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 59분 현재 전 집에 혼자 있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이 시각에 어머니가 계셨을 텐데, 지금은 아닙니다. 아, 8시가 되었네요. 어머님과 할머니를 태운 하와이행 비행기가 이제 막 이륙했겠지요.

그래요, 어머니는 여행을 가셨습니다. 하와이로. 어머니 주위 분들 중에는 하와이에 몇번을 갔다오신 분도 있을 테지만, 어머니는 미국에 처음 가십니다. 어머님은 돈이 없어서 못갔다고 하시지만, 사실은 그간 아버님의 간병을 하시느라, 그 전에는 가부장이신 아버님이 안보내줘서 갈 기회가 없으셨지요. 어제 밤, 여행을 가신다고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진작 보내드릴 걸 그랬다 싶더군요.

아, 오해하실지 모르니 말씀을 드리죠. 이번 여행도 사실 제가 보내드리는 건 아닙니다. 1인당 120만원, 3박5일간 하와이를 가는데 제가 보탠 비용은 겨우 70만원이니, 어머니 돈으로 가시는 거랍니다. 사촌형은 큰어머니를 유럽 일주도 보내드리던데, 전 맨날 술먹고 그러느라 어머니 여행 보내드릴 돈도 모으지 못했습니다. 크으으... 반성, 또 반성. 생활비를 조금 내놓긴 하지만...전부다 술값으로...크으으...다시 반성.

할머니 연세는 올해로 88세, 정말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전 "하와이 힘들지 않겠어요? 일본이나 가시면 어떨까요" 그랬더니 하와이에 가겠다고 강한 의지를 보이시더군요. 7시간이 넘게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잘 견디실지... 무사히 다녀오시길 빕니다.

아무튼 전 혼자가 되었습니다. 벤지가 옆에 있으니 엄밀히 말해서 혼자는 아니죠. 그런데 이 녀석이 몸이 안좋은지 계속 잠만 자려고 하는군요. 혼자 있는 동안 벤지와 많은 시간을 같이 있어주려고 합니다. 술은 내일 딱 하루만 먹구요. 이거 보고는 "술먹자!"고 전화하면 어쩌지? 참, 설날 당일에는 큰집에 갈 예정입니다. 그집에 더덕주랑 메실주 담궈놓은 게 있던데-추석 때 조금 마셔봤는데 죽이더군요-그날은 그걸 원없이 마실 생각입니다. 그렇게 두번만 술을 마셔야죠.
그리고는 책을 열심히 읽겠습니다. 인터넷이라는 게 참 시간 잡아먹는 괴물인 게-강준만의 표현이었음-한번 켰다 하면 글을 꼭 안쓰더라도 여기저기 둘러보면 한시간 정도는 금방 가더군요. 그래서... 하루에 한번 이상 컴퓨터를 켜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리고는 아까도 말했듯이 열심히 책을...하하.

공항에 모셔다 드리는데 어머니가 이러시더군요. "아는 친구한테 하와이 간다고 말 안했는데, 그 친구도 오늘 미국에 있는 딸한테 간데. 나보다 30분 늦은 비행기로" 그래서 제가 이랬죠. "엄마, 세상은 좁은 거야. 분명히 그 친구분 만난다" 그랬는데...짐맡기는 곳 앞에 엄마랑 앉아 있는데, 앞 의자에 부부와 아이 하나가 눈에 띕니다. 아이는 심심한 듯 하품을 합니다. 제가 그랬죠. "아이를 혼자 심심하게 놔두고 지네끼리만 얘기를 하네. 혹시 계모 아냐??" 그때, 그 남자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x아!" 전 기절할 뻔했습니다. 그는...제 고교 동창이었습니다. 학생 때 공부도 잘했고 줄곧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그...그래서 지금은 김 앤 장이라는 유수의 법률회사에서 2억원도 못되는 연봉을 받으면서 일하고 있다지요 아마. 그를 만날 때마다 주눅이 들지만... 그래도 오늘 본 부인의 미모가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삼아야죠 뭐. 어머니는 제게 이러십니다. "쟤는 저만한 얘가 있는데...휴우..." 하여간 세상은 좁더군요. 왜 하필 거기서 친구를 만나는지. 그래도 제가 계모 어쩌고 한 거 못들었기를 바랍니다.

텅 빈 집에 벤지와 둘이 있으니, 기분이 묘합니다. 제 나이에 다들 독립도 하고 그러는데 저란 놈은 의존성이 강해가지고 언제까지 어머니를 귀찮게 할 건지 원... 집 밖은 지금 꽤 시끄럽습니다. 무슨 영화를 찍는다고 트럭도 오고, 시다바리들도 왕창 왔더군요. 차를 세우는데 누군가 그래요. 김민종이 온다나 뭐라나. 갑자기 귀가 뜨였습니다. 그인간 만나면 할말 있는데...<낭만자객> 왜찍었냐고, 생각이 있는 놈이냐고 물어보려구요. 지금 뭔가를 또 찍는 걸 보니, 몇달 후면 또 이상한 영화가 나오려나 봐요. 걔도 이제 정신 차리고 바르게 살아야 할텐데요... 컴퓨터 끄고 책보고 운동하다 자려고 합니다. 오늘 밤은 그렇게 지나가려나 봅니다. 휘이익-(바람 소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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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교에 다니던 80년대만 해도 '섹시하다'라는 말은 칭찬이 아니었다. '섹시' 혹은 '야하게 생겼다'는 말은 그당시는 '헤프다'는 뜻으로 들렸다. 한 여자애가 자기더러 "섹시하게 생겼다"는 말을 한 남자에게 화를 내던 기억이 난다.

언제부터인가 시대가 변했다. '섹시'는 여자에게 최고의 찬사로 자리잡았다. 공중파 방송에서도 '섹시'라는 말은 하루에도 수십번 나온다. 연예인을 소개할 때 "섹시의 대명사" 어쩌고 하는 경우도 많이 본다.

언젠가 군인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가 누구냐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1등은 그당시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눈동자'로 막 뜨기 시작하던 엄정화였다. 군인들은 섹시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점에서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섹시의 특징 중 하나가 촛점없는 눈동자인데, 그런 면에서 엄정화는 딱이다.

<오리지널 씬>을 보기 전까지 누군가 내게 "니가 생각하는 가장 섹시한 사람은 누구냐?"고 묻는다면 아마 난 "글쎄?" 하면서 "이소라?" "엄정화?" 이런 대답을 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키가 그다지 크지 않고 귀여운 스타일인지라 '섹시'에 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보지 못한 까닭이다. 하지만 지금 내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1초도 안되어서 대답을 할꺼다. "안젤리나 졸리요!"라고 말이다. 그녀가 주연한 '오리지널 신'에서, 졸리는 섹시가 뭔지를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야한 장면이 그리 많지 않음에도 아주 야한 영화를 본 것같은 느낌이 드는 건 바로 그녀 때문이었다.

내가 손가락을 입에 넣으면 주위에서 "더러워!"라고 말할 꺼다. 하지만 안젤리나 졸리는 손가락을 입에 넣어도 야하고, 고개를 45도 각도로 돌려도 야하고, 무슨 말을 해도 야하다. 별 줄거리는 없지만 화면에 있는 그녀의 모습만 바라봐도 별로 돈이 아깝지 않은 영화가 아닐까. 화면을 정지시켜놓고 관찰한 결과 그녀의 섹시함은 엄정화와는 비교가 안되는 촛점없는 눈동자와 두툼한 입술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다.

물론 입술이 두껍다고 아무나 야한 건 아니다. 우리 때 한 남자애는 입술이 두꺼워서 별명이 '썰면 두접시'였던가 그랬다. 또한 촛점이 없다고 누구나 야할 수는 없다. 나같은 사람이 그랬다간 "멍청해 보인다"는 소리만 들을 뿐이다.

좌우지간 이쁘다는 건 좋은 것 같다. 이뻐지려는 건 자기만족 때문도 있겠지만, 입신양명에도 도움이 된다. '이쁘면 성공하는 데 있어 유리하다'라는 말에 여성의 80% 이상이 동의했다나. 이뻐서 손해를 봤다는 사람이 별로 없는 걸 보면 우리 사회가 너무 미모만을 절대적 잣대로 고집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여튼, 이름은 '졸리'지만 잠이 확 깨는 '졸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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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4-01-20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쁘면 하다못해 음식점에 들어가도 써비스가 달라지지요. 저는 예쁜 후배와 함께 다닐 때 덕 많이 봤습니다...^^ 같이 밥 먹으면 서비스가 좋아지더군요. 외모지상주의, 만세~라도 불러야 하는 걸까요. 정말 예뻐서 손해보는 경우는 스토커가 따라붙을 때가 아닐까요.

1111 2011-05-21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가 보기에 졸리는 그리 예쁜 얼굴이 아닌데 왠지 모를 후광이 있는거 같아요 전 졸리보다 졸리 딸 샤일로를 더 좋아합니다.ㅋ 지금은 케이티홈즈의 딸 수리가 더 유명하지만
 

플라시보님의 글을 봤을 때, 한편으로는 공감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분노의 대상이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쓴이의 의도는 '성적 유혹을 미끼로 승진한 여성들'이지만, 다르게 보면 '권력을 남용해 여성들을 성적으로 착취한 파렴치한 남성'일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이쁜 여자가 곁에 있으면 한번 어찌어찌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는 있고,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잘 수도 있다. 정도가 심해져 '가끔씩 만나 자는 사이'가 되는 것도 이따금씩 있는 일이다.

그런데, 거기서 뭔가 댓가를 줘야 한다는 생각에 능력도 안되는 이를 승진시키고, 리포터로 고용하고, 연봉을 더 준다면, 그 남성은 전혀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는 인간이며,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될 사람이다. 이쁜 여성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남성을 이용해 출세하고자 하는 여자가 작은 악이라면, 그 남성이야말로 '악의 축'이다. 그런데 왜 글쓴이의 분노는 악의 축이 아닌, 작은 악에게로 향하는 것일까?

아마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권력을 가진 남성은 저 멀리 있고, 몸을 이용해 출세한 여성은 자기 주위에서 얼쩡거리니까.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세간의 통설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얼마 남지 않은 파이를 놓고 다투는 여성들의 처지에서는 커다란 파이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남성보다 자기보다 조금 큰 파이 부스러기를 소유한 여성을 원망하는 경향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건 약자의 어쩔 수 없는 속성이기도 하고, 어려서부터 지속적으로 받아온 세뇌교육 탓일 수도 있다. 남성과는 어차피 경쟁이 안되는 존재지만, 다른 여자가 나보다 높이 되는 것은 참지 못하도록 길들여진 것이 아닐런지.

얄미워 보이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몸을 미끼로 좋은 자리를 차지한 여성들 역시 남성이 만들어놓은 사회의 희생자에 불과하다. 글쓴이의 분노는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향해야 하며, 일견 얄미워 보이는 그 여자는 적이 아니라 연대해야 할 대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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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4-01-19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예요. 사회적인 구조와 제도지요. 마태우스님의 의견에 적극 동감합니다.
 
 전출처 : 플라시보 > 당신의 뒤는 누가 봐 주고 있나요?

여자로 직장 생활을 하다가 보면 여러가지 애로사항이 많다. (남자도 많겠지만 내가 남자가 아닌 관계로 그냥 생략하기로 한다.) 우선 성희롱의 대상이 될 수 도 있는데 그건 분명 남자가 상사에게 성희롱을 당하는 수치보다는 높다. 거기다 똑같은 남자 사원과 차별대우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이것은 승진과 급여로 연결된다. 싱글즈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 동미(엄정화)가 죽도록 일한 프로젝트를 상사가 가로채고 그녀에게는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날 손님을 맞을 준비나 잘 하라고 한다. 한마디로 일다운 일은 남자가 하고 여자는 그저 그날 접대나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차별들은 차라리 낫다. 이건 적어도 성차별이라며 불끈 할 수라도 있고 수많은 전국의 여성 동지들과 함께 속으로나마 투쟁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가 여자의 적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 적의 뒤에는 대게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면서 그녀의 뒤를 봐주는 남자 상사가 있다.

예전에 우리 회사 부장이 이뻐하던 아줌마 사원이 있었더랬다. (부장이 나이가 워낙 많아 처녀를 찝쩍거리기엔 양심에 난 털이 흔들렸었나보다) 그 아줌마는 입사 첫날부터 부장에게 알랑방구를 뀌기 시작하더니 툭하면 부장과 함께 퇴근하고 부장과 함께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곤 했다. 그들이 갔다가 온 장소는 이미 이 도시에서는 유명한, 불륜들이 들끓는다는 곳에 위치한 밥집과 술집이었다. 사실 그들이 모텔 혹은 호텔로 직행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회식자리에서도 둘이 딱 붙어앉아 어느정도 술이 들어가면 부둥켜 안고 난리 부루스를 추는것으로 보아 심증은 충분히 가는 상황이었다. 결국 그 아줌마는 처음에는 나보다 훨씬 낮은 급여로 들어왔으면서 연봉협상에서 각종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근무평가도 놀랍도록 잘 받아서 나보다 연봉이 훨씬 앞서 버렸다. 그러다 부장이 쫒겨나면서 여자도 함께 사표를 쓰고 나가게 되었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부장이 없는 그녀는 더 이상 이 회사에서 그 연봉을 유지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그녀는 연봉 제계약이 끝나자 마자 나갔다.) 나는 그녀를 볼때 마다 정말 속이 상했었다. 과거 분명 내 아래 직원이었을때도 그녀는 부장빽을 믿고 심심하면 나를 불러서 일을 시켜 먹었다. 것도 그녀가 직접 시키면 '내가 왜?'라고 하겠지만 그녀는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 부장의 입을 통해 시켜야만 내가 찍소리도 못하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나보다 연봉이 올라가자 지가 할 일들을 직접 불러서 노골적으로 시켰다.)

내 친구가 들어간 회사는 대학생들이 들어가고 싶어하는 디자인 회사 3위안에 꼽히는 좋은 회사였다. 그런데 그 친구와 함께 입사한 모든 여직원들이 다 관둬버렸다. 바로 사장과 내연관계에 있는 주임인가 뭔가 하는 여자가 신입이 들어오면 죽도록 괴롭혔기 때문이다. 모두들 회사를 관두면서 사장에게 직접 찾아가서 그 주임이란 여자때문에 못견뎌서 관둔다고 말을 해 줬지만 그녀는 아직까지 굳건하게 회사를 다닌다고 한다. 그 사장에게는 실력있는 여 직원 보다는 침대에서 함께 뒹굴며 정이든 그 여 직원이 더 소중했기 때문이었다.

얼마전 내 친구는 회사에 시험을 보았다. 경력직 사원에 지원한 그 친구는 얼마후 허탈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분명 경력 5년 이상에다 관련학과 전공자여야 하는데 뽑힌 사람은 아직 대학생인데다가 경력이 겨우 6개월 (그 회사 아르바이트 경력임) 인 어떤 예쁘장한 여자아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뭔가 빽이 있어서 면접까지 올라 왔나보다 했었는데 2차에도 3차에도 그 여자애는 꾸준하게 면접을 보러 왔다고 한다. 그래도 설마설마 했었는데 나중에 도는 소문을 들으니 그 회사에서 아르바이트 하면서 높은 간부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고 그 여자애를 그냥 넣어줄까 하다가 그래도 대외적인 쑈는 한번 해야겠기에 공고를 내고 시험을 보게 하고 면접을 봤다는 것이었다. 이미 회사 내에서는 파다하게 소문이 난 상황이고 다들 면접보러 온 사람들이 불쌍하다며 한마디씩 했다는 것이었다. 친구는 말 했었다. 자신의 경력과 실력으로도 넘을 수 없는 담은 높은 간부 앞에서 옷을 벗을 수 있는 여자라고 말이다.

예전에 모 지방 방송국의 주주가 바뀌면서 전혀 관련없는 쪽에 일을 하던 사람이 국장, 부장의 직함을 달고 대거 들어왔다고 한다. 그들은 어느날 남자 직원들을 대동하고 룸쌀롱에를 갔다. 그리고 그 중 유독 잘 놀고 예쁜 여자애에게 어떤 간부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다음날 그 간부가 그 여자애를 데리고 출근 했다고 한다. 부장과 함께 밤을 보내고 나란히 회사에 온 그녀는 그날부로 리포터가 되었다고 한다. 리포터 정도야 아무나 시키면 어떻겠냐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걸 하기 위해 준비를 하는 여자들이나 그 방송국에서 리포터를 하는 여자들은 한순간에 몹시 허탈해 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룸쌀롱에 다니던 여자가 리포터를 하면 안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런 방법으로 들어오는 것은 분명 잘못되었다.

물론 내가 말한것은 극소수에 해당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저런 극소수의 케이스가 나머지 여자들에게는 큰 타격을 준다. 열심히 일하고 실력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죽도록 노력한 여자가 단지 상사와 함께 침대를 쓴 여자에게 밀려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 말이 안되는 일이 알게 모르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녀들은 든든한 뒷빽을 배경으로 밤인지 낮인지 모르고 일하느라 초췌한 여자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근사한 자리와 높은 연봉을 낚는다. 그것도 능력이요 실력이라고 말 한다면 할 말은 없겠지만, 너도 억울하면 상사와 적당히 뒹굴어주라고 말 한다면 더더욱 할 말 없겠지만 이건 참 아니다 싶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어리고 예쁜 여직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맽는 남자들도 물론 잘못되었지만 나는 저런 경우 그 여자들이 더 밉다. 차라리 어떤 돈 많은 남자의 정부가 되어 아파트 한 채 받고 돈 펑펑 쓰며 살면 우리처럼 일하는 여자들의 사기나 안 떨어뜨릴 텐데 말이다. 그녀들은 우리 앞에서 한참 앞서가며 말한다. '미련한 것들. 눈 한번 감으면 그만인데 왜들 저 고생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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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최고의 인터뷰어인 지승호님은 인터뷰 전 굉장히 많은 준비를 한다. 상대가 공적으로 행한 모든 발언을 꼼꼼히 챙기며, 질문서를 만든다. 그가 한 인터뷰는 그래서 상대로부터 우리가 평소 듣고 싶어하는 말들의 대부분을 이끌어 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예컨대 그가 강준만에게 한 질문 한 구절을 보자.

[지: '측근으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은 없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화장실도 안 가는 줄 알았다'고 하다가 자기의 환상이 깨지면 적으로 변하는 수도 있는데, 그런 점 때문에 오프라인 모임을 기피하시는 건 아닙니까?

강: 아니요. 그런 것은 아니고, 제 체질이에요. 테이블 놓고 서서 칵테일 파티 비슷한 거 할 때가 있는데, 잔 들고 돌아다니면서 먹잖아요. 전 그게 불편해서 그런 자리 가면 저쪽 구석 자리에 앉아 있어요. 사람 만나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이고....이하 생략 (다시 아웃사이더를 위하여, 86쪽)]

강준만에게 궁금했던 게 왜 그가 사람을 안만나며, 전화도 안놓고 사는가 하는 거였으니, 지승호님이 던진 질문은 참으로 적절했다.

최근 <마광수 살리기>라는 책을 읽었다. 마광수의 애제자라는 남승희는 장시간 동안 마광수와 대담을했는데, 책의 절반 가량이 그걸로 채워져 있다. 사실 재판 이후 속세와 인연을 끊고 칩거하다시피 해 온 마광수의 심정을 알고 싶기도 해서 책을 집었는데, 대담을 주도하는 것은 오히려 남승희였다.

남:....뉴욕 지하철에서는 차량의 낙서를 지우고 무임승차 단속을 했더니 전체적인 범죄율이 급락했다고 해요.

마: 굉장히 흥미로운 얘기네요.

남: 그렇죠?... 카오스 이론을 한의학에 접목시키는 작업을 시작한 사람이 있다고 하더군요....

마: 정말 재밌겠는데요.(95-96쪽)

 

남: 얼마 전에 현학주의의 대표주자였던 <키노>가 폐간됐습니다....그런데 <시네21>이 좀 이상해져서, 재미있다 없다가 아니라 한국 영화다 아니다에서 출발하는 요상한 경향이 강해졌어요. 별로 아닌 영화도 막 밀어주고요...좋지 않은 작품을 좋다고 하는 건 독자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도덕심을 저버리는 거거든요.

마: 그렇게 심각한가요?

남: 심하죠. 기본적으로....어쩌고 저쩌고....

물론 남승희의 말 중에 새겨들을만한 훌륭한 말들이 많았던 것은 인정하지만, 아무리 '대담'의 형식을 빌었어도 그 자리는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마광수의 목소리를 듣자는 게 아니었을까? 지승호님이었다면 좀더 괜찮은 인터뷰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게, 그 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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