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된 게 알아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네요?"
나랑 제일 친한 친구의 아들이 캐나다에서 왔다.
온 김에 친구와 더불어 천안에 들렀기에 맛있는 식당에 데리고 갔는데,
자기 딴에는 나를 다 알아볼 줄 알았나보다.
하지만 사람들의 기억은 그리 길지 않고,
게다가 내가 뭐 그렇게 인상적인 방송활동을 한 것도 아닌지라
이젠 어딜 가도 그다지 알아보는 이가 없다.
하지만 출판계에선 아직 내가 잊혀지지 않은 듯하다.
심지어 나를 과대평가하는 곳이 좀 있다보니
자신들이 내는 신간에 추천사를 써달라는 요청을 가끔 받는다.
특히 요즘엔 추천사를 세명 정도 받는 게 기본이 된 것 같아 추천사 일이 더 많이 들어온다.
안그래도 어려운 출판시장에서 내 추천사가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뭐 이런 마음으로 열심히 추천사를 쓴다.
<독한 것들>이란 책에 대한 추천사를 부탁받았을 때도 그런 생각이었다.
게다가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기생충학자 정준호 씨 등이 집필한 책이 아닌가!
그로부터 얼마 후, 추천사를 쓴 보답으로 출판사에서 책을 보내왔다.
그 책을 받아들고 깜짝 놀랐다.
책의 띠지에 내 사진이 떡 하니 박혀 있었던 것.
내가 저자도 아닌데 왜 내 사진을?
충격적인 사건이 있으면 분노-부정-절망-타협-수용 의 5단계를 거친다는데,
내 마음은 앞의 두 단계에서만 왔다갔다 했고,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한동안 고민하다 다음과 같이 입장정리를 했다.
1) 추천인의 사진을 책에 싣는 건 책을 쓴 저자에 대한 결례다.
이 책은 EBS에서 방영한 <독>을 책으로 옮긴 것으로,
피디와 작가, 카메라 담당하신 분 등 저자가 총 4분이다.
그 네 분 모두 나보다 훨씬 잘생겼는데 나만 띠지에 들어간 건
좀 어이없다.
2) 추천자의 사진을 책에 싣고 싶다면 미리 양해를 구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그랬다고 하더라도 난 거절했겠지만,
그런 언질이라도 주고 실었으면 지금처럼 황당하진 않았을 것 같다.
3) 가장 화가 나는 점은, 이건 2)의 결과이기도 한데,
띠지에 들어간 내 사진이 너무 한심하다는 거다.
아무리 못생긴 얼굴이라도 사진에 따라 괜찮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저 사진은 내가 "죽이고 싶다"는 느낌이 들만큼 한심해 보인다.
특히 저 눈가의 자글자글한 주름이라니!
정 사진을 싣겠다면 가지고 있는 사진 중 비교적 괜찮은 걸 줬을 텐데.
물론 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 같은 걸 할 마음은 없다.
게다가 그 출판사는 작년에 내가 정준호 등과 함께 쓴 <기생>을 출간했던 곳이니
그렇게 한다고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지는 않다.
그냥 알라딘에서만 푸념을 하고 말 테지만,
뜨고 나면 치러야 하는 대가가 이런 것일 수도 있구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 사태의 이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저 사진을 보고 안되겠다 싶어 거울을 보게 됐고,
우리 학교 성형외과에서 피부관리를 받기로 한 것.
시술이 시행될 다음 주부터 난 웃지 않을 것이다.
웃으면, 얼굴이 너무 어색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