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자이너
나오미 울프 지음, 최가영 옮김 / 사일런스북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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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오미 울프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페미니스트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녀는 언제나 나의 고정관념에 강력한 의문을 제기하고 이면의 진실을 발굴하여 그것을 전복시켰다. 여자에게 강요된 아름다움에 대해 쎴던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가 그랬고, 예전 한 칼럼에서는 페미니즘이 극우 이데올로기와 친화성이 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기도 했다. 원래는 2012년에 나왔지만 최근에 번역 간행된 '버자니어'는 여성의 성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었던 고정관념을 무너뜨린다. 이 책은 단적으로 버자이너와 뇌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말은 여성의 경우 성적 쾌락이 오로지 육체적인 것에서만 오지 않고 정서적인 것에서도 매우 많이 온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여성은 몸과 감정 모두가 만족해야만 오르가슴을 느끼도록 되어있다는 것이다. 


 일단 해부학적으로 그러하다. 여성의 골반은 신경계가 단순하게 분포되어 있는 남성의 생식기와는 다르게 수많은 신경계가 아주 복잡하게 얽힌 구조로 되어 있다. 게다가 그 얽힘이 일반적이지 않고 모든 여성이 저마다 다 다르다. 여성 개인은 오직 혼자만의 골반 신경계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모든 여성은 저마다 개성적인 신경망 얽힘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어떤 여성은 신경 분지가 질에 더 발달해 있고 어떤 여성은 신경 분지가 음핵에 더 많죠. 회음부나 자궁경부에서 신경 가닥이 집중적으로 분지된 여성도 있습니다. 그러니 성적 반응의 개인차가 벌어지는 게 당연하죠."(p. 24)


 그러므로 여성에게 성행위와 성생활에 있어서 일반론은 없다. 지금까지 우리가 사람을 통해서나, 책을 통해서 들었던 모든 여성의 성에 대한 지식들은 지극이 운이 좋아야만 적용될 수 있는 헐거운 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여성에게 마치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처럼 강요해왔다. 그 때문에 사회가 요구한 것과 다르게 느끼는 여성들은 가지지 않아도 좋을 수치심과 죄책감을 가져야 했다.


 문화와 가정교육이 여성의 성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많은 여성에게 억울한 죄책감과 수치심을 안기거나 여성으로 하여금 내가 변태가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빠지게 만든다. 자신이 애인에게 오럴 섹스를 그의 전 여자친구보다 더 많이 요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가? 질과 항문 모두 만져 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창피한가? 가끔 절정까지 오래 걸리건 절정이 모호한 것과 같은가? 여기서 주목. 그건 당신의 할머니가 양손을 이불 위애 고이 포개고 자라고 가르쳤거나 중학교 때 수녀 선생님이 유독 무서웠기 때문이 아니다. 당신은 애인의 전 여자친구보다 성적으로 흥미가 덜한 사람이 아니고 더 엄격하게 길러지지도 않았다. 어떤 잠자리를 좋아하고 원하든, 모든 여성의 저마다 다른 성적 성향은 온전히 신경계의 물리적인 구조에서 오는 것일지 모른다.(p. 33)


 


 책이 강조하고 있듯이 우리가 때로 자신에 대해 어떤 자괴감이나 죄책감에 젖는다면 그건 아마도 우리 몸을 너무 모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회는 우리가 그런 쪽에 관심을 갖고 알려고 하는 것을 부끄러움과 죄책감과 연결시켜 지레 못하게 만들었으니까.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가 '성의 역사'에서 특히 자위와 관련하여 탁월하게 보여주지 않았던가? 개인이 성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을 통제하여 수치심을 느끼도록 함으로써 사회 권력의 지배를 공고히 해 왔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사회는 언제나 성 담론을 지배하고 관리함으로써 개인의 주체성을 박탈하고 쉽게 순응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몸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오히려 사회에서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한 저항적인 실천이라 할 수 있다. 나오미 울프의 '버자이너'는 그런 해방의 동력을 가져다 주는 책이다. 요즘 한창 일어나고 있는 탈 코르셋 운동이 증명하듯이, 생각해 보면 여성은 언제나 자신의 몸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자신의 몸을 자신의 눈으로 직시하기 보다는 남들이 만든 틀에 맞춰 바라보기 일수였다. 그러므로 자신의 몸에 따라 개인적인 요구를 하려해도 언제나 슬며시 일어나는 죄책감 속에서 남의 눈치를 봐야했다. 그러나 '버자이너'는 단호하게 말한다. 그런 자신을 전혀 죄스러워할 필요도, 남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고.


 사실상 모든 여성이 적절한 환경만 조성되면 오르가슴에 도달한다는 최신 연구 결과가 많이 나와있다. 이렇게밖에 표현 못 해서 미안하지만, 이렇게 많은 여성이 성욕 결핍과 좌절, 의욕 상실로 고통받는 것이 혹시 남자들이 여자에 대해 잘못 배워서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 아닐까?(p. 109)


 더구나 '버자이너'가 누누이 강조하듯이 여성의 경우 특히 몸은 마음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강간의 경우, 그것은 단순히 몸을 범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인격적 살인에 해당한다. '버자이너'는 대표적으로 시에라리온 내전 중 병사들에게 무자비하게 강간당한 여성의 모습을 통해 강간이 얼마나 여성의 정신을 파괴시키는지 보여준다. 그러므로 강간은 아주 무서운 죄이다. 


 강간은 영구적인 신체 손상을 남길 수도 있는 고도의 강력범죄다. 그러나 사람들은, 심지어 그 짓을 저지르는 당사자조차도, 무기가 사용되거나 다른 신체적 상해, 멍 혹은 핏자국이 남지 않는다면 강간이 그저 '강제적인 성관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연구들은 데이트 성폭행을 비롯해 경범죄의 탈을 쓴 강간의 공포와 폭력성이 뇌와 온몸에 각인되어 피해자의 심신을 평생 괴롭힌다고 말한다. (...) 또한 오래전에 입은 성적 외상이 전혀 상관없는 것 같은 현재의 만성적 통증 감각을 심화시킨다는 최근의 분석 결과도 존재한다. 즉 옛날에 성폭행이나 성적 학대를 당했던 사람은 훨씬 나중에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다른 병을 앓게 되면 그 통증을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크게 느낀다는 얘기다. 코디 박사는 이 상관관계를 거의 확신하고 있어서 '강간이 곧 통증'이라고 말한다.(p. 138)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법원은 그 위중함을 아직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니 하루빨리 이런 연구결과가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이렇게 '버자이너'는 여성의 성에 대해, 정말로 묻고 싶었으나 어디서도 쉽게 들을 수 없었던 대답을 그것도 아주 제대로 들려주는 책이다. 나오미 울프는 들어가는 말에서 이런 말을 했다.


 오늘날 우리가 여자로 살아가는 게 불편한 이유 중 하나는 여자의 몸과 버자이너를 가리키는 언어가 형편없다는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버자이너가 그냥 살덩어리라는 잘못된 인식 탓이다. 하지만 여성의 성적 쾌락의 요체는 생식기만도 쾌락만도 아니다. 여성의 성적 쾌락은 여성의 자기 인식과 긍정적 태도, 창의력과 용기, 집중력과 추진력을 매개하며 여성에게 초월적 황홀경과 해방감 비슷한 감정을 선사한다. 다시 말해 버자이너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버자이너가 뇌의 연장선상일 뿐만 아니라 영혼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p. 5)


 작가가 말하듯, 정말로 자신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우울과 불안에 휩싸이게 되는지도 모른다. 하여, 자신의 몸이 가진 진실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면 '버자이너'가 좋은 첫걸음이 되어 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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