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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체를 숨긴 채 내 인생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내가 그토록 되고자 했던 모든 것을 천천히 침몰시키는 데 일조했다. 죽음을 알리는 꽃장식이 필요 없는 진실함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원했던 것들, 내가 꿈꿨던 것들은 모두 위층의 화분에서 떨어진 돌멩이처럼 가루가되고 말았다고. 마치 ‘운명‘이 내가 뭔가를 사랑하거나 원하게 만드는 이유가 단지 다음날이면 그걸 잃어버리고 영영 되찾을 수 없을 거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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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르스, 자네는 착취당하고 있어!" 내가 착취당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착취당하지 않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바스케스 사장에게 착취당하는 것이 허영과 명예, 울분과 질투, 또는 불가능한 꿈에 착취당하는 것보다 못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신’에게 착취당하는 이도 있지 않은가, 이 허망한 세상의 예언자들과 성자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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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혐오할지 선택해야 한다. 나의 지성이 싫어하는 꿈인가, 아니면 나의 감성이 증오하는 행동인가. 태생적으로 나와는 거리가 먼 행동인가, 아니면 태생적으로 누구하고나 거리가 먼 꿈인가.
둘 다 혐오하기에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다. 하지만 꿈과 행동 중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면 둘을 한데 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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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가는 마차를 기다리며 머물러야하는 여인숙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이 여인숙에 머물며 기다려야만 하니 감옥으로 여길 수도 있겠고, 여기서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 사교장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참을성 없는 사람도 평범한 사람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숙을 감옥으로 여기는 건 잠들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방안에 누워 있는 이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사교장으로 여기는건 음악 소리와 말소리가 편안하게 들려오는 저쪽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이들에게 넘긴다. 나는 문가에 앉아 바깥 풍경의 색채와 소리로 눈과 귀를 적시며 마차를 기다리는 동안, 내가 만든 유랑의 노래를 천천히 부른다.

언젠가 우리 모두에게 밤이 오고 마차가 도착하리라. 나에게 주어진 산들바람을 즐기고, 그렇게 즐길 수 있도록 주어진 내 영혼을 즐길 뿐 더이상 묻지도 찾지도 않는다. 내가 여행객들의 책에 적은 글을 언젠가 다른 이들이 읽고 나처럼 경치를 감상하며 즐거워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만약 아무도 읽지 않거나 읽었으나 누구 하나 즐거워하지 않는다 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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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책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실제 소설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고 있다. "다뤼는 하늘과 고원, 그리고 저 너머 바다에 이르기까지 펼쳐진 보이지 않는 땅끝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이 광막한 고장에서 그는 혼자였다." 고독하지만 스스로 "왕"인 양 느꼈던 이 드넓은 고원이 귀양살이의 "적지"로 변한 것이다.

"하늘과 고원, 그리고 저 너머 바다에 이르기까지 펼쳐진 보이지 않는 땅끝"과 같은 광대한 적지는 알제리라는 한 지리적 공간을 훨씬 넘어선다. 이곳은 인간이 사는 세상 전체요 삶 전체다. 그 광막한곳에 혼자 남은 교사 다뤼의 고독은 이 죽음의 세계에 던져진 인간 그 자체의 존재론적 고독이다. 카뮈는 단순히 알제리의 정치적 상황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처한 근원적 조건이 바로 이런 양면성의 갈등과 모순이라고 보았다. 우리는 도처에서 이런 풀 수 없는 모순과 갈등의 상황속에 놓이곤 한다. 문학은 이런 모순을 ‘해결‘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조건을 뚜렷하게 ‘의식‘하고 그 고통스러운 조건을 회피하지 않은 채 온몸으로 열정적으로 살아내도록 도와주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알베르 카뮈는 이 작품을 발표한 지 2년 남짓 지난 1960년 1월 4일 친구가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루르마랭 시골집에서 파리로 가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62년에전쟁은 종식되고 알제리는 독립하여 아랍계 무슬림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다. 카뮈와 마찬가지로 알제리 땅에서 태어나 그곳을 유일한 조국으로 여기며 살아가던 프랑스계 알제리 사람들은 재산과 땅을버리고 알제리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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