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토론에 대한 기억은 그다지 좋지 않다.

처음 한두번은 진지하게 책 얘기를 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친목모임으로 변질돼 술만 마셨으니까.

내가 몸담았던 동아리의 '졸업생 모임'에서 독서모임이 만들어졌다고 했을 때도

그다지 참여하고픈 생각이 없었다. 

그럼에도 첫 모임을 간 이유는 거기서 다루는 책 세권 중에 내 책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었다.

참석자 중 한 명이 "그래도 첫 모임은 우리 동아리 사람이 쓴 책으로 해야지 않겠느냐"고 우겼다는데,

그런 얘기를 듣고도 안가면 나쁜 놈 같아서 마지못해 가겠다고 했다.


막상 가보고 나서 놀랐다.

내가 제일 나이가 많을 줄 알고 대충 앉아있다 밥이나 사야지 했는데,

이게 웬걸. 열명의 참석자 중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이 다섯명이나 됐고, 

가장 젊은 후배도 마흔을 넘겼다.

나이가 많은 것의 좋은 점은 살아온 경험이 많다보니 책을 읽고 난 뒤

자기 경험과 결부시키기가 쉽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들 중 몇 명은 어린 시절 몇 트럭분의 책을 읽은 독서광이었기에

토론은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나도 모르게 '다음 모임에도 꼭 참석하겠다'고 약속해 버렸다. 


가장 흥미로웠던 순간은 박범신의 <소금>에 대한 얘기를 할 때였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소금>은 가족들한테 헌신만 하다가 버려지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본 소설이다. 

몇트럭의 책을 읽었던 이의 말, "사건을 너무 많이 배치해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재미는 있을지언정 소설로서의 가치는 낮다."

그와 필적할 책을 읽은 이 역시 이 점에 동의했는데,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소설을 읽을 때 늘 비판적으로 읽어요. 이 소설의 문제점은 뭐다, 이런 것만 눈에 들어와요."

이유가 뭘까. 어릴 때 소설의 전범이라 할 고전을 너무 많이 읽다보니

웬만한 책이 아니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리라. 

반면 적당한 양의 독서를 한 친구의 말은 이랬다.

"어릴 적 아버지가 우리한테 그리 잘해준 적이 없어요. 그래서 원망만 했는데,

이 책을 보니 아버지한테 좀 잘할 걸 그랬다 싶네요."

나 역시 거기에 동의했다.

"아버지한테 맞고만 자라서 원망만 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저도 이 책을 보면서 아버지가 저한테 잘해주신 것들을 생각해 보게 됐어요."

독서광들과는 달리 윗 친구와 나는 그닥 고전을 많이 읽지 않았고,

그 덕분에 소설을 읽으면서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는데,

그게 이 소설이 가슴에 와닿은 이유였다. 

서른까지 거의 책을 읽지 않고 지냈다는 컴플렉스를 갖고 있는데,

그게 유리한 점도 있는 것 같다. 


여기서 다뤘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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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5-08-22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본인의 책이 토론되는 모임에 참석하는 기분은 어떨까요. 재미있었다 하시니 역시 마태우스님이시네요. 저라면 초긴장될 것 같은데요^^;

마태우스 2015-08-23 02:08   좋아요 0 | URL
앗 달밤님이닷. 그 책이 집나간 책이었는데요, 뭐 친한 사이에 설마 나쁜 말 하겠나 싶었어요. 독서광들은 그닥 좋지 않았던 표정이었고 아예 언급을 안하더군요 ^^ 아는 사이가 좋아요!

살리미 2015-08-23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요즘의 고민은 책을 읽으면 좋은 점만 보이고 비판할 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직 내공이 쌓이질 않아서 그런거겠죠. 좀 폼나게 비판도 해가며 이른바 독후감에서 서평으로 진보해야 하는거 아닌가 싶은데.. ㅎㅎ 아직까지도 모든 작가들은 다 위대해만 보입니다. 저는 한페이지 감상을 쓰는 것 조차 어려우니까요^^ 독서모임에서도 작가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하는 사람이 훨씬 똑똑해보이는데 저는 그저 여기가 좋았네 저기가 좋았네 말해주는 수준이에요^^ 마태우스님 글을 읽고나니 묘하게 위로가 되기도 하네요.

마태우스 2015-08-23 12:50   좋아요 0 | URL
저도 사실 책을 읽고나서 씨니컬하게 비판하는 게 멋져 보여요. 책 많이 읽으면 그게 될 줄 알았는데, 아무리 읽어도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좌절하고 그랬는데, 책이란 게 자기 느끼기 나름이잖냐 이러면서 스스로를 위로했지요. 우리같은 사람도 있어야 저자도 행복하지 않겠어요^^ 암튼 반갑습니다! 동지님.

자몽 2015-08-23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거의 마흔까지 책을 읽지 않았다는 컴플렉스
때문에 독서토론이나 글쓰기에 엄청난 부담을...하지만 중년이되어 즐거운일을 발견했기에 잘하고픈 욕심을 버리지 못하네요
그래서 독서토론은 맘편히 얘기하며 제게는 힐링하는 시간이랍니다.

집나간책 너무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읽는내내 혼자 빵빵 터졌습니다.읽고나니 유쾌하신 인간 마태우스님이 궁굼해지더군요..
나오신 tv프로그램 다시보기해야 할까봐요..

마태우스 2015-08-23 13:44   좋아요 0 | URL
어머나 반갑습니다. 저는 서른이니 저보다도 십년 더 늦게 시작하셨군요. 나이가 어떻든간에 살아생전 책의 즐거움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 같아요. 글구 저기 소개 안한 제 책이 집나간 책이라는 거 어케 아셨어요. 부끄럽네요^^ TV 프로그램 다시보기 하시면 실망하실 거예요. 전 TV에선 하나도 못웃겼거든요. 글로 승부하려고 합니다.

자몽 2015-08-23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찌 서민 교수님을 모를 수가있나요!!(교수님 의 재치있는 글들은 읽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집나간책 읽다가 알라딘 서재에서 활동하시는것 같길래 반가운 마음에 친구 신청을.. ㅋㅋ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