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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 네안데르탈인에서 데니소바인까지
스반테 페보 지음, 김명주 옮김 / 부키 / 2015년 9월
평점 :
스반테 페보 박사는 수만년 전에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해독한 과학계의 스타다. 페보박사는 또한 오래된 인류로부터 DNA를 뽑는 게 가능하며, 그 방법을 정립하기도 했다. 내가 속한 ‘미라팀’에서 하는 일이 과거 미라에서 기생충과 기타 질병이 있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니, 우리 연구팀에서 페보박사는 거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는 그 페보박사가 자신의 30년 연구인생을 정리한 책이다. <사이언스 칵테일>에서 강석기 박사가 {원서를}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고 해서 번역되기만 기다렸는데, 그 책이 드디어 나온 것. 페보박사가 과학자다보니 책 시작부터 어려운 과학얘기가 나오지만, 워낙 설명을 잘해 줘서 일반인도 충분히 이해가능하다 (고 믿는다). 게다가 과학적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도 책을 읽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다. 이 책에서 배워야 하는 게 과학적 상식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과학계의 신이 됐느냐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볼 때 이 책은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자기계발서에 더 가깝다.
실제로 페보박사는 연구 과정에서 숱한 난관에 직면한다.
“그와 연락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의 신기술을 이용하겠다고 몰려들 괴짜 과학자들을 차단하기 위해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 통로로 시도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187쪽)
“위기를 겪을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금요일 회의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다...아무래도 오염이 일어난 것 같으니 이제 그만 포기하자고 말해 버렸다.” (260쪽)
하지만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DNA를 통해 인류진화의 비밀을 벗기려는 페보의 의지는 이 난관들을 차례로 극복해 냈다. 그가 더 존경스러운 점은 자기 밑에 있는 팀원들이 언제든 자기 의견에 반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 것이었다. 이건 그 팀의 약점이기도 했다.
“민주주의가 그렇듯이 가끔은 불합리한 생각들이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243쪽)
그래서 페보는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을 때는 교수의 말이 곧 법이던 독재 시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씩 했다.” (같은 쪽) 하지만 페보는 끝내 그 칼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다수의 의견에 잠자코 따랐다.” (같은 쪽)
인내의 열매는 달았다. 이게 자기 일이라고 생각한 연구원들은 더 열심히 일해 결과를 냈고, 문제점이 생기면 자기 일처럼 걱정하며 해결책을 찾아냈다.
페보로부터 배워야 할 또 다른 점은 남의 지적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였다. 이 분야 최고의 권위자가 바로 페보였으니 심사위원이 지적해도 무시하면 그만이었지만, 페보는 달랐다. 페보에 대해 한 심사위원이 쓴 글이다.
“저자가 사용한 방법에 대해 우려를 제기하면...저자들은 보통 설명하고 끝낸다. 하지만 페보는 내 논평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내가 제기한 문제들을 조사하고 내 우려를 해결하기 위해 상당한 수정을 가했다.” (400쪽)
이런 점들이 그가 이 업계에서 신이 되도록 만든 게 아닐까. 읽을수록 존경이 커졌는지라 나중에 페보가 동료의 아내와 잠자리를 함께 하는 대목을 읽을 때도 저항감이 생기지 않았다. 책을 읽을 때 감명깊게 읽은 대목은 그 페이지를 접는 버릇이 있는데, 이 책은 접힌 곳이 수두룩하다.
마지막으로 페보가 부러웠던 점. 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은 유명 학술지는 좀 오만하다. 전세계 과학자들이 그 학술지에 논문을 실으려 하니 그럴 만도 하다. 한 편집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학술지에 자주 투고하면서 언젠가 받아주겠지, 하는 학자들이 있는데 그러지 마시라. 우리는 그런 곳이 아니다.”
그래서 난 그쪽 학술지엔 논문을 아예 보내지도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그 학술지 편집장들이 페보한테 “이왕이면 우리 학술지에 실어달라”고 사정을 한다. 역시 신과 인간은, 다르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