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선택한 남자 스토리콜렉터 66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이한이 옮김 / 북로드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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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 보거나 들은 것은 빠짐없이 기억한다는 특이한 능력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캐릭터, 에이머스 데커.

 그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 나왔군요. 제목은 '죽음을 선택한 남자'. 원래 제목은 'THE FIX'. 2017년에 발표되었으니 우리나라에 꽤 빨리 번역 출간된 셈입니다. 그런데 올해 9월 11일에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인 'THE FALLEN'이 출간될 모양이더군요. 2015년에 시리즈 첫 작품이 나왔는데, 벌써 네 권째라니 거의 1년에 한 편씩 발표하는 것 같습니다. 커다란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의 방증일까요? 서양의 리뷰 사이트인 '굿리즈'를 보면 모두 4점 이상의 점수를 받고 있어 그런 것도 같습니다.



 어쨌든 이번 '죽음을 선택한 남자'는 시리즈 전작과 이채로운 점이 몇 가지 있어 더욱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하나는 'WHO DUNE IT?'이 아니라 'WHY DUNE IT?'에 천착한다는 점입니다. 이건 소설 초반부터 범인을 아예 밝혀두고 시작하기에 한층 더 도드라졌죠. 무엇보다 주인공 에이머스 데커가 살인과 범인 모두를 바로 눈 앞에서 목격하니까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전작의 활약으로 이제 FBI에 기자 알렉스와 함께 특채되어 미제 사건을 수사하게 된 에이머스 데커가 FBI 거점인 J 에드거 후버 빌딩으로 회의를 위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앞에서 걸어가던 고급 정장을 잘 차려 입은 60대 남자가 맞은 편에서 걸어오던 애니 버크셔를 갑자기 권총으로 살해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턱 아래에 총구를 대고 쏘아 자살하고 맙니다.(바로 죽지는 않고 병원으로 실려가 거기서 죽습니다만.) 여기서 제목의 '죽음을 선택한 남자'가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게 되실 것 같네요. 네, 자신에게 총을 쏜 60대 남자, 월터 대브니인 것이죠. 그는 그의 외양이 증명하듯이, 성공한 사업가였습니다. 그리고 재정이나 가정 모두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가 절대 그럴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증언합니다. 그렇다면 대관절 대브니는 왜 버크셔를 살해하고 자살한 것일까요? 그건 혹시 피해자 때문일까요? 하지만 피해자 역시 대체교사로 시간이 나면 죽음을 앞두고 있는 이들을 찾아가 책을 읽어주는 등 자원 봉사를 하는 사람입니다. 주위의 누구와도 갈등을 일으킨 적 없었고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더구나 대브니와 버크셔 사이에는 아무런 접점이 없습니다. 일면식을 전혀 나누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더욱 대브니가 버크셔를 살해한 것이 수수께끼인 것입니다. 이것은 그저 뇌종양으로 곧 죽음을 앞둔 대브니가 자살을 마음 먹고 충동적으로 저지른 무차별 살인이었을까요?


 이유 없는 살인은 없다고 믿는 에이머스 데커는 '왜?'라는 질문에 천착합니다. 그 실을 따라가 보니 이상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버크셔는 대체 교사 월급으로는 도저히 유지 불가능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몇 백만 달러짜리 호화 주택에다 연봉의 몇 배나 되는 자동차하며 아주 부유한 삶을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곳엔 조금도 생활의 흔적이 없었습니다. 마치 모델 하우스처럼 말이죠. 거기다 버크셔는 이중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학교에 낡은 포드 자동차를 몰고 출퇴근을 했고 학교에 기록된 주소는 그녀의 집이 아니라 전혀 다른 곳에 있는 아주 허름한 집이었던 겁니다. 이처럼 피해자의 삶이 이상한 것 투성이다 보니 대브니는 어떤 이유로 살인했다는 심증이 더욱 굳어지게 됩니다. 그러던 차에 미 국방정보국(DIA)에서 일하는 하퍼 브라운이란 여성이 데커를 찾아옵니다. 그는 데커에게 대브니가 실은 막내딸을 도와주기 위해 국가 안보에 중대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최고 기밀을 천만 달러를 받고 넘겼다는 이야기를 해 줍니다. 대브니는 평범한 사업가가 아니라 반역자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버크셔는 대브니의 이런 사실 때문에 살해되었던 것일까요? 그녀는 대브니의 반역 행위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당사자들이 이미 모두 죽어버린 상황에서 여기에 대한 해답을 얻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진실만 쫓는 에이머스 데커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비록 바람 부는 속에서 휘파람을 부는 일이라 해도 말이죠. 설령 몇 번이나 자신에게 날아드는 총탄으로 목숨의 위협을 받더라도 그는 최후의 진실을 찾을 때까지 내처 걸어갑니다.


 소설 처음부터 주인공이 살인 현장을 목격한다는 점과 단순한 살인인 줄 알았지만 그 뒤에서 드러나지 않는 더 커다란 흑막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 있는 작가의 데뷔작 '앱솔루트 파워'가 많이 생각났습니다. 뭐랄까요, '에이머스 데커'와 '앱솔루트 파워'가 믹스된 느낌? '죽음을 선택한 남자'가 전작보다 스케일이 훨씬 더 커져서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앱솔루트 파워'도 개인이 체제와 싸우는 이야기니까요. 그래서 말인데, 시간대가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앱솔루트 파워'의 주인공인 대도 루터 휘트니가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에 한 번 등장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여하튼 이번 편은 첩보 장르를 취하여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의 무대가 넓혀졌는데, 주인공인 에이머스 데커에 한해선 초점이 더욱 좁혀진 것 같습니다. 그에게 가장 커다란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아내와 딸의 죽음이라는 과거에서 그가 벗어나 다시 새롭게 삶을 시작할 수 있는가 하는 초점이죠. 작가 데이비드 발다치가 이 소설에 스파이와 두 가족을 가져온 것을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파이는 두 세계 사이에 끼어 있는, 경계의 존재죠. 그건 과거의 상처와 새로운 삶의 출발 사이에서 오고가는 에이머스 데커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대브니와 버크셔의 이중 생활 마찬가지 입니다. 에이머스 데커는 아예 이런 말까지 하죠. 얼마전까지만 버스정류장에서 골판지를 집 삼아 살던 자기가 이제는 번듯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고. 작가가 이 소설에서 데커가 살 집을 마련해 준 것은 버크셔가 가지고 있었던 두 개의 집과 비슷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버크셔가 두 개의 삶 중 그 어느 것에서도 자신의 삶으로 선택할 수 없었듯이 데커 또한 그럴 것이라는 걸 암시하고 있구요. 하지만 주저하는 데커에게 선택을 하도록 만드는 외부 상황이 존재합니다. 그것이 바로 두 가족의 등장이죠. 데커가 사는 집에 세입자로 있는 에이야마 부자와 대브니 가족이 그것입니다. 그 두 가족은 그 때 아내와 딸이 죽지 않았다면 지금 자신의 삶이 아주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묻는 에이머스 데커에게 설령 살아있다 하더라도 데커가 그토록 찾는 안식은 없었을 것이란 걸 보여줍니다. 위협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으며 때로는 아주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밝혀져 커다란 배신의 상처를 입힐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두 가족의 모습은 데커에게 과거의 상처에 연연하지 말고 새출발 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마치 그와 보조를 맞추듯, 작가는 데커와 재미슨을 룸메이트로 동거하게 만들고 '썸'을 자아내는 것과 동시에 데커의 가장 친한 친구인 멜빈 마스와 DIA 요원 호프 브라운도 '썸'을 타게 만들죠.


이것은 데커에게 작가가 어떤 충고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데커는 자신이 삶에 떠밀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와 딸이 그렇게 죽었기 때문에 자신이 이런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그는 자신에게 다른 선택따윈 없었다고 재미슨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작가는 묻습니다. 과연 달리 선택할 수 없었을까 하고 말이죠. 그것이 바로 대브니의 삶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그의 삶을 두고, 또 그에게 어떤 선택을 하도록 한 이들을 두고 데커의 일행들은 자주 말하죠. '그들은 달리 선택할 수 있었어'라고. 그건 그대로 작가가 데커에게 하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 선택이 데커에게 가능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재미슨과 마스 그리고 브라운이 새로운 관계를 엮어나가는 것이죠. 삶은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주도해 나가는 것이라는 의미로. 과연, 데커가 작가의 충고를 받아들였던지 소설 마지막에서 데커는 이런 말을 하죠.

 나는 어둠을 받아들일 거야. (p. 566)


 이렇게 보자면 왜 이 소설의 원제가 'THE FIX'인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아프고 절망적인 순간에 있다 하더라도 삶을 다시 재건할 기회는 있다는 것이죠. 삶이 우리의 목줄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삶의 목줄을 쥐고 있으니까요. 이처럼 스케일이 커지긴 했습니다만 저는 '죽음을 선택한 남자'가 데커 개인의 드라마로 더 많이 보였습니다. 뭐, 어쨌든 이것은 '죽음을 선택한 남자'를 바라보는 저만의 관점일 뿐입니다. 그것을 제쳐두고 총평 같은 걸 해보자면, 이번의 작품 역시 전작이 그랬듯이 페이지 터너의 역량을 충분히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초반엔 궁금증을 한껏 유발시키고 흥미를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 책에서 손을 떼기 힘들게 만들죠. 그리고 액션 영화를 방불케 하는 총격 장면도 나오고 말이죠. 로맨스와 유머까지 가미되어 있어 한 마디로 즐길 요소가 많습니다. 그런 까닭에 599 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인데도 쉽게 읽을 수 있더군요. 기존의 에미머스 데커를 재밌게 읽으신 분이라면 이번 작품도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건 그렇고 빨리 네 번째 작품을 만나고 싶네요. 거기서도 데커는 연쇄 살인을 수사하게 되는데 사건 발생 장소가 글쎄 알렉스 가족이 사는 곳이랍니다. 데커와 알렉스 재미슨이 함께 그의 가족을 만나게 된다고 하네요. 가족을 만난다는 건 관계가 더 깊어진다는 것을 의미하죠. 과연 데커가 지금까지의 방황을 끝내고 정착하게 될 지 궁금하군요. 그런데 스릴러 소설에서 가족의 형성은 시리즈의 끝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잘 될런지... 하여간 4부가 얼른 나와 주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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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3 02: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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