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 좋은 글이라 생각해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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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이 많은 정도로...

유명한 삼국지의 고사중의 하나입니다.

조조가 마등의 아들, 마초를 토벌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으나

마초와 그의 부친의 친우인 한수의 협공 아래,

조조군은 고전을 면치못하지요...

어느 날이었습니다.

조조가 닭갈비를 먹고 있는데, 먹는 동안 자신이 먹고 있던 갈비를 한참 바라보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지요.

"계륵같구나.. 계륵같구나.."

계륵은 닭의 갈비를 의미합니다.

이 이야기를 조조의 참모진이 듣게되지요. 그 때 참모중의 하나인

'양수'라는 자가... 자신들의 주군인 조조가 후퇴를 명했으니 어서 준비하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다른 참모들은 의아해하게되지요. 어떻게 계륵이란 말이 후퇴를 의미하냐고요...

양수는 설명했습니다.

"닭의 갈비뼈는 살이 있는듯, 없는듯하여... 먹기에는 귀찮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그런 부위지요. 지금 주군께서는 지금의 전시상황이 마치 계속 진격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후퇴하기에는 아까운 그런 상황에 있다고 보고계십니다.

이미 그런 흔들림이 있다는것은, 거의 후퇴를 결정하신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어서 후퇴준비를 서둘러야할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조조는 갈갈이 날뛰며 화를 냈습니다.

조조는 자신의 속내를 부하에게 들킨것이 뭇내 부끄러웠던것이지요.

양수는 처형 직전까지 갔으나, 하후돈 등의 위시한 측근들의 만류로

양수는 간신히 죽음을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조는 보란듯이 진격을 계속했지만, 결국 상황은 더더욱 악화되어

결국 수도인 허창으로 병사를 물리게 되지요...

.

.

.

.

.

사람들의 사이에서도 이런 '계륵'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특히 20대에서는

연애 감정에 그것이 많이 나타나는 법이지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보셨을것입니다.

어떤 한 사람을 두고...

내가 사귀기에는 좀 그렇고, 그렇다고 남 주기에는 아까운... 그런 사람.

분명히 그런 사람이 있었을것입니다. 없다면 거짓말이지요.

사람의 애정감정은 언제나 가치판단 기준이 정확하지 못하여 늘 애매모호한법이지요.

물론 첫눈에 반했다는둥의 그런 감정도 있지만, 별로 신용하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여러분은 자신이 다른 사람을 계륵으로 본 적이 있을 것이고,

또한 타인도 여러분을 계륵으로 생각한 적도 있을것입니다.

저도 물론 예외는 아니고요...

그런데, 살다보니.. 이 계륵만큼 상대를 상처입히는 것도 없습니다.

쉽게말해서, 당하는 사람의 입장은...

그 사람의 마음을 얻을 듯, 말 듯... 하다가... 고민하고... 기뻐하고...상처받고...

그런 식이지요.

물론 의도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사람의 감정을 갖고 장난치는 듯한 그런 행위는..

절대적으로 옳을수가 없습니다.

제가 아는 한 여성분도, 남자를 그런 식으로 늘 재는 분이 있지요. 물론 누구인지는 비밀입니다만..

남자분도 물론 있지요.

그리고 저도 그런 경험을 한 적도, 당해본적도 있고요.

하지만... 거듭 말하지만... 그것은 절대적으로 해서는 안될일입니다.

상대방의 아름다운 마음을... 그런 계산적인 마음으로 갖고논다는 것은...

해서는 안될일입니다.

물론, 감정이란 것이... 흑이다/백이다. 이렇게 잘라말하기가 어려운 건 사실입니디만,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면, 자신의 마음이 확실히 갈피를 잡을때까지는

상대방으로하여금, 오해를 사게해서는 안되겠지요. 마음이 정해지면

그때는 태도를 분명히 해야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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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17번의 문제는 이렇다.
[17 (가)의 ㉠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것을 <보기>에서 고르면?

<보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테세우스는 미궁으로 들어가 비밀의 방에 이르고자 한다. 비밀의 방에는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있다. 미궁을 통과하는 길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한번 들어가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미궁으로 들어가는 문은 누구에게나 보이는 것이 아니다.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존재하고 열리는 문이다. 테세우스는 미궁의 문을 찾아 실 끝을 미궁의 문설주에 묶어 놓은 뒤 자신의 예지와 본능으로 미로를 더듬어 비밀의 방에 이른다. 테세우스는 괴물을 죽인 후 실을 따라 무사히 밖으로 나온다. 이 '미궁의 신화'는 문학 예술 작품에서 다양하게 변형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① 테세우스 ② 미노타우로스
③ 미궁의 문 ④ 비밀의 방
⑤ 실 
 
 (가) 고향 -백석-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어 누어서 어느 아츰 ㉠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집드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씰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띄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어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그러니까 고향에 가기 위해 뭐가 필요하냐는 건데, 정답을 3번으로 한 평가원의 해석은 이렇다. "핵심은 그 과제를 해결하는 관건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동굴로 가는 문을 찾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들어갈 때 들고 가는 밧줄은 나중에 동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필요한 도구이지요"

아니다.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도구인 것처럼, '의원' 역시 고향에 이르고자 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의원이 고향을 일깨워 줬다면, 실타래는 미궁의 문으로 나오게 해준 것, 이카루스였다면 아마도 날개가 정답일 테지.. 그래서, 많은 수험생이 정답으로 쓴 5가 타당하다는 게 내 생각이며, 평가원의 해석은 그다지 보편타당하지는 않은 것 같다. 뒤늦게나마 5번도 정답이라고 한 것은, 당장의 공신력 실추는 있을지언정 스스로의 오류를 바로잡고자 하는 용기있는 행동이었다.

우스운 것은 3번을 썼던 수험생들의 행태다. 다른 경쟁자들이 2점씩 올라가는 게 참을 수 없다는 거다. 그래서 그들은 거리로 나서 무력시위를 했다. 난 고교생들이 시위를 하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견해를 시위 등을 통해 밝히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한 게 아닌가. 하지만 그 이유가 문제다. "다른 애들 점수 올려주면 내 등수가 떨어지잖아!"라는 게 과연 시위의 이유일 수 있을까. 그들의 시위에는 부안 사람들의 시위에서 느껴지는 절박함이나, 농민 시위에서 보이는 생존권을 위한 몸부림이 들어있지 않다. 등수가 떨어지는 데 대한 시기심 말고는 난  신문에 난 그들의 시위모습에서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오답은 바로잡아야 한다. 오답을 인정하고 5번을 정답으로 하는 것은 정의가 바로잡히는 일, 그렇다면 그들은 자기들의 등수 보존을 위해서 정의의 구현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되버린다. 원칙적으로 따지면 5번이 정답이 됨으로써 3번은 정답이 아닌 게 되어야 하고, 그들의 점수는 2점이 깎여야 맞다. 하지만 평가원 측은 그럴 배짱은 없었고, 3번을 쓴 애들은 공연히 2점이 올라갔다. 그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일을, 5번은 틀리게 하라고 시위를 한다?

안다. 우리가 그들을 그렇게 가르쳤음을. 진리를 추구하기보다는 남을 짓밟고라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게, 남들 것을 빼앗아 하나라도 더 많이 갖는 게 정의라고 말이다.  그들은 지금, 배운대로 행동하고 있다. 하물며 자신의 일생이 걸린 수능시험인데!!! 다른 나라들은 다 하는 사회적 연대를 왜 우리는 못하는지, 우리는 왜 모든 갈등이 극한투쟁까지 가는지 그 이유를 대충 알만하다. 그렇다. 모든 갈등의 배후에는 살인적인 대입경쟁이, 수능이 있다. 권모술수와 정략으로 점철된 <삼국지>가 수능 준비를 위해 꼭 읽어야 필독서가 되버린 것도, 우리의 대학입시가 권모술수와 정략이 판을 치는 곳이기 때문이 아닌지.


단 한번의 대학입시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소름끼치는 학벌주의가 깨지지 않는 한,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수능파동을 보면서 또다시 느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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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니의 소설이 인터넷에서 인기가 있다고는 하지만 직접 본 바로는 특별한 독창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모티콘을 마구 쏟아내며 아이들 장난처럼 쓴 인터넷 소설이 특례입학 이유라면 다시한번 재고해 봐야하지 않을까? (김미선, 20. 대학생)"

"신세대 트렌드만을 쫓는 귀여니 소설에서 문학성이나 작가정신을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뼈를 깎는 듯한 창작 노력을 하는 기존 작가들이 이번 일에 자괴감을 느낄까 걱정이다(이선영, 29. 학원강사)

<그놈은 멋있었다>를 비롯해 몇권의 소설을 베스트셀러로 만든 귀여니(본명은 이윤세란다), 그가 성대에 특례입학한 것에 대해 여론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특히나 그의 소설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20대 이상에서는 지지율이 훨씬 더 낮아진다. 난 그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 하지만 꼭 애를 낳아봐야 출산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아는 것은 아니듯(진중권의 표현에서 베꼈다) 책을 다 읽어야 그 책이 후지다는 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 편의점에 있는 귀여니의 책을 떠들어 보다보니, 한숨이 나왔다. 인터넷 채팅을 책으로 옮겨놓은 듯한 책. "이런 책이...베스트셀러라니"


철없던 시절, 나 역시 그보다 더한 책을 낸 적이 있지만, 그게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면 두고두고 부끄러울 뻔했다. 그건 나의 수준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자 우리 독서시장의 수치로 남았을 테니까. 다행히도 내 책은 망했고, 팔린 것의 대부분은 내가 산 거다. 마찬가지로 귀여니의 책이 문제인 것은 그게 책으로 나왔다는 게 아니라, 그게 중고생들이 탐독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데 있다. 내 책처럼 몇백권 팔리다 말았다면, 사람들이 그렇게 그녀를 악의 화신으로 보지 않았을 텐데.

그 명성을 이용해 대학까지 특례입학하자, 더더욱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소설은 우리 애도 쓰겠는데, 그런 실력으로 어떻게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한담? 실력으로 대학에 들어간 사람이나, 점수가 모자라 못들어간 사람이나 화가 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난 이번 일에 사람들이 과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유명인이 대학의 홍보 차원에서 특례입학하는 것은 벌써 오래된 일이다. SES의 멤버는 고대에 갔고, 강타는 중앙대에 갔다. 일일이 기억을 못하겠지만 다른 연예인들도 다 버젓이 대학에 갔다. SES가 음악성이 있는가? 아니다. 귀여니의 소설이 문학이 아니듯, SES의 노래도 음악이 아닌 것이다. 대학에서 귀여니를 특례입학 시킨 것은 그가 인터넷 소설을 썼기 때문이 아니라,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수준이야 어떻든 귀여니의 명성이 학교의 성가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을 했을 테니까. 연기를 못하는 배우들, 노래를 못하는 가수들도 그 명성을 발판으로 줄줄이 대학에 가는 와중에, 귀여니에 대해서만 유독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이유는 뭘까? 그건 문학에 대한 지나친 엄숙주의 탓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모름지기 책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생각. 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 나 역시 책은 이러이러한 게 좋다고 생각을 하지만, 저러저러한 책도 필요한 법이다. 귀여니의 책을 읽고 "너무 감동했다"고 울먹이는 수많은 애들이 있는 한, 귀여니는 무죄다.

* 난 그것보다는 김진명이 세명대학교 교수로 간 게 더더욱 웃긴다. 민족감정을 자극하는 것 말고는 어떠한 문학성도 담보할 수 없는 그가 특례입학을 한 것도 아니고 교수로 가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의 밑에서 또 얼마나 반일주의자들이 쏟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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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몬교라는 게 있다. 모르몬교는 일부다처제를 인정하는 교로, 조지프 스미스라는 인간이 창설했다. 그는 그 교리에 솔선하려는 듯 50명의 여성과 결혼했다. 너무 심하다 싶었는지 내부에서도 일부다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어, 모르몬교는 일부다처를 허용하는 교와 그렇지 않은 교로 분열되게 된다. 브리검 영(?)인가 하는 인간이 일부다처를 허용하자는 파의 대표였는데, 조지프 스미스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 역시 27명의 여자와 결혼했다고 하니, 그저 입이 벌어질 뿐이다. 미국의 유타 주는 쭉 빠진 미녀들이 아주 많은데, 그게 유타에서 모르몬교가 성행한다는 사실과 모종의 관계가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일부일처제는 인간에게 잔인한 제도다.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호르몬의 수명이 석달인가 밖에 안된다는 연구결과로 미루어 볼 때, 몇년을 지나 수십년간을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산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한다. 바람, 혼외정사, 간통, 외도(다 같은 말이잖아!)가 일어나고 성을 매개로 한 각종 향락산업이 번창하는 것도 따지고보면 일부일처제 탓이다. 의자왕처럼 부인 외에 3천궁녀를 거느린다면, 왜 외도를 할 것이며 룸살롱에 가겠는가?
 
그래서 뜻있는-바꿔말해 아무 생각없는-사람들은 "아랍에 가서 살고싶다"고 말한다. 아랍에는 일부다처제가 허용되기 때문이다. 실상을 알고보면 아랍애들이 여자를 밝혀서 그런 것도 아니며, 그럴 수밖에 없는 문화적 배경이 있다지만, 겉으로 비추어지는 아랍은 우리  남자들에게 엘도라도가 아닐까 싶다. 일부다처,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지 않는가?
 
일부다처가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생각은 그러나 엄청난 착각에 불과하다. 부인 하나도 먹여살리기 힘든 처지에 서넛의 부인을 거느리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20대 80의 법칙은 여기서도 적용된다. 즉, 상위 20%에 속하는 사람들이 80%의 여자를 차지하고, 나머지 80%는 20%의 여자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나같이 못생기고 배까지 나온 사람은 당연히 못가진 80%에 속할 것이며, 그 80의 대부분은 수도승같은 금욕생활을 해야 할거다. 약간은 사회주의적인 성격을 띤 일부일처가 그런 면에서는 합리적인 제도이며, 대부분의 남성에게 만족스러운 제도인 것이다. 

 굳이 아랍에 가고 말고 하지 않아도, 한국 남자들은 할 거 다하고 산다. 우리 사회는 가부장 사회이며, 남성들에게 무지하게 유리하다. 경제적 부담이 되긴 하지만, 눈을 조금만 돌리면 남자들을 위한 각종 향응이 즐비하다. 천하의 나쁜 여자가 되어 온갖 비난을 받기 마련인 여자의 외도에 비해, 남자의 바람은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오히려 아랍 남자들이 한국에 오고싶어하지 않을런지?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적어도 남자들한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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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천국.com 2011-05-21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50명도 경악스러운데 200명 부인둔 어느 부족 할아뱅도 있던데요? 공포스러웠음 근데 일부다처제하면 여자도 여자지만 남자가 허리가 휠듯.ㅋㅋㅋ

하렘천국 2011-05-21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런데 일반적인 사고를 가진 여자들이라면 아무리 상대가 재벌이라도 미치지 않고서야 과연 스스로 두세번째 부인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ㅋㅋ 있으니까 저게 현실이 되는거겠지만 두쪽 다 골빈거 같음.
 

 

 

 

내 후배가 기독교에 귀의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착하며, 평소에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그가 왜 갑자기 하느님을 믿기로 한걸까? 그는 "제가 미처 모르고 저지르는 죄를 깨닫게 해줄 수도 있잖아요"라고 말하지만, 글쎄다. 그가 죄 축에도 못끼는 쥐꼬리만한 죄를 고해하는 동안, 남들은 굵직굵직한 범죄를 아무 거리낌 없이 저지른다. 별로 죄가 없는 그가 자기 가슴을 치면서 "내탓이요"를 읊조리는 동안, 밖에서는 잘못을 저지른 이들이 뻔뻔스럽게 "니탓이야!"를 외친다.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착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악한 사람은 악한대로, 착한 사람은 착한대로. 


 교회는 언제나 내탓을 강조한다. "내탓이요, 내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우리가 IMF를 맞은 것도, 조국이 분단된 것도 모두 내탓이다. 그건 또한 하느님의 뜻이기도  하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내려주는 시련. 그 말이 맞다면 하느님은 새디스트실까? 그렇지 않다면 수백만이 죽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만드실 리가 없지 않는가? 광주에서 수천명을 학살한 전두환의 등장도 기독교인들에게는 "하느님의 뜻"이다. 그래서였을까. 5공 시절 많은 교인들이 전두환을 위해서 "조찬기도회"를 열었던 이유가. 
 
어머님이 아는 분 중 교회에 전재산을 바치고 천막 비슷한 곳에서 사는 사람이 있었다. 태풍이 불던 어느날, 천막을 고정하려고 놓아둔 돌이 태풍에 날라가 아들의 가슴에 명중했다. 어린 아들은 결국 죽었지만, 그분은 "내가 죄가 많아서 아들이 죽었다"고, 그리고 "모든 게 하느님의 뜻"이라면서 더 열심히 하느님을 섬기겠단다. 물론 그분이 나같은 사람은 따를 수 없는 깊은 믿음을 지닌 건 틀림없지만, 한가지는 확실히 하자. 아들이 죽은 건 그분이 죄가 많아서가 아니라 태풍 때문에 돌이 날라가서고, 더 근본적인 원인은 집을 팔아서 교회에 갖다바친 때문이다. 죄가 많아서 아들이 죽는다면, 전두환의 아들이 경영하는 시공사가 그렇게 잘나갈 수 있을까? 수많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섬긴 욥의 얘기는 분명 아름답지만, 그건 "착한 사람은 살아생전 고생만 한다"는 기존의 생각을 더더욱 굳히는 역할을 할 뿐이다.  

 
성경에선 이렇게 말한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더 어렵다"고. 재산이 있으면 다 교회에 바치고, 가난하게 살라는 말이다. 그래서 교회는 점점 부유해지고, 돈없는 신자는 교회에서 무시를 당한다. 신도수 세계 1위인 순복음 교회는 넘치는 돈을 주체못해 스포츠 투데이를 만들었고, 송파에 있는 모 교회-엠마뉴엘 교회던가?- 는 은빛 찬란한 궁전을 지어놓고는 교회라고 우긴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건대 하느님이 가난한 사람의 편인 건 확실하지만, 아무래도 하느님은 너무 바쁘신 것같다. 그래, 아마 그럴 것이다. 관장하시는 별이 너무 많아 우리 지구를 돌볼 여력이 없으시겠지.


노아의 방주를 마지막으로 하느님의 관심은 다른 별에 가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하느님의 나라를 참칭하는 미국이 악행을 저지르는 걸 그냥 놔둘 리가 없고, 나쁜 짓을  할수록 더 잘사는 걸 묵인하시지는 않으리라.  모든 걸 내탓, 그리고 하느님의 뜻으로 돌리는 한, 사회의 진보는 없다. 내탓만을 주장하는 속세의 종교들은 이제껏 민중의 아픔은 외면한 채 체제 유지에 기여해 왔다. 하느님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신다면 얘기가 다르지만, 유감스럽게도 하느님은 너무 바쁘시다. 그러니 지금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 중 상당수가 하느님의 원래 의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 맹목적으로 "주님의 뜻"만을 외치기보다는 이 땅에 정의를 세우는 데 기여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러다 번개라도 맞는 건 아닌지, 약간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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