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거짓말 말의 거짓말
남재일 지음 / 천년의상상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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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언영색의 시대입니다.

 번지르르한 말들만 난무하고 실천이 뒤따르는 속이 알찬 말들은 만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저 한 순간만 속여 넘기고 보자는 무게 잃은 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기꾼의 언어만 판치는 세상이니 아무리 좋은 말을 들어도 믿기가 어렵습니다.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라!'는 현대인들의 모토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요? 요즘 방영되는 드라마 '라이어게임'에서 순해서 늘 남에게 속는 여주인공은 이렇게 항변하더군요.

"사람이 사람을 믿는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맞습니다. 그건 잘못일 수 없습니다. 그게 잘못이라면 세상이 잘못된 것이죠. 하지만 우리는 이런 사람을 바보라고 여깁니다. 더러는 호구라고도 부릅니다. 사실 드라마에서 그녀는 참 울화통이 터지는 존재입니다. 맨날 속으면서도 사람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걸 보고 있으면 저절로 '으이구, 또 속네. 이 답답아.'하며 가슴을 치게 됩니다. 사람을 믿는 게 옳은 건데 믿는 족족 그녀는 바로 파멸의 위기에 봉착합니다. 이것은 거꾸로 이 시대의 진실을 드러냅니다. 바로 불신이야말로 이 시대의 생존법이라는 것을 말이죠. 그런 시대입니다. 이것은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요? 여기에 대해 그건 '세상의 부와 권력을 가진 1%의 잘못이다!'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남재일입니다. 그는 '사람의 거짓말 말의 거짓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은 누구나 세상에 말을 건네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기묘한 노출증의 시대가 아닌가. 이렇게 유혹의 정치는 99%의 물질적 생활뿐만 아니라 사람 관계와 개인의 정서까지 망쳐놓는다.(p. 7)



 이 유혹의 정치가 바로 번지르르한 말들이 넘쳐나게 한 원흉입니다. 그런데 왜 1%의 탓이냐구요? 그건 바로 이 유혹의 정치가 '신자유주의 헤게모니 유지를 위한 문화적 전략(p. 7)'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금까지 1%는 자신의 지배 체제를 세 가지 방법으로 유지시켜 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위협의 정치, 기만의 정치 그리고 유혹의 정치입니다. 저자는 곤충이 적을 상대하는 것에 비유해 그것을 아주 효과적으로 이해시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신보다 더 큰 적이 나타나도 달아나지 않고 오로지 위협만 하는 사마귀는 위협의 정치를, 물리적 충돌은 피하면서 자신의 그물에 포섭하여 천천히 포식하는 거미는 기만의 정치를, 마지막으로 숙주에 기생하여 이익만 취하다가 번식할 때가되면 뇌의 호르몬을 조종해 자신이 원하는 물로 들어가도록 만드는 연가시는 유혹의 정치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바로 이 유혹의 정치가 지금의 1%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99%를 지배하는 방식입니다. 즉 연가시가 하듯이 개인을 세뇌시켜 그들이 원하는 규율을 스스로 부과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실은 1%가 원하는 것이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어 그들이 원하는 쪽으로 행동하면서도 그걸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이라 여기도록 하는 것이 바로 '유혹의 정치'입니다. 가장 세련된 방식의 착취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당하는 이들이 자신의 선택이라 여기므로 실은 가열차게 착취를 당하면서도 그것을 몰라서 아무런 반발도, 저항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1%의 꿈은 그렇게 '지배없는 착취'인데 바로 유혹의 정치가 그것을 이루어줍니다. 때문에 행위가 따르지 않는 가벼운 말들, 그래서 거짓과 기만의 말들이 넘치게 된 것입니다. 유혹은 상대와의 진실한 약속이 아니라 단순히 상대를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꼬이려는 말들이니까요. 그 대표적인 유혹의 말이 바로 욕망입니다. 현대 사회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욕망을 불러 넣지요. 영화나 드라마의 현란한 상류 사회의 모습을 통해서나 광고를 통해서 말입니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어떤 지위나 물건을 갖지 못했을 경우 모자란 인간이 될 것이라 말합니다. 가장 많이 가진 자와 완벽한 상태의 육체를 삶의 기본으로 제시해 마치 그것을 가지지 못하면 사람으로써 인정받지도 못한다고 위협까지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자신의 현재를 스스로의 기준이 아닌 보다 상위의 남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고 늘 현재의 모습을 채점하면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피로사회'를 쓴 한병철은 그것을 두고 현대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이행했다고 말했었죠.

 맞습니다. 성과가 전부입니다. 요즘 누가 과정에 신경쓰나요? 결과만 좋으면 다 좋다는 게 지금의 보편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 결과를 평가하는 눈은 누구의 눈일까요? 바로 1%의 눈이죠. 1%가 원하는 학력, 원하는 돈의 액수, 원하는 아파트, 원하는 체형, 원하는 스펙, 원하는 결혼, 모두 그것에 맞춰 우리 스스로를 보고 있지 않나요? 자신이 실제로는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그저 군대에서 흔히 받는 '선착순 1명' 얼차레처럼 1%가 가리키는 쪽으로 우르르 몰려가면서 그것을 나의 욕망으로 여기는 게 진정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일상에서 자주 짜증을 내고(보다 뛰어난 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과 항상 나 상위에 있는 기준 때문에 더 무능하게만 보이는 자신 때문이죠.) 설령 누구나 다 원하는 것을 이루더라도 자주 우리에게 남는 게 허무인 것이겠죠.

 이 책의 제목이 '사람의 거짓말 말의 거짓말'이 된 것은 그 때문입니다. 남재일은 지금 우리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진정 자유로운 주체가 되려면 무엇보다 싸워야 할 것이 바로 이 무게 없는 유혹의 말들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싸울 것인가? 장 보드리야르는 제대로 해석을 해서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살려내는 것이라 말했지만 남재일은 알랭 바디우의 힘을 빌어 더 멀리 나아가려 합니다. 단순히 해석만이 아니라 정치적 실천으로 그 거짓과 기만의 말들을 봉쇄해야 한다고 말이죠. 즉,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바로 알랭 바디우가 말했던 진리 사건(알랭 바디우는 예수가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진리 사건의 예로 듭니다. 그 사건은 예수가 스스로 자신의 말을 실천한 것이었습니다. 진리 사건이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말이 육신으로 현전하는 것이죠.)을 스스로 창출하는 것이죠. 몸으로 실천되는 말들의 확산. 이것만이 유혹의 정치에 대한 유효한 대안이라 그는 보고 있습니다.

 이 책은 거기로 나아가기 위한 중간 단계입니다. 현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발적 복종으로 이끄는 여러 유혹의 말들을 분석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 진짜 의미를 제대로 사유하는 게 이 책의 목적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여기엔 우리를 유혹하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많은 말들의 해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모두 5부에 걸쳐서 열 한 두개의 짧은 글들로 말이죠. 설명은 어렵지 않고 분량도 부담없기 때문에 가볍게 벗하실 수 있을 듯 합니다.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말들의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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