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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버린 세월 - 사라진 사람들과 살아남은 사람들
주하아린 지음 / 아마존의나비 / 2014년 12월
평점 :
지인한테서 책을 한 권 받았다. <멈춰버린 세월>이란 제목의 이 책은 2013년 11월부터 2014년 11월까지 있었던 굵직한 일들을 담은 사진과 그에 대한 자신의 감상들이 적혀 있다. 사진이 주를 이루는 책이니 금방 읽을 수 있겠구나 싶어 집어들었지만, 책장은 쉽사리 넘겨지지 않았다. 저자의 시선이 권력이 아닌, 민중을 향하고 있는데다, 그 민중들이 하나같이 짓밟혀지는 민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제목에서 짐작했겠지만 90쪽부터 끝 부분까지는 전부 세월호에 관련된 사진들이다. 그러다보니 더더욱,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지난 토요일 미장원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이 책을 읽었는데, 겨우 내 차례가 됐을 때 담당 미용사가 이렇게 말했다.
“감기 드셨어요?”
내가 코를 훌쩍거린 건 지병인 알레르기성 비염이나 감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 책을 보면 누구라도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눈물주머니가 코눈물관과 연결되어 있는 탓에, 코까지 훌쩍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책의 제목은 꼭 세월호만이 아닌, 다른 뜻도 담고 있다. <멈춰버린 세월>은 대학생들이 시위를 하던 1980년대로부터 30년이 더 지났지만, 아직도 전경과 싸우며 시위를 해야 하는 현실을 얘기한다.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가 이런 것이라면, 시민들이 그토록 열심히 시위를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안산에서 20년을 자란 경희대생 용혜인은 추모 침묵행진을 제안한 혐의로 연행되는데, 거기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300명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것이 죄라면, 저를 잡아가십시오. 침묵하며 추모하는 것이 죄라면, 저를 잡아가십시오.” (142쪽)
그 글을 읽으면서 사진을 보는데, 그저 한숨만 나온다. 훌륭하신 총리께서 세월호 유족들에게 줄 보상금에서 장례비를 삭감하라고 지시한 뒤 이런 일도 있었단다. “친구의 빈소를 찾은 아이들이 가족들의 보상금이 줄어들까 물 한모금도 안마시고 가기도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47쪽) 정말 부끄럽다. 이런 나라를 만들어 놓았으니 말이다.
42쪽에는 난독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잘 나타내주는 일화가 있다. 2013년 12월 31일 서울역 고가도로에서 40대 남자가 국정원 특검과 박근혜 사퇴를 외치며 분신자살했다. 그는 이런 유서를 남겼다.
“...공권력의 대선개입은...책임져야 할 분은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던 그 양심이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이 아니길 바랍니다.”
놀라운 것은 이 유서를 읽은 경찰이 이 남자분의 자살이유를 “경제적 문제와 가족의 질병 등 신변을 비관하여 자살했다”고 밝힌 점이었다. 우리는 각종 집회를 통해 경찰이 숫자에 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 만 명 모였다 싶은데 경찰이 200명이라고 발표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그런데 수를 못 세는 것도 모자라 난독증까지 있다니, 우리 경찰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책의 기록은 2014년 11월로 끝이 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 후 이어질 사진들도 책에 나온 1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임을.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