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구경 - 독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유진 지음 / 포럼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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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학교교육에 비판적인 사람이라면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말고 책만 읽게 하면 훨씬 더 괜찮은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 는 생각을 한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상상만으로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남들이 가는 궤도에서 벗어나는 일은 굉장히 성가신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를 안간 애가 게임과 TV 등 각종 유혹을 뿌리치고 열심히 책을 읽을지 장담할 수도 없다. 그런데 <책구경>의 저자 유진은 이런 가정을 실제로 구현한, 보기 드문 이다.

“나는 초졸 학력의 열아홉 살 청소년”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이 구절에 당황해하는 우리에게 그러지 말라고 한다. “당신도 알고 있지 않나. 지금 우리나라 학교는 다닐 곳이 못 된다.” (9쪽) 그는 “책 읽을 시간도 없는 하루하루가 언짢아서” (같은 쪽) 학교를 때려치우고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시작한다. 그 와중에 저자는 미증유의 탄핵 사건을 경험하고, 이 사태에 대한 심도깊은 이해를 위해 본격적으로 책을 읽는다. “<책구경>은 촛불, 탄핵, 대선으로 이어졌던 작년 가을부터 올여름까지, 나의 독서를 기록한 결과물이다.” (7쪽)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거기서 새로운 정보를 얻거나 미처 몰랐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다. 그러다보니 많이 배운 사람,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의 책을 읽는 게 보다 안전한 선택이다. 이 책이 팔리는 책이 되기에 태생적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내용만 놓고 본다면 <책구경>은 여느 독서 에세이보다 훨씬 재미있고, 책이 주는 깨달음도 쏠쏠하다. 만일 이 책의 저자가 ‘이동진’이나 ‘유시민’쯤 됐다면 사람들은 “역시 xxx!”라며 이 책에 찬사를 보내지 않았을까?


<책구경>의 최대 장점은 시각의 참신함이다. 책이 재미있게 느껴진 건 그 덕분이기도 할 텐데, 가장 공감했던 것이 <삼국지>에 대한 비판이었다. “나도 재밌게 읽었다....하지만 이 책에서 어떤 대단한 깨달음을 얻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삼국지를 읽으면 세상을 살아가는 요령과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다시 읽어도 나에겐 해당사항 없었다.” (31쪽) 이런 비판은 다른 사람들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다음 구절이 내 마음에 와닿는다.
[책은 ‘남 무시할 수 있는 자격증’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 <삼국지>도 대표적으로 잘난 척하기 좋은 책이다....책의 내용을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지금 사회의 현실과 연결해서 해석하고 설명해낼 능력도 없고, 자신의 삶 속으로 이야기를 끌어오지도 못하는 인간들의 잘난 척이 우습다는 말이다. (32쪽)]
나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난 “삼국지 열 번 읽은 사람과는 논쟁을 하지 마라”는 아버지 말씀 때문에 내 독서이력으론 보기 드물게 다섯 번이나 읽었다. 그런데 그 책이 살아가는 동안 내게 어떤 긍정적 영향을 끼쳤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난 <삼국지> 좀 읽은 사람들을 만나면 배틀을 하곤 한다. 누가 더 많이 아는가 배틀 말이다. “다음 중 여포가 죽인 사람이 아닌 것은?” “조자룡이 10만대군을 압살한 전투 이름은?” 이게 책을 읽긴 했는데 써먹은 적이 없어서 나온 결과물이리라. 내가 만나는 상대들도 다 여기서 벗어나지 않아, 내가 낸 문제를 못맞추면 씩씩거리면서 더 어려운 문제를 내곤 했다. 이거야말로 ‘삼국지’가 남을 무시할 자격증으로 쓰이는 좋은 예이리라.


그밖에도 저자는 왜 청소년들에게 헌법처럼 중요한 존재를 가르치지 않는 것인지 따져묻고, <총균쇠>를 읽고 나선 위도에 따른 삶의 격차도 중요하지만 한국 내에서 마주치게 되는 삶의 격차는 도대체 뭐냐고 항변한다. 자신이 읽은 페미니즘 책들에 대해 코멘트를 한 뒤 우리 사회의 성교육은 형편없다, 라고 일갈하기도 한다. 읽다보면 제도권 교육을 충실히 마친, 하지만 별 생각없이 세상을 사는 듯한 주위 사람들과 저자를 비교하게 될 수밖에 없다. 저자 유진이 좀 특별나긴 하지만, 나보다 어린 저자한테 배워야 한다는 걸 이제는 인정하자. 그래도 10대 청소년의 책이다보니 정신승리 차원에서 한 가지 반박 정도는 해야겠다. 74쪽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책을 읽지 않고 책을 쓰는 작가란 없다.” 아니다. 내가 쓴 첫 번째 책 <마태우스>는 참고문헌 없이 쓰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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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 2017-11-20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한 권을 읽어도 정약용처럼‘ 작가 이재풍입니다. 제 책도 한 번 읽어보세요. 새로운 관점에서 정약용선생님의 독서 방법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