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지리학 - 소득을 결정하는 일자리의 새로운 지형
엔리코 모레티 지음, 송철복 옮김 / 김영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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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의 잠 못이루는 밤'이라는 영화를 만나기 전까지 우리들에게도 생소했던 도시 시애틀. 그건 당사자인 미국도 다르지 않아서 시애틀이 미국의 도시냐는 농담이 종종 유행했다고 한다. 그럴만도 한 것이 사실 시애틀은 오래도록 최악의 도시 중 하나였다. 70년대 후반, <이코노미스트>는 시애틀을 '절망의 도시'라고 불렀다. "중고차, 중고 텔레비젼, 중고 주택을 미국에서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곳은 워싱턴의 주 시애틀이다. 식료품을 사고 집세를 낼 돈을 마련하기 위해 집집마다 생활에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내다 파는 이 도시는 거대한 전당포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이런 옥외 광고판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시애틀을 떠나는 마지막 사람은 전등을 꺼주시기 바랍니다." 시애틀은 그런 도시였다. 말하자면 뉴욕과는 정반대의 도시. '시애틀의 잠 못이루는 밤' 포스터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감지된다.


 하지만 이런 시애틀의 모습은 이제 과거가 되었다. 지금은 "날씨 빼고는 모든 것이 완벽한 도시'라고 평가 받는다. 집에 있는 중고품이라도 팔아서 연명해야 했던 도시가 이제는 1인당 개인소득이 연간 5만 497달러가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최근 5년간 개인 소득이 꾸준히 2.6% 증가하는 중이다. 좋은 일자리가 많기로는 미국에서 5위고, 여성 기업가에게 좋기로는 2위이며 첨단 기술 도시 순위에서는 미국에서 당당히 1위이다. 절망의 도시 시애틀은 현재 살기 좋은 도시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이 사실 앞에서 우리는 아무래도 궁금증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왔단 말인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지 않는다고 물론 계기가 있었다. 바로 1979년 1월 1일.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이전이다. 당시 빌게이츠가 설립한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종업원 13명의 작은 회사였지만 매출은 무려 100만 달러였다. 그것도 날로 증가하고 있었다. 원래는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 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그 날 시애틀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시애틀은 사업을 하기에 최악의 도시였지만 단 하나의 이유로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은 그것을 감행했다. 바로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그 별 것 아닌 동기로 시작된 이전이 결국 시애틀이란 도시를 완전 바꾸어 버렸던 것이다. 원래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있던 앨버커키와 비교하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이전하기 직전만 해도 시애틀의 대졸 노동자들은 앨버커키보다 겨우 5% 많았다. 하지만 그 이전 후에 그 차이는 점점 벌어졌고 1990년대는 14%나 되었다. 2000년대는 첨단기술의 폭발적 성장과 더불어 무려 35%까지 치솟았다. 거의 미국과 그리스의 차이에 맞먹는 수치였다. 70년대만 해도 모든 것에서 비슷했던 시애틀과 앨버커기. 하지만 이제 시애틀의 노동자들은 앨버커키 보다 1만 4,000달러를 더 받는다. 시애틀은 미국의 소프트웨어 기술자들에게 지급되는 총 급여의 4분의 1을 받지만 앨버커키는 노동자들의 학력 수준이 점점 떨어져 값싼 임금의 질낮은 일자리만 보편화되고 있다.


 이렇게 지역간 격차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제 그 격차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직업의 지리학'을 쓴 엔리코 모레티가 주장하는 바다. 그가 확신하는 이유가 있다. 이제 산업의 토양이 전혀 달라졌기 때문이다. '빅뱅 붕괴(우리나라엔 '어떻게 그들은 한순간에 시장을 장악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출간된)'를 쓴 래리 다운즈와 폴 누네스의 말대로 이제는 혁신 산업이 시장을 좌지우지 한다.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빅뱅 파괴자들 말이다. 혁신, 즉 새로운 산업 아이템을 만들어 내는 비용은 제조업 중심의 과거보다 지금 훨씬 적어졌다. 바로 통신을 비롯한 첨단 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거기다 세계화도 한몫 한다. 혁신 기업에게는 시장이 넓으면 넓을수록 수익도 비례해서 커진다. 그것이 이전 기업과 다른 혁신 기업만의 독보적 장점이다. 그 이유는 개발과 연구에 따른 고정 비용만 있을 뿐 정작 생산에는 그리 큰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윈도우의 새로운 버전을 만들 때, 그 프로그램을 만들기까지에는 엄청난 비용이 들지만 한 번 만들어 놓기만 하면 아무리 그걸 거듭 복사해도 별 다른 비용이 들지 않는다. 겨우 몇 센트의 복사 비용만 가지고 주구장창 프로그램을 팔아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이런 특수한 상황 때문에 혁신 기업은 시장이 크면 클수록 수익은 비례해서 커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구글이나 아마존,페이스북도 마찬가지다. 점점 큰 시장이 되어가고 있는 비디오 게임도 그러하다.



 이 때문에 혁신 기업은 오로지 하나의 가치만 중요하다. 이제 예전처럼 교통이나 지대, 혹은 관공서 같은 것들은 더이상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오직 단 하나, 사람만이 중요하다. 혁신 사업에 필요한 사람,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템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 미래의 빅뱅 파괴자들. 그런 인적 자원만이 그들의 구미를 당기는 요소가 된다. 페이스북을 만들었던 마크 주커버그의 말 그대로다.


 "자신의 역할에서 특출한 사람은 꽤 잘하는 어떤 사람보다 단지 약간 나은 것이 아니다. 100배 낫다."(p. 106)


 같은 페이지에서 엔리코 모레티는 이 말을 이렇게 설명한다.


 주커버그의 이 언급은 특히 흥미로운 사실을 드러낸다. 혁신 부문의 발전은 재능의 가치 상승과 관련된다. 경제적 가치가 전에 없이 재능에 달려 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20세기에 경쟁은 물리적 자본 축적에 관한 것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최고의 인적 자본 유치에 관한 것으로 바뀌었다.


 이제 사람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자원이 된다. 아마존의 창립자 제프 베조스가 '월스트리트의 잘 나가는 대형 회사의 이사'를 그만두고 좀 더 커다란 성취를 위하여 '아마존'이란 인터넷 서점을 시애틀에서 차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시애틀에 자신이 인터넷 서점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인재 풀이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맞는 풍부한 인적 자원이 그를 그 곳으로 불렀다. 더구나 첨단 기술의 중심이 된 시애틀은 제프 베조스가 하고자 하는 그런 사업에 대한 이해가 높아서 당시만해도 모험이나 다름없었던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투자를 두 번이나 받을 수 있게 했다. 분명 시애틀이 아니었다면 아마존은 이처럼 성공할 수 없었고 이제 아마존은 시애틀을 먹여 살리는 거대 기업이 되었다.


 바야흐로 시장의 중심 세력이 될 혁신 사업은 사람을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 이제 사람을 중심으로 기업은 재편되고 시애틀처럼 이웃의 학력이 나의 급여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엔리오 모레코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 모든 도시에서 지역의 인적 자원과 급여 사이의 관련성이 매우 큰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적으로 한 도시 내에 대졸자 비중이 늘어날수록 같은 도시내 고졸자의 연봉 역시 증가하는 게 확인되었다. 이를 '인적 자원 외부 효과'라 부른다. 학력은 이제 소득 견인의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섣부른 오해는 금물이다. 학력 지상주의의 재판(再版) 같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학력이란 무엇보다도 창의성을 증대하는 것, 즉 이전에 없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에 관계된 학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나라가 주로 하고 있는 교육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기업에서 시키는 대로 일 잘 할 수 있는 기성품을 찍어내는 교육이 아닌 독창적인 생각과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재능을 키워내는 교육으로서의 학력인 것이다. 제인 제이콥스는 단적으로 이 학력을 '새 일(new work)'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라 일컫는다.


 엔리코 모레티는 현재 지역적 격차가 날로 확대 일변도에 있음을 보여준다. 시애틀과 앨버커키처럼 인적 자원을 소유하지 못한 도시는 '절망의 도시'가 될 운명을 감수해야 한다. 산업의 풍토는 변했다.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해진 시대가 된 것이다. 페이스북은 2009년 친구들의 온라인 활동을 추적할 수 있게 돕는 회사인 '프렌드피드'를 무려 4200만 달러에 산 적이 있다. 하지만 그만한 돈을 주고서 그들이 원했던 것은 기업이나 기술이 아니었다. 그들이 필요했던 것은 오로지 사람이었다. 프렌드피드의 창업자 브렛 테일러를 비롯해서 눈독 들이고 있었던 제품 관리자와 기술자 12명. 오로지 그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페이스북은 4200만 달러를 쓴 것이었다. 이제 이런 일은 보편이 될 것이다. 엔리오 모레티의 '직업의 지리학'은 도시 행정가들에게 자신의 도시를 번영시키려면 무엇보다 창의적 재능으로 무장한 인적 자원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는 것을 주지시키겠지만 개인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리라 생각된다. 그건 바로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독보적인 능력을 가지는 것만이 자신이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개인의 가치가 커지고 있다. 지금 우리는 조직에 너무 주눅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 볼 때다. 이제 정답이 하나뿐인 세상은 지나갔다고 본다. 그 어떤 분야에서든 남과는 다른 생각으로 독보적 능력을 닦는 것. 그것이 가장 안정적인 삶의 동아줄이 되어줄 것 같다. 또한 도시는 이제 그런 존재들에게 더욱 신경쓰고 그 능력을 더욱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공교육의 정상화는 이를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하루 빨리 일반고 전성시대가 되어서 그들의 모든 자질들이 동등하게 존중받고 한껏 개성을 발휘하면서 자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개인의 힘은 크다. 그걸 믿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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