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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만담 - 책에 미친 한 남자의 요절복통 일상 이야기
박균호 지음 / 북바이북 / 2017년 2월
평점 :
배우 서현철을 <라디오스타>에서 보기 전까지, 난 그를 알지 못했다. 그래도 배우라면 웬만큼 아는 편인데, 얼굴을 봐도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의 스타는 바로 서현철이었는데, 그 는 아내와의 에피소드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가 그날의 토크왕이 된 건 아내의 에피소드가 워낙 재미있어서였다. 예컨대 비데란 말을 착각해서 “아버지 변기에 네비 놔드려야겠어요”라고 말하는 아내라니, 재미있지 않은가? 한 정치인이 “내가 이제”를 반복하는데, 잠에서 깨봤더니 아내가 숨을 들이마실 때 “내가”라는 소리를 내고, 내쉴 때 “이제”라고 하고 있었다는 것도 재미진다. 하지만 이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더 재미있게 만드는 힘은 이야기를 잘 이끌어 가는 서현철의 입담이었다. 재미있는 얘기도 곧잘 망쳐 버리는 나로서는, 서현철의 입담이 참 부러웠다.
<독서만담>을 읽다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이 표지에 적힌대로 ‘요절복통 이야기’가 될 수 있었던 건 저자 박균호가 겪는 에피소드들이 워낙 재미있어서였다. 자신이 토라졌다는 걸 아내에게 알리기 위해 밥을 굶는 코스프레를 하는 아저씨라니, 너무 재미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더 재미있게 만드는 힘은 이야기를 잘 이끌어 가는 저자의 필력이었다.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그가 겪는 순간순간들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게 되는데, 늘 재미있는 글을 쓰고픈 욕망에 휩싸여 있는 나로서는 저자의 필력이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도 재미있는 글로 소문이 나있긴 하지만, 그건 내가 잡혀가지 않으려고 선택한 반어법 덕분이고, 그 반어법은 이제 시효가 지난 지 오래라 사람들이 지겨워한다. 그런 판국에 박균호의 책을 읽었으니, 부러워하는 것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도 반가운 점은 저자가 나와 비슷하게 공처가라는 점이다. 아내를 사랑한다고 말하긴 하지만, 사실 난 아내가 무서울 때가 많다. 아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라도 하면 “이번엔 내가 뭘 잘못했을까?” 고민하며 납작 엎드릴 정도인데, 나와 수준이 비슷한 분을 글로라도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다. 저자가 나보다 훨씬 더 공처가스러울 땐 내가 더 낫다며 통쾌하게 웃었고, 비슷한 경험을 할 땐 공감하며 웃었다.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만큼 뻔뻔한 대통령으로 인해 우울한 요즘, 해맑게 웃어본 게 정말 오랜만이다 싶다. 좋은 책은 많이 있지만, 사람을 웃게 만드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우울한 이들이여, <독서만담>을 선택하시라. 작은 일에 흥분하고 또 기뻐하는 저자의 모습이 당신을 웃게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