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의 추방
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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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은 타자의 부정성이 의해 일어난다. 타자는 동일자 내부로 침투하여 항체가 형성되도록 한다. 이에 반해 경색은 같은 것의 과잉, 시스템의 비만으로 인해 일어난다. 경색은 감역적이 아니라 과지방적이다. 지방에 대해서는 항체가 형성되지 않는다. 어떤 면역 방어도 같은 것의 창궐을 막아낼 수 없다. (9쪽)


타자의 부정성과 변모가 엄밀한 의미에서의 경험을 만들어낸다. 어떤 것을 경험한다는 것은 "우리를 기습하는 것, 우리를 맞히는 것, 우리를 덮치는 것, 우리를 넘어뜨리는 것, 우리를 변모시키는 것"을 말한다. 경험의 본질은 고통이다. 그러나 같은 것은 고통을 주지 않는다. 오늘날 고통은 같은 것을 지속시키는 '좋아요'에 밀려난다. (11쪽) 


만일 꽃이 자기 안에 충만한 존재를 지니고 있다면, 인간이 바라봐주는 데 대한 욕구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꽃은 어떤 결핍을, 존재의 결핍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 담긴 시선, "사랑이 인도하는 인식"이 꽃을 이런 결핍의 상태로부터 구원한다. 따라서 인식은 "구원과 유사한 것"이다. 인식은 구원이다. 인식은 타자로서의 대사에 대해 사랑하는 관계를 맺고 있다. (13쪽)


같은 것의 지옥에서는 타자를 욕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18쪽) 


환대의 관념은 이성을 넘어서서 보편적인 무언가를 제시한다. 니체는 환대가 "너무나 풍요로운 영혼'의 표현이라고 했다. 이런 영혼은 모든 단독적인 것들을 자신 안에 머물게 할 수 있다. (...) 아름다움의 정치는 환대의 정치다. 이방인에 대한 적대성은 증오이며 추하다. 이 적대성은 보편적 이성의 결여를, 사회가 여전히 화해되지 않은 상태에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한 사회의 문명화 정도를 보여주는 척도는 바로 이 사회의 환대, 나아가 친절함이다. 화해는 친절함을 뜻한다. (33쪽)


활력을 부여해주는 것은 바로 부정성이다. 부정성은 정신의 삶에 영양을 공급해준다. 정신은 절대적인 분열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떄 비로소 자신의 진실을 획득한다. 규열과 고통의 부정성만이 정신을 생생하게 유지해준다. 정신은 "부정적인 것을 외면하는 긍정적인 것"으로서의 "힘"이 아니다. 정신은 "부정적인 것을 똑바로 쳐다보고, 부정적인 것의 곁에 머무를 때만 이 힘"이 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부정적인 것 곁에 머무르는 대신 그것을 피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긍정적인 것을 고수하면 같은 것만 재생산된다. 부정성의 지옥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긍정성의 지옥도 있다. 부정적인 것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것도 테러를 낳는다. (49, 50쪽) 


"... 결국 예술의 고유한 수수께끼는 이 수수꼐끼의 성질 속에서 지속된다." 행동 객체는 경이의 능력을 상실한 행동 주체의 생산물이다. "폭력 없는 관찰"과 "거리의 가까움", 나아가 멂의 가까움만이 사물들을 행동 주체의 강제로부터 해방시킨다. 아름다움은 오래 지속되는 관조적 시선에만 자신을 드러낸다. 행동 주체가 뒤로 물러날 때, 객체를 향한 주체의 맹목적인 충동이 꺾일 때, 그럴 때만 사물들은 그 다름을, 그 수수꼐끼의 성질을, 그 낯섦과 비밀을 돌려받는다. (94, 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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