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작가의 표절시비에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놀란 건 신경숙 작가가 표절을 해서가 아니었어요.
고 안승준의 유고집에 실린 서문을 표절한 <딸기밭>이 나온 건 무려 2000년입니다.
그 당시 박철화를 비롯한 소수의 평론가가 신경숙의 표절을 지적했어요.
표절은 작가로서 하지 말아야 할 짓이라는 생각에 전 거품을 물고 신경숙을 욕했습니다.
하지만 언론과 문단, 그리고 일반인들은 아무도 관심이 없었지요.
우리나라는 잘나가는 작가에겐 이렇게 관대하구나, 싶어서 절망했습니다.
지금 제가 신경숙 작가의 표절논란에 화가 나지 않는 이유의 상당 부분은
15년 전에 이미 화를 낼만큼 내서입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닙니다.
그때만 해도 저는 신경숙 작가에 대해 잘 몰랐는데, 그 후 책과 기사를 통해 신작가의 스토리를 알게 됐습니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 <외딴 방>에 나온대로 신작가는 낮에는 여공으로 일하고 밤에는 책을 읽으면서
소설가의 꿈을 키웠다지요.
그 당시 여공의 처우가 열악했음을 감안하면, 신작가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했던 노력은 엄청났으리라 생각합니다.
제대로 훈련받지 못하다보니 아름다운 문장들을 보면 탐이 났을 테고,
‘나도 저런 문장들을 쓰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겠지요.
글에 평생을 걸기로 각오했던, 하지만 문장은 그 각오를 따라오지 못했던 그 시절,
신경숙은 자신이 썼으면 좋겠다 싶은 작품의 일부분을 따서 자기가 쓴 것처럼 우기고픈 욕구를 느끼지 않았을까요?
늘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하는 작가에게 표절은 씻을 수 없는 범죄인 건 맞지만,
그 당시 신경숙의 모습을 혼자 상상하다 보니 그전만큼 그녀를 욕하기가 힘드네요.
신경숙이 웬만큼 사는 집에서 태어났다면,
그래서 책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쓸 수 있었다면
표절을 하지 않고도 좋은 글을 썼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게 제가 이번 논란에서 화를 낼 수 없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실망스럽게도 신경숙은 자신의 표절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기사에 소개된 <우국>은 몇 문장이 같음에도 표절이 아니라고 했고,
<딸기밭>에서 인용을 뺀 건 ‘유족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라는 괴이한 변명으로 일관합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다보니 전 신경숙이 왜 이러는 건지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것도
그게 자신의 삶에 하등 악영향을 주지 않을 때 가능하니까요.
제가 첫 번째로 냈던 마태우스란 책이 쓰레기라는 걸 쿨하게 인정하는 건
제가 전업작가가 아닌데다 후진 책을 내는 게 범죄는 아니기 때문이며,
그 과거가 오늘의 저를 더 돋보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신경숙은 저와는 다르겠지요.
글만으로 오늘의 자리에 오른 그녀가 표절을 인정하는 순간
그녀는 표절작가가 되며, 자신의 많은 부분이 무너집니다.
표절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그녀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지는 건 그 때문입니다.
* 글을 쓰고 난 뒤 인터뷰
-지금 너는 신경숙을 옹호하는 것이냐?
=그건 아니구요, 그냥 신경숙의 마음이 이해된다는 거죠.
-그게 옹호 아니냐?
=글쎄요. 옹호라기보단 나이가 드니까 좀 관대해지더라, 이런 건데.
-그런데 넌 왜 박모씨한테는 관대해지지 않니?
=그러게 말입니다. 박모씨한테 관대히지려면 100살 정도 더 먹어야 될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