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은 생애에서 가장 바쁜 한해였다 (특히 10월과 11월은 죽음의 두달이었다).

방송으로 인해 올라간 인지도 덕분에 여기저기 강의를 나가다보니 어느새 한해가 다 가버렸다.

하루이틀 간격으로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야 하는,

그러면서도 심심치 않게 외부강의를 나가는 지금이라고 해서 사정이 나은 건 아니다만,

그래도 가끔씩 빈날이 있는 12월 달력을 보니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어젠 동아리 동기가 동기모임 날짜를 정하자고, 너만 카톡이 없어서 이렇게 묻는다면서

1월 중 안되는 날짜를 꼽아보란다.

세상에, 내가 말해준 날짜는 불과 이틀이었다.

나머지 28일이 다 시간이 된다는 얘기, 최근 2년 사이 이런 여유는 처음이었다.

내가 강의하는 게 대부분 고등학교, 대학교고,

1월달엔 그네들이 다 방학을 해버리니 강의가 없는 덕분이다.

물론 강의 한번에 얼마라도 강사료를 받았던 터라 당분간 수입이 좀 줄긴 하겠지만,

텅 비어버린 1월 스케쥴에 미소가 절로 난다.

지나치게 잦은 강의는  강의의 질을 떨어뜨리고, 강사로서의 수명을 깎아먹는데다

다른 취미활동을 못하게 만든다.

그간의 내 삶은 너무 단순했다.

강의준비--> 다음날 강의-->밤늦게 와서 다시 다음날 강의준비--->....

돌이켜보면 이 힘든 나날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고3도 아닌데 새벽 2시, 3시까지 안자고 일을 한 적이 부지기수였다.

할일에 치여서 혹시 내가 아프지 않을까를 걱정하고,

혹시 지인이 부친상이나 모친상을 당하지나 않을까를 걱정했다.

실제로 친구 아버지의 부음소식을 전해듣고 "조금만 더 버텨주시지, 왜 하필 이때!"라고 절규하기도 했다.

내가 왔다고 좋아서 꼬리를 치는 강아지들과 놀아주지 못하는 게,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영화한편 같이 보지 못하는 게 너무 미안했다.

늘 강의록 보내달라는 주문에, 글 마감에, 책 원고 독촉 메일에 쫓기며 살았다.

돈을 아무리 번다해도 이건 내가 원하는 삶은 분명 아니었다 (돈을 별로 벌지도 못했다는 게 함정...ㅠㅠ)

 

방송을 거의 그만둔 지 석달 정도가 지났다 (아직도 종편에서 섭외가 오긴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명멸하는 방송계에서 석달이면 엄청나게 긴 시간이라

사람들도 더 이상 날 알아보지 못한다.

한때 알아봐주는 것에 희열을 느끼기도 했지만,

지금은 타인으로 스쳐보내주는 것이 훨씬 더 좋다.

앞으로는 지난 2년처럼 살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다.

내년부터는 그간 거의 못나간 테니스 클럽도 나갈 것이고,

연간 30권 정도로 떨어져버린 책읽기도 원래대로 회복할 것이다.

계약만 하고 쓰지 않은, 그래서 글빚으로 남아있는 책 원고도 부지런히 써야겠다.

갑자기 얼마 전 영화로 개봉됐던 <나를 찾아줘> 생각이 난다.

책을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영화로 꼭 보고 싶었는데,

겨우 짬이 나서 예매 사이트를 갔더니 영화는 이미 내려간 뒤였다.

그게 너무 아쉬웠지만, 그 책의 제목처럼 내년에는 원래의 나를 찾으려고 한다.

일보다 인간관계를 훨씬 더 소중하게 여겼던 예전의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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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4-12-10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그렇습니다. 어린 나이에 데뷔해 스타로 반짝거리는 삶을 산 아이돌 하이틴 스타들이 점차 자기에게 비춰주는 스폿 라이트가 줄어드는 걸 불안해 하다. 내면적인 고뇌를 거쳐, 스타가 아닌 진정 배우가 되는 스토리...

(자 이제 영화 찍으세요 마태님.... 레디 액숀!)

마태우스 2014-12-10 17:36   좋아요 0 | URL
어머나, 제가 진정한 방송인이 되는 과정이군요!! 피부손질 다시 시작해야겠네요^^

세실 2014-12-10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환영합니다^^
이제 알라딘에서 자주 뵙겠네요~~
종편에서 뵈어도 좋겠지만... ㅎㅎ
방학동안 에너지 충전하시길요.

마태우스 2014-12-10 17:3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제가 종편은 나갈 수가 없구요 기냥 알라딘에서... ^^ 미모는 여전하시죠??

바람돌이 2014-12-10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리딘을 등한시한 동안 어찌나 마태님이 잘나가시는지.... 가끔 tv채널을 돌리다 마태님을 발견하고 팟캐스트 듣다가 또 목소리를 듣고, 심지어는 우리 애 국어 참고서적에도 등장하시고.... 애 학교 교과서 말고 다른 국어 교과서에 마태님 글이 실렸던걸요. 세상에 교과서라니요. ^^ 책 보다가 애보고 야 엄마 이사람 알아 하면서 자랑도 하고.... ㅎㅎ
어쨌든 제가 다 뿌듯했습니다.

하늘바람 2014-12-10 12:14   좋아요 0 | URL
저두요. 저두요.

마태우스 2014-12-10 17:37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교과서라뇨. 이런 글은 써선 안된다는 반면교사로 등장한 건 아닐까요...?? 암튼 제가 님을 잠시라도 뿌듯하게 했다니 좋네요 호호 하늘바람님도 안녕하셨어요. 애가 무럭무럭 자라니 이미지 사진도 자주 바꿔야겠어요...!

하늘바람 2014-12-10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그래도 바쁘신데 서평과 페이퍼 쓰시는거보며 대단하시다 했어요.

마태우스 2014-12-10 17:38   좋아요 0 | URL
아유, 서평, 페이퍼 둘 다 거의 못썼어요. 알라딘 서재달인은 물건너간 게 아닌가 걱정...ㅠㅠ

blanca 2014-12-10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방송에서 얼굴 뵙긴 힘들어지겠지만 마태우스님의 더욱 알차고 의미 있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바라며 격려를 보내요^^

마태우스 2014-12-10 17:38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의 격려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알라딘에서 앞으로 자주 뵙겠습니다

꼬마요정 2014-12-10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의 여유.. 필수입니다요~^^
그래도 사람이 참으로 간사한 게.. 그렇게 겪어봤기 때문에 다시 여유를 찾는 것 같아요. 저도 바쁜 거 싫어서 일을 줄였지요. 스트레스가 많더라구요. 이 좋은 나이에 돈을 억만금을 벌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래도 마태님 방송 나오셔서 저도 신랑이랑 가족들한테 아는 사람이라고 자랑했답니다. ㅎㅎㅎ

마태우스 2014-12-10 17:38   좋아요 0 | URL
앗 제가 님한테 자랑거리를 드렸다니 뿌듯합니다 요정님의 요정스러운, 즉 저에게 힘을 주는 댓글, 감사드립니다

조선인 2014-12-11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이 교과서에도 실렸어요? 우리 딸아이에게 자랑해야겠어요. ㅎㅎ

마태우스 2014-12-24 23:55   좋아요 0 | URL
아 네....어쩌다 그렇게 됐습니다. 결격사유가 많은 글이라 그걸 찾아내도록 하는 용도로 실은 것 같습니다.

2014-12-24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4 2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