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변경>을 재미있게 읽었다.

저자가 좀 거시기하긴 해도 그가 책을 참 재미있게 쓴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내가 주인공의 일대기,

즉 언제 태어나서 몇 살 때 뭘 하고 결혼은 누구랑 하고, 돈을 얼마를 벌었고 하는 식의 책을 좋아한다는 걸 알려준 것도 다름아닌 <변경>이었다.

성석제의 신간 <투명인간>도 인간성이 바보처럼 좋은 김만수의 일대기를 그렸는데,

글솜씨도 워낙 뛰어난 작가의 작품인지라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여전히 성석제가 낯선 이유는, 원래 그한테 기대했던 건

문장 곳곳에 숨어있는 유머를 발견하는 재미였기 때문이었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비롯해 그의 책들은 읽는 내내 웃음을 줬기에,

<참말로 좋은 날>에서 유머를 뺀 그의 작품을 읽을 때 내심 당황했다.

이번 책은 제목이 <투명인간>이었고, 도입부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투명인간끼리 서로를 알아보는 내용이 나와서 다시 원래의 성석제로 돌아온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라서 아쉬웠다.


김만수라는 사람의 출생일이 50년대로 추정되고,

이 책이 그 사람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니

기생충 이야기가 몇 번 나온다.

전공이 전공이니만큼 그 얘기만 좀 해본다.

“치료나 예방이 안되는 것도 있었다. 이나 벼룩 같은 기생충이었다”(63-64쪽)

이나 벼룩같은 것들은 사람 몸에 살진 않지만 체외기생충으로 분류하고 기생충학에서 가르친다.

그런데 다음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모기, 파리 같은 기생충도 훨씬 적었다. 구더기도 기생충인지...”(65쪽)

모기와 파리는 사람에게 기생하지 않으며, 따라서 기생충은 아니다. 그냥 곤충일뿐.

그럼 구더기는? 파리가 의식이 없는 사람의 코나 입에 알을 낳아 거기서 구더기가 나오는 일은 가끔 있다.

본의 아니게 사람 몸에 들어오긴 해도 이 구더기는 기생충으로 분류를 한다.

안그래도 몇 년 전 이 구더기 가지고 두 편의 논문을 우려먹은 적이 있다.

환자 코에서 나온 구더기. 



환자의 눈에서 나왔던 구더기.




66쪽에는 채변봉투 얘기가 나온다. 

한 반 학생들 전부에게 변을 담아오라고 한 뒤 기생충 여부를 검사했던 그 채변검사.

“우리반 오십명 중 여덟명 빼고는 다 회충이 있다..내일 약을 먹어야 하니까 아침은 굶고 와라.”

선생님은 회충에 양성이 있는 학생들에게 ‘싼토닌’을 준다.

자료에 의하면 이 약은 근육을 마비시켜 기생충을 배출하게 만드는 회충약이었단다.

주인공 만수는 이 약을 먹고 어지럽다고 하더니, 나중에 운동장에 쓰러져서 기생충을 토한다.

“아이는 잠결에 입에서 무언가 길쭉한 것을 뽑아내고 있었다. 길고 질긴 쫀드기 같은 것을

자꾸만 뽑아올리고 있었다. 먼 데서도 나는 그게 뭔지 알아볼 수 있었다...“(67쪽)

그 당시엔 회충이 입을 통해 밖으로 나오는 경우는 흔히 있었지만,

길고 질긴 쫀드기같은 기생충은 아무래도 길이가 몇미터인 촌충이 아닐까 싶다.

지금이야 디스토시드 (프라지콴텔이 성분명)라는 좋은 구충제가 있지만,

과거 이 약이 없을 때는 니클로사미드 (niclosamide)라는 약을 써서 구충을 했다.

그리 신통한 구충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촌충을 죽이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몸이 기다란 촌충이 이 약을 만나서 죽으면 어떻게 될까?

장의 연동운동에 몸을 맡긴 채 항문 쪽으로 밀려가고, 결국 대변과 함께 배출된다.

그러니, 회충약인 싼토닌을 먹고 촌충이 죽는 건 아니고,

죽었다고 해도 촌충이 입으로 올라와 구토와 더불어 밖으로 배출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촌충은 이렇게 생겼다


마지막으로 148쪽. 

“암만 손님이라고는 해도 저런 인간은 사내도 아니다. 식구들 피 빨아먹는 거머리다. 기생충이지.”

여기서는 성석제 작가가 기생충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가 잘 드러난다. 

기생충을 좋게 봐달라고 역설하는 내가 보기엔 좀 서운하다고나 할까.

소설은 소설일뿐, 분석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럼에도 기생충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쓴 건, 이런 식으로라도 자신의 지식을 뽐내고픈 치기일 것이다.

나이가 오십을 향해 달려가는데도 아직 이런 마음이 남아 있다니,

철이 든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준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곰생각하는발 2014-07-27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초충 마치 제가 즐겨먹는 칼국수 라면처럼 생겼습니다...ㅎ ㅎㅎㅎㅎㅎㅎㅎㅎ

마태우스 2014-07-27 23:32   좋아요 1 | URL
그죠? 편견을 버리니 기생충이 친근해지는 겁니다^^

재는재로 2014-07-27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촌충모르고보멵 면으로착각하겠네요 근데엄청기네요 저게몸에잇다생각하면 아욱

마태우스 2014-07-27 23:32   좋아요 0 | URL
면이 우리몸에 흡수되듯이, 저게 있어도 별일 없습니다.^^

비연 2014-07-27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촌충을 보니... 갑자기 국수 먹고 싶은 생각이 사라지네요...;;;;

마태우스 2014-07-27 23:32   좋아요 0 | URL
호호 다들 기생충이 친근해지셨나봐요!

가넷 2014-07-27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락국수보다는 칼국수가 연상이 되네요. ㅋㅋ

마태우스 2014-07-27 23:33   좋아요 0 | URL
그죠 예리하십니다. 칼국수는 면이 납작하지만 가락국수는 둥글죠.!!

꼬마요정 2014-07-27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에서도 기생충이 나오는군요.. 엄청 아팠겠는걸요. 문득 책장에 꽂혀 있는 '대통령과 기생충',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을 꺼내들고 싶은데요 ㅋㅋ 마태우스님의 유머에 퐁당 빠져볼까나요~ ^^

근데 투명인간에서 기생충 이야기로 전환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점점 사라져가는(인식하지 못하는) 기생충에 대한 애도(?)인건가요?

마태우스 2014-07-27 23:34   좋아요 0 | URL
우왓 요정님이닷! 머 애도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근데 저 책들은 제가 기억하기 싫은, 악몽의 책들인데, 안보시면 안될까요 흑흑

노이에자이트 2014-07-28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에서 구더기 나오는 동영상을 본 적은 있습니다만 코에서 구더기 나오는 것은 무슨 병입니까?

마태우스 2014-07-29 19:47   좋아요 0 | URL
파리가 코에다 알을 낳는 거죠. 입에서 나오는 경우도 있구요....

카스피 2014-07-28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넘 무시무시하네요^^''

마태우스 2014-07-29 19:47   좋아요 0 | URL
그죠? 좀 아름다운 영상을 올려야 하는데 늘 이런 것만...ㅠㅠ