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십이국기 1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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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이국기의 재래. 정말 반갑다.


'십이국기' 1권, 가제본의 모습


 저자인 오노 후유미를 좋아한다. 그녀의 주 특기라고 한다면 호러다. 아마도 누군가의 기억에는 꽤나 무서운 이야기를 잘도 쓰는 여성 작가로 남아 있으리라. 나는 그 때문에 그녀를 좋아한다. 오노 후유미에게 있어 공포는 목적이 아니다. 실은 수단에 불과하다. 오노 후유미의 진짜 관심은 '사회'에 있기 때문이다. 까놓고 이야기하자면 그녀는 변혁을 갈망한다. 그녀는 일본 사회의 현재 모습에 염증을 느낀다.자기가 속한 일본이라는 사회가 좀 더 올바른 쪽으로 자리잡히길 바란다는 뜻이다. 그런데 달라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그 사유의 과정을 오노 후유미는 소설로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녀는 '사회파' 작가다. 미스터리가 아닌 호러를 주 특기로 한다는 것만 다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분명 오노 후유미의 완성형은 '시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최고 걸작이더라도 완전한 무에서 태어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시귀'와 같은 최고 걸작이 태어나도록 산파 같은 역할을 한 작품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시귀' 바로 전에 나온 이 작품, '십이국기'이다.


 '십이국기'는 판타지다. 오노 후유미의 주 특기인 호러는 아닌 것이다. '십이국기'는 출판사가 먼저 제의해서 쓰게 되었는데 그 때까지 오노 후유미는 판타지의 '판'자도 경험해보지 못한 '초짜'였다. 그래도 그녀는 이쯤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도전했다. 오노 후유미의 작품을 읽어보면 대번에 알 수 있겠지만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야 말로 그녀가 추구하는 것이다. 출판사는 당시 유행 중이던 중세 유럽 스타일의 판타지를 원했다. 하지만 오노 후유미는 거기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전혀 모르는 것으로 하기 보다는 그래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중세 유럽은 잘 몰랐지만 고대 중국이라면 잘 알았다. 그래서 판타지의 세계를 그 쪽으로 설정했다. 그리하여 당시로서는 독특한 판타지인 '십이국기'가 태어났다.


 오노 후유미로 하여금 '십이국기'를 쓰게 한 또 하나의 유인(incentive)이 있었으니 바로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 영웅 전설'이다.



 오노 후유미는 그 소설을 좋아했는데 그러다 주인공 황제인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실은 영원히 죽지 않는 , 말하자면 불로불사이고 그러다 나쁜 왕이 되어 버리면 바로 불로불사의 능력이 사라지는 것으로 하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기초가 되어 '십이국기'의 독특한 체제가 형성되었다. 이것은 이번에 나오는 1권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에서 여주인공 요코의 여행 동반자가 되는 라쿠슌을통해 다음과 같이 말해지고 있다.


 "한 임금이... 오 백 년?"

 "물론이지. 왕은 신이야. 사람이 아니야. 하늘은 그 왕의 기량만큼 나라를 맡기지. 그러니까 능력 있는 왕일수록 치세가 길어."

 "흐음..."

 "왕이 바뀌면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어. 그만큼 좋은 왕을 얻은 나라는 풍요로워지지. 특히 연왕은 여러 개혁을 이룬 수완가야. 명군이라면 종왕도 명군이지만, 주국은 안온하고 안국은 활기 있다고들 하지." (p. 321)


 '요코'와 쥐인 '라쿠슌'


  뭔가 '성군지상주의'랄까? 플라톤의 '철인' 사상 비슷한 냄새가 난다. 오노 후유미가 '은하 영웅 전설'의 자장 안에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즉, 민주주의를 만능의 체제로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다. '십이국기'의 나라들은 동시대 일본의 곁에 있다. 주인공 요코는 타임슬립을 통해 과거로 가지 않는다. 갑자기 나타난 '게이키'라는 정체불명의 존재에 의해 '십이국기' 사람들이 '허해'라 부르는 바다를 건너온 것이다. 즉 '십이국기'와 요코가 살던 현대 일본은 동시에 존재한다. 하지만 나라를 이루고 있는 근본 체제는 전혀 다르다. 여기서 우리는 '십이국기'가 '은하 영웅 전설'처럼 현재의 일본과 전혀 다른 체제를 상상하고 그것을 일종의 대차대조표 삼아 거꾸로 지금 체제의 대안을 그려보는 오노 후유미만의 사유 실험임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오노 후유미는 '십이국기'의 체제를 정교하게 세공한다. 1권을 읽으면서 다 알 수 있는 부분인데다가 설명하다 자칫 스포일러를 남발할 수 있기에 여기서 자세히 소개하지는 않겠다. 분명 소설을 읽다보면 오노 후유미가 설정에 꽤나 공을 들였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시귀'도 그렇고, '흑사의 섬'도 그렇고 이런 아주 정교한 배경의 설정이야말로 오노 후유미의 특기라 할 만하다. 읽다보면 오노 후유미가 정작 이야기보다 오히려 이렇게, 저렇게 세계를 만들고 질서를 구축하는데 더 재미를 느끼는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스스로 즐기지 않으면 그만한 공을 들이기가 어려울 테니까 말이다.


 보다 더 깊이 들어가면, 그녀가 왜 하필이면 이런 개인적 역량이 나라의 운명마저 좌지우지 하는 설정을 하게 된 것인가가 드러난다. 1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요코의 여정은 오노 후유미가 그런 체제를 상정했던 이유의 설명이기도 하다.


 바로 여기서 오노 후유미가 그녀의 모든 작품을 통털어 천착하고 있는 '혼종'의 주제가 나타난다. 멀리 돌아왔지만 이쯤에서 오노 후유미가 왜 호러를 즐겨 쓰는지 말해야 할 것 같다. 오노 후유미에겐 언제나 외부의 감각이 중요하다. 폐쇄된 자아를 허물고 바깥으로 눈과 마음을 열게 만드는 감각이다. 오노 후유미는 그 '변화', 궁극엔 '혼종'이 구원의 통로라고 여긴다. 자아든 사회든 할 것 없이 말이다. 그녀에게 가장 끔찍한 것은 '고인 웅덩이'다. 외부에겐 일체 마음을 열지 않고 기존 자신의 것만 오로지 고집하는 것을 그녀는 혐오한다. 그건 일본이 바깥의 바람이 들어오는 창문이 하나도 없는 폐쇄 사회인 것에 대한 그녀의 염증에서 기인한다. 그녀가 호러를 쓰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바람과도 같은 외부의 감각으로 벽을 흔들려는 것이다. 내부를 허무는데 호러만큼 충격을 주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입장은 '십이국기'에도 변하지 않는다. 주인공 요코의 여정은 정확히 이것을 보여준다. 처음 '허해'를 건너온 요코는 절망한다. 그녀가 전혀 모르는 세상에 던져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혼자서. 게다가 누구의 도움도 없이.


첫 여정에서의 요코의 모습

('허해'를 건너온 뒤, 요코는 원래 부분만 빨강이던 머리카락이 모두 빨강이 되었고,

얼굴과 모습이 이전과 달라졌다. 나중에 여행하는 나라의 옷으로 갈아 입는데 사람들은 요코를 사내로 생각한다. 다시 말해, '허해'를 건넌 뒤, 요코는 철저한 '타자'가 되는 것이다.


 거기서 요코는 철저한 이방인이다. '허해'를 건너온 자들을 '해객'이라 부르는데 요코가 있는 나라는 그 해객을 체포하려 한다. 더구나 한 번 '허해'를 건너오면 다시 자신의 세상으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거기에 버려졌다. 그녀에게 익숙한 것들은 모두 '허해' 건너편에 있다. 여기는 그 경계의 바깥인 것이다. 외부의 감각이 압도적으로 충만해질 수밖에 없다. 거기서 그녀는 선택해야 한다. 예전의 나를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변할 것인가? 변한다는 것은 타자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요코의 여정은 내면의 여정이다. 거기서 요코는 비로소 진실한 인간 관계가 어떤 것인지 눈을 뜨고, 인간 존재에게 있어 확실한 경계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 그녀 역시도 지금까지 그녀가 생각해왔던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이러한 요코의 변화가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에 투영된 오노 후유미의 본심이 아닐까 싶다. '십이국기'는 그런 면에서 '시귀'와 연결되며 그 보다 긴 호홉으로 '나와 타자', '변화와 혼종'의 주제를 천착한다.('십이국기'는 아직도 완간되지 않았다.)


 '십이국기'는 예전에 '조은세상'에서 발간한 적이 있다. '애니메이션'마저 우리나라에서 방영했기에 아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전에 나온 판본은 두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하나는 엉성한 번역이고 다른 하나는 삽화가 대부분 삭제된 것이었다. 나는 지금 가제본을 받아 읽었고 가제본을 받을 때 엘릭시르가 먼저 밝히기를 가제본엔 삽화가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였기에 삽화 쪽은 뭐라 말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번역에 관해서라면 가히 '일취월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일단, 이전의 혼란스럽기만 했던 표기와 호칭 부분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어 대화도 한결 산뜻하게 들려온다. 덕분에 더욱 쉽게 지금 읽고 있는 상황을 머리에 그릴 수 있었다. 번역만큼은 믿고 보아도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솔직히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번역한 이가 '시귀'를 번역한 추지나이기 때문이다.  삽화에 관해서라면 정식 발매본엔 신조사의 재간행본 그대로 야마다 아키히로의 일러스트가 삭제 없이 모두 들어간다고 한다. 야마다 아키히로의 일러스트를 좋아했다면 이번 '십이국기'는 '반드시 소장!'이 아닐까 싶다.


 자세한 사항은 엘릭시르가 보내온 'Q&A'를 참조.

  


  어쨌거나 십이국기의 재래가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완결까지 다 나온다고 하니, 이러다 영영 결말을 못 보게 되는 것 아닌가 우려하고 걱정하며 절망했던 나에게는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고 싶을만큼 기쁜 소식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울하고 마음 힘든 것 투성이인 요즘, 이렇게 나마 또 조금 숨 쉴만한 것을 얻는 것 같다. 오래도록 나의 산소 호흡기가 되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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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4-11-04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잠깐만요... 헤르메스님 서재 놀러왔다가 이런 소름끼치고 머리털이 곤두서고 숨이 턱 막히는 소식이.......
와........ 헤르메스님한테 먼저 반갑다고 인사했어야 하는데.....
결말까지................... 와....

ICE-9 2014-11-05 02:36   좋아요 0 | URL
오! 소이진님 방가방가~!!
워떻게 지낸데요? 정말 많이 궁금했어요~^ ^
사실 이 소식 들었을 때 소이진님도 많이 좋아하겠구나 생각했었어요.
역시 그러네요. 저와 똑같이~!!
같이 제발 완결까지 무사히 나올 수 있도록 빌자구요~^ ^
그리고 잘 지내고 있는 거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