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이야기 - 내 딸과 딸의 딸들을 위한
플로렌스 윌리엄스 지음, 강석기 옮김 / Mid(엠아이디)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의 문제점 중 하나는 제대로 된 교양과학서가 드물다는 것. 청소년들을 자극할 과학서의 부재는 우리나라 과학의 미래가 암담한 이유 중 하나다. “너도 과학자 아니냐?”라는 반박이 나올까봐 미리 말씀드리자면, 나는 <기생충열전>이라는 책으로 기생충학계를 천하 통일한 바가 있으니, 다른 분야를 질타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런 나를 경악하게 만든 책이 있으니, 그건 바로 <가슴 이야기>였다. 이 책을 읽은 솔직한 이유는 남들이 생각하는 그런 이유였지만, 막상 읽어보니 내 기대와 달랐다. 그래서 실망했다는 게 아니라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얘기다. 책을 읽고 받은 감동을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교양서를 쓰고 싶은 과학자라면 <가슴 이야기>를 읽고 참고하시라.”


 

이 책은 내가 그토록 뿌듯하게 여겼던 <기생충열전>마저 초라하게 만드는데, 더 충격적인 것은 저자인 플로렌스 윌리엄스가 과학자가 아니라 프리랜서 작가라는 사실이다. 다들 알다시피 과학자는 글을 못쓴다.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특히 그런데, 과학잡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과학자들의 글쓰기에 대한 성토를 몇 시간이고 들을 수 있다. 교양과학서가 잘 나오지 않는 것도 사실은 그 때문으로, 얼핏 생각하기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에게 글쓰기 훈련을 혹독하게 시키면 될 것 같다. 문제는 이게 너무 어렵다는 것. 그래서 또 다른 방법이 등장한다. 글 잘쓰는 작가에게 과학을 가르치면 된다. 이게 쉬운 것은 아니지만, 플로렌스의 사례를 보면 최소한 전자보다는 훨씬 더 쉬울 듯하다. 그녀가 대학에서 환경저널리즘을 연구했다는 걸 알고나면 내 생각에 동의할 수 있지 않을까? 오히려 플로렌스는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슴의 해부학적 구조와 기능, 유방암, 사춘기 변화와 더불어 가슴의 진화와 기원 등 폭넓은 주제를 가지고 책을 쓸 수 있었다. 저서가 있어야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대접받는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계속 글쓰기를 게을리 한다면 머지않아 프리랜서 작가들에게 전문가 타이틀을 빼앗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우리가 여성의 가슴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각적 즐거움 같은 차원이 아니라,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관해서 말이다. 예컨대 우리가 알을 깨고 나온 뒤 바로 먹이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사흘은커녕 이틀도 안돼서 다 죽을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주장이 성립된다.
수유의 진화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먹이를 직접 구해야 하는 성체가 되는 시기를 늦출 수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 것이죠.” (62쪽) 즉 젖을 분비하는 포유류는 새끼들에게 맞는 먹이가 있는 서식지에 머물러야 할 필요를 없앴고, 그 결과 먹이가 별로 없는 따뜻한 곳으로 이동해 새끼를 낳는 게 가능했단다. (64쪽) 한 가지가 더 남았다. 딱딱한 먹이 대신 젖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태어났을 때 치아가 없어도 됨을 뜻하며, 이는 출생시 머리가 작아도 됨을 뜻한다. 또한 젖을 빨아야 하는 필요 때문에 “구개와 혀 근육이 발달”했고, 이는 “언어능력 진화로 가는 길의 출발점이 됐다.” (65쪽) 그러니, 어머니한테, 그리고 다른 여성들에게 잘하자. 여성들의 가슴 덕분에 언어능력을 기른 주제에, 그 능력을 여성들을 비하하는 데 써서야 되겠는가?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책은 내가 여태껏 읽은 교양과학서 중 단연 최고이며, 이를 본뜬 교양과학서가 많이 출간됐으면 좋겠다. 자신의 첫 책을 대박을 터뜨린 플로렌스 윌리엄스가 그 다음에 어떤 주제를 선택할지 궁금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게 어떤 분야든 나는 그 책을 사리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가슴을 정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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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02-16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생충열전>이라는 책으로 기생충학계를 천하 통일한 바가 있으니˝
하하~~ 그렇습니까?
꼭 한 번은 웃게 만드십니다.

프리랜서 작가라는 직업. 멋지네요. ^^
이 책을 보관함에 담습니다.

마태우스 2015-02-16 23:01   좋아요 0 | URL
아앗 한번밖에 못웃게 해드려 죄송해요. 다음부턴 꼭 노력할게요! 글구 프리랜서 작가는 울나라에선 참 살기 힘든 것 같더라고요. 아내가 프리랜서로 일하던 경험이 있는데요, 저랑 결혼하자마자 때려치운 게 너무 힘들어서 그랬다는....

곰곰생각하는발 2015-02-16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좋은 대중 교양 과학서`는 정말 재미있죠....

마태우스 2015-02-18 03:26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실망하지 않으실 거예요!!

2015-02-17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5-02-18 03:26   좋아요 0 | URL
어머나 님한테 이런 멋진 멧시지를 받았으니, 좋은 명절 될 것 같네요. 님도 좋은 명절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