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스 호텔
피터 니콜스 지음, 정윤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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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야드’와 ‘오디세이’의 차이를 아는가?”


몇 년 전 책을 읽다가 이 구절을 읽고는 흠칫했다.


그 두 개가 어떤 차이를 갖고 있는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책은 친절하게도 답을 알려줬는데,


전자는 트로이 전쟁 이야기고, 후자는 전쟁에 참여했던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이야기란다.


‘아, 그렇구나. 내가 이런 곳도 모르고 있었구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게 다 어려서부터 책을 읽지 않은 자의 한계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 뒤 난 만나는 사람들마다 “일리야드랑 오디세이 차이점 알아?”를 묻고,


모른다는 대답을 들을 때마다 스스로를 위로한다.




소설 <록스호텔>은 표면적으로는 ‘오디세이’를 표방한다.


슐리만이란 사람이 트로이전쟁이 실제 사실에 근거한 거라고 믿고 결국 트로이를 찾아냈듯,


이 소설에 나오는 제럴드도 ‘오디세이’에 묘사된 지형과 똑같은 곳을 발견한 것.


바위를 던진다는 라이스트뤼곤인 (거대한 식인종)을 피해 숨었던 절벽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보니파시오의 코르시카 섬 항구 진입로 부근인 것 


같습니다. 그곳에 있는 동굴이 바로 오디세이가 외눈박이 폴리페모스를 


조롱하는 묘사 속에 등장하는 부분일 테고요.” (83쪽)


그래서 제럴드는 지중해 곳곳을 탐사하며 오디세이가 갔던 여정을 반복하고,


그걸 <이타카로 가는 길>에 담는다. 


이것만 보면 이 책은 문학과 현실을 융합하려는 아름다운 시도일 듯한데,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상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는 막장드라마의 요소를 꽤 많이 지녔다.


록스호텔의 주인인 루루는 미모가 뛰어나 여러 남자의 구애를 받고,


제럴드의 딸 에기나는 더 한층 미모가 뛰어나 다들 어떻게 해보려고 난리가 아니다.


루루의 딸인 루크는 멋진 여자만 보면 껄떡거리는데, 진짜 좋아하는 여자는 에기나다.


그런데 루크의 어머니인 루루와 에기나의 아버지인 제럴드는 사실은 전에 결혼했던 사이.


이들 말고도 더 많은 ‘썸’이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오가는데,


그 중에는 할머니와 소녀라는, 좀 이해하기 힘든 ‘썸’도 있다.




이렇게 과거의 비밀과 나이를 가리지 않는 ‘썸’이 나오는 소설을 읽다보니


평소 즐겨봤던 막장드라마가 떠올랐다.


그 중 한 장면을 보자.


[루크가 식당에서 알바를 하는 여자에게 반해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는 장면.


루크: 그때는 못생겼을지 몰라도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은걸요.


여자: 지금은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죠....아무튼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다니 정말 재미있네요.


루크: 내가 진짜 당신과 나누고 싶은 건....


루크는 그녀의 아름답고 커다란 입매와 어두운 잇몸, 그리고 매혹적인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정말 아름답다. 그렇다면 이제....


(그때) 멀리 도로 쪽에서 환하게 헤트라이트 불빛이 비쳤다 (100-101쪽)]


그 불빛은 그녀의 애인이 타고온 BMW의 것으로, 루크는 그냥 헛물만 켜고 만다. 


읽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애인은 왜 지금 나타나고 그래? 조금 더 있다 오지.”



자랑 같지만 난 막장 드라마에 대한 애정이 꽤 있는 편이다.


소설 <록스 호텔>에 열광한 것도 이게 막장드라마를 생각나게 해서였다.


참고로 이 소설의 배경이 된 마요르카에는 진짜로 록스호텔이 있던데,


책을 읽고 그곳에 가서 며칠 숙박을 한다면 참 아름다울 것 같다.


외국여행을 못하는 나로선 다 그림의 떡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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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6-04-17 0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드디어 다 읽으셨군요^^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가 의붓아버지(였던)의 딸!... 막장의 단골 ㅎㅎ

마태우스 2016-04-19 00:31   좋아요 0 | URL
와앗 안녕하세요 세실님 아니었다면 무플 될 뻔....^^ 마지막 결론도 막장드라마와 비슷하더군요. 그나저나 세실님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좋은 친구분들이 많으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