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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뚱뚱한 남자를 죽이겠습니까? - 당신이 피할 수 없는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질문
데이비드 에드먼즈 지음, 석기용 옮김 / 이마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철로에 다섯 명이 묶인 채 누워있다.
하필이면 기차는 제동장치가 고장났으니, 그대로 간다면 그 다섯 명은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다.
하지만 다섯명이 묶인 곳 직전에 지선이 하나 있어서,
스위치 하나만 누르면 기차의 방향을 그 지선 쪽으로 바꿀 수 있다.
문제는 그 지선에도 한 사람이 묶여 있는 것.
이럴 때 어떻게 해야만 할까?
벤담 식으로 단순히 숫자만 따지면 기차를 지선으로 돌리는 게 맞지만,
그 한 사람이 자신의 가족이나 아는 사람일 경우에도 그게 가능할까?
명확하게 판명이 나지 않는 딜레마를 다루는 학문을 트롤리학이라고 부르며,
<저 뚱뚱한 남자를 죽이겠습니까?>는 이 트롤리학에 대한 책이다.
골치아프게 이런 걸 왜 생각하냐고 하겠지만,
실제로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있다.
2차대전 당시 독일이 쏜 미사일은 런던에서 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 떨어졌지만,
처칠은 그것들이 런던의 중심부를 정확히 타격한 것처럼 정보를 흘렸다.
물론 런던 남쪽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처칠은 런던과 런던 시민을 택했던 것.
홍수가 나서 양쯔강이 범람할 위기에 처했을 때,
중국정부는 대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양쯔강의 댐을 폭파하기도 했다.
다음은 어떨까.
1884년 배가 침몰해 세 명이 구명보트에서 표류하게 됐는데,
마침 먹을 것이 떨어졌다.
일행 중 한 명인 17세 소년은 원래 몸이 약했기에 그냥 놔두어도 죽을 판이었다.
그 소년을 잡아먹지 않으면 세 명 모두 죽고,
소년을 잡아먹으면 나머지 두 명은 살 수 있는 상황.
결국 둘은 소년을 잡아먹었고, 6개월의 징역형을 받는다.
그때 잡아먹힌 소년의 이름이 바로 리처드 파커였으니,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에 나오는 뱅갈 호랑이의 이름이
리처드 파커인 게 우연은 아니었다.
이런 식의 헷갈리는 상황들이 잔뜩 나오는지라
시종일관 흥미롭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다 읽고 난 느낌은 정의나 윤리라는 게 정말 복잡한 개념이라는 것.
그러니 내가 믿는 게 오로지 옳다, 이렇게 주장해서는 안되겠다 싶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엔 짐이 곧 국가고, 짐에게 반항하는 건 위헌이다, 이런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꼭 한번 이 책을 읽으시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