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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고양이에 관해 썼던 글 세편을 연속으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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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양이를 부탁해요

두달쯤 전, 벤지가 안먹고 남긴 음식을  쓰레기 비닐을 뜯어가면서 게걸스럽게 먹는 고양이를 봤다. 그후부터 난 아침마다 음식을 만들어 고양이들에게 줬다.
언제부터인가 고양이들의 숫자가 한마리씩 늘어나, 지금은 대충 여섯 마리 정도가 아침마다 내가 주는 아침을 기다린다. 내가 음식접시를 내려놓자마자 여기 저기서 고양이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그 중에는 포우의 <검은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괴기스런 녀석도 있고, 페르시아 카펫 위에 누워 골골거리고 있어야 마땅할 외모를 지닌 고양이도 있다.


사람에 위아래가 없듯이 동물도 높고 낮음이 없는지라, 그렇게 이쁜 애들이 찌꺼기에 가까운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건 분명 마음이 아픈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내 능력이 벤지 하나 건사할 정도밖에 안되는 것을.

처음 나만 보면 도망을 치던 고양이들은 나의 선의를 이해했는지 이젠 내 모습을 봐도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 내가 쓰다듬는 걸 허용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어찌되었건 나랑 맺어진 끈끈한 유대감은 그들이 원래부터 도둑고양이로 태어난 게 아닌, 그저 먹고살기 힘든 환경 때문에 쓰레기통을 뒤지는 신세로 전락했음을 말해준다. 출근을 안해서 늦잠을 잘 때면 집 앞에서 야옹 하면서 계속 울어대 자는 날 깨웠고, 시간이 없어 음식을 못챙긴 날은 서운한 표정으로 울어대 날 미안하게 만들었다. 처음엔 벤지만 보면 몸을 둥글게 휘곤 했지만, 벤지가 목소리만 크지 별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지 이젠 별로 신경을 안쓴다. 한마디로 말해 고양이와 나 서로가 서로를 길들이면서 신뢰를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올 8월엔 비가 징그럽게 많이 왔다. 어제는 특히나 장대같은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먹이를 들고 고양이들을 찾았건만 눈에 띄질 않는다. 도대체 어디서 이 비를 피하고 있을까 안스럽기만 했다. 언젠가는 먹겠지 하는 맘으로 현관 앞에 음식접시를 내려놓고, 계속 내리는 빗줄기를 원망스러운 맘으로 째려보며 출근을 했다. 그날 마침 직장에 있는 청소 아주머니 하나가 팔에 긁힌 상처가 있기에 왜 다치셨냐고 물어봤다.
"광에 고양이가 한 마리 들어왔기에 빗자루로 쫓다가 할퀴었어요"
"아유, 욕보셨네요"라고 대답을 하긴 했지만, 고양이를 위해서 한평의 공간도 내주지 않는 그 야박함이 약간은 원망스러웠다. 고양이도 그 아주머니의 광에 숨어드는 게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장대같은 빗줄기를 피하려고 어쩔 수 없이 그곳을 찾았겠지. 언제부터인가 우리 도시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해버린 고양이지만, 그들에게 잠시 비를 그을 지붕을 제공해 줄 여유를 가져 달라는 게 너무 무리한 요구일까. 고양이를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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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뒤부터 일년쯤 뒤에 쓴 글입니다.

제목: 고양아, 안녕

어려서부터 전 고양이를 좋아했습니다. 제 손등을 수도 없이 할퀴었지만, 등을 활처럼 구부린 모습, 소리없이 걷는 동작하며, 목을 만져주면 골골거리는 것 등 이뻐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물론 충직한 개를 훨씬 더 좋아했지만요. 어릴 적엔 동물을 좋아하다가 커서는 싫어하는 사람도 꽤 봤지만, 전 지금도 털달린 동물을 좋아합니다.

언젠가 서울시내에 고양이들이 들끓기 시작했지요. 그들이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걸 본 어느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렇게 이쁜 애들이 왜 쓰레기를 뒤적이며 살아야 할까"
그래서..... 전 고양이들에게 아침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고양이들은 식사 때에 맞춰 저희집 앞으로 모였죠. 절 보면 야옹야옹거리는 모습이 참으로 귀여웠습니다.

그러길 거의 일년이 다 되어 가던 지난주, 전 한마디 예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식사를 끊었습니다. 우리집 앞에 진을 치는 고양이 숫자가 너무 많아지고-새끼들까지 다 데려오더라구요-저희집 앞이 지저분해지는 것도 그렇고, 동네 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해 더이상 견딜 수가 없더군요. 오늘이 4일째, 고양이들은 매우 아쉬워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벤지 오줌을 뉘러 밖에 나갔더니 절 보고 따라다니면서 "야옹"거립니다. 그들의 울음소리가 "밥줘"로 들려 너무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도둑고양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듯, 도둑고양이로 태어나는 고양이도 없습니다. 그들 역시 적당한 먹이와 숙소만 제공된다면, 얼마든지 애완용 고양이가 될 수 있지요. 절 보면 드러누워 장난을 치려하는 녀석들을 보면서 전 제 생각이 맞다고 확신하곤 했습니다.

아무것도 안준 채 냉정하게 들어와버린 지금, 깨끗해진 집앞과는 달리 제 맘은 편치 않습니다. 절 보던 고양이들의 슬픈 눈이 생각나서요. 혹자는 이렇게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지금 사람도 굶는 와중에 고양이가 굶는 게 뭐 대수냐"고. 그런 말도 일리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노숙자들에게 아침 한번 대접해 봤냐고요. 자기는 아무 것도 안하면서, 남이 하는 선행-물론 제가 하는 게 선행인지 아닌지 헷갈리지만-에 딴지를 거는 건 나쁜 일이 아닐까요? 노숙자를 보면 마음이 아프지만, 전 제 눈앞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는 노숙 고양이들이 더 안스럽습니다. 그래도 대접받고 살았던 시기가 있을 노숙자 아저씨들에 비해, 출생 때부터 도둑고양이로 찍혀 박해만 받았던, 그래서 사람에게 쉽사리 정을 못붙이는 고양이들이 제 맘을 더 아프게 합니다.

며칠만 더 버티면 고양이들은 더이상 우리집 앞에 진을 치지 않을테고, 새로운 곳을 찾아가겠지요. 그들에게 아침 식사를 하는 몇개월간, 알게 모르게 그들과 정이 들어버려, 이렇게나 마음이 아픈가 봅니다. 안만나면 쉽게 잊혀지는 사람과 달리, 동물과 쌓은 정은 이렇듯 질긴 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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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로부터 한달 후에 쓴 글입니다

밥을 안준 후에도 고양이들은 쉽사리 우리집 앞을 떠나지 않았다. 약삭빠른 놈들은 이미 자취를 감췄지만, 그중 몇마리는 아침에 벤지와 함께 산책을 나갈 때마다 내게 "야옹 야옹"  울면서 시위를 했다. 그들은 내게 "왜 우리랑 한마디 상의도 없이 그런 일을 벌이느냐"고 말하는 듯했다. 미안한 표정으로 두손을 내저어도, 그들은 내 맘을 몰라줬다.

지난 일주일간, 계속 비가 왔다. 자신들을 환영해 주는 곳이 없을텐데, 고양이들은 어디서 비를 피할까. 비가 와도 고양이들은 아침마다 우리집에 왔다. 내가 현관문만 열면 우리차 밑에서 야옹거리며 한두마리씩 기어나왔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안스러운지 가슴이 찢어졌다.

지난 토요일, 날 보며 뛰어나온 고양이 한마리가 다리를 전다. 방심하다가 차바퀴에 다리를 다쳤는지, 아니면 심성 고약한 사람에게 두들겨 맞아 다쳤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일까. 녀석의 얼굴이 너무 슬퍼 보인다. '다른 때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밥 좀 줘요!'라고 말하는 듯.

그러던 나도 서서히 고양이들의 존재에 무심해졌다. 아픈 현실에 더이상 아파하지 않게 될 때, 난 인간이 무서운 존재라는 걸 느낀다. 그 고양이들은 죽을 때 날 원망할까? 아니면 몇달이라도 아침밥을 챙겨준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할까. 사람과는 달리, 대개의 동물은 은혜를 잊지 않는 법이니, 후자가 아닐까.

가끔씩 생각을 한다. 서로 싸워가면서 밥을 다 먹은 고양이들이 입맛을 다시며 어디론가 사라지는 모습을. 장마가 끝났다는데, 오늘 밤에도 비가 장대같이 온다. 지금 이순간, 그때 그 고양이들은 어디서 비를 긋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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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뒷얘기를 조금 하자면, 다리를 다친 고양이는 아직도 저희집 앞에서 얼쩡거립니다. 다른 녀석은 다 외면해도 그녀석한테만은 그럴 수 없더라구요. 다른 녀석이 없을 때를 골라 몰래 그녀석에게 먹이를 줍니다. 가끔은 기회를 노리고 있던 시커먼 고양이가 맛있는 것만 채서 달아나기도 하지요. 그래도 예전처럼 고양이가 들끓지는 않습니다. 그 덕분에 동네 사람들의 민원도 이젠 없답니다. 며칠 그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 죽은 건 아닌가 하며 마음아파했는데, 오늘 아침 그 녀석이 다시금 야옹거리며 앉아 있더군요.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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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의꿈 2004-01-17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참 착하시네요- 고양이가 준 밥을 먹었다는게 신기하지만-(나도 한번 예전에 시도한 적은 있었는데 실패했거든요).. 자신이 무감각해져 간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거에요- 누가 그랬듯이 진짜 바보는 자기가 바보인줄 모른다고 하잖아요-..
다리저는 고양이가 불쌍하네요-..(도둑고양이로 태어난 고양이들은 다들 불쌍하긴 하죠- 어떤 고양이들은 혈통 좋은 고양이 밑에서 태어나 한번 팔리는데 수백만원씩 하는데.. 인간과 다를바 없죠;)

마태우스 2004-01-17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맛있는 걸 주면 잘 먹는답니다. 요리 실력의 차이가 아닐까 싶네요^^ 하여간 다리다친 고양이, 참 안됐습니다. 적절한 때 치료만 받았다면 그렇게 안되었을텐데, 마음이 어찌나 아픈지요.
 

장소: 홍제역 근처 모 돼지갈비집

소주 1병에서 몇잔을 더 마신 것 같다. 이 정도가 내겐 적당한 수준이라, 집에 갈 때 너무 멀쩡해서, 공부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공부를 할 마음은 전혀 없다).

같이 술을 마신 사람은 전직 PD, 내가 이 사람을 만난 것은 내가 방송국에서 얼쩡거리던 96년이었다. 그때부터 난 그와 이따금씩 만나 왔고, 나이 차이도 한살밖에 안나지만, 우린 만나면 아직도 존대말을 한다.

그는 전직 피디다. 그가 입버릇처럼 "확 그만둬버려!"라고 했을 때, 난 그 말이 여느 직장인들의 말처럼 그냥 한번 해보는, 지극히 공허한 말로만 생각했다. 세상에, 피디처럼 좋은 직업이 또 어디 있다고. 하지만 그는 2년 전 정말로 그만둠으로써 날 놀라게 했다. 이유는 '한의대를 가겠다!'는 것. 진짜로 그는 수능준비에 매달렸고, 작년 말 시험을 치뤘다. 정확한 점수는 말을 안했지만, 한의대 갈 점수는 안되는 모양이다. 복수정답 파동이 난 17번 문제 덕분에 2점이 올랐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며 묵묵히 재수를 준비 중이다.

그 나이에 한의대를 가서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하는 마음도 있지만, 하던 일을 과감히 때려치고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만 해도, 실력에 비해 과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부담이 되어 죽겠지만, 달리 할 일이 없어 안면 깔고 버틸 생각인데 말이다. 그가 피디로서 보여줬던 뛰어난 역량을 기억하는지라, 가끔은 그가 다시금 방송계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램도 가지고 있다. 그의 결심이 워낙 굳건해보이긴 해도 말이다.

그나저나 요즘 너무 신나게 카드를 긁어댄 느낌이다. 당분간은 납짝 엎드려 살아야겠다. 다음주는 설 연휴. 어머니는 생애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셔, 나 혼자 집을 봐야한다. 큰집을 가는 거 말고는 달리 갈곳도 없으니, 조신하게 집이나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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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장소에서 코를 후비는 사람을 보면 참으로 용감하다는 생각이 든다. 난 되도록 그런 사람을 멀리하려고 하고, 혹시 마주치더라도 친밀한 접촉은 피하려 애쓴다. 특히 그런 사람과 식사를 할 때는 되도록 떨어져 앉는 것이 수다.

하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집에서는 곧잘 코를 후빈다. 건조한 겨울에는 더더욱 그렇다. 코를 건져 낼 때의 쾌감은 마약과 같은 것인지라, 쉽게 포기할 수 없다. 문제는 파낸 물질의 처리다. 흔히들 손으로 비벼서 털지만, 난 그런 방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게 바람에 날려 다시 나에게 돌아올지 모르지 않는가? 그래서 난 주로 휴지에 싸서 버리지만, 휴지란 게 찾아도 눈에 안띌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난 벽을 따라 여기 저기에 버려 놓는다.

난 벤지를 사랑한다. 종족은 달라도 벤지는 사실 내 아들이며, 난 벤지를 위해서라면 달리는 차 앞으로도 뛰어들 각오가 되어 있다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난 신발을 던져 차를 세웠지, 몸을 날리진 못했다). 엊그제, 일주일에 한번씩 오는 파출부 아주머니가 어머니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다.
"돌쇠(내 가명)가 코딱지를 방안에다 버려놓아서 성가셔요"
듣는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렇게 조그만 것을 들키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내 입에서는 순간적으로 거짓말이 나왔다.
"그거 코딱지 아냐! 벤지 눈꼽이야"
날 언제나 신뢰하는 어머니는 아주머니한테 이렇게 반박했다. "거봐요. 우리 아들이 그럴 사람이 아니지"
하긴, 벤지 눈꼽을 떼어준 적도 가끔 있고, 그것 역시 코딱지와 비슷한 경로로 버렸던 터다.
하지만 아주머니라고 코를 안파봤을 것이며, 코딱지와 눈꼽을 구별하지 못할 리는 없다. 눈꼽은 까맣고, 코딱지는 나름대로의 특유한 색깔이 있는 거 아닌가. 순간 아주머니는 날 째려봤고, 난 잽싸게 고개를 숙였다. 어젯밤, 난 밤새 부끄러워했다. 그렇게 벤지를 이뻐한다고 해놓고, 당장의 체면 때문에 그런 변명을 하다니. 거짓말이 문제가 아니라, 그 책임을 벤지에게 뒤짚어 씌웠다는 게 문제였다. 벤지에게 미안해 이마에 뽀뽀를 해 줬지만, 자다가 깬 벤지 녀석은 갑자기 왜 그러냐는 듯 졸린 눈을 떴다. 벤지야, 미,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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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2011-05-21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귀엽다ㅋㅋㅋㅋ
 

 

 

 

늘 12시를 넘겨 일어나던 여친이 간만에 일찍 일어났다. 남는 시간을 주체할 길이 없던 그녀는 갑자기 책을 읽는 기특함을 발휘해 날 놀라게 했는데, 그 책은 바로 <위대한 개츠비>다. 자자한 명성과는 어울리지 않게 술술 읽히는지라 여친은 반나절도 안되어 그 책을 다 읽고 말았단다. 그 책을 읽은 여친의 반응은 "재미 하나도 없다"는 것. <느낌표>란 코너에서 다들 재미있다고 칭찬을 해 진짜인 줄 알았다나. 난 2년 전에 이 책을 읽었는데, 그때 맨 마지막에 이렇게 써놓았던 기억이 난다.

[개츠비가 왜 위대한지 모르겠는 것처럼, 난 이 소설 역시 평단에서 떠드는 것처럼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열개가 넘는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고, 사람들이 써놓은 서평도 칭찬이 더 많다.

 -나는 그래서 스콧 피츠제럴드를 아주 존경하게 되었다. 어떻게 이리도 소설을 예쁘게 쓸 수가 있을까?

-소설속의 Nick 처럼 저도 Gatsby의 팬이 되었습니다
-이상을 찾아 살아가는 인간의 덧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여겨진다.

정말 그분들은 이 책에 그렇게 매료된 걸까? 내가 모른다고 남들도 몰라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지만, 이런 의혹이 든다. 그분들의 호평은 기존 평단의 권위에 복종한 결과는 아닐까? 어떤 작품이 왜 호평을 받는지 이해가 안간다면 그건 자신이 무식해서지, 평가 자체가 잘못되었을 리는 없다는 생각 말이다. 난 이 책에서 재미는 물론 의미마저 느낄 수 없었고, 그래서 읽고나서 며칠도 안되어 이 책에 관한 것을 몽땅 잃어버렸는데.

모르겠다. 이런 푸념이 이 책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신 분들에 대한 시기심인지도. 하기사, 내가 읽었던 명작들 중 지금까지 내게 깊은 울림을 주는 책이 얼마나 되던가. 한두권이면 모르지만, 읽는 족족 다 그렇다면 문제는 내게 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명작과 그렇지 않은 책을 구별하는 심미안이 있었으면 하고 바란 적이 수없이 많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무리 책을 읽어도 내 수준은 계속 이모양인 것을. 오늘의 의문. 도대체 '수준'은 어떻게 향상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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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의꿈 2004-01-16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정말 모르겠죠- 특히 내가 재미있게 읽은 것을 다른 사람이 별로 재미없게 읽었다고 하면(그것도 유식한 말 써가면서)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사실은 내가 아직도 이런 수준밖에 안되는 것 같아 우울하기도 합니다.

만월의꿈 2004-01-16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문의 답! 저도 잘 모르지만, 일단 제 경험상 말하는 수준은 말이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향상이 되곤 합니다. 어렸을 때 아무것도 모르고 읽던 논리 시리즈(반갑다!, 고맙다! 등)는 앞에 나오는 이야기들..(뒤에 나오는 논리를 이해시키기 위한 짤막한 이야기)만이 재미있다고 여겨 그냥 넘기다, 1~2년이 지나고 난 뒤에는 조금씩 읽어나가기 시작하면서 뭔가 알것같은 것을 느끼죠(몽글몽글한 느낌?) 그리고 또 1~2년이 지난 뒤에 읽으면 무슨 이야기인지 확실히 이해가 가고, 이제와서 지금 내가 그 책을 읽는다면, 아! 이런거구나!.. 대략 예전에는 몰랐었지만 지금은 확실히 알겠다는 느낌이 옵니다만-(설명이 어려운가?) 저는 대충 어렸을 때 읽었었던 책을 요즘 들어서 다시한번 읽으면서 새로운 느낌이 들때, 아.. 내 머리가 조금 성장했구나.. 라는 것을 느낍니다(-ㅁ-;).. 설명이 이상해서 죄송합니다.;

마태우스 2004-01-16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네요. 님의 말씀을 들으니 '뭔가 알것같은' 것을 느끼게 되네요. 님께서 중요한 말씀을 하신 게 있는데, 옛날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란 놈은 권수에만 집착을 하는지라 한번 읽은 책은 절대 안읽는 주의, 도약을 위해서는 이걸 고쳐야 하겠군요.^^ 말씀 감사드려요.

비로그인 2004-01-16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마태우스님. (괜히 친한 척... )
저는 위대한 개츠비 꽤 괜찮게 기억하고 있거든요.
몇년이나 지나 가물가물하지만, 특유의 스타일이 꽤 즐거웠던 글이라 생각해요. 요즘의 감성으로 서사 부분이 좀 밍숭맹숭하긴 하죠. ^^;;
인상적인 장면이 몇 가지 있는데요.
우연히 개츠비씨의 서가에 찾아든 화자와 거기에서 마주친 남자가 집주인에 대해 대화하던 장면. 결혼식날 몰래 병나발 불고 뻗어버린 데이지를 어머니가 직접 나서 욕조 속에 밀어넣던 장면.
그 장면들 떠올리면 지금도 머리가 싸해져요.
작가 특유의 냉소적인 문체랑 딱 맞아 떨어지는 이미지였다 해야할까요.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잘 모르겠는데요. 책장 덮은 뒤 며칠만 지나도 캐릭터들이고 내용이고 하나도 기억 안 나는 소설들도 많잖아요. 몇년 동안 인상적인 장면들이 주기적으로 떠오른다는 것만으로 '위대한 개츠비'는 위대하다(?) 생각해요.

영이 2004-01-17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위대한 개츠비>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해야 하나요. 상상력과 감수성이 풍부할 수 밖에 없었던 십대 때 읽은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여운이 가슴에 늘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지금껏 잊혀지지 않고 남아 있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요. 오래 된 기억이라, 책의 문장을 똑같이 옮길 수는 없고, 질감이 떨어지는 제 언어로 되살리자면.... 개츠비가 늦은 밤, 자신의 집 근처에서, 강 저편에 살고 있는 데이지 집의 반짝거리는 '초록빛 불빛'을 늘 바라보곤 했다는 장면이죠. 아메리칸 드림을 쫒는, 미국 이민사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구요. 몇년 전, 정*종 교수님의 번역본으로 다시 읽은 적이 있는데, 문장이 매끄럽지 못하여 어색한데다 너무나 번역체스러워 다소 실망스럽더군요. 아마도 이 책에 대한 반감엔 번역의 세련되지 못함이 다소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출판사 책은 어땠는지 모르겠어요. 영어로 된 원작으로 읽는다면 조금은 평이 달라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수정)

마태우스 2004-01-17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렇군요. 위대하게 읽은 분들도 계시다니. 역시 알라딘은 내공이 높은 고수 분들만 모이는 곳... 저두요, 지금은 아니지만요, <위대한 개츠비>가 가슴 뭉클해질 날이 오겠지요? 그날을 위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글구 영이님, 원서를 읽으라니요. 그 무슨 말씀을...
 

 

 

 

오늘은 xx고시 합격자 발표날이었다. 오늘을 기다리면서 난 사실 초조했다. 내가 지도하는 4명의 재수생 중 과연 몇명이나 합격을 했을까? 4명 다 붙는다면 학장님한테 큰소리를 칠 수 있을테고, 3명이면 그래도 체면치례는 했다고 할 수 있겠지. 두명은 괜찮겠지만 나머지 둘이 문젠데.... 갖가지 상념이 머리속에서 교차해, 요 며칠 그다지 편한 잠을 자지 못했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고장나 뛰어가는 꿈을 꾸질 않나-이런 꿈을 꾸면 진짜로 다리가 아프고 피곤하다-기억이 안나는 무시무시한 악몽에 시달리지 않나...

어젯밤 12시, 잠깐 잠이 들었는데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 붙었어요! xx두요"
자다가 들은 낭보 때문이기도 했지만, 난 그가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내게 전화해준 것이 기뻤다. 일년간 성심성의껏 지도(?)를 한 보람이랄까. 내가 공부를 가르쳐 줄 수는 없다해도, 난 시험 실패로 실의에 빠져있던 그들에게 자신감을 북돋아 주기 위해 노력했고, 이따금씩 불러내 맛있는 음식과 술을 사줬다. 후자에 대해서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내 변은 이거였다. "시험 합격 이후의 아름다운 삶을 보여주고자 했다"

오늘 출근하는 도중 또 한명으로부터 합격했다는 전화가 왔고, 학장실에 가서 확인한 결과 다른 한명마저 합격해 날 기쁘게 해줬다. 4명 지도에 4명 합격, 의욕적으로 만들어진 '100% 위원회'는 제 기능을 다한 것이다. 시험 후에는 걱정을 좀 했지만, 난 그들을 믿었고, 그들은 내 신뢰에 보답해 줬다. 애들이 너무 고마워, 어떻게 애들을 즐겁게 해줄까 벌써부터 고민스럽다. 그들과 돈독한 유대관계를 맺음으로써 인생에서 믿고 의지할 친구가 생긴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학장님은 내게 "축하한다"고 했다. 사실 그 축하는 학생들에게 돌아가야 하지만, 나도 조금은 노력했으니 그 축하가 전혀 턱없는 것은 아니리라. 몇명이나 될지 모르겠지만 올해 역시 탈락자가 있을 거구, 난 그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어야 한다. 그들과도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내년 이맘때도 지금처럼 밝게 웃을 수 있을까. 그랬으면...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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쎈연필 2004-01-16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마태우스 2004-01-16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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