아도 무방한 작가입니다. 물론 최근 영화로도 만들어진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도 추천이구요. 여기에 하나 더 플러스 한다면 박찬욱 감독도 최고의 스파이 소설로 꼽은 바 있는 로버트 리델의 `르윈터의 망명`을 추가하겠습니다.(번역의 질은 어느 정도 감안하셔야 할 겁니다만 ㅠ ㅠ) 같은 작가의 `레전드`도 정말 강추합니다. `본 아이덴티티` 시리즈를 좋아하신다면 프레데릭 포사이스의 `어벤저`도 마음에 들어하실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의 재미도 정말 끝내주더군요.
참고로 예전에 로버트 러들럼의 `마타레즈 서클`이 나왔을 때 쓴 리뷰 하나를 링크 해 둘게요.
http://blog.aladin.co.kr/748481184/5266565
개인적으로 이언 플레밍, 존 르 카레, 로버트 러들럼을 비교해 본 것입니다.(그런데 너무 기네요. ㅠ ㅠ. 이 때는 왜 이렇게 길게만 썼는지 ㅠ ㅠ)

yamoo 2015-03-01 15:28   좋아요 0 | URL
추춘나라에서온스파이
팅커테일러솔저스파이
어벤저
마타레즈클럽

모두 본 것이에요...ㅜㅜ
로버트 리델의 <르윈터의 망명>과 <레전드>를 찾아 보겠어요! 이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