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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 박범신 장편소설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두어달 전 북콘서트 사회를 본 적이 있다.
한겨레출판사에서 나온 책의 북콘서트였는데,
그 출판사의 미녀 담당자는 자사의 책을 잔뜩 보내주는 친절을 베풀어줬다.
다들 재미가 넘칠 것 같은 책들이었지만,
한 권은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책이 바로 박범신 작가가 쓴 <소금>이었다.
난 박범신 작가의 책을 한번도 읽어보지 않았는데,
이유인즉슨 내가 어릴 적 전성기를 누렸던, 지금은 시대에 뒤떨어진 작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서울과 대전, 또다시 서울을 갔다가 천안으로 가는 빡빡한 스케줄이 잡힌 날,
우연히 집어든 책이 <소금>이었다.
혹시 재미없으면 때려치우려고 천명관의 신작도 같이 챙겨넣은 터였지만,
그날 난 천명관의 책은 꺼낼 생각도 못한 채 <소금>의 책장만 정신없이 넘겨댔다.
아쉬운 것은 그 책을 다 못읽었다는 점.
원래는 아내와 개 세 마리를 포함해 다섯 식구가 마루에서 다 같이 자는데,
그날 난 피곤하답시고 침대방에서 잔다며 <소금>을 가지고 들어가 책을 읽었다.
그러다 불시에 점검을 나온 아내에게 걸려 야단을 맞긴 했지만,
<소금>이 갖는 중독성은 실로 엄청났다.
“아버지는 빨대다. 자식들한테 다 빨리고, 더 이상 생산력이 없어지면 폐기처분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인데,
저자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인간의 생산력을 극한까지 착취하는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해서도 통렬히 비판한다.
“아버지는 힘들다”라는 담론은 사실 새로운 건 아니다.
그동안 그런 주장들에 대해 엄살 혹은 과장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안힘든 사람이 어딨냐?)
멋진 소설 한 편은 사람의 생각을 바꿔놓는다.
책을 읽음으로써 바뀐 건 이 땅의 아버지들에 대한 생각만은 아니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작가라고 생각했던 박범신 작가에 대해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된 것.
다행히 박작가님은 사십권의 소설을 펴내셨으니,
올해가 끝날 때까지 읽을 책이 없어서 걱정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아울러 통렬한 반성을 해본다.
나이를 가지고 한 사람을 재단하는 게 얼마나 바보같은 짓인가를.
* 말은 이렇게 해도 나이가 원망스러울 때가 있긴 했다.
대략 세명의 주인공들의 삶을 조명한 이 소설을 읽다보니
누가 누군지 간혹 헷갈렸다.
A랑 B가 사귀고 C와 D가 사귀는데
A랑 C를 혼동하는 일이 종종 있었던 것.
사실 A는 D의 아버지이니, 내 머릿속에서 패륜을 조장할 뻔했다.
이게 다 돌아서면 잊어버리게 된 내 나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