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 외딴 성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서혜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8월
평점 :
품절


 과거에 있었던 자신의 일을 소설로 풀어내는 게 아닐까 생각되는 작가가 있습니다. 그가 바로 일본 작가인, 츠지무라 미즈키이죠. 이 말은 제가 그의 작품을 아직 딱 하나밖에 읽지 못해서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네, 저는 그의 데뷔작이기도 한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만 읽었는데요, 거기에 묘사된 십대 아이들의 일상이나 심리가 아주 생생하게 그려져서 아무래도 작가가 직접 겪은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죠. 그만큼 깊은 인상을 남긴 작가라 이름을 뇌리에 새겨두고 있었는데, 이렇게 그의 작품을 또 다시 만나게 되었네요.

 그것이 바로 '거울 속 외딴 성'입니다.


 2018년 서점 대상 수상작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서점 대상은 점수제로 운영되는데 역대 최고 점수를 받았다고 하니 도저히 찾아 읽지 않을 수 없더군요. 표지까지 예뻐서 더욱 소장 욕구를 높였구요. 




제목에서 판타지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과연 설정은 판타지였습니다. 제목 그대로 거울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외딴 성이 나오거든요.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판타지와는 결이 좀 달랐어요. 외부의 적을 물리치거나 세계를 구원하는 거창한 것은 아니고 세상에서 이렇게 저렇게 상처 받은 아이들이 스스로 치유해 나가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고코로란 아이가 주인공입니다. 그녀는 현재 학교에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같은 반 아이들에게 거의 집단 따돌림에 맞먹는 엄청난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이죠. 가뜩이나 예민한 나이에 타인에게서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집단으로 아무 이유 없이 공격을 당하다 보니 세상이 잔뜩 무서워져 버린 것입니다. 그는 매일 자기 방에만 틀어박혀 지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신 거울에서 빛이 나는 걸 발견합니다. 호기심에 거울 쪽으로 손을 뻗었는데, 거울에 손이 닿자마자 그만 거울 속으로 빨려들어가 버립니다. 거울 속으로 들어와버린 고코로 앞에 나타난 것은 늑대 가면을 쓴 여자 아이. 그 아이로 인해 고코로는 외딴 성으로 가게 되고 거기서 자신과 똑같이 학교에 가지 않고 있는 여섯 명의 아이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합니다.


 "이 성 깊은 곳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소원의 방'이 있어.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소원을 이루는 자는 한 명 뿐이야. 빨간 모자들."

 "빨간 모자?"

 "(...) 너희들은 길을 잃고 헤매는 빨간 모자들이지."(p. 51)


 그렇게 일곱 명 중 한 명이 성에서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열쇠를 찾을 때까지 내년 3월을 기한으로 계속 성으로 오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물론 강제는 아닙니다. 찾고 싶을 때만 올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성에 있는 동안은 뭘하든 자유입니다. 굳이 열쇠를 찾지 않아도 되는 것이죠. 다만 밤에는 올 수 없습니다. 성에 올 수 있는 시간은 학교에 있어야 하는 시간과 일치합니다. 이런 점 때문에 외딴 성은 일곱 명의 아이들에게 학교에 가지 않는 동안 있을 수 있는 아지트가 되어 버립니다. 아이들은 성에 와서 게임을 하고 이런저런 수다도 떱니다. 그러면서 혼자는 절대 만들 수 없는, 또래와의 관계를 맺어갑니다. 그러는 가운데 타인을 대하는 법,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법 등등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서로 상처를 주지 않는 관계란 어떤 것인지 하나하나 배워나가죠. 인용한 말에 나왔듯, 이 소설은 그림형제의 유명한 '빨간 두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빨간 두건 소녀는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딴 짓을 하다가 길을 잃고 그만 늑대에게 희생당하고 말았죠. 하지만 이 소설에서 늑대는 길을 잃은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도록 돕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 변형이 재밌게 여겨지더군요. 아, 그러나 무서운 늑대도 있습니다. 금지된 시간에 성에 있게 되면 정말로 무시무시한 늑대가 나타나 아이를 잡아가 버리니까요. 어쨌든 환경의 변화로 별안간 세상의 거센 공격을 받아 자신만의 외딴 방에 갇혀버린 아이들이 외딴 성을 통해 그런 세상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있도록 치유하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함께 한다는 경험이, 서로를 소중히 여긴다는 마음이 자신 또한 얼마나 현명하고 강하게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이고, 결국 자신의 마음이 강해지지 않으면 어디에 있더라도 지옥을 만난다는 걸 느끼게 만드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세계 혹은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곳엔 많은 세계와 길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마음 또한.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서 나왔듯이 네트(세계)는 광대하니까요.


 이 소설은 직접 읽으면서 느끼는 게 최고의 독서법 같기에 책에 대한 말은 이 정도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우리나라에도 요즘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홀로 지내는 아이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고 그저 약간 다르게 오늘의 시간을 지내고 있을 뿐이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그리고 혹시 그런 삶에 상처를 받고 싶다면 위로와 그런 상처따위 전혀 받을 필요 없다고 말하고픈 마음으로 이 책을 그들 곁에 놓아주고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비슷한 나이의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도 한 번 읽어보면 좋을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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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8-10-06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아이들이기에 서로 알았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세상에는 비슷한 생각이나 비슷한 아픔을 겪는 사람이 있겠지요 그렇다 해도 자신이 가장 힘들다 생각하지만... 비슷한 사람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듯합니다 비슷한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아쉬워하지 않고 다들 무언가 아픔이 있겠지 생각하면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여러 권 만났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쓰는 듯해요 여자 친구들 이야기, 읽지 못했지만 결혼하려는 사람과 그 둘레 사람 이야기도 있고(이건 드라마로 봤군요), 죽은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츠나구, 이건 영화로 만들었더군요), 지난해에는 입양...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